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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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수"를 믿는 도올의 저주받을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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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6월호>

모든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간계로 마음이 미혹되고 부패될까 상당히 우려되는 자들에 대하여(고후 11:3)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만일 누가 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또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너희가 받아들이지 않은 또 다른 영을 받거나 너희가 영접하지 않은 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고후 11:4).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킴으로써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까지 경고하고 있다(갈 1:6-9).

지난 5월 7일, 위 말씀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한 거짓 교사들이 "다른 예수"에 관하여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토론에 참가한 사람들은, 최근 <도마복음한글역주> 세 권을 완간한 도올 김용옥(세명대 석좌교수), 작년에 도마복음 해설서 <또 다른 예수>를 펴낸 바 있는 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자유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그리고 정강길(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 연구실장) 등이었다. 사실 본 좌담회는 토론회였다기보다는 도올과 그의 철학을 홍보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이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듭나지 못한 그 동양철학자의 성경에 대한 무지와 또 사탄의 위작인 <도마복음>을 주석하는 데 그가 쏟은 헛된 노고를 과시하고 치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도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그의 저주받을 철학을 하나씩 풀어놓으면, 동일한 철학에 탐닉해 있던 오교수가 그의 주장에 맞장구쳐 주었고, 도올의 철학에 세뇌되어 있던 정실장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신학자요 목사라 자처하는 김교수는 도올의 철학을 한 수 배우러 온 것인지, 진리를 짓밟으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그들의 입을 막기는커녕(딛 1:11), 한마디 말도 못하고 마치 짖지 못하는 개처럼(사 56:10) 어떠한 항변도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짖지 못하는 현상은 오늘날 변개된 성경과 변개된 신학을 붙들고 있는 배교한 기독교계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이 거듭나지 못한 세속적인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그 철학의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그들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면으로 대적한다.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면서, 인간 예수,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 지혜자, 철학자, 사회혁명가로서의 예수를 새롭게 인위적으로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없이 재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영원한 구속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다른 예수"를 찾아 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선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유일무이한 "그 길"(the way)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 그들은 이 진리와 생명의 길에서 이탈하여 지옥으로 향해 가고 있는 "길을 잃어버린 죄인들"이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이 찾아나선 "다른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시기에, 어떤 인간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올은 이러한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자 실로 비상식적인 성경 해석을 내놓으며, 자신은 "길을 잃어버린 자"가 아니라 오히려 "길을 찾아 나선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공관복음서에서 ‘길 잃은 양’이라고 한 것은 초대 교회에선 한 명이라도 이탈자가 생기면 문제가 많아 데려와야겠기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이다... 그러나 <도마복음>에선 크고 아름다운 한 마리가 무리를 떠나 드디어 자기 길을 찾아 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런 <도마복음>의 허튼소리를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무소의 뿔처럼 홀로서 가라"고 말했던 불교의 <숫다니파타>의 비유를 들이댔다. 이에 오교수도 물 만난 고기처럼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소설 <갈매기의 꿈>을 언급하면서 "갈매기 조나단은 무리를 떠난다... 모든 영웅 신화의 기본이 바로 떠남이고, <도마복음>은 이를 찬양한 것이다."라고 한몫 거들었다.
실로 성경을 믿지도 해석할 줄도 모르는 자들이 제시하는 "근거자료들"이란 한낱 쓰레기와 같은 종교경전이나 철학 및 문학작품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이런 것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신성한 설교강단을 더럽히며 "하나님의 말씀"(the Book)과 "인간의 저작들"(books)을 견주어 가면서,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배교한 기독교계의 목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라 자처하는 김교수가 도올의 "허튼소리"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한마디 책망도 못했던 것 아닌가? 성경은 성경으로 비교하고, 영적인 일들은 영적으로 비교하여 말하는 것이(고전 2:13) 성경 해석의 기본원칙일진대, 이런 기본도 모르는 자의 "철학"을 계속해서 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경을 모르면 성경에 관하여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더더군다나 침묵하고 있어야 한다.

도올과 오교수가 그토록 애착을 보이던 <도마복음>은, 그들의 철학적 기초를 이룰 만큼 그들이 "다른 예수"를 찾아 나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콥트어로 된 <도마복음>이 1945년 12월 나일 강 상류의 한 사막 절벽에서 발견되었을 때, 학계는 기독교 신학의 신기원을 의미하는 사건이라면서 그것을 큰 이슈로 삼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 66권의 권위에 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성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요한복음 14:6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실 그 길에 관하여 "도마"가 질문한 것(요 14:5)에 대한 답변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가 그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그분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말씀해 주셨고(요 14:6), 곧이어 그분 자신이 곧 "하나님이심"을 설명해 주셨다(요 14:7-12). 더군다나 주께서 부활하신 이후, 그분의 부활에 관하여 의심했던 도마에게 다시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그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마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하니』(요 20:28).
과연 그런 도마가 그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갔겠는가? 이것은 상식에 관한 문제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난센스를 <도마복음>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오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마복음>은 ‘깨쳐라, 깨달아라.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을 찾아라.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이 바로 너다.’라고 기존의 성서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새로운 예수를 보여 준다." 자, 이처럼 불교에서나 뇌까리는 허튼소리를 도마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했을 리 만무하다. 그러면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지는 분명해진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란시키기 위하여 무려 21개나 되는 복음서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하나가 <도마복음>이었던 것이다. 이런 책들은 원문비평학적으로 위경으로 분류되고, 하나같이 출처가 불분명한 위조된 기록들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도올이나 오교수나 그들 모두는 이런 사탄의 위작에서 "새로운 다른 예수"를 발견했다고 경탄해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도올은 EBS에서 요한복음 강의를 했으면서도, 도마가 고백했던 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같은 간단한 진리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도마와는 반대로 길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그가 성경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지 않으면 핑계와 변명거리를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시키고 성경을 공격하는 자들은, Q문서 이론과 같은 온갖 가설들과 추론들을 내세우면서 사복음서는 기록자들에 의해 드라마처럼 각색된 것이라는 등의 변명들을 늘어놓는 것이다.
특히 도올은 <도마복음>의 기록연대가 복음서들보다 앞선다는 추론들을 늘어놓으면서, 사복음서의 기록자들이 "인간 예수"를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여 신격화했다고 억지를 부린다. 이에 그는 "인간 예수"에 관하여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도마복음>과 같은 초기문서들을 근간으로, "살아 있는 진짜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는 신약성경을 재편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설령 그 기록연대가 앞선다 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 그 위작이 인간의 노력으로 성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다 다루려 한다면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를 곡식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어리석음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잠 27:22).
도올이 말한 "살아 있는 진짜 예수"는 결코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는 철저히 부활을 부인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도 않는다. 다만 존경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가 <도마복음>을 통해 그 "원형"(?)을 살리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모습은 이런 것이다. "도마는 예수를 단지 지혜의 스승으로만 보지 않고 어디서든지 밥을 나누는 공동식사와 누구든지 치료해 주는 의료선교와 초기불교수행자보다 더 치열하게 무소유하는 정신과 인간, 특히 여성 등 약자들을 배려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혁명적인 사회실천가로 보았다." 말하자면 그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공자나 석가 정도, 혹은 그보다 좀더 나은 인간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그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도올과 같은 사람들은 배교한 한국 기독교계에 편만해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좋은 사람, 사회의 개혁을 부르짖고 소외당한 무리들을 돌보는 사람 정도로만 이해한다. 그래서 배교한 교회들이 구령은 하지 않고 정치 사회에나 참여하고 봉사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셨다(딤전 3:16).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 구절들은 많이 있다(시 110:1, 사 7:14; 9:6, 미 5:2, 마 14:25; 18:20; 28:18, 막 2:5; 4:39; 11:2-6, 눅 8:24, 요 1:3; 8:58, 히 1:3 외). 그럼에도 114개의 파편조각들로 구성된 위조문서로 이 수많은 무오한 증거들을 뒤집으려 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과 참 구주를 없애는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인류를 희망 없는 미래로 저주하는 것과 같다. 사실 이것이 바로 "다른 예수"를 믿는 자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즉 그들의 "저주받을 철학"으로 사람들을 저주 가운데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른 예수"를 믿는 이 철학의 바탕에는 종교다원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꾀하는 것이다. 오교수는 말하기를 "하나하나가 선불교의 공안(화두)과 같은 깊은 의미를 지닌 <도마복음>을 통해 기독교의 심층을 회복하면 불교의 심층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들이 노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함으로써 새로이 재구성해 낸 이 "다른 예수"를 통해 종교다원주의를 심고 확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종교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 인터뷰에서 도올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물론 많은 자들이 나보고 미친 놈이라고 깔깔대고 웃을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은 훗날 그들은 ‘당신이야말로 선지자였소.’라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한 가지 사실이 있으니, 불의의 삯을 사랑했던 발라암 역시나 선지자였다는 사실이다. 거짓 선지자 말이다. 『그들이 바른 길을 버리고 빗나가서 브올의 아들 발라암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으나 자기의 죄악으로 인하여 책망을 받았으니 말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여 그 선지자의 미친 짓을 막았느니라』(벧후 2:15,16). 그렇다. 훗날 도올은 자신이 "다른 예수," "다른 그리스도," 곧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날은 그의 말대로 멀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그의 "미친 짓"을 막을 만한 "말 못하는 나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스스로 지금 그 "미친 짓"을 멈추지 않는다면, 장차 그가 백보좌 심판석 앞에 서게 될 때, 지금까지 그가 비웃으며 부인해 왔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의 입은 다물어지고 그는 그의 "저주받을 철학"과 더불어 영원한 멸망 가운데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 또한 도올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한국 교계의 교수들과 목사들, 그리고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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