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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설교- 죄인들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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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8월호>

거리설교- 죄인들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지혜



성경은 『시간을 사서 얻으라.』(엡 5:16)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모든 일에 더욱더 열심을 내라는 말씀이다. 그 중에서 가장 열심을 내서 수행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일은 바로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죄인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복음을 전파해 본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사람의 혼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하기까지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대적 원수 마귀는 자신의 자녀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복음을 듣지 못하게 작전을 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설교하고 개인 구령하는 모습들을 보면 대한민국 땅에도 서서히 성경적인 복음 전도의 방법이 뿌리를 내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로 성경대로 믿는 주님의 강력한 군사들이 전국 곳곳에서 매주 날짜를 정해 놓고 그룹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거리설교와 구령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면 구령, 구원, 거듭남이라는 용어들을 많이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반 제도권 교회의 열심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거리에서 설교하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는데 그들 중에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사역에 도전을 받고 그들도 이 대열에 자기들 나름대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성경대로 올바른 교리에 의하여 복음을 전한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필자가 반가움 반 우려 반으로 그들의 설교를 몇 번 유심히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이 전하는 것은 복음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 많았고 귀한 용기와 열정에 비해 열매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철에서 복음이 아닌 자신의 사적인 간증을 하면서 “예수 믿으면 좋다.”는 말로 끝을 맺고 황급히 다른 칸으로 옮겨가서 또다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하고 다른 칸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았다. 또 다른 사람은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백발의 할아버지였는데 약 20여 분 동안 확성기를 통해서 전하는 말이 한마디의 복음도 흘러나오지 않고 오늘날 처해 있는 제도권 교회의 잘못을 성토하며 자신들이 사용하는 성경을 설명하는 데만 시간을 다 허비하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모처럼 진짜 복음 같은 내용을 전하기에 반가운 마음에 기대하며 듣고 있는데 잘 나가다가 끝에 가서는 다르게 끝마무리를 함으로 소위 말하는 몇 %가 모자라는 느낌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하는 때도 있었다. 선한 동기에서 시작한 거리 설교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과 그들이 전하는 내용이 큰 차이가 나서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서 구령자는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고 순간순간 대처할 수 있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하다. 거리설교는 그야말로 거리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지옥의 형벌에 대해서, 그리고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 강력하게 선포 하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거리에서 강력한 설교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성경으로 찔렀듯이 그렇게 죄에 대해서 찔림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죄의 삯인 사망과 그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지옥의 형벌에 대해서 강력한 도전을 주어야 한다. 그런 후 하나님의 자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면 된다.

거리에서 하는 설교는 그 특수성이 초대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는 유동인파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때 그 상황에 맞게 설교해야 한다. 공원이나 사람들이 모여서 듣고 있는 특정한 장소 같은 경우라면 차근차근 순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누군가가 분명히 처음부터 귀를 열고 듣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복음을 전한 후 구원으로 초청하는 영접 기도로 인도하면 무리없이 잘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쉴새없이 사람들이 지나가는 장소라면 짧은 시간에 들을 수 있도록 반복적인 설교가 더 효과적이고 좋다. 그런 장소에서는 영접을 촉구하기에는 집중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열심히 목청을 높여 전하지만 그 시간에 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설교 순서에 따라서 설교 끝 무렵에 영접 기도를 인도할 시간이 되었으므로 판에 박은 듯이 혼자서 영접 기도를 인도하고 있는 것은 조금은 어색해 보인다. 그와 같은 장소에서 영접하는 기도를 선창하고 있으면 자칫 혼자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는 이상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어리석음이 세상의 지혜있는 자들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 사실이고, 복음 전도의 어리석음이 죄인들을 구원받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거리에서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멋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고 자칫 초라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가 거리설교를 하다 보면 유난히 관심있게 듣고 있는 사람이 종종 발견된다. 그런 경우에 다른 지체가 주위에 없어서 구령 상담을 할 수 없다면 필자의 경우는 설교를 서둘러 마치고 그 혼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다시 전하면 거의 모두 다 영접하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융통성을 발휘해서 죄인들을 이겨올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사람들을 상대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한 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성경에는 아름다운 열매와 박해는 늘 함께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거리에서 설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촉구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다. 그런데 마귀는 이와 같이 많은 열매맺는 사역을 보고만 있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을 통해서 늘 방해하곤 하는데 베드로와 요한도 종교 지도자들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풀려나 또다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다시 붙잡혀 갇혀 있을 때 천사가 그들을 풀어 주며 담대히 전하라는 격려의 말까지 하고 사라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처럼 박해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역이 강력하게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교회에 더해졌다.

사도 바울 역시도 수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전파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했다. 그는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찬송하며 기도했을 때 베드로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 일행에게도 놀라운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셨다. 그들이 갇혀 있는 감옥의 옥터가 흔들리고 그들에게 매여져 있던 쇠사슬이 풀려서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자결하려고 하는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으로 인도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는 유명한 성경 구절을 남기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열매를 거두신다. 그는 수많은 박해 가운데서 사역을 했다. 그는 돌로 맞고, 몽둥이로 맞고, 채찍으로 맞고,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죄인들을 향해서 외쳐야만 하도록 제작된 기계처럼 주저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은 모든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 교회 시대와 암흑 시대에서는 이처럼 박해도 심하고 환경도 열악했지만 모든 것을 극복하고 복음을 전했던 믿음의 선배들에 비해서 우리는 거의 방해받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들도 거리설교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마다 지혜롭게 처신해야만이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종종 불량한 사람들에 의해서 방해를 받기는 하지만 그들과 부딪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한발 물러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사적인 감정에 의해서 방해를 받을지언정 법으로 금지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정말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 어장이라고 여겨진다.
이 황금기를 잘 이용해야만 한다. 이러한 호기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일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영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마귀의 공격에 노출되어 육신적이 되기 쉬운 곳이 바로 거리설교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향해서 죄인이라고 외치며 죽어서 지옥으로 간다고 외쳐대는 사람들을 못마땅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시비를 걸면 지혜롭게 피해야지 그렇지 않고 서로 언쟁을 하게 되면 큰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고, 그 틈을 이용해 마귀가 큰 싸움을 일으키게 하거나 분위기를 망쳐놓아 효과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게 한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거리설교 하는 데 있어서 날씨도 무척 중요하다. 물론 개인 구령은 상관없지만 날씨가 우중충하거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해가 져서 어두컴컴한 곳에서도 가급적이면 안 하는 것이 좋다. 그 귀한 복음이 자칫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비가 온 후 날씨가 잔뜩 찌푸린 더운 여름날 오후에 장년부에서 여의도 공원으로 거리설교를 하러 갔다. 그런데 그날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들고 일어났고 우리의 형제들도 여기저기서 그들과 충돌 직전까지 가는 순간들을 맞이했다. 마귀가 심하게 역사하니까 기도하고 시작한 그 사역이 어수선하게 되고 자칫 형제들이 육신적이 되어 봉변을 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날은 날씨 때문에 많이 망설이다가 가기로 결정을 했는데 결국은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닥쳤던 것이다. 그날 오전에 목사님께서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가급적이면 거리설교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강행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런 날은 통계적으로 볼 때 영적 전쟁이 치열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비가 오려고 하면 정신이상자들이 더욱더 날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영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소식을 들고 나가서 그것을 전하는 일이 그렇게 귀하기에 원수 마귀는 그 사역을 극도로 싫어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역을 방해한다. 우리 모두 기도하고 지혜롭게 복음을 전한다면 아름다운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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