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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채운 교수, ‘세례 요한’을 세례자 요한‘으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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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01월호>
나채운 교수(전 장신대 대학원장. 신약학 및 국어학 전공)가 <크리스천투데이>지에 기고한 ‘나채운 교수의 우리말 바로쓰기 코너’에서 ‘세례 요한’이라는 표현은 말이 안 되는 표현이라며 ‘세례자 요한’이라고 고쳐 쓸 것을 권장했다. 신문에 따르면, 나교수는 세례 요한이라고 번역된 이 말은 헬라어 원어에서도 ‘세례자 요한’이고, 세계의 모든 번역성경이 다 ‘세례자 요한’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같은 한자를 쓰는 중국과 일본어 성경에서도 사람을 나타내는 ‘-자’(者)를 붙여 ‘洗禮者’라고 쓰고 있는데, 한국 성경만이 최근 1998년의 개역성경 개정판에서까지 ‘세례 요한’ 그대로 쓰고 있으니 언어도단(넌센스)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나교수는 세례 요한이 헬라어 원어에서 ‘세례자 요한’이라고 한다고 했는데, 그가 ‘세례자’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 헬라어는 ‘뱁티스테스’로, 영어로는 ‘Baptist’이며, 그 뜻은 물 뿌리는 세례자가 아니라 물에 잠기게 하는 “침례인”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인에게서 난 사람 가운데 침례인[Batist] 요한보다 더 큰 선지자는 없느니라...』(눅 7:28).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을 “침례인”이라고 하셨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침례를 받으셨으므로, 그분을 따른다는 그리스도인 역시 침례를 받는 것이 당연하며, 또 성경은 세례가 아닌 침례를 받을 것을 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 속에서 올라오시니...』(마 3:16).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그리스도인이 받는 침례는 그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했음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행위로 보여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으로써, 침례를 구원의 수단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단 교리이다.
나교수는 잘못된 <개역성경>의 표현을 바로잡는다면서 ‘뱁티스테스’를 ‘세례자’라고 거짓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물 뿌리는 세례 약식으로 이교도들을 자신의 수중에 넣고자 했던 로마카톨릭의 정치적 계략이 낳은 거짓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학자적’ 관행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뱁티스테스’가 ‘침례’라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 정도는 알고 있을 터인데, 이처럼 그는 잘못된 전통을 바른 전통인 양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나타내는 ‘-자’(者)를 붙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문제의 핵심을 가리고, 세상에 한국과 중국과 일본 3국만 있는 것인 양 “세계의 모든 번역성경”이 ‘세례자’ 요한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실로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폄으로써 변개된 <한글개역/개역개정판>의 본질적 오류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전통을 앞세워 비진리를 가르치는 이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막 7:13). 현재 로마카톨릭의 세례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배교한 개신교회들에서 실행하는 ‘세례’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인간이 전수한 전통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대로 전수해왔다. 물을 뿌리는 것과 물에 잠기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다.’라는 자기 변명으로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명기해 놓으신 침례를 “폐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교수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 ‘-자(者)’ 자를 안 쓰는 것이 그토록 양심에 걸렸다면, “침례”를 ‘세례’라고 변개시킨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례라는 거짓 전통이 중요한지,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BB
침례교인을 위한 ‘침례’ 표기 성경 출시?
11월 30일자 ‘침례신문’에 “침례교인의 긍지와 자랑을 심어 줄 『벱티스트 성경전서』 출시!!”라는 광고가 났다. 그들은 “성경에는 101개의 침례단어가 있으며 침례로 읽은 구절이 88번 있습니다. 목사님, 성도들에게 아직도 세례를 침례로 고쳐 읽게 하십니까? 침례교 정체성을 살리며 침례교인의 긍지와 자랑인 침례표기 성경은 바로 읽혀집니다.”라고 교단 침례교인들의 구매의욕을 자극하였다.
로마카톨릭에 항거한 정통 침례교도들은, 이들 배교한 교단 침례교인들과는 달리, 변개된 카톨릭 성경을 쓰레기 취급했으며, <한글개역/개역개정판>처럼 카톨릭 성경에 바탕을 둔 또 다른 변개된 성경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 성경들이 틀린 성경이기 때문이며, 그것으로는 진리를 알 수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 실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원래 뱁티스트, 즉 침례교도라는 표현은 약식 물세례를 주는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에 항거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오늘날 한국의 교단 침례교인들은 카톨릭 성경에 바탕을 둔 변개된 가짜 성경을 쓰고 있으면서도 단지 침례를 준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침례교도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침례교’라는 교단 명칭에 자부심을 느낀 나머지, 변개된 <한글개역/개역개정판>을 읽을 때 ‘세례’라는 표현만 만나면 그것을 의도적으로 ‘침례’라고 읽는 것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고, 또 세례 대신 침례를 받는 것으로 신앙의 모든 의무를 다 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 교단 침례교인들이 하는 일이 그러하기에, 그들의 그릇된 태도에 편승하여 세례를 침례로만 바꾼 “눈속임” 성경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세례가 잘못되었고 침례가 옳은 표현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단 침례교인들을 구매자로 삼아 “침례교인들의 입맛에 맞춘” 성경을 내다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개된 표현인 세례를 성경을 팔기 위해서 침례로 바꿔 파는 상술도 문제지만, 자신들이 보거나 내다파는 성경이 변개된 성경이라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변개된 개역성경을 7만 2천 군데나 바꾼 또 다른 가짜 성경(개역개정판)을 보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변개되었음을 외치고 부르짖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고, 오히려 변개된 성경을 옹호하며 되레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세례 요한을 세례자 요한으로 바꿔야 한다는 나채운 교수나, 세례를 침례로 바꿔 교단 침례교인들에게 성경을 팔아 이득을 취하려는 출판사나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주님은 『너희는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신의 무거운 짐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켰음이라.』(렘 23:36)고 하셨다. 말씀을 변질시키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여러 사람들과 같지 않고 오직 성실함으로써 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고 하셨다. 변개된 말씀을 팔아 이득을 취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도록 하라.
변개된 <한글개역/개역개정판>은 주님이 인정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 민족에게 최종권위로 주신 변개되지 않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계 19:13).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