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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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섬기는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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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5월호>

어느 작은 마을 교회의 젊은 목사가 나이든 목사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목사님, 저는 언제쯤이면 번듯한 도시 목회를 하게 될까요?” 연로한 목사는 젊은 목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면, 지금 돌보는 양무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만도 벅찰 것일세.”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그분의 일을 맡겨 주신 것은 부담이 아니라 특권이자 영광이다.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보상하시기 때문이다(마 25:21).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때는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씨도 공급해 주시고, 자랄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하여 주신다. 또한 보물을 담을 수 있도록 보물은 물론, 보물 담을 그릇도 마련해 주신다. 영적 전쟁에 승리하게 하시려고 자신의 군사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공급해 주신다. 청지기 직분을 감당하게 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것들을 관리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신다.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려면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씨를 주셨다면 심겨질 밭을 잘 기경해야 하고(막 4:8), 보물을 허락하셨다면 보물을 담을 그릇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한다(고후 4:7).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전신갑옷으로 승리하려면 믿음으로 무장해야 하고(엡 6:13,18), 청지기 직분을 주셨다면 신실한 삶으로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고전 4:2).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할 때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가 중요하다. 갈등하는 여러 동기들을 지니고 있을 경우,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없다. 사람들의 주목과 칭찬, 또 돈과 권력이 동기가 될 때는,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사랑한다 해도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지 못한다. 참된 사역의 동기는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섬김은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금식한다고 하는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금식하였더냐, 정녕 나를 위한 것이었느냐? 또 너희가 먹고 너희가 마실 때에, 너희 자신을 위하여 먹고 너희 자신을 위하여 마신 것이 아니냐?』(슼 7:5,6)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책망을 들었던 이유는,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로 치자면 일요일 아침이 되면 교회에 가서 한두 시간을 보내다가 그 주의 나머지 시간은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휴식하는 곳에서나 교회에 있는 것처럼 한결같다.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것은 금식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 뒤에 있는 동기였다. 하나님께서 알기 원하시는 것은 “왜 그 일을 하였는가?”에 있다. 유대인들이 반복하여 빠졌던 함정은 마음에 어떤 변화도 없이 그저 종교적 의식들만을 행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변화 없이 바치는 수많은 번제물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정기적인 엄숙한 모임도 악하며, 심지어 많은 기도조차도 듣지 않으신다고 책망하신다(사 1:11-15). 각종 십일조는 바치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율법과 자비, 믿음을 저버린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도 그 동기를 책망하셨다.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박하와 아니스와 커민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율법과 공의와 자비와 믿음의 더 중요한 것을 빠뜨렸기 때문이라. 너희는 이것들도 마땅히 행하고 또 저것들도 저버리지 말아야 하리라』(마 23:23). 하나님께서 종교 행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은 말씀에 대한 사랑과 순종이었다. 마르다가 접대하는 일이 많아서 경황이 없을 때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눅 10:39,40).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셨다(눅 10:4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쳤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동기로 순종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드리는 번제를 받으셨다(창 22:12).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섬김은 겁쟁이가 되게 한다. 사역 중 가장 어려웠던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피터 럭크만 목사는 히브리서 12:2에 기록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역 중 일어났던 많은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야 했을 때, 사람 바라보지 않고, 환경 바라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섰을 때 자신 있게 주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상이 몇 개인지 헤아려 보니 열 개를 채우지 못할 것 같았을 때, 또 순수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행한 것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다고 한다. 정기 순회 설교를 하던 이송오 목사는 울산에서 거리설교를 마친 후 어떤 사람에게 육신적으로 대했다면서 그 설교는 능력이 없는 설교였다고 했다. 설교를 듣는 상대방이 얼굴을 치면 맞을 수 있겠느냐던 이송오 목사의 권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울이 필리스티아인들과의 대치 상황 중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초긴장 상태에 처했을 때, 정해진 때가 되었음에도 사무엘이 오지 않음으로 인해 백성들이 떠나기 시작하자(삼상 13:8) 이에 겁먹은 사울은 자신의 권한 밖인 번제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되었다. 그 후부터 사울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어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을 두려워했고(삼상 18:7), 마침내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다윗을 두려워하여 평생을 증오하다가 악령들린 채로 생을 마쳤는데(삼상 18:10) 심지어는 하나님께 회개할 때조차도(삼상 15:30),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체면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였다(삼상 31:4). 하나님을 섬기되 사랑이 동기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비참한 일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동기로 섬기지 않으면, 맡겨 주신 하나님의 일을 마치지 못한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못한 사역은, 사역 중에 닥치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라면 그 일을 마치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시다(빌 1:6). 이런 확신으로 일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데 마귀는 그 순수한 동기를 혼란스럽게 하여 육신을 사랑하는 동기로, 더 나아가 세상을 사랑하는 동기로 바꿔 버림으로써,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시작했을지 모르나 그 끝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을 섬기다가 끝난 데마와 같게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자신의 육신을 기쁘게 하는, 자기를 위한 사역을 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성경의 앞뒤를 훤히 알고 있을지 모르나 그 지식은 마귀도 알고 있는 제한된 지식이기에(약 2:19), 사랑 안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사역을 완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섬김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없게 한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섬김은 하나님의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을 돌보는 사역을 맡기시기 전에 세 번 물으셨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5-17).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겸손한 답변에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당부하신다. 말하자면 양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양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고(요 10:11) 양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히 13:20,21), 큰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입증된다. 양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양들이 자라도록,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빵과 고기, 젖, 꿀, 사과, 물, 단단한 음식”인 말씀으로 먹인다. 그러나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섬김은 양들을 지배하려 하고 더러운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벧전 5:2).

사역의 동기가 사랑이 아닌 경우에도 얼마든지 그 외형은 경건한 모양으로 유지될 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감히 마귀에게 속한 “사역자들”이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한다(고후 11:13). 감히 사역의 영역에서 마귀가 관장하고 있는 “사역”이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후 11:4). 그들은 사탄이 결코 성경 번역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탄은 자신의 종들을 통해 말씀을 변개해 왔다(고후 2:17). 그와 같은 이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가 사랑이 아닌 모든 사역의 중심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역을 사랑해야 한다. 또한 그 결과를 사모해야 한다. 그러나 그 시작의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이 점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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