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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왜 새 예루살렘을 믿고 기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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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8월호>

그리스도인은 왜 새 예루살렘을 믿고 기다리는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 나 요한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계 21:1-4).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 세계와 영적인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심으로 빛이 있게 된 것이다(창 1:3).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동일한 말씀으로 하늘의 창공에 광명들을 만들어 징조와 계절과 날짜와 연도를 만드셨으며, 현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신 그 동일한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현 세상에 대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벧후 3:7).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죄로 물든 이 세상은 심판과 멸망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노아의 때에 이 땅은 죄로 부패되어 죄악된 행위들로 가득 찼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시고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육체의 종말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땅이 그들로 인하여 폭력으로 가득 찼음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망시키리라... 보라, 나 곧 내가 땅 위에 물들로 홍수를 일으켜 생명의 호흡이 있는 모든 육체를 하늘 아래로부터 멸망시키리니,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죽으리라』(창 6:13,17). 이 말씀은 그대로 실현되어 물로 인해 이 세상은 멸망당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 심판과 멸망의 날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러나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우주의 구성요소들이 맹렬한 불로 녹아 내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타버릴 것이라』(벧후 3:10).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세상은 결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 대기는 더 오염되고, 먹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점점 더 줄어들며, 기름은 점점 더 고갈되어 간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죄악은 계속하여 흘러 넘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려 주시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를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열망하라. 그때는 하늘들이 불에 타서 녹아 버리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도 맹렬한 불에 녹아질 것이나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런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점 없고 흠 없이 평강 가운데서 그분께 발견되도록 힘쓰라』(벧후 3:12-14).
요한계시록 21:1-4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면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씀한다. 새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장차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살게 될 거처이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는 이 새 예루살렘은 위에 있다고 말씀하시고 자유로우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말씀한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갈 4:26).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은 이 세상의 신인 마귀가 통치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살기에는 자유롭지 못하며 불편하고 우리의 본성에 거슬린다. 우리가 우리의 본향인 새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인 이 도성을 만드신 분은 우리 주 하나님이시다.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이 도성을 사모하였기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들은 모두 믿음 안에서 죽었으나 모두가 그 약속들을 받은 것은 아니로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았고 확신하여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또 이 땅 위에서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느니라. 이는 이런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 만일 그들이 실로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제 그들이 사모하는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였음이라』(히 11:13-16).
새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는 영원 시대의 거처이다. 우리 주님께서 이것을 약속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그리스도인은 이 새 예루살렘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곳에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대면하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기 때문이다.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계 21:3).
지금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며 섬기고 있다. 성경은, 『너희가 그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며, 지금도 그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이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나니』(벧전 1:8)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산 소망을 갖게 하셨고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한 하늘에 있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다고 말씀한신다.

그리스도인은 이 새 예루살렘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향인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까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으며, 육체적 고통으로 눈물을, 슬픔과 절망의 눈물을 흘린다. 영의 탄식으로 눈물을 흘려야 하고,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스도인은 왜 새 예루살렘을 믿고 기다리는가? 그곳에는 사망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인 마귀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이미 멸망당한 상태이다. 『그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그곳에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 무궁토록 밤낮 고통을 받으리라』(계 20:10). 사망은 우리의 원수이며, 사망은 우리를 파멸시키고, 사망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평생을 노예로 속박하는 것이다. 그런 사망이 새 예루살렘에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왜 새 예루살렘을 믿고 기다리는가? 그곳에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기까지는 마귀가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마귀는 계속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계속하여 사망의 두려움 가운데 살게 만들며, 계속하여 슬픔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또 계속하여 울부짖게 만들고 계속하여 고통을 준다. 마귀는 그리스도인이 장차 다가올 새 예루살렘을 기다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 세상에만 집착하도록 만들어 소망 없이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새 예루살렘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당신도 새 예루살렘을 기다리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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