기자의 논단 분류
개혁을 외치는 자들, “2,000명”이나 “8,000명”이나 구호만 만발했다
컨텐츠 정보
- 3,152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12월호>
‘기독교사회책임’과 ‘작은교회운동’이 종교개혁기념일인 10월 31일 오후 2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사무실 앞에서 한국 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가두 성명서를 발표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이들은 전국의 중소형 교회 목회자들에게 성명서 초안을 발송해 10월 29일까지 1,914명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발표한 교회개혁을 위한 성명은, 신문에 따르면, △외향적 성장을 지양하고 영성으로 회귀할 것 △민족의 희망이 되는 교회를 지향할 것 △작은 교회와 큰 교회 간 공존을 추구할 것 △신학생 수를 대폭적으로 축소할 것 △한기총부터 자기 개혁에 나설 것 등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한국 교회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절감하여 내놓은 개혁을 위한 성명이었다.위의 약 2,000명의 중소형 교회 목사들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소속 15개 교단 교회들의 담임목사 8,000여 명이 10월 24일 ‘한국 교회의 갱신과 본질 회복을 위한 결의문’을 내고 한국 교계의 자성과 갱신을 촉구한 일에 자극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8,000명의 목사들이나 위의 2,000명의 목사들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문제는 의식했으나 문제의 본질도, 해결 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추상적인 구호만 외쳤던 것이다. 우선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00명 목사들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외향적 성장을 지양하고 영성으로 회귀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바른 성경도 없이 무조건 ‘영성, 영성’ 하며 애매한 용어에 운명을 맡기려 했다. 영성이 대체 무엇인가? 성경에도 없는 그 모호한 말로 믿음을 대체하려 하는데, 영성이란 카톨릭에서 유입된 용어이다. 현재 개신교와 카톨릭은 영성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신앙을 교류하고 있다. 외형적 성장 위주의 선교 전략을 반성하고 영성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카톨릭 수도승들의 묵묵한 수도생활을 본으로 제시하고 있다. 카톨릭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주님의 피흘리신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본받자고 하는 것인가? 그들은 단 한 번도 성령으로 충만해 본 적이 없다. 교회가 아닌 카톨릭을 벤치마킹하여 이교도들의 영성을 배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민족의 희망이 되는 교회를 지향하자고 했다. 그들은 비성경적인 사회복음을 내세우며 ‘민족의 희망’을 자처하지만, 정작 이 민족의 죄인들의 혼이 구원을 받아 지옥에 가지 않도록 십자가의 복음을 외치는 데는 관심이 없다. 헌금 낸 이들의 이름이 적힌 주보는 화려하게 만들면서 죄인을 “실재하는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서 구원하는 성경적인 복음 전도지 한 장 만들 줄 모른다.
셋째, 목회자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신학생 수를 대폭적으로 축소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교단(敎壇)에서 활보하게 하여 신학생들이 입학하기가 무섭게 성경을 부인하는 “무신론 신앙교육”을 받아야 하는 비참한 교단 신학교들의 개혁은 생각지도 못한다. 수많은 목사들 자신이 무신론 신학자들에게 세뇌된 자유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목회자 수급 조절을 위한 신학생 수 대폭 축소나 비성경적인 교단 교회들의 공존을 위한 균형발전이라는 시장논리만을 적용시킬 뿐이다.
넷째, 한기총부터 자기 개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교도들과 손잡고 다니는 한기총에 속해 있으면서 한기총의 개혁을 촉구하는 것이다. 무엇을 개혁하라는 것인가? 성명을 낸 목사들 자신을 개혁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
이보다 앞선 10월 24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이하 한목협, 회장 손인웅 목사) 소속 15개 교단 교회들의 담임목사 8,000여 명은 ‘한국 교회의 갱신과 본질 회복을 위한 결의문’을 내고 한국 교계의 자성과 갱신을 촉구했다. 한목협은 성명에서 “한국 교회는 내면적으로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져 경건의 모양만 지닌 채 물량주의와 세속주의에 함몰되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 갈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며 “이 모든 왜곡된 현실의 일차적인 책임은 올바른 신학적 견해와 균형목회를 추구해야 할 목회자인 우리들에게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고, “종교개혁 490주년을 맞아 한목협에 속한 우리는 개혁되었고 항상 개혁되는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갱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며 다음과 같은 결의사항을 발표했다. “1. 세속 정치의 소용돌이를 거슬러 진리의 편에 서겠습니다. 2. 수적 성장과 외형적 팽창 일변도의 선교와 전도 정책에서 벗어나겠습니다. 3. 물신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찾겠습니다. 4. 이 땅의 모든 약자들의 참된 이웃이 되겠습니다.”
한목협 소속 목사들이 위 4개항의 결의를 통해 제2의 종교개혁이라도 이룰 것처럼 숙연한 모습으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 갈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교회가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는 인본주의적 가르침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일을 위한 능력을 주신 적도 없다.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진리를 전파하고 주님의 실제적인 재림을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교회는 주님이 가져오실 새로운 세상, 곧 천년왕국을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위의 목사들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다.
둘째, 그들은 한국 교회가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져 경건의 모양만 지닌 채 물량주의와 세속주의에 함몰된 왜곡된 현실의 일차적인 책임이 올바른 신학적 견해와 균형목회를 추구해야 할 목회자들에게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올바른 신학적 견해와 균형목회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백이면 백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다면 이 나라에 있는 교단 신학교들은 모두 다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일부분만을 취해서 정립된 비성경적인 교단 신학으로 세뇌된 그들에게서 올바른 신학적 견해와 균형있는 목회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셋째, 그들은 “개혁되었고 항상 개혁되는” 종교개혁 정신에 따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갱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결의했다.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에 의해 이교도 카톨릭의 “미신”에서 벗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루터의 후손들이라고 자처하는 현재의 개신교도들은 “항상 개혁되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라 “개혁을 거듭해(!)” 카톨릭으로 회귀해 버렸다. 그들은 “교회(=카톨릭)가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져 세속권력에 빠져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고자 한다”고 했는데, 카톨릭이 교회인가? 루터의 종교개혁이 “교회라고 부를 수 없는” 카톨릭의 이단교리 때문이었던 것도 모르고서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란 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영적 역주행이다. 많은 이들이 카톨릭처럼 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보고 있고, 그래서 카톨릭을 벤치마킹하여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기를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진리의 편에 서서 역사와 사회의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교회 공동체의 본질 회복을 운운하면서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과 분쟁의 심화로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참된 이웃이 되어 섬김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복음의 빛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들이 추구하는 진리는 ‘사회복음’이다.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으로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고, 과거사를 바로잡고, 부의 재분배를 통한 빈곤 퇴치에 앞장서고,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시키고, 십자가로 평화통일을 이뤄내는 일을 복음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그것을 복음으로 인정한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복음대로 다윗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음을 기억하라』(딤후 2:8).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고전 15:3,4).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살후 1:7-9).
2,000명이나 8,000명이나 그들에게는 구호만 만발했다. 한국 개신교계를 대표한다는 10,000명의 목사들은 현 문제가 성명을 낸 자신들에게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매년 종교개혁 기념주간이 되면 말만 그럴듯하고 속은 텅 빈, 아무런 성경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거품 같은 구호들만 들려오는데, 하나님의 일은 어떤 날을 기념하거나 구호를 외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운동을 벌인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경”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듭나지 못한 자유주의자들이 선호하는 변개된 성경이 아닌 바른 성경,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한글킹제임스성경>이다. 이 성경으로 성령의 조명을 받아 깨우치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알게 되고 위와 같은 쓸모없는 일에 자신을 허비하지 않게 된다.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길에 빛을 비추는 등불이다(시 119:105). 그 말씀이 들어가면 우매한 자가 명철을 얻게 되는데(시 119:130), 말씀으로 명철을 얻으면 하나님을 섬긴다며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들어가지 않은 고로 오늘날처럼 헛된 구호만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원한다면 “바른 말씀”으로 돌아가 그 말씀의 진리를 실행해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