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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요새를 무너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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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9월호>
"요새"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견고하게 구축한 군용 시설이나 그에 준하는 시설을 갖춘 전략적 요충지를 뜻한다. 따라서 요새의 의의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가능한 한 오래 견디고 아군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과거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전방에 삼중으로 된 성벽과 후방에 바다를 등진 천연의 배수진을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는데, 그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정면으로 돌파하거나 뒤쪽 항구를 통해 상륙 작전을 펼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벽의 높이가 너무 높고 그 두께 또한 상당했던 데다가 후방을 통한 상륙 작전 역시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도박성 전략"인지라, 사실상 요새 점령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연유로 약 천 년 동안 함락된 적이 없었던 콘스탄티노플은 오늘날까지도 자연적 지형과 인공적 건축물이 잘 조화된 전략적 요새로 회자되고 있다.다윗은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라.』(시 62:2)고 말하면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주 하나님을 요새로 묘사한 바 있다. 그러니까 그 요새 안에만 있으면 자신을 향한 어떤 공격에도 결코 요동치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키시는 요새이시다. 그분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는 성도는 세상의 어떤 위협 속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고, 다윗이 주님 안에서 누렸던 것과 동일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무너뜨려야 하는 요새가 있는데 고린도후서 10:4-6의 내용이 그것이다. 즉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구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세운 모든 높은 것들』이다(5절). 여기서는 인간의 생각과 마음 안에 형성된 "내적인 요소들"을 요새라 표현했는데, 그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속히 무너뜨리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구상』의 부정적인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창 11:1-9). 현대인들의 염원이기도 한 완전한 통합이 있었던 그때, 인간들은 감히 하나님께 도전하려는 마음을 현실화하기 위해 한 장소에 모여 여러 가지 구상을 내놓았다. 이내 그들은 성읍과 탑을 세우려는 구상에 착수하여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회반죽을 대신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 놓으신 것들을 무시하고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것들을 재료 삼아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는 가증한 행위였다. 결국 인류는 최초의 도시 건설자 카인이 남긴 반면교사의 사례를 망각한 채 『우리가 온 지면에 멀리 흩어지지 않게 하자.』(창 11:4)는 희망찬(?) 구호 아래 도시 공사에 착수했고, 또한 루시퍼가 남겨 놓은 반면교사의 사례를 까맣게 잊은 채(사 14:12-15) 하늘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탑을 세우기 위한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인간의 구상으로부터 비롯된 일의 결과는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바랐던 것과는 정반대로 온 땅의 언어가 혼란케 되어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용납하실 수 없는 일을 인간들이 벌였을 때 친히 그들의 분열을 조장하신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구상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는 인간이 짓는 죄들이 그와 같은 구상들로부터 야기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6:5에서는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하다" 하고, 8:21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상상이 어려서부터 악하다"라고 말씀하신다. "상상"이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로 "구상"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요소인데, 우리가 잠시 불필요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순간 사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개입하기 때문이다. 사탄이 상상의 밭에 독보리를 뿌리고 나면 결국 죄를 지으려는 구상이 도출되는 것이다.
바벨탑 사건의 비극은 인간의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며, 인간 스스로의 구상에서 비롯된,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완악함의 결과였다. 인간의 상상과 구상은 본질적으로 세상 지향적이고 마귀적이다. 이러한 내면의 요새가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마음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특권과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입증하는 것을 뒤로 제쳐 둔 채, 자기 안에 맴도는 쓸데없는 구상에 집착하여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이들이 많은 것인데, 성경이 주는 교훈을 통해 그와 같은 요새를 속히 무너뜨려야 할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고 공부하라고 명령하신다(요 5:39, 딤후 2:15). 성경에 무지하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고,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부재하면 영적으로 전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이 부재한 사람은 얼마 안 가서 형식적인 종교 생활로 자신을 가장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성경적 지식을 확립하거나 증진시키지 않고 타성에만 젖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결국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는 죄와 다름없다. 여기에서 "거역"이란 말은 윗사람의 뜻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거스르는 행위를 뜻하고 있는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고, 결국 영적으로 파멸되고 만다. 영적 파멸이 지식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연쇄적인 결과물임을 주목하라!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호 4:6).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는 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교만함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추켜세우기 좋아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 삼지 않고 스스로 최종권위가 되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복종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자신의 삶을 주관하려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별적으로 취하면서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가장하며 위선을 부리는 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이것은 비단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교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도 해당된다. 죄는 결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구원받기 전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한 채 유대교의 교리에 정통했던 바울은 지식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멸망해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뒤에는 이전에 지녔던 모든 지식을 손실과 배설물로 여겼는데, 이는 새롭게 변화된 그가 보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이전에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유대교의 교리보다 훨씬 더 고상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믿는 일에 앞서 있었으며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 더욱더 열성을 냈던 그가 이제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나 그리스도를 위해 손실로 여기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응당 바울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손실과 배설물로 여겨야 한다. 안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뒤로 제쳐 둔 채, 그에 반하는 것들을 더 우선적으로 취하여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일을 속히 중단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 구축된 내면의 요새를 무너뜨리기 위해 필요한 무기는 총이나 대포, 바주카포 같은 것들이 아니다.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않는다(고후 10:3,4). 우리가 손에 들어야 할 무기는 오직 하나님을 통해 견고한 요새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이다. 이 무기들을 가지고 각자의 마음 안에 견고하게 세워진 요새들을 매일매일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다. 혹시 내면의 요새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아 힘들고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가? 그렇다면 기도를 통해 다시 한 번 힘을 회복하고 영적인 사기를 북돋우라! 내면의 요새들이 너무나 견고해서 어떤 전술을 사용해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가? 그렇다면 단단한 바위를 부수어 조각내는 큰 망치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벽을 허물어 버리라! 이러한 요새들이 무너질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주님께 온전히 복종케 될 수 있다. 그러한 복종이 이루어짐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복종이 응징될 때, 우리는 주님 앞에 귀한 그릇들로 발견될 것이며 그로 인해 더욱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