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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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탐욕에 사로잡힌 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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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9월호>

고난 중에 욥은 "왜 악인의 권력이 막강해지느냐?"라고 물었고(욥 21:7), 왕국이 멸망하는 시대를 살았던 예레미야는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탐욕에 빠졌으며(렘 6:13) 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제사장들이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니 백성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한다고(렘 5:31) 부르짖었다.

"권력과 탐욕"은 사탄의 반역만큼(사 14:13,14, 겔 28:12,13,16) 그 역사가 매우 깊다. 그래서 권력과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도 끝이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끊임없이 부를 탐내고, 부를 소유한 자는 계속해서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미 장악한 권력을 유지하고자 부를 더 많이 축적하려 하고, 기존에 갖고 있는 부를 지속하기 위해 한층 더 강화된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돈이 곧 권력이 되고, 권력이 곧 돈이 되어 버린 세상의 추악한 현실인 것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줄리어스 시저는 돈을 이용해서 정치가로서의 권력을 유지했다. 그가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을 동원하여 로마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 것도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다. 심지어 그는 "병사와 돈, 두 가지가 권력을 창출하고 지탱해 준다. 돈이 있어야 병사도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톨릭의 교황들 역시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권력과 부를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가수반들과 결탁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돈으로 교황을 배출하여 가문의 권력을 유지시켰고, 독일의 히틀러는 독점 자본가들의 재정적인 지원에 힘입어 절대 권력을 차지했다. 푸틴 대통령이 3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한편으로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 업체인 러시아의 "가스프롬"을 국영화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제 그는 그 두둑한 돈을 앞세워 4선까지 도전함으로써 장기 집권을 하려는 야망을 꿈꾸고 있다. 『네 사악함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지 아니하냐?』(욥 22:5)

오늘날 목사들이 교계에서 한자리하려면 돈은 필수라고 한다. 특히 어떤 교단의 수장이 되기 위해 입후보 등록비로 수천만 원을 내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그들의 규정에 따라 1억 5천만 원을 내야 한다. 물론 교단장 선거에서 낙선해도 등록비를 돌려받지 못한다. 그런 재정적인 부담을 감수하고 입후보 신청을 할 무모한 목사가 있을까 싶겠지만, 권력과 탐욕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성은 그만큼 인간을 한없이 어리석고 추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잠깐뿐인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영원한 불못"도 마다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니던가!

후보 등록비가 이렇게 높다 보니 "대형 교회" 목사가 아니고서는 교단장이 되는 꿈을 꿀 수도 없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그 재원이 "교인들의 헌금"을 통해 마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헌금 액수와 교회 자산을 자랑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2014년 9월 대표회장에 당선될 당시 단독으로 출마했고, 등록비 1억 원을 납부하며 무혈입성했다고 한다. 길어야 2년 만기인 그 "권력"을 차지하겠다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의 "헌금"을 함부로 쓴단 말인가? 과연 그들은 누구를 위해 헌금을 걷고 누구를 위해 헌금을 사용한단 말인가!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사역을 헛되이 만들려고 하지 않았던 사도 바울은 『이 일에 조심하는 것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난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주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정직한 일들을 하려 함이니라.』(고후 8:20,21)고 말했다. 이 말씀에 역행하고 있는 목사들은 주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인들 앞에서도 정직하지 못한 자들이다. 아예 교인들 몰래 횡령한 8억 원의 교회 돈을 선거 후원금 6억 원에 보태어 총 14억 원으로 예장통합 부총회장 선거에 출마한 목사도 있었으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그들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그들이 카인의 길로 갔고 또 상을 위하여 발라암의 잘못을 따라 탐욕스럽게 달려갔으며, 코라의 모반으로 멸망하였음이라』(유 1:11). "카인의 길"은 아벨의 피의 제물로 예표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거부하고 인간의 의를 통해 구원을 이루려는 "행위의 종교"를 의미하는데, 그 종교적 권력과 입지를 유지하려는 자들은 살인과 거짓말을 서슴없이 자행한다(요일 3:12, 창 4:1-15). "발라암의 잘못"은 발라암이 모압 왕 발락을 마지막으로 떠난 후에(민 24:25) 다시 그를 접촉해서 그의 간교한 계략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범죄하게 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도록 한 일이었다(민 31:16). 발라암은 그 대가로 처음에 얻을 수 없었던 존귀와 재물을(민 24:10-14) 차지하게 되었다. 즉 권력과 탐욕이 문제였던 것이다. "코라의 모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종교적 권위에 대한 반란이었다. 영적 권위에 대한 대적이었으며, 권력에 대한 추한 욕망의 결과물이었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음성으로 직접 부르셨고, 수십 번 그분을 만났고, 많은 시간 동안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으며, 피와 죽은 동물들, 전염병들, 바다가 갈라지는 일, 심지어 태양이 빛을 잃는 사건 등의 위대한 역사로 하나님의 지시를 직접 받았던 지도자에 대해 대항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상 권력과 탐욕을 추구한 자들의 결말은 무엇이었는가? 살인자 카인은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바로 그 땅에서 도피자와 유랑자가 되었고(창 4:11,12), 거짓 선지자 발라암은 칼에 살해되었으며(민 31:8), 주제넘게 나섰던 코라는 산 채로 땅속 구렁으로 내려가 멸망해 버렸다(민 16:31-33). 권력과 탐욕에 사로잡힌 거짓 목사들은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 당시,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문제 역시 "권력과 탐욕"이었다. 과도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들은 회당에서는 가장 좋은 좌석을, 잔치에서는 최상의 자리를(막 12:39), 시장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인사받는 것을(눅 11:43) 좋아했고, 특히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었다(눅 16:15). 바리새인들이 올바르게 살려 했던 동기는 순전히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이는 그들이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요 12:43). 종교적이든 물리적이든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롬 13:1),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두려워하고, 존중받을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사 2:22) 의존하면서 사람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영향을 받는 자들은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서 권세가 나온다고 착각한 나머지 그 사람들을 기반으로 권력을 창출하고 또 유지해 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현대 교회들은 교인 수를 과도하게 부풀리면서까지 자기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교인들의 수"가 곧 그 교회 목사가 지니고 있는 "권력의 크기"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목사들은 자신을 따르는 "병사의 수"로 세상 권력을 얻으려는 야망을 이루려다가 브루투스의 단검에 찔려 슬픈 종말을 맞이해야 했던 줄리어스 시저와 다를 바 없는 자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크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운 일이라고 경고하셨다(눅 16:15).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들 대형 교회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서 아주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제가 운영하는 교회는 등록 교인이 7만에서 8만 명에 이르고 출석 교인은 4만 명 정도 됩니다. 매주 교인들의 출석을 위해 100대의 버스를 운행하고 있고, 그들에게서 걷는 주일 헌금, 십일조 헌금, 감사 헌금, 계절 헌금, 지정 헌금, 수재 헌금, 북한동포 헌금, 특별 헌금 등을 다 따져 보니 헌금 액수가 연평균 260억은 웃돕니다..."라고 자랑한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그 "VIP 좌석"이나 차지하려는 자들을 보시자마자 악취가 난다고 하시면서 당장 토해 내 버리실 것이다(계 3:16). 과연 하나님께서 버스와 출석자 수와 헌금 액수를 자랑하면서도 거리에서 설교하고 구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독교 "거물급 인사들"을 인정해 주시겠는가? 그들의 "자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아닌 『가장 낮은 자리』(눅 14:9), 곧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 한가운데 마련될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돈"에 관하여 자주 경고하셨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문제가 "탐욕"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너희 바리새인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나 너희 속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찼도다』(눅 11:39).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의 특징은 자기들이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상태라는 점이다(계 3:17). 오늘날은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딤전 6:5) 시대이기에, "양적으로 많이 소유한 교회가 승자"라고 생각하는 교회들이 많다. 이에 대해 성경은 찬물을 끼얹으며 이렇게 응수한다. "양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도 반드시 죽는다!"(눅 12:15)

탐욕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어떤 것을 추구하고 가지려는 욕망을 의미한다.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이고(골 3:5), 『돈을 사랑하는 것』(딤전 6:10)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괴롭힌다. 사도 바울은 사역에 있어서 그의 영적인 아들이요 후배에게 이렇게 썼다.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리니, 이는 사람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이런 이유로 대형 교회 목사들의 횡령, 폭력, 음행, 간음 등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이다. 종교적이든 물리적이든 어느 정도 "권력과 부"를 차지한 그들 목사들은 강자의 위치에 있기에, 그 두 가지 요소를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있는 교인들을 제멋대로 유린하는 것이다. 또한 교인들은 자칭 "주님의 종"이라는 삯꾼 목사를 함부로 거역하고 대적할 수 없기에 교회를 떠나지도 못한 채 눈치나 보며 억압과 굴종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거짓 목사들의 "권력과 탐욕"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늙도록 살며 정녕, 권력이 막강해지느냐?』(욥 21:7) 지상에서 아무리 그들의 권력이 막강해진다 한들, 미래에 반드시 그것에 대해 "정산할 날"(행 17:31)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마음이 탐욕으로 단련되었고 불의의 삯을 사랑했던(벧후 2:14,15) 거짓 목사들의 미친 짓도 곧 끝나게 되어 있으니, 그들을 향한 『심판은 예로부터 지체하지 않으며 그들의 멸망은 졸지』 않는다는(벧후 2:3)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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