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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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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8월호>
『주께서 나의 방황함을 헤아리시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그것들이 주의 책에 있지 아니하나이까?』(시 56:8)눈물은 소리 없는 언어다. 슬픔을 토해내기도 하고, 행복을 속삭이기도 한다. 이 언어는 때때로 많은 이의 가슴판에 자신을 깊이 새겨 넣기도 하는데, 따라서 사람마다 간직하고 있는 눈물의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연인들의 이별의 눈물,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어머니의 눈물, 한없이 강해보이던 아버지의 눈물, 한 사람이 임종 직전에 흘린 마지막 눈물 등이 그럴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께도 눈물은 소중한 것이라, 이를 직접 병에 담아 보관하시고, 기록해 놓기까지 하시는데, 특히 골방에서 주님을 향해 흘렸던 성도들의 눈물을 그리하신다.
물론 “눈물의 기도”는 현대 은사주의자들이 자행하는 집단적인 울부짖음과 방언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적인 “눈물의 기도”는 골방에서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 속에서 이루어진다(마 6:6-7). 그리고 감정만 앞세워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 위에 드려진 기도이며(잠 28:9), 단순히 눈물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일이다(욜 2:12). 하지만 만약 감정을 등한시하여 개인적인 기도에까지 눈물을 멈추게 된다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귀한 보물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날이 오기 전에, 주님께서 간직하실 보물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에는 하나님께 눈물을 드린 많은 성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히스키야였다. 이사야로부터 곧 죽을 것이라는 청천 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히스키야는 곧바로 얼굴을 벽에 대고 심히 울며 기도했다(왕하 20:3). 그리고 그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즉시 움직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궁에서 나오기도 전에 다시 돌아가라 하시고는 히스키야에게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내가 네 눈물을 보았도다. 보라, 내가 너를 치유하리니 삼 일 만에 네가 주의 전으로 올라가리라.』(왕하 20:5)고 응답하시며 위로해 주신 것이다. 해를 움직여 그림자가 십도 뒤로 되돌아가게 된 것도 이때 히스키야의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표적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첫째, 진정한 눈물의 기도는 혼을 토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장에는 한나의 기도가 등장한다. 자식이 없었던 그녀는 비통한 마음으로 주께 나아와 심히 울며 기도하였다(10절). 이를 본 제사장 엘리가 그녀를 술에 취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자 한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주여, 아니옵니다. 나는 슬픈 영을 지닌 여자라, 내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다만 주 앞에 내 혼을 토로한 것이니이다』(15절). 한나의 눈물은 혼을 토로한 결과물이었고, 주님께서는 그러한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둘째, 눈물로 드리는 간절한 기도는 믿음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9장에는 악령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셨지만 믿음이 부족했던 아버지는 울부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울부짖으며 눈물로 말하기를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하더라』(막 9:24). 사람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내기도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눈물로 호소한 간절함은 믿음을 보완해 주기도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즉시 그의 아들을 치유해 주셨다.
셋째, 눈물은 사랑과 겸손의 표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서 식사하고 계실 때였다. 성읍에서 죄인으로 알려져 있던 한 여인이 주님 발 곁에 서서 조용히 울며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기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내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던 바리새인과 그녀를 비교하시며 칭찬하셨고, 그녀의 행동이 자신을 많이 사랑하여 한 결과라고 인정해 주셨다(눅 7:47). 만일 우리의 섬김이 뜨거운 눈물이 없는 냉랭한 것이며 최상과 전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면, 바리새인처럼 주님께 눈물은커녕 발 씻을 물도 내놓지 않고 고자세로 섬기는 체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코 우리는 이 바리새인과 같이 주님을 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뜨거운 눈물을 무엇을 위해 흘릴 것인가? 고통이 가득한 인생에서 눈물로 기도할 일이 한둘이겠냐마는 우선적인 것들이 있다. 예컨대 사도 요한은 말씀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봉인된 책 한 권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책은 아무도 펴거나 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요한은 최소한 80세가 넘은 노인의 나이로 어린아이같이 심히 울어 버렸다(계 5:4). 말씀을 그리고 하나님을 더 알고자한 열정이 그를 울린 것이다. 요한이 누구인가? 늘 주님 곁에 있고자 했던 열망이 넘쳤던 사도이다. 식사 때는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었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제자들 중 유일하게 끝까지 따라갔으며, 주님께는 왕국에서 주님의 보좌 옆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사람이다. 늘 주님 가까이 있고자 했던 그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지 60년이 훌쩍 지나 백발이 성성해진 그때도 주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 정녕, 그의 첫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이런 그를 사랑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친히 봉인을 풀어 책의 내용을 알려 주셨다. 말씀을 사랑한 그에게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려 주신 것이다. 성경은 그를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부른다. 우리 또한 주님께 이 같은 사랑을 듬뿍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 먼저 말씀을 깨닫게 되도록 눈물로 기도하자.
또 하나의 중요한 눈물의 기도가 시편 126:5-6에서 등장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의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는 구령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위대한 약속이다. 누구든지 말씀(씨)을 뿌리면 혼들을 이겨올 수 있다는 것이다. 뿌리면 거두는 것, 이는 추수의 법칙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거신 전제 조건은 “눈물”이다. 일찍이 복음전도자 A.W. 토저도 “지옥에 대해 설교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대해 설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지옥은 정말 끔찍한 곳이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복음을 받아들일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완고한지, 아무리 지옥에 가지 말라고 외쳐대도 도무지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기까지 한다. 이들의 완고한 마음은 정말로 눈물이 없이는 깨부수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게 될 혼들을 위해 미리 눈물로 기도하자. 이것이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이다.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난다(욥 5:7). 평탄한 날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욥 14:1). 특히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박해까지 따를 것이다(딤후 3:12). 이러한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의 품속이야말로 눈물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소중한 쉼터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안으시며 위로하실 것이고(고후 1:3), 그의 눈물을 소중히 보관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곧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시러 오시면, 더 이상 슬퍼하거나 울부짖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눈물의 기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기도의 결정체이자 응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이여, 주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실 그날이 오기까지는 이 땅에서 말씀을 위해서, 그리고 혼들을 위해서 눈물로 주님과 밀착하며, 주님께 눈물의 보물을 지속적으로 드리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계 21:4).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