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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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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3월호>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 2:8).자녀를 둔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공통된 걱정은, 세상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과 철학"의 피해로부터 어떻게 자녀들을 지킬 것인가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주일학교 성경 공부 시간"에 배우는 지식들과 교육 효과로 주중에 세상 학교에서 받은 "오염"이 씻기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부모들의 그런 막연한 기대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은 우리의 기대를 크게 좌절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 주일 주일학교 학생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는 주일학교 교사들과 얘기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6일간의 오염"을 단 하루 만에 만회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자녀들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세상의 과학과 철학에 오염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주일학교 교육과 함께 "가정교육"을 통해서도 과학과 철학으로 인해 더러워진 오염이 씻기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오염의 문제는 자녀가 대학에 간다고 해서 개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초 · 중 · 고등학교에서 받는 세상 교육이 전투 중대 규모의 기습이라면, 대학에서 받는 세상 교육은 거의 융단 폭격과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융단 폭격에 견디려면 초 · 중 · 고등학교 시절부터 방공호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절을 잘 견딘 학생들 중에도 대학 시절을 지나면서 과학과 철학뿐 아니라 잘못된 신학의 영향으로 거의 무신론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대학 교양 과목으로 개설되는 신학 개론의 수업 내용이 주로 "Q 문서 이론," "그라프 - 벨하우젠 이론," "제2이사야나 제3이사야 이론" 등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인간의 저술 정도로 생각하는 무신론자들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기 위해 만든 신학 이론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위의 이론들과 같은 "거짓 신학"이나 "진화론"과 같은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딤전 6:20)은 표면적으로만 보아도 너무 엉성해서 그나마 그 실체를 간파하는 데 어렵지 않다. 특히 진화론의 경우, 적절한 설명과 자료들로 진화론의 허구를 잘 설명해 놓은 서적들이 시중에 상당수 출간되어 있다. 그러나 "철학," 특히 인본주의 사상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삶과 문화 속에 그 둥지를 틀고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게 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인본주의적인 요소들을 올바르게 판별하여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에게 주입되고 있는 인본주의적인 요소들을 제대로 간파해서 오염 요소들을 제거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습득한 인본주의적인 요소들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면, 세상 학교들에서 인본주의 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을 올바르게 교정해 줄 수 없고, 그들이 자연스레 인본주의자들이 되어 가는 것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인본주의"는 오직 인간과 인간의 생각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먼저 인본주의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다음에는 그러한 생각이 자녀들에게 올바르게 전수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인본주의 철학"의 시작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프로타고라스, B.C. 485-414)라는 명제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창 1:1)라는 말씀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롬 3:4)라는 말씀을 기록해 두셨다.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판단할 때, 하나님과 성경을 대체할 만한 "다른 기준"을 취해야 하는데, 결국 그들이 선택한 기준은 다름 아닌 "인간의 생각"이다.
이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인간이 무언가를 판단하려면 판단하려는 대상의 "존재 유무"를 먼저 인식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존재의 유무를 인식하는 "인식 주체, 곧 인간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판단의 주체인 자기 자신(인간)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 증거물로 "인간의 생각"을 채택한다. 바로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는 데카르트(A.D. 1596-1650)의 명제가 생겨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창시자라고 말한다. 이런 자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이는 사람의 마음의 상상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라는 말씀을 기록해 두셨다.
이렇게 "인간의 생각"을 판단 기준으로 삼은 인간들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스스로 신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신은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라고 하는 불가지론도 만들어 냈다(칸트 A.D. 1724-180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통해 자신을 분명하게 계시하셨다. 훌륭한 성경 교사였던 럭크만 목사의 말대로 불가지론자들은 그저 "바보들"일 뿐이다. 이런 불가지론자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살후 1:8)라는 말씀을 기록해 두셨다.
논리학을 배우지 않았어도 "전제가 틀리면 결론도 틀리다."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간혹 전제가 틀려도 결론이 맞을 때가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얘기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과 성경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의 일들을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생각들이 바로 서리라』(잠 16:3).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과 성경을 버리고 자신을 만물의 척도로 세운 인간은 숙명적으로 한 가지 모순에 봉착하는데, 그것은 스스로를 척도로 삼은 인간 개개인 간에도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절대적 진리"를 버리고 소위 "상대적 진리"를 선택한 대가는 "혼란"이다(바벨, 창 11:1-9). 이런 혼란 속에서 하나님을 배격한 인간들이 서로 다른 각 개인들로부터 스스로 존중받기 위해 선택한 이념이 바로 "다원주의"이다. 현대의 다원주의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주로 정치적인 영역에서 "국가주의"에 반대되는 이념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지만, 다양한 가치를 인정한다는 원칙적인 측면에서는 모두 공통적이다. 그런데 "가치 다원론"과 "가치 상대주의" 이념은 그리스의 철학사상가들인 "소피스트들"(Sophists)의 시대부터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오래된 "인간 중심 사상"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가치들이 존중받는 사회인데(다원주의), 이런 사회에서 각자의 가치들이 존중받음과 동시에 어떤 공동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배웠다. 또한 신속한 결론을 내리고 다수의 행복을 더 존중하기 위해서 만든 "다수결의 원리"도 배웠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배운 그런 것들이 모두 옳은가? 필요에 따라서는 어떤 집단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신속한 결론과 공동의 행복을 위해 다수결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정치적 논리가 절대 진리인 것처럼 포장되어 우리 자녀들에게 교육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학교에서 우리 자녀들은 마치 다원주의와 다수결의 원리가 절대 진리인 것처럼 배운다. 물론 학교들은 다수결의 원리가 만능 해결사인 것처럼 가르치지 않는다고 나름의 주장을 펼치겠지만,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고 대화와 타협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다수결의 원리를 최상의 도구로 제시하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혹시 가정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당신의 자녀들이 불합리하게도 다수결의 원리를 주장해서 당혹스러웠던 적은 없는가? 가장의 권위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내용인데도 다수결을 주장하거나, 의논과 협의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할 내용인데도 다수결을 주장하는 경우를 혹시 경험한 적은 없는가?
그리스도인이 다원주의와 다수결의 원리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 다원주의와 다수결의 원리를 절대적인 원리인 것처럼 깊이 내면화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원주의"의 논리로 삶의 모든 상황들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있다면, 그들은 지금 그 오염을 씻기에는 너무 멀리 가 버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다원주의의 논리나 다원주의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과 자신의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는 학생들의 생각 저변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 표, 자신의 생각에 한 표를 주는 "다원주의" 논리가 깔려 있다. 세상 음악을 듣는 문제를 예로 들면, 하나님의 반대표 한 표와 자신의 찬성표 한 표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다행히 성경 교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가운데 반대표 한 표가 더 나오면 자제를 하지만, 친구들이 같이 듣자고 하면 "다수결에서 승리했으므로" 곧바로 세상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한 표"짜리밖에 안 되는 분인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한 표만 주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의 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다원주의"를 받아들인 자들이 하는 짓이 바로 에큐메니컬 운동, 즉 교회 통합 운동이 아니던가! 하물며 "다원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이 힘이 약할 때 써먹는 방패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힘이 약할 때면 그들의 집단을 보존하기 위해 "다원주의 논리"를 폈고, 권력을 키우면서는 "통일 전선 전술"을 이용했으며,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는 "일당 독재"를 강화했다. 다원주의를 매우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은 공산주의를 용인할 가능성도 더 높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도 다양한 가치들 중의 하나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립 학교 교사들 중 상당수가 전교조 등의 친(親)공산주의 세력이다. 우리가 자녀들을 공교육에 맡기면, 그들은 "다원주의"를 통해 친공산주의자들로 키워지게 된다. 공교육에서 주입하는 다원주의 논리를 방치하면 다원주의 논리로 성경을 평가하는 자녀들로 키워질 수도 있다.
무척 감사하게도 "서울크리스찬중고등학교"와 같이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에 따라 과학과 철학의 문제점을 올바르게 알려 주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를 가르치며, 세상에 나가서도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양육하는 성경적 교육 기관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안심이 된다. 자녀를 안전하게 양육하는 길은 자녀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아이를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육하라. 그리하면 그가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