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분류
당신의 믿음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컨텐츠 정보
- 3,333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8년 11월호>
교회사에서 종교개혁은 매우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이다. 그것은 중세기 암흑시대 동안 내내 유지돼 온 로마카톨릭의 횡포를 막아 선 사건이고, 카톨릭의 형식주의에 반대하여 참된 구원을 가져온 사건이며, 무엇보다 카톨릭의 변개된 성경에서 바르고 온전한 종교개혁 성경으로 돌아서게 한 사건이다. 개혁자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며, 교황의 세력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오늘까지도 기독교 세계는 로마카톨릭이라는 어둠의 세력 가운데서 허덕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개혁자들이 항상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큰 일들 뒤에 감추어진 악한 일들은 없었는가? 앞에서 말한 바, 종교개혁은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함으로 이 짧은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여기서는 종교개혁의 부정적인 면들을 다룸으로써, 그 개혁이 온전한 개혁이 아니었음을 밝힐 것이며, 우리의 믿음 즉 성경대로 믿는 믿음은 그들에게 뿌리를 둔 것이 아님을 설명할 것이다.
1. 로마카톨릭의 연장선에 놓인 개신교회
흔히 카톨릭 교도들은 자기들과 개신교회를 큰 집과 작은 집으로 비유하곤 하는데, 이는 개신교회가 카톨릭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두고 비하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느 정도 옳다. 개신교회들은 자기들 교회의 역사를 로마카톨릭에게서 단절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이어지는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마카톨릭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사건을 기독교의 승리로 받아들이고, 니케아 공회를 정통 공회로 인정하고, 어거스틴의 교리를 그들 믿음의 근간으로 삼는다. 그들이 스스로를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는 것은 로마에 항거했다는 의미일 뿐인데, 말 그대로 항거했다는 것이지 카톨릭 자체를 부정했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루터도 끝까지 로마카톨릭과의 화해를 모색했다.
1) 정교일치 : 국가와 교회의 결합
그러면 개신교회가 로마카톨릭의 역사를 이어받았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교일치주의이다. 개신교회들에서는 "정교분리"가 종교개혁의 기본 정신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가와 교회가 결합했다는 것은 한 국가에 한 교회만을 인정함으로써, 국가는 교회로부터 영적 권위를 인정받고, 교회는 국가를 통해 공권력을 사용할 물리적 권위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부터(313) 교회와 국가는 그렇게 결합되었다. 처음에는 세속 황제 앞에 교회가 머리를 숙였지만, 후에는 세속 황제가 교황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세속적 권력을 이용해 "이단"들을 처단하였으며, 교황은 그렇게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로마 교회가 행하는 "선교"란 교황의 세력을 더 넓게 뻗치기 위한 노력일 뿐이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 확장"이라 불렀다.
그런데 개신교회 역시 그와 같은 국가교회의 개념을 갖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개혁을 이룬 지역을 바탕으로 신정국가를 세우려 했었다. 이러한 경향은 칼빈과 츠빙글리에게서 특히 강했다. 칼빈은 스위스 서쪽 제네바에서 그랬고, 츠빙글리는 동쪽 취리히에서 그랬다. 그들은 자기들의 지역들이 철저히 교회법으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세속 관리들의 임무를 "복음에 순종하고 종교를 보호하며 악한 자들을 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세속 관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자, 혹은 이단자들을 처단할 권한이 주어졌다. 바로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칼빈은 세르베투스를, 츠빙글리는 재침례교도들을 죽게 했었다.
"카톨릭"(catholic, 즉 "보편적인, universal")이라는 말이 보여 주듯이, 로마카톨릭은 자기 교회만이 보편적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도 로마카톨릭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절대불변의 "유일한 교회"라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카톨릭에서 분리하려고 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이라고 간주된다. A.D. 4-5세기에 도나티스트들이 교회의 순결을 주장하며 성별하려 했을 때 어거스틴이 주장한 것이 바로 이 "유일한 교회" 이론이다. 그는 마태복음 13:24-30을 인용하며 "밭, 즉 교회에는 알곡도 있고 독보리도 있는 게 정상인데, 독보리가 좀 있다고 성별한다는 것은 교회를 찢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악한 일이었고, 따라서 어거스틴은 바로 이 이유로 도나티스트들을 처단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바로 이 모습이 칼빈이나 츠빙글리에게서 그대로 나타났다. 마태복음 13장에서 "밭"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다. 세상에는 알곡과 독보리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알곡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교일치 체제 안에서는 밭이 곧 교회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교회가 다스리는 지역 자체가 곧 그 교회이기 때문이다. 츠빙글리에게 취리히는 그 자체가 교회였다. 칼빈에게 제네바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 도시를 완전히 교회법으로 장악하려 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지역을 다스리는 "유일한 교회"를 찢는 자들로 간주되었다. 교회를 찢는 자들은 국가를 찢는 자들이며, 그들에게 임한 것은 박해와 죽음뿐이었다.
2) 유아세례
개혁자들이 결코 버리지 못한 카톨릭의 유산 중 하나는 유아세례다. 개혁자들은 모두 유아세례에 관한 한 거의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개혁자들은 로마카톨릭처럼 세례를 구원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유아세례를 고집했다. 왜냐하면 유아세례는 구약의 할례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례 의식의 거행으로 유대인이 민족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례는 기독교인이 한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표시한다고 츠빙글리는 생각했다. 그러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새로운 이스라엘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1) 이러한 인식하에서는 유아세례를 거절할 수가 없다. 아니, 유아세례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인도하는 것을 막는 것이니 크나큰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유아세례와 국가교회 사상은 연결되는 개념이다. 사람들은 유아세례를 통해서 개혁교회라는 신정국가에 들어간다. 이는 정확히 로마카톨릭의 개념이었다. 성인이 되어 참된 구원을 받은 후, 침례를 받아 구원을 간증하면 그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속해 있던 교회를 부정하는 격이 된다. 그러면 그는 그 교회를 찢는 자가 되며, 이것이 바로 재침례교도들이 카톨릭과 개혁자들 모두에게 박해를 받았던 이유이다.
취리히의 개혁자 츠빙글리는 초기 사역을 재침례교도들과 함께했다. 몇몇 침례교도들이 그를 도왔고, 초기에 그들은 동반자로 여겨졌었다. 그러다가 유아세례 문제로 그들은 갈라졌다. 츠빙글리 자신도 처음에는 유아세례 반대 입장에 잠깐 서 있었으나, 곧 침례의 예표를 할례에서 찾고는 돌아서 버렸다. 당시 1523년에서 1525년까지 네 번에 걸친 츠빙글리와 재침례교도들과의 공개토론이 있었다. 토론이 종료될 때까지 아기들을 둔 부모들은 유아세례를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보류했었으나, 마지막 토론에서 의회가 츠빙글리의 손을 들어주자 취리히 교회와 의회는 다음과 같이 명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명하노니, 이제부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재침례를 중지할 것이며, 오늘 이후로 더 이상 재침례를 행하지 말고 유아세례를 시행할지니라... 불순종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어떠한 자비도 없이 처벌받을 것이다."2) 재침례교도의 지도자 펠릭스 만츠에 대해 의회는, "침례를 베푸는 자는 침례를 받으리라... 너희 침례교도들은 물을 좋아하니 물이나 실컷 취하라."고 선언한 후, 호수 근처 림마트 강에 익사시켜 버렸다.3) 당시 재침례교도들은 이와 같은 익사형이나 화형을 당했다.
그러나 할례는 결코 침례의 예표가 될 수 없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갔지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하나님의 언약(새 언약, 히 9:14,15)에 들어간다. 세례든 침례든 물은 우리를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집어넣을 수 없다. 그것은 죄를 씻지도 못하고, 구원을 가져다 주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백성의 자격을 부여해 주지도 못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이다. 침례는 단지 그렇게 구원받은 성도가 간증하는 행위일 뿐이다.
2. 무천년주의 종말론
개혁자들은 하나같이 무천년주의자들이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는 전천년주의를 표방하는 침례교도들은 종교개혁에 믿음의 근원을 두지 않는다. 무천년주의는 천년왕국이라 불리는 그리스도의 지상왕국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 교회가 하나님의 영적 왕국이 되어 이 땅을 변화시키며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번성한다는 이론이다. 물론 이것은 철저히 비성경적인 이론이다. 왜냐하면 성경 곳곳에는 메시야께서 오셔서 지상을 통치하실 문자적인 신정통치왕국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사 2:1-4; 11:1-10; 24:23, 단 2:44; 7:27, 미 4:1-8, 슼 14:16,17 등). 하지만 무천년주의는 그것을 철저히 부정한다.
루터 교회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Augsburg Confession, 1530)에서 공식적으로 전천년주의를 반대했다: "우리는 재침례교도들과... 죽은 자들의 부활 이전에 경건한 자들이 세상 왕국을 차지한다는 유대인들의 견해를 퍼뜨리는 또 다른 자들을 정죄하노라."4) 또한 스위스의 개혁자이며 츠빙글리의 후계자였던 하인리히 벌링거(Heinrich Bullinger)가 작성한 제2차 스위스 신앙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에서는 전천년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또한 마지막 심판 이전에 있을 것이라는 지상에서의 황금 시대, 즉 천년왕국이라는 유대인들의 몽상을 거절한다."5) 칼빈 역시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천년왕국을 하나의 "허구"로 취급했다.6)
이와 같이 무천년주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왕국은 오직 교회라는 영적 왕국일 뿐인데, 그래서 교회가 확장될수록 이 왕국 역시 확장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왕국을 어떻게 확장시키느냐 하는 것인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방법이라는 것이 로마카톨릭과 똑같은 "세력 확장"이라는 것이다. 카톨릭이 자기들 세력이 미치는 곳에서 그들의 법으로 다스렸듯이, 개혁자들 역시 그 개혁이 이루어지는 사회(도시나 국가)를 교회법으로 장악했다.
율법적인 교회법이 사회법이 되었으며, 약간의 불경건도 사회적 범죄에 해당되었다. 교리적인 "이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경중에 따라 처벌받았으며, 심지어 화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다. 물론 도덕적으로는 상당히 건전한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도덕적 성결을 말한다면 알비겐스나 왈덴시안, 재침례교도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성결케 행했다면, 개혁자들의 지배를 받는 시민들은 교회의 장로들이 감시하는 경찰권 아래에서 강압적으로 성결케 행한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일들이 천년왕국을 이루는 일이라 생각했다.
개혁자들의 주된 관심은 자연히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교회의 순결이 아니라 사회 개혁에 있었다. 카톨릭의 잔재를 없애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겠으나, 나아가서 사회 전반을 기독교화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였다. 이것은 형태만 달랐지 카톨릭의 그것과 유사했다. 카톨릭이 사회를 "복음화"시킨 것이 아니라 "로마화"시킨 것이라면, 개혁자들은 "개혁교회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땅은 결코 개혁될 수 없다고 말씀한다. 세상은 악하며, 더욱더 악해질 것이고(딤후 3:1),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개혁을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 악한 세상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 믿음이며, 따라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개혁자들의 믿음을 따르지 않는다.
3. 재침례교도들의 믿음
종교개혁 시대에 개혁자들과는 다른 또 하나의 그리스도인 무리가 있었으니, 그들은 재침례교도들이었다. 재침례교도들의 뿌리는 고대의 노바티안, 도나티스트부터 중세의 폴리시안, 카타리, 왈덴스 등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끊기지 않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영적 혈통이다. 그러나 특히 종교개혁 시대에 있었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이 이름으로 부른다. 이들은 교회의 교리적 도덕적 순결을 주장했으며, 무엇보다 개혁자들이 주장하는 국가교회론을 반대함으로 개혁자들과 카톨릭 양 진영으로부터 모두 박해를 받았다.
재침례교도들의 믿음을 정리하면, 첫째 "오직 성경"의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논쟁에 있어서 철저히 성경으로만 증명하려 했다. 개혁자들은 카톨릭과 다툴 때는 자신들의 입장을 성경으로 증명했지만, 침례교도들과 다툴 때는 전통으로 증명하려 했다. 흔히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말은 루터의 슬로건이라고 생각하지만, 루터는 재침례교 지도자인 후브마이어를 반대함에 있어서, 유아세례 제도를 "만대의 기독교 교회가 시행해 온 유서 깊고 존경스러운 제도"라고 찬사함으로써,7) 스스로가 "오직 성경"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했다. 그는 여전히 전통 가운데 매여 있었다. 그러나 침례교도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성경으로 증명했다. 성경으로 증명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구원과 성별을 강조했다. 그들이 유아세례를 그토록 반대한 이유는 침례로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이다(벧전 3:21). 침례는 오직 구원받은 성도들의 간증일 뿐이다. 따라서 성인 침례를 준다는 것은, 그 죄인을 분명히 구원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즉 재침례교도들은 죄인의 구원과 그의 성별을 강조했다. 이것은 기독교 사회의 일원으로서 교회적 전통을 지키도록 강요받는 개혁자들의 믿음과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셋째로, 재침례교도들의 뚜렷한 믿음은 지역 교회의 순수성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어야 함을 강하게 믿었다. 이것은 단지 국가로부터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교회의 독립성 자체를 강조하는 믿음이었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지배한다는 교단적인 모습 역시 배격되었다. 그들은 지역 교회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믿었으며, 지역 교회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그들의 믿음은 무엇보다 순교의 믿음이었다. 당시 로마카톨릭이라는 거대 세력 앞에서 개혁자들이 취한 방식은 물리적 전쟁이었다. 반면 재침례교도들은 영적 전쟁의 방식을 취했다. 그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는 성경적 원칙에 충실했으며, 박해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함으로 그 믿음을 전파해 나갔다. 개혁자들의 신앙이 인정받기까지 그들은 수많은 전쟁을 거쳐야만 했다.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1562-1598)이나 독일의 30년 전쟁(1618-1648) 같은 수많은 종교전쟁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지만, 그것은 순교자의 피가 아니라 전쟁의 피였다.
하지만 재침례교도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어떤 방법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직 그들의 구세주께서 그들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4세기가 지난 지금, 그들은 그들의 대적들에게서조차 존경을 받고 있다. 비록 여전히 미움받고는 있지만, 그들의 삶과 곧은 믿음 자체는 비난을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침례교도들이 목숨을 바치면서 지켰던 정교분리 원칙, 즉 종교의 자유에 대한 믿음은 거의 모든 기독교 사회에서 지켜지고 있다. 오늘날은, 적어도 개신교 사회 중에는 국가 종교를 고집하는 국가는 없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오늘 우리는 자유롭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재침례교도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이땅의 모든 기독교 사회는 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
우리의 믿음의 뿌리는 어디 있는가? 우리의 믿음은 어떤 경로로 이어져 내려왔는가? 우리 자신이 로마카톨릭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주할 수 있겠는가? 물론 개혁자들의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카톨릭의 암흑 시대로부터 되찾은 성경, 변개되지 않은 바른 성경을 모든 성도들이 직접 읽고, 그 성경을 통해 조명을 받게 된 것에 대해서는 개혁자들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개신교도"가 아니다. 개혁자들이 지닌 비성경적인 믿음, 완전히 버리지 못한 로마카톨릭의 잔재, 형제들을 향해 칼을 겨눈 그 악한 모습에서 우리는 믿음의 뿌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오히려 순교를 통해 믿음을 지켜낸 재침례교도들을 통해 믿음의 본을 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오직 성경만을 붙들고 피로써 지켜낸 그들의 믿음은 개혁자들이 총칼과 세력으로 이룬 기독교 사회와는 비교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믿음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누구의 피로 지켜진 신앙을 붙들고 있는가? BB
---------------------------------------------------------------------------------
1) Roland Bainton, 『종교개혁사』, 홍치모ㆍ이훈영 역 (고양, 크리스찬다이제스트, 1997) p.86.
2) Thieleman J. van Braght, Martyrs Mirror, (Scottdale: Herald Press, 2001), p.414-415.
3) Thomas Armitage, The History of the Baptists (Minneapolis, MN: reprint by James and Klock Christian Pub. Co., copyright 1886) p.35.
4)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III, p.18.
5) Schaff, Vol. 1, p.307.
6)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II, ch.XXV, 5.
7) 필립 샤프, 『교회사전집』, 제7권, 박종숙 역, (고양,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4), p.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