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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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교회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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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1월호>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처럼 한번 잘못 들어선 길에서 다시 나오기란 쉽지 않다. 어떤 일에 몹시 심취한 사람을 "마니아"라고 부르는데, 나쁜 습관이나 과도한 취미 활동으로 소중한 세월을 탕진하면서도 거기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중독되어 버렸거나 지금 벗어나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맨 처음 어디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느냐에 따라 지상 생애뿐만 아니라 사후의 영원한 운명까지도 좌우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소속된 교회가 다분히 "비성경적"이라면 그건 어떤 것보다 매우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 교인들 대다수는 여러 교회들을 돌아다녀 본 경험이 있기에, 이제 와서 또 다른 교회를 찾아본들 지금과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교회를 애써 찾아 나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는, 이 나라에도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한글킹제임스성경>과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소속되어 있는 비성경적인 교회들로부터 "성별하지" 않은 채 인생을 허비하고만 있다. 교리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자기네 교회들이 부패할 대로 부패했고 잘못된 지식과 종교적이고 인간적인 전통들에 찌들어 있음을 알면서도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주저하는 것이다. 분명 성경은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고 명령하시는데, 그 "겁쟁이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인가?

기존 교회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다.

이것은 마치 롯의 아내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하는 소돔에 대해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것과 같다. 신앙의 첫발을 내디딘 곳이고 오랜 시간 기반을 잡으면서 보내 온 정든 교회이기 때문에 섣불리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교회들은 불행히도 믿음이 성장한 듯한 착각 속에서 구원받지 못했거나 구원의 확신이 없으며 성경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성경 구절 하나를 놓고도 목사들 및 신학자들마다 해석을 다르게 하는 기독교계의 모순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리석음과 무지 그리고 다수의 군중 심리 속에 안주하려고 한다. 정해진 수학 공식에 따른 문제의 답이 하나인 것처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대한 해석 또한 하나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수학 공식을 해석하는 것이나 그것을 근거로 문제를 풀었을 때 나오는 답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수학 공식 같은 것은 만들어서 뭐 하겠는가?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말씀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누구의 말을 진리로 신뢰할 수 있겠으며 그런 말씀은 존재해서 뭐 하겠는가? 바른 성경도 없고 올바른 진리를 제시해 주지 못하는 교회들에서는 평생을 다녀도 "정답"을 결코 얻지 못하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미련이 남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교회에 갖다 바친 "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나라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형형색색의 헌금 봉투들이 즐비하다. 웬만한 교회들은 십일조를 낸 사람들의 명단을 소위 "주보"에 공개한다. 교회 안에서 장로, 집사, 권사 등의 직분을 사거나 믿음이 좋은 일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헌금을 내야 한다. 헌금 생활을 성실하게 해야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바친 액수가 아쉬워서라도 쉽게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관계" 역시 기존 교회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혈연, 지연, 학연을 비롯해서 사업상 맺어진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포기하는 순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온전한 헌신이 두려워서이다.

이것은 그동안 헌납한 돈이나 시간보다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더 큰 요인이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정들고 미련이 남아 있어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무언가 붙잡을 만한 것이 생기면 그런 것들을 과감히 청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전한 헌신"은 그런 종교인들이 보기에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지 못하다. 이런 인간의 마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적시하셨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경시하게 됨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마 6:24).

바른 성경, 바른 진리, 바른 교회를 찾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이 현재 추구하는 신앙의 가치가 올바른지와 자신의 양심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순수한 양심인지에 대한 "시험대"이다. 그래서 온전한 헌신을 두려워하는 교인들은, 자기들이 온전한 진리를 선택할 경우 향후 자신의 생애가 "어떻게 헌신적으로 바뀌어야 하는지"가 예상되므로 그 시험대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올바른 선택을 회피하고 만다.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며 제도권 교회 내에 안주한다. 그들은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성도들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위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면서 반대자들의 질시와 조롱을 개의치 않은 채 언제 어디에서든 자원하는 마음으로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는 모습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자기들은 그런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인 양 치부하면서 온전한 헌신을 꺼려하는 것이다.

마귀는 그들의 마음속에 감히 성별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을 심어 준다.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힌 겁쟁이들 중에는 "목사들"이 단연 으뜸이다. 당장에라도 사탄의 변개된 개역성경을 버리고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게 되면, 대다수의 교인들이 떠나 버리고 소속 교단으로부터는 이단으로 몰려서 결국 목사 직분까지 박탈당해 먹고 사는 일이 막막해진다. 그런 자들이 바로 "생계형 목사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수해서라도 바른 성경과 바른 믿음과 실행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훨씬 뛰어난 영원한 영광의 비중』(고후 4:17)을 이루어 가는 길이고, 그런 시련의 과정이 없이는 결코 참되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직 주님과 진리를 위해 자신의 남은 생애를 온전히 헌신하기가 그렇게 두렵고 아까운 것인가? 그런 자들은 평생을 마귀에게 속아 영적인 무지와 어둠 속에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날 반드시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철학이나 종교적 사상 혹은 이념 정도로 아는 사람은 결코 성경대로 살 수 없다. 그럴 능력도 없다.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의 엄중한 음성으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세상을 이길 수도 없고 세상을 향한 사랑을 버릴 수도 없다.

이 땅의 부패한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막 12:30)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딤후 3:12)는 말씀도 너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다(호 8:12). 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꽤 괜찮은 교인들로 인정받음과 동시에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추구하며 살기를 좋아한다. 양심은 화인 맞아서, 세상의 풍조를 따라간 죄들에 대해 성령님이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아무리 일깨워 주신다 해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약 4:4)는 말씀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고 즐기는 자신들을 책망하지 않거나 매우 육신적인 어린 아기들로(고전 3:1) 취급하지도 않는 거짓 목사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교회들에서 속히 빠져나올 이유도 없는 것이다.

현대 교회들은 부패한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모습 그 자체다(계 3:14-22). 영적으로 부패했기에 도덕적으로도 부패했다. 바른 성경 없이는 결코 진리의 지식을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참된 성도라면, 바르게 보존된 성경에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어느 교회에서 세울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과연 일급수에 살아야 하는 물고기가 썩은 물에서 살 수 있겠는가? 속히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런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뒤로 미루지 말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 용기 있게 믿음으로 결단하고 성별을 실행하지 않는 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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