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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아프간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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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9월호>
아프간 피랍 사태가 벌써 한 달이 훨씬 지났다. 그동안 두 명의 인질이 죽었고, 두 명의 인질이 풀려났다. 아프간 이슬람 테러분자들에게 억류되어 있는 인질들로 인해, 그들 가족과 교회뿐 아니라 온 나라와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국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고, 여론은 이 일로 인해 기독교에 따가운 눈총을 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교회들이 세상에서 많은 욕을 먹고 있는 실정인데, 이 피랍 사태는 나라와 국민에게 실제적인 부담감까지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다.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세상은 이것이 개신교의 “무분별한 선교”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 일의 주체인 분당 샘물교회는 이번 일이 선교가 아니라 봉사활동이라고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선교라는 명분으로 갔던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기독교가 타종교 문화권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개종시키려고만 하는 선교 정책이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나름대로 “선교”를 목적으로 나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이슬람 사원 앞에서 “워십”을 했고, 이슬람의 상징적인 언덕 위에서 예배를 드렸다. (여기서 “워십”이란 경배드렸다는 말이 아니라, “경배와 찬양”류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등의 행사를 말한다.) 샘물교회에서도 이미 죽은 배형규 목사 등을 “순교자”로 칭하고 있으며,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는 “앞으로 3,000명의 배형규 목사가 나와야 한다.”며 선교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들은 아프간으로 가지 말라는 정부의 만류를 두세 차례나 거절하면서 강행했다. 심지어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여행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 안내판 앞에서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들은 정부가 만류할 때 “유서까지 남길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담대하게 선교(?) 여행을 떠났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기독교가 무분별하게 타종교 사람들을 개종시키려는 선교가 문제인가? 이 질문에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도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옳기 때문에 타종교인들도 인정하고 그들에게 봉사만 해야지 복음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봉사와 사랑의 행위를 많이 하면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된다고 말하며, 혹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관계없다고 말하는 것이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의 “선교”에 대한 관념이다. 따라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예수 믿으라.”고 말하는 열성분자들 때문에 오늘날 이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무분별한 선교” 활동을 벌인다. 이번 샘물교회의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이 무분별했던 것은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교가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것이 선교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
봉사란 나쁜 것이 아니다. 특히 봉사 활동은 선교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의료 봉사를 통해 현지인들이 마음을 열면 복음을 전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정말로 아름다운 일이다. 물론 샘물교회 청년들은 그러려는 의도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외적으로는 봉사라는 이름을 쓰고 교회 내적으로는 선교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봉사도 선교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교도 사원 앞에 가서 워십 댄스나 하는 것이 선교인가? 그들은 선교를 무슨 낭만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대학생 단체들이 농촌이나 가난한 지역들에 가서 봉사할 때 선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듯이, 그러한 보람있는 활동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들이 외부에 말하듯이 정말 봉사하러 간 것이라면, 왜 하필이면 아프간인가? 그 외에도 그들의 봉사를 받을 만한 사람은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닌 것에 대해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가? 성경은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했다(롬 13:1). 이 일은 자신들의 생명의 안전만이 아니라 국가에 치명적인 어려움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부의 권고에 따라야만 하는 일이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권고를 따르지 않아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지고의 가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선교가 아니었다.
그들의 행위가 참 선교가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는, 억류되어 있는 그들의 자세이다. 만약 그들이 진정한 선교사라면 죽음 앞에서 의연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교를 각오한 선교사들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한 성도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계 2:10). 이 사실을 믿는 선교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만이 진정 선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낭만주의적인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왜 유서까지 써 놓고 아프간을 갔는가? 이런 일이 있을 줄 몰랐는가? 알았다면 이 일 앞에 의연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살려 달라고만 호소했던 것이다. 빨리 구출해 달라고, 힘들다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 왜 유서까지 썼는지 의아해진다. 심지어 그들은 교황에게까지 도와 달라고 호소했었다. 그들이 유서를 썼다면 장난으로 쓴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들이 호소하는 것은 탈레반의 강요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옳지 않다. 순교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을 보라. 그들은 로마의 사자밥이 되면서도 의연히 죽어갔다. 자기를 화형시키는 카톨릭 신부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렸다. 원주민 식인종들에게 잡아먹히면서까지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성경대로 믿는 선교사들 중 아무도 죽음 앞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하지 않았다.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몰래 전도하거나, 숨어서 예배드릴 수는 있다. 하지만 발각되면 어떠한 죽음 앞에서도 담대해지는 것이 선교사들이다. 물론 이것은 대단한 믿음이다. 아무나 이 믿음을 소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이 일을 위임하지 않으신다. 그런 믿음이 있는 자들만 그분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믿음이 없이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한번 해 보겠다는 자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 말대로 봉사단체였을 뿐이다.
이 일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일인지 생각해 보라.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선교 활동”을 욕하고 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온 국민을 위태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들이 참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이런 욕을 먹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처럼 하면서 욕을 먹는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남으로써 마귀의 세력이 점점 더 힘을 얻어간다는 사실이다. 협상이 진행됨으로 테러분자들이 힘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세상에 더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마귀의 종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극단적 테러분자들을 제외하고는 이슬람 자체를 관용의 종교라고 이해한다. 테러를 반대하는 “온건파” 이슬람 교도들이 매스컴을 통해 자기들 종교가 관용의 종교라고 선전하고, 사람들은 이슬람에 더 관심을 가지며, 이슬람을 좋게 평가해 놓은 책들이 많이 나와 그 관심들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분명 마귀의 종교이다. 성경을 왜곡해 코란을 만들고, 그 가르침에 따라 무수한 전쟁을 유발하고, 여자들을 학대하고, 온 국민을 억압 아래로 묶어 놓는 종교이다. 건전한 이슬람에 따르면 테러는 악한 것이라고 하지만, 코란에 따르면 테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행위다. 코란에는 “...믿는 자들은 알라를 위해 싸우고, 믿지 않는 자들은 그 악한 자를 위해 싸운다. 그러니 너희들은 사탄의 친구들을 대적해 싸울지니라.”(수라 4:75-77)고 말한다. 물론 이 싸움은 영적 싸움이 아니라, 칼과 창으로 싸우는 실제적인 전쟁이다. 그들은 알라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마귀의 자녀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과 물리적 전쟁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모든 사람들을 마귀의 자녀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물리적 전쟁으로 제압하려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그것이 코란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테러리스트들을 “원리주의자”라고 하는데, 그 말은 그들이 더 코란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일수록 악을 행하지 않는다. 세상은 십자군 전쟁이나 수많은 종교 전쟁들을 말하면서 기독교도 전쟁의 종교라 말하지만, 그것은 카톨릭, 즉 가짜 기독교가 일으킨 전쟁이다. 즉 “비성경적”이기 때문에 악하게 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코란적”일수록 악을 행한다. 어떤 모슬렘이 알라를 위한 전쟁이나 테러를 반대한다면, 그것은 그가 그만큼 “비코란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이슬람은 마귀의 종교이다. 어차피 마지막 때에는 마귀들이 그들의 종교적 활동들로 더욱 활개칠 것이다. 그러나 그 일에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이 쓰임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마귀의 일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아프간에 억류되어 있는 선량한 시민들에 대해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루 빨리 풀려 나와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적어도 선교사가 당하는 고통에 대한 연민은 느끼지 못하겠다. 그들이 선교사라면 스스로 선교사임을 입증케 하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샘물교회는 더 이상 선교라는 미명하에 이러한 일을 자행하지 말라.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