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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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낙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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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6월호>

그리스도인이 인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낙심에서 오는 영적 침체”이다. 아무리 믿음이 견고하고, 인생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낙심에 빠질 수 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낸 위대하고 담대한 지도자 “모세”도 낙심하여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백성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이는 그것이 내게 너무 막중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나를 이처럼 대하신다면, 만일 내가 주의 목전에 은총을 얻었다면,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나를 즉시 죽이소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나의 비참함을 보지 않게 하소서.” 하더라』(민 11:14,15).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담대함으로 혼자 골리앗을 상대했던 용사 “다윗”도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임하였고 공포가 나를 덮었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오 내게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그러면 내가 멀리 날아가 안식하리라.』(시 55:5,6)라고 토로함으로써 한때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수백 명의 바알 선지자를 혈혈단신으로 맞서 싸워 승리했던 믿음의 영웅 “엘리야”도 죽기를 구하면서 『이것으로 족하오니, 오 주여,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내가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왕상 19:4)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다.


항상 기뻐하라고 그렇게 강조했던 “바울” 역시 『형제들아,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닥쳤던 고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우리가 받은 극심한 압박으로 인하여 견딜 힘을 잃어 심지어는 삶의 절망에까지 이른 것이라.』(고후 1:8)라고 말함으로써 자신도 낙심을 비켜 가지 못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상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담대한 용사이고 현재 신앙생활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누구든지 낙심에 빠질 수 있는 법이다.

낙심은 하나님의 모든 일을 포기하고 멈추게 한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쓰러지지 아니하면 때가 되어 거두리라』(갈 6:9). 낙심이 무서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 만큼 육신으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우선 낙심하게 되면 기도할 수 없다(눅 18:1). 낙심에 빠지면 조급해져서 기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중요한 일을 섣불리 결정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기도하지 않은 결과,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여 “하나님의 관점”과 “세상의 관점”이 혼합되어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낙심하면 스스로 침소봉대하고 사소한 일에 좌절하여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기도 하며, 자신의 느낌을 과장해서 모든 것을 왜곡시키고 어리석은 결정을 하기도 한다(왕상 19:4).
낙심하면 주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을 감당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에 빠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비를 받은 것과 같이 이 직분을 받았으니 우리는 낙심치 아니하노라』(고후 4:1). 낙심은 인내심을 상실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게 하며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너희로 인한 나의 환난들 때문에 낙심하지 않기를 내가 바라노라. 그것은 너희의 영광이니라』(엡 3:13). 또한 낙심하면 올바른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바로잡힐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시하지 말고,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낙심하지 않으려면 썩어 가는 “겉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성령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라. 오히려 우리의 겉 사람이 썩어질지라도 우리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나니』(고후 4:16). 겉 사람은 썩어지기에 겉 사람만 바라보면 결국 실망하고 낙심하게 된다. 새 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매일 말씀과 기도로 새롭게 재충전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현재의 고난에 집착하지 않고 다가올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생긴다.


바울은 노년에 “육체의 가시”가 그를 괴롭혔다. 심한 괴로움 속에서 세 번이나 간구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응답이었다. 이를 계기로 바울의 겉 사람은 계속 썩어 가지만,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되어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님과의 교제는 더 깊어지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관점에서 자신의 처지를 보고 낙심하지 않게 되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그의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게 됨이니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매우 기쁘게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거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내가 강하기 때문이라』(고후 12:9,10). 성도는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문제들에 짓눌려 더 이상 한 걸음조차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낙심하게 될 때도,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환난을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고후 4:17).

낙심을 해결하는 근원적인 방책은 “하나님의 위로”이다.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시라.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어떠한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후 1:3,4).


현대 선교에 매우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은 “중국내지선교회” 소속의 “허드슨 테일러”였다. 그런데 그가 영국에서 중국으로 파송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낙심되는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그를 위한 후원이 중단되었고, 조약이 맺어지지 않은 도시에서는 선교 활동을 중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의 선교 방법도 비판을 받았다. 또한 파송되기 전부터 교제해 오던 자매로부터는 교제를 그만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이에 그는 극심한 낙심 가운데 처해 있다고 모친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무렵 하나님께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20년 선배인 “윌리엄 번스”라는 선교사를 만나게 하셔서, 7개월 동안 중국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휴식을 취하게 하셨고, 또 같이 사역하게도 하셔서 깊은 교제 가운데 주님 안에서 안식하며 영적인 필요를 공급받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허드슨 테일러의 낙담을 주님의 방법으로 위로하셨으니, 그런 가운데 그는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훗날 허드슨 테일러의 며느리는 “그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윌리엄 번스는 낙심 가운데 있었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의 선물이었다.”라고 썼다. 윌리엄 번스의 위로가 없었다면, 오늘날 허드슨 테일러가 미치는 영향력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낙심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신다. 그 결과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 그를 위로해 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올바른 성도와 함께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낙심으로 인한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일을 “홀로”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바울조차도 낙심의 때에 그를 일으켜 줄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낙심을 극복할 수 있었다. 『주께서 오네시포로의 집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이는 그가 종종 나에게 생기를 돋워 주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그가 로마에 있을 때 매우 열심히 나를 찾아 만났음이라』(딤후 1:16,17). 오네시포로가 로마까지 찾아가서 바울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역을 계속해서 수행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는 생애 끝자락에서 뜻을 같이했던 디모데와 교제하기를 원했다. 『너는 내게로 속히 오도록 힘쓰라』(딤후 4:9).

그리스도인이 낙심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신다. 그 결과 그는 어려움에 처한 다른 성도들을 위로할 수 있다!

낙심을 극복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영원의 안목을 가지고 멀리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이 우리를 위하여 훨씬 뛰어난 영원한 영광의 비중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후 4:17,18).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영원”에 계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그저 잠깐에 불과하다. 현재 당면하는 어려움 속에 매몰되면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영원 속에서 누릴 영광의 비중을 생각하면 힘과 소망이 생길 뿐만 아니라, 문제를 안고 씨름할 때도 절대로 낙심하지 않게 된다.
실제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 자체보다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 지상에서 볼 수 있는 큰 비극 중 하나는 영원토록 계속될 일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종종 자녀들의 고난을 한 번에 다 해결해 주시지 않고 일부 남겨 놓으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고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지극히 위대한 계시들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내가 자고하지 않도록 육체에 한 가시, 즉 사탄의 사자를 내게 주셨으니 그가 나를 쳐서 자고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2:7). 또한 우리의 눈을 저 셋째 하늘의 영광으로 돌리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골 3:2).

기도의 응답이 늦어진다고 해서 낙심할 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한편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낙심시키는 고난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 중에 주님을 항상 신뢰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런 고난도 없다면, 과연 기도를 꾸준히 계속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기를 원하신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진다고 해서 낙심할 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영광”과 비교해 볼 때 현실적인 고난은 문젯거리도 안 된다.
현재 낙심에 처해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바라보라. 누군가가 말했듯이 “나는 오늘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 것이다.”라고 말하라. 모든 낙심은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영광의 비중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 3:13).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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