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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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의 가치가 자유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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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9월호>

제주도가 소란스럽다! 이는 2002년에 해외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무사증(無査證) 제도"를 시행하여 테러지원국 11개국을 제외한 180개 국가의 외국인들에게 비자 없이 입국해서 한 달간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관광 자원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많은 관광객들로 적잖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자 없이 입국한 중국인들이 자행하는 범죄들이다. 2015년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제주도에서 정식 입건된 외국인 피의자는 1,800여 명인데 그중 71%가 넘는 1,289명이 중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 인구 68만 명의 섬 제주에서 파악된 불법 체류자만 해도 1만 명이 넘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에는 아랍 모슬렘 국가 예멘인들까지 무사증 제도를 남용하여 제주도로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하면서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해졌다. 982명이나 되는 예멘인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552명은 무비자로 입국했다. 이들 대다수는 내전으로 인한 실제 난민들이라기보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보다 용이하게 얻으려고 위장한 난민들이고, 이미 한국에 정착한 예멘인들은 동포들에게 취업을 알선하고 있으며, 심지어 "난민 브로커"가 되어서 출입국 관리소 심사를 쉽게 통과하는 방법까지 알려 주고 있다고 주요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하는 인도주의적 지원, 종교 간의 화합, 평화적 세계 공동체 구성의 기치 아래 난민들을 수용했던 유럽 국가들을 보라. 특히 이슬람 무장단체 IS를 피해 전 유럽으로 흩어진 시리아 난민들이 야기한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보라. 모슬렘들이 있는 곳은 어디에나 칼이 있다. 아무 스스럼없이 폭행과 테러를 일삼고 부녀자들을 강간한다. 예멘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우리 국민들 정서에 더욱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철없는 시민단체들은 예멘 모슬렘 난민들의 인권을 존중하라며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무런 대책도, 책임도 없이 난민 인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희생만 강요한다. 이러다가는 조만간 제주도에서 메카가 있는 서쪽을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려서 절하는 모슬렘들을 심심찮게 보게 되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이처럼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내포하는 "다양성"(diversity)의 가치는 오늘날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다국적,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등의 개념은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의 "아메리칸드림"과 제3세계 국가들의 목소리가 국제무대에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이제는 "다국적" 개념을 넘어 "초국적"(超國籍)이라고까지 할 만큼 문화적인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런 다양성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거나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굉장히 고루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각자의 개성과 권리를 존중해 주고 제한이 없는 자유를 추구하며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목청껏 외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남녀평등"을 들 수 있는데, 양성평등주의자들은 말로는 평등이라 하면서도 정작 존중되어야 할 각각의 성별적인 특성은 무시한 채 여성으로서의 지나친 피해 의식과 특권 의식으로만 가득 차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적인 약자이므로 남성보다 더 존중받고 더 많은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식이다. 공공물에 붙여진 수많은 "여성전용"이란 명칭을 보라! 여성전용 주차장, 여성전용 좌석, 여성전용 도서관, 여성전용 택시, 하다못해 여성전용 흡연실까지, 이쯤 되면 여성은 자주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장애인처럼 사회적으로 무조건 배려되어야 할 기이한 존재가 되고 만다. 결국 양성평등이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다양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흉악범도 이해하고, 살인자도 인정하며, 전쟁광을 정상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폐쇄적이고 편협하며 고지식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사실 이런 비뚤어진 관념들은 죄인들의 더러운 생각과 생활을 정당화하기 위한 저급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 자들은 대량 학살을 사회 정화 운동으로, 마약중독자를 약물 양성반응자로, 게으른 사람을 신중한 사람으로, 아이를 훈육하는 것을 아동 학대라고 하면서 본질을 호도한다. 지옥을 스올이나 음부 등으로 변개시켜서 지옥의 존재를 가리려 하는 개역성경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그저 "다를 뿐"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거짓말의 아비 마귀가 주관하는 악한 현 세상에서는 "다양성"이라는 이름하에 진정한 자유가 파괴되고 어떤 죄들이라도 성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의 개념 중에서 제일 쓸데없는 단어를 꼽으라면 "다종교"이다. 본래 참된 종교는 "창조주를 숭앙하는 신념"으로서 오직 "하나"뿐이다. 불교, 유교, 힌두교, 로마카톨릭, 모슬렘, 조로아스터교 등 소위 종교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 중에 창조주를 숭앙하는 참된 종교가 있는지 보라! 다양성 존중, 사해동포주의, 중동 평화, 난민 인권 문제 등을 운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시 14:1; 53:1). 영이 거듭나지 않고 혼이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은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빛이신 하나님께로 나아오지도 않는다(요 3:18-21). 죄인들이 보기에 하나님께서는 편협하고 관용이 없으며 무자비하게 혼내기만 하시는 존재로 인식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신 참 하나님이시다(고전 15:3,4). 기독교를 제외한 그 어떤 종교 창시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으며 예언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죄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그 누구라도 죄와 죽음과 지옥의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신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이나 구원 역시 헛것이 되었을 것이다(고전 15:17). 인간의 무덤들은 그 뼈들이 먼지와 재로 변하여 영원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덤을 비우신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는 성도들을 향해 『내가 살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시며(요 1:1, 요일 1:1),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요 17:17). 진리는 하나이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4:6) 안에 있을 때만 "자유"를 얻을 수 있다(요 8:32).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평생 마귀의 하수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자유와 해방의 모조품인 방종과 타락만 있고, 그 결과는 죄의 속박과 불못이다. 또 어떤 이들은 "반드시 하나의 성경만 쓰지 않고 여러 성경을 볼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은가!"라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변개된 성경들은 돈을 사랑하는 위선자들이 자기들의 배를 위해 이익을 취하고자 만든 것들에 불과하다(고후 2:17). 오늘날 변개된 성경들은 영어 성경만 해도 233종이 넘을 만큼 "다양성"을 자랑하고 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의 본성은 주님께서 제시하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말만 수용한다. 말하자면 다양성을 내세워 자기 스스로 말씀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받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온전히 믿지 않고 자기 구미에 당기는 구절들만 가져다가 신조로 삼으면 이단이 된다. 그런 자들이 각기 교단들을 만들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들만 하면서 자기들의 집단 세력만 과시하고 있다. 그들이 쓸모없는 자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시지 않는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초교파적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종교 통합 운동에 앞장서기 때문이다. 교리가 서로 다른데 어떻게 함께 모일 수 있는가? 자유를 외치며 각자 살길을 찾았던 자들이 어째서 이제는 하나로 모이려 하는가? 한데 어우러질 수 있다면 애당초 왜 다른 교파들로 나뉘었고, 심지어 자기들과 교리가 다른 자들을 죽이기까지 했던가? 말하자면 그들 모두에게는 마귀의 자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것이다. 마귀의 종들은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한다. 주님의 보호하심을 억압과 속박이라고 생각하여 자유를 찾아 떠나는 자들은 결국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제멋대로 살아 보겠다며 어리석은 짓들을 벌인다. 모두 주님의 권위에 불순종한 자들인 것이다.

오늘날은 "다양성"의 가치가 군림하는 시대이지만, 거듭난 성도는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그 자유 안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자유는 획득하는 것보다 간직하고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따라서 이 자유 안에 굳게 서서 진리를 호도하는 다양성의 가치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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