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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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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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9월호>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인한 사람이 해야 할 간증은 성경을 몇 번 통독했느냐로 드러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춘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양으로 어떤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자신의 이력에 외국 신학교들을 몇 개씩 적어 넣는 것도 보았다. 또 미국에서 어떤 한인 목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실 전체를 서가로 만들었기에 조금 둘러보니 세상의 온갖 책이라는 책은 다 모아 둔 쓰레기 더미였다. 책들은 스스로 먼지를 만들기도 하고 다른 먼지들을 흡수하기도 하기에 먼지투성이인데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은 평생 동안 나쁜 공기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신학교를 여러 개 나오면 영적 지식을 많이 얻게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혼미해진다. 여러분은 신실하다는 사람과 복음과 진리의 지식에 관하여 이야기해 본 적이 있었는가?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서 공부하지 않았던 사람은(딤후 2:15) 대화를 시작한 지 3분도 되지 않아 그의 영적 상태가 드러나게 된다. 그가 아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혼미한 것이다. 마치 의미 없는 소리를 내는 방언과 같다. 성경에서 방언을 다룬 곳은 고린도전서 14장인데, 40절 모두 방언에 관하여 긍정적으로 권면하거나 그것으로 진리의 지식을 주고받는다고 언급하거나 암시를 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왜 하필 고린도 교회에서만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고린도 교회는 육신적인 교회였다. 육신적인 교회는 주님이 먼저가 아니라 자아가 먼저이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로부터 지혜와 영력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들을 할 수 없기에 그가 하는 일들은 모두가 인간적인 일이다. 인간적인 일이란 곧 영적인 일이 아닌 육신적인 일인데 그것이야말로 불가능한 것이다. 많은 한국 교회들이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원인은 그들이 자연인인데 영적인 일을 흉내내려 하기 때문이다(고전 2:14).
그들은 고린도 교회와 흡사하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흉내를 내는 교인들에게 한 말씀을 주셨는데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화평의 창시자』(고전 14:33)이시라고 하셨다.
방언해서 자기가 영적으로 보이려는 자나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아서 혼미한 것을 지식으로 아는 자들이나 모두 혼미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속으시겠는가, 아니면 성령님께서 그들 안에 역사하시어 너희들도 나의 사역자들이라고 인정하시겠는가? 어떻게 하면 혼미하지 않은 지식을 깨닫게 되는가?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그가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해줄 것인가?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로다.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해야 하고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하며, 줄을 줄 위에 반복하고 줄을 줄 위에 반복하여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니, 이는 그가 더듬는 입술과 다른 언어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임이라.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너희가 피곤한 자로 쉬게 하는 쉼이며, 이것이 기운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 하셨으나,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그들 위에 임하시어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하고 명령을 명령 위에 반복하며, 줄을 줄 위에 반복하고 줄을 줄 위에 반복하여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셨으니 그들로 가서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덫에 걸리고 붙잡히게 하려 하심이라』(사 28:9-13).
첫째, 틀린 성경으로 공부하고, 그것을 많이 읽고 심지어 필사까지 한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그들은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이를 수 없다(딤후 3:7).
개역성경은 원문과 비교했을 때 3만 6천 군데 이상 틀리다. 필자는 그런 성경을 백독했다는 목사들을 몇 사람 만나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지식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성경을 모르기에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필자는 그들 개개인에게 지금 말한 그 말을 글로 써서 주면 우리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에 게재해 주겠노라고 말했으나 그들 중 한 사람도 글을 쓰지 못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무지와 농간에 놀아나시는 분이신가!
둘째, 그런 사람들이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으면 어떤 결과를 낳겠는가? 많은 회중이나 청중을 동시에 영적 노숙자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여러분은 카톨릭 사제들이 진리를 깨달은 책을 쓴 것을 보았는가? 개신교 목사들이 역시 그런 책을 쓰는 것을 보았는가? 왜 그들은 많은 교인들을 계도할 책을 못 썼는가? 진리의 지식이 없거나 혼미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외치던가? 복음의 소중함을 안 성도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토해 내야 한다. 예수님도 거리설교자셨고, 사도 바울, 베드로, 야고보, 요한, 다른 사도들도 거리설교자였다. A.D. 3세기까지는 교회라는 장소도 건물도 없었다. 여름에는 에어컨 밑에서 콜라나 훌쩍거리고 겨울에는 난방기 밑에서 커피나 홀짝거리면서 부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기도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민족복음화도 기도, 교회 성장도 기도, 거듭나지 않은 대통령을 위해서도 조찬기도, 심지어 남북통일에 대해서도 기도이다. 그들이 기도로 성취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복음 전도지 한 장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복음의 ‘ㅂ’자도 한 번 거리에서 외친 적이 없다. 외칠 줄 모른다. 기껏해야 자기 교회를 세상에다 이런저런 구실로 소개하고 사람들을 전도라는 미명하에 자기 교회로 데려다 놓고 영적 바보로 만들어서 데리고 논다.
예수님 당시에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런 짓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체했다.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마 23:15). 예수님께서는 그런 삯꾼들에게 『너희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떻게 너희가 지옥의 저주에서 피할 수 있겠느냐?』(33절)라고 힐책하셨다.
셋째, 역대기상 1장에서 9장까지는 유대인의 계보가 나오는데,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기에 어지간한 집중력과 관심이 없으면 지루해서 뛰어넘을 수도 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에도 바빌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이 길게 나온다. 허나 알아야 할 것은 이 인명의 나열을 지루하다고 해서 건너뛰는 사람이 “나는 성경을 몇 독 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가 된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10번이나 20번, 그 이상 읽었다면 횟수를 더해 갈수록 그 인명들과 친근해지게 됨을 스스로 알게 된다. 이것이 성경 봉독에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명철과 조명을 얻게 되는 길이다. 독자 여러분 중에 이런 경험을 한 성도가 있다면 나의 견해에 공감할 것이다.
넷째,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하나는 이름을 갖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죽는다는 점이다. 이 법칙을 누가 만들었을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창조주요 구속주요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가장 유명한 이름인가? 제왕, 교황, 영웅, 정복자, 통치자, 개척자, 대량 살상자, 독재자, 발명가, 학자, 자선가인가? 하나님께 부름받고 복음과 진리를 위해 쓰임받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름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첫째로 인정받은 인물은 사도 바울이다. 그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고 고난을 감수했을 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기꺼이 바쳤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으며, 매를 맞았으나 죽지 아니하였고』(고후 6:9). 주님께서는 그를 부르시고(행 9장) 들어 쓰셨으며, 사역에 넣어 주셨다. 그를 시켜 신약성경 14권을 기록하게 하셨으며, 소아시아, 유럽, 스페인, 지중해의 섬들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 위대한 사역자가 되게 하셨다. 그를 흉내내려는 자들이 종종 나타났지만 그들은 결코 그를 흉내낼 수 없었다. 어떻게 믿어야 그를 닮을 수 있는가를 고심했다면 성경대로 섬기면 된다.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말했다.
다섯째, 역대기상 1-9장이 기록된 연대는 B.C. 1056년경이었는데, 역대기상 9장에서 일단락되었다. 만일 유대인들이 계속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더라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유대인 계보는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성경의 계보 때문에 성경은 지금의 66권, 1,189장, 31,173절, 810,679단어(3,566,480글자)(<킹제임스성경>의 경우)보다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오 주여, 주께서는 가까이 계시며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시 119:151).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참되며 모든 주의 의로운 명령들은 영원히 지속되나이다』(시 119:160).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말하리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의이기 때문이니이다』(시 119:172).
그렇다면 유대인의 계보는 왜 B.C. 1056년경에 중단되었는가? 두 가지 중요한 문제 때문이었다. 그 두 가지 문제란, B.C. 721년 유대인 열 지파가 배교로 인해 앗시리아로 포로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의 백성의 신들을 따라 음행하였더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앗시리아의 풀왕의 영과 앗시리아의 틸갓필네셀왕의 영을 충동하시니 그가 그들, 즉 르우벤인과 갓인과 므낫세 반 지파를 끌고 가서 그들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으로 데려가 오늘에 이르니라』(대상 5:25,26). 『이스라엘의 페카왕 때에 앗시리아의 티글랏필레셀왕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카와 야노아와 케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탈리 온 땅을 빼앗고 백성들을 사로잡아 앗시리아로 끌고 가니라』(왕하 15:29). 『앗시리아 왕이 이스라엘을 앗시리아로 끌고 가서 고산 강 옆 할라와 하볼과 메데인들의 성읍들에 두었으니』(왕하 18:11). 그때부터 115년 후에 유다도 배교로 인해 바빌론으로 포로되어 갔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계보대로 계수되었으니 보라, 그들이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책에 기록되었더라. 유다는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바빌론으로 끌려갔더라』(대상 9:1).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한 번 선언하신 말씀을 번복하지 않으신다. 『주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이는 너희로 그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주를 기쁘게 하였음이라』(삼상 12:22).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손으로 지으시고 에덴이라는 낙원에 그들을 살도록 두셨다. 그곳은 페르시아만, 지금의 이라크와 쿠웨이트 근처로 알려져 있다. 만일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중하게 받아들였더라면 인류는 전쟁, 질병, 기아, 재앙, 갈등, 범죄가 없는 낙원을 구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성경의 하나님을 거부하면서 지난 6천 년간 많은 피를 흘렸고, 지금도 UN이나 바티칸이 평화를 외치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의의 왕이요 화평의 왕이신(히 7:2)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년왕국을 수립하시고 예루살렘의 다윗의 보좌에서 치리하실 때까지 인간은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에는 세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땅에 관한 것, 그의 씨가 번창할 것이라는 것,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이방도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히 11:11,12).
① 하늘의 별(창 15:5)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듭난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이다(갈 4:28-31). 이삭이 그 모형인 예수 그리스도 한 분께만 적용시킨다(갈 3:16).
② 바다의 모래(창 32:12) - 이들은 육신에 따른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유대인들이다.
③ 땅의 티끌(창 13:16) - 이스마엘을 통한 후손들이다.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계 20:15).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 그 어떤 피조물도 그분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나니, 오직 만물이 우리가 회계해야 하는 그분의 눈 앞에 벌거벗은 채로 명백히 드러나게 되느니라』(히 4:12,13). 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하는가? 영이 거듭난 성도라면 영적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영적 양식을 규칙적으로 먹지 않고, 기도로 호흡하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은 고사하고 말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매일 교제할 수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주일날 교회만 다니는 교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된 성도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보존해 주시지만, 생명의 책에 등재되지 못한 이름은 영원히 잊혀진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해야만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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