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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는 전천년주의 신앙을 확고하게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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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7월호>

교회사는 전천년주의 신앙을 확고하게 지지한다



오늘날은 정통이라는 말이 다수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단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실행하면 그것이 곧 정통인 양 취급되고 있다. 오늘날 은사주의 교회들이 정통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중세 유럽 암흑 시대에는 로마카톨릭이 정통으로 군림했었다. 성경대로 믿고 실행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으로 취급당했던 것이다.
이것은 종말론 논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장로교가 득세하다 보니, 무천년주의가 정통으로 인정받고 전천년주의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신학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는 이단으로까지 곡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천년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비평은 다음과 같으니, 즉 전천년주의, 특히 세대주의는 19세기 후반 영국 플리머스 형제단의 존 다비(J.N. Darby)에 의해 처음 주창되었고, 1909년 스코필드 주석성경의 영향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로 무천년주의자들에 의한 이러한 비평은 전천년주의의 역사를 20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으로 축소 시키려는 의도이며, 전천년주의가 마치 현대에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한 이론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반면 무천년주의는 칼빈과 저 멀리 어거스틴에 이르기까지 소급해서 정통 신앙인 양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교회사에 등장한 전천년주의자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숭고한 믿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밝힐 것이다.

전천년주의에 대한 이러한 단편적인 비평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주로 비평하는 내용인 시대에 대한 구분이나 휴거에 대한 교리는 전천년주의의 핵심이 아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 예언에 대한 믿음 등 전천년주의의 핵심 사항은 다른 데에 있으며, 시대에 대한 구분은 오히려 전천년주의적 성경 해석의 한 결과물일 뿐이다. 그러나 무천년주의자들은 “시대에 대한 구분”을 전천년주의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신학이 존 다비 이후로 나왔음을 근거로 전천년주의 자체가 19세기 이후의 것이라고 오도하는 것이다.

“시대에 대한 구분”이라는 신학이 스코필드 이후에 체계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천년주의의 핵심은 다른 데 있으므로, 다른 부분에서 전천년주의의 역사성을 찾아야 한다. 물론 시대를 나누는 것도 다비나 스코필드가 처음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시대에 대한 나눔은 있었다.

1. 교회사에 등장한 전천년주의자들

전천년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후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는 성경적 교리로 요한계시록 20:1-6을 정확하게 해석한 체계이다. 이것은 단지 재림의 시기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은 죄악으로 치닫다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의와 화평의 완벽한 왕국을 세우신다는 세계관이기도 하며, 또한 그렇기에 성도들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할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 전파를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는 성도들의 행동 지침이기도 하다.
전천년주의 신학, 혹은 전천년주의적 신앙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뒷받침된다. 이것이 세대주의 체계의 “전제”이며,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특히 예언의 성취를 문자적으로 믿는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말씀을 올바로 나누게 되고(딤후 2:15), 그래서 시대에 따른 구분이 나온다. 또한 이스라엘의 문자적 회복을 믿으며, 무엇보다 천년왕국은 지상 왕국임을 믿는다. 반면 무천년주의는 교회를 통해 영원히 확장되어 나가는 영적 왕국만 인정한다. 무엇보다 기독교 왕국의 확장이 영적 왕국의 확장이라 믿는다. 이것이 로마카톨릭과 존 칼빈이 믿고 행한 바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간다고 말씀하기 때문에, 재림이 아니라면 교회의 확장으로는 왕국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전천년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소망을 갖는다. 또한 교회의 중요성과 사명감에 대해 강조하기에, 전천년주의자들은 실제적인 복음 전파자들이다.

그렇다면 교회사를 통해서 살펴본 전천년주의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전천년주의는 언제부터 있어 왔는가? 정말 19세기 말의 존 다비에 의해서 시작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전천년주의의 특징이 바로 위에서 제시한 그런 것이라면, 전천년주의의 역사는 2,000년이나 되는 것이다.

1) 사도들과 교부들 시대

먼저, 사도들이 전천년주의자들이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대환란과 적그리스도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또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에 죄악이 급증한다는 것을 언급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만이 복된 소망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신앙은 교부들의 시대에도 이어졌다. 바나바는 “하나님께서는 6일간에 일(창조)을 끝내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6천 년에 모든 일을 끝내실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는 제7일에 쉬셨다. 그의 아들이 재림하시면 악한 자들을 멸망시키시고... 제7일에 쉬실 것이다.”고 말하여, 모형론적으로 7,000년 체계를 언급했다. 이레내우스(A.D. 130-202, 리용의 감독)는 “3년 반 동안 계속되는 적그리스도의 활동과, 그후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사탄을 결박하시고 부활한 무리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천 년을 통치하신다.”라고 말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언약을 “홍수 이전에 아담에게 주어진 것,” “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주어진 것,”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 그리고 “은혜의 복음” 등으로 나누기도 했다. 저스틴 마터(A.D. 100-165)는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 있고, 에스겔과 이사야에서 가르친 대로 예루살렘에 천 년 기간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년왕국을 세우시며 예루살렘을 회복하시고 성도들 가운데서 그곳을 통치하신다...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을 기대하는 것이 바른 교리의 초석이다.”라고 말했으며, 터툴리안(A.D. 160-220)도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여 왕국을 통치하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부들이 전천년주의자들이었다. 당시 전천년주의는 “천년지복설”(Chiliasm)이라 불렸으며, 이 믿음은 팽배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타격을 받게 된다. 사탄은 콘스탄틴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카타콤에서 이끌어 내어 배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이 로마를 정복했다고 믿었다. 이 잘못된 믿음이 이후 카톨릭 종교에 의해 발전되면서, 바로 그때 천년왕국이 임한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지 않으셨지만 영적 왕국이 임했으며, 이 왕국이 1,000년간 지속된 다음에(꼭 1,000년이 아니라도 좋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거짓 이론이 퍼지게 되었다. 이 이론의 강력한 주창자는 바로 어거스틴이었다.
로마 교회는 기독교화된 로마 제국을 통해서 보호받았으며, 서로마제국이 멸망된 후에는 게르만족의 프랑크 왕국을 통해서, 그 후에는 또 독일 황제(신성로마제국)를 통해 보호를 받으며 정치와 결탁하게 된다. 그리고 정복자를 앞세워 십자가를 꽂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요, 천년왕국의 확장이라 생각했다.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는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의 역사가 아무리 깊다 해도 로마카톨릭이라는 창녀 교회와 함께 시작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2) 중세 암흑 시대

후천년주의자들이 이렇게 왕국을 확장시키는 동안 가장 방해가 되는 세력이 바로 “성별주의자 그룹들”이었다. 이들 성별주의자들은 교회의 순수성을 강조했고, 교회가 정치와 결탁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무엇보다 유아세례와 미사를 통해 사람들을 어릴 때부터 로마카톨릭 왕국으로 집어넣는 행위를 반대했다. 당연히 이들은 미움을 받았고, 순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중세 암흑 시대의 전천년주의 역사는 이들 순교자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3세기 후반의 노바티안(Novatians), 4세기의 도나티스트(Donatists), 7세기 이후 꾸준히 있어 왔던 폴리시안(Paulicians), 알비겐스(Albigenses), 보고마일(Bogomiles), 11세기 이후에는 왈덴스(Waldenses) 등, 이외에도 이름을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그룹들이 전천년주의 믿음을 실행하다 박해를 받았다. 노바티안은 니케아 공회에서 정죄를 받았고, 도나티스트는 어거스틴에게 심한 박해를 받았다. 왈덴스는 기록만 보더라도 36번의 박해를 받았으며, 특히 십자군 전쟁 때 가장 심한 박해를 받았다. 중세 시대의 종교 재판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당시의 현안들인 유아 세례나 미사, 교회 국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마리아 숭배 문제 등에 대해 단호했다. 반면 로마카톨릭은 이러한 비성경적인 실행들과 더불어서 왕국의 확장을 꾀하였다. 따라서 성별주의 그룹들은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고, 박해를 받았으며,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박해의 시대일수록 재림을 더욱 강조하기 마련이다.
비단 로마카톨릭뿐 아니라 무(후)천년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교회들은 기독교 문화를 확장함으로써 기독교 세력을 확장시키고, 그것으로 천국의 확장을 꾀한다. 그러므로 교회-국가의 연합을 반대하는 것은 곧 전천년주의적인 관점이다. 전천년주의는 어떠한 정치적, 문화적, 혹은 세속적 권력과 연계된 어떤 것으로도 천국을 임하게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는 핵심적인 신앙 자세가 된다.

3) 종교개혁 시대

아쉽게도 개혁자들은 기본적으로 무천년주의자들이다. 그것은 이들이 카톨릭의 핵심교리인 교회-국가 연합에 대한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칼빈은 스위스 제네바에 신정국가를 이룩함으로써 천국을 가져오려고 했다. 이것은 “기독교”(정치, 문화, 복음 등 어떤 이름을 붙인다 해도)로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의미이다.
또한 종교개혁의 여파로 카톨릭 세력이 다소 무너지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회가 다소 개혁되는 일이 일어나자, 이것은 “천년왕국이 시작되었다”는 후천년주의 이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개혁자들로부터도 성별주의 그룹이 분리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재침례교도”라 불리게 된다.
재침례교도들은 암흑 시대의 성별주의자들과 정확히 같은 관점을 가졌다. 그들은 여하한 형태의 교회-국가의 연합을 반대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만이 왕국을 가져온다는 관점을 고수했다. 반면 개혁자들은 그들의 적이 오직 로마 교황일 뿐이었기 때문에, 카톨릭과 맞설 수 있는 개신교 세력을 형성하는 것을 큰 목표로 삼았다. 물론 여기에는 그 개혁자들과 결부된 왕들의 역할도 컸다. 따라서 무천년주의의 역사를 칼빈과 어거스틴으로 소급할 때, 그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죄인들을 복음으로 구령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세력을 세상에 뻗치고 교회의 법으로 통치하려 함으로써 왕국을 확장하려 했기 때문이다. 반면 전천년주의자들은 어느 시대에서 어떤 박해를 받으며 어떤 이름으로 불려졌든 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에 소망을 두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시대를 좀더 잘 나누고 못 나누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이 악한 세상을 책망하며 복음을 전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커다란 의의는 모든 사람의 손에 자국어 성경을 갖다 준 것이었다. 이것은 복음 전파와 더불어 성경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게 해주었다. 비록 무천년주의자들이 세력을 얻기는 했지만, 전천년주의적 성경 연구도 성과를 보였다. 존 다비보다 훨씬 이전에 “경륜에 따른 시대”를 구분하는 체계가 드러났던 것이다. 윌리암 고지(William Gouge, 1575-1653)와 아이작 와츠(Issac Wattz, 1674-1748)는 6개의 경륜들을 제시했고, 피에르 포이레(Pierre Poiret, 1646-1719)는 7개의 경륜들을 제시했다. *1)

4) 현대적 전천년주의 신학의 체계

이와 같이 박해 가운데서도 정금같이 빚어졌던 굳건한 믿음과 폭넓은 성경 연구를 통해 오늘날 전천년주의 신학은 체계가 뚜렷해졌다. 이 신학을 체계화시켜 우리를 올바른 믿음으로 이끈 이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1)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는 플리머스 형제단을 형성했는데, 이들은 성별주의 그룹으로, 이전 시대의 전천년주의 신앙을 계승했다.
(2) 스코필드(C.I. Scofield)는 <스코필드 주석성경, 1909, 1917>으로 전천년주의의 대중화를 이루었다. 당시에 믿음 있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성경을 읽었다. 이 성경에 제시된 관주와 주석 체계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를 급속도로 확산시켰다. 또한 이 성경은 이후에 생겨난 모든 주석 성경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스코필드 성경의 영향은 당시 우리 나라에까지 선교사들을 통해 끼치게 되었는데, 일제 시대와 해방 후까지 한국 교회의 기본 신앙은 전천년주의였다. 고난이 있을수록 재림을 사모하는 법이다.
(3)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rkin)은 <세대적 진리>를 통해 더욱 자세한 체계를 성립했다. 이 책은 위대한 고전이다.
(4) 로버트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은 후천년주의자들과 깊은 논쟁을 통해 전천년주의를 학문적으로 변증했다. *2)
(5) 루이스 췌이퍼, 존 F. 왈부드, 펜테코스트, 피터 럭크만 등 수많은 전천년주의 신학자들은 성경 예언의 분명함을 제시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탄의 정체와 활동을 정확히 밝혀 놓아, 성도들의 영적 전쟁에 힘을 더해 주었다. *3)
(6) 그외 위대한 복음 전파자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스펄전, 고든, 무디 등의 설교자들은 전천년주의자들이 실제적인 복음 전파자들임을 증명해 주었다. 무디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이 끝나고 돌아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의 오심을 기다리라고 지시하신다.”

2. 전천년주의적 신앙

전천년주의의 구체적인 면들에 대해서는 다소 차이가 있고, 더 혹은 덜 향상된 면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천년주의의 신앙 자체는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완전한 지상왕국을 이루신다는 것
2) 그때까지 세상은 더 악해져 가고, 어떠한 인간적인 방법으로는(또는 소위 “기독교적 방법”) 왕국을 이룰 수 없다는 것
3) 왕국의 확장을 말하며 비대해져 가고 있는 제도적 교회들은 거짓 교회들이라는 것
4) 그래서 전천년주의자들은 성별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5)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취하며, 왕국과 교회를 분리하는 것: “전천년”이라는 말 자체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취한다는 것이다.
6)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는 것: 재림의 시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을 사모하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암흑 시대의 모든 성별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신앙을 가졌고, 오늘날 성경대로 믿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전천년주의적 신앙의 유산이다. 당신은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BB

1) Peter S. Ruckman, How to Teach Dispensational Truth, (Pensacola, Fla.: Bible Baptist Bookstore).
2) Robert Anderson, The Coming Prince, Prefaces & Introduction에서 앤더슨은 후천년주의자들과 심도 깊은 논쟁을 통해 성경 예언을 입증하고 있다.
3) 다음과 같은 저서들은 하나님의 경륜과 예언의 성취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Lewis Sperry Chafer, Grace, Kregel; John F. Walvoord, Prophecy in the New Millennium, Kregel, 2001; Dwight Pentecost, Thy Kingdom Come, Wheaton, 1990; 특히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마귀에 대한 영적 전쟁에 관해서는 피터 럭크만 박사가 탁월하다. Peter S. Ruckman, The Sure Word Of Prophecy, Bible Believers Press(Fla.:Pensacola, 1969),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서울: 말씀보존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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