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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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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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1월호>

지난 11월 18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날이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12월 10일에 성적 통지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생명과학 II”에 응시한 6,515명의 수험생 점수가 공란으로 배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생명과학 II”의 20번 문항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미 수능 직후에 일부 수험생들과 입시업체들이 20번 문항의 오류를 주장하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이의 신청을 냈다. 하지만 평가원은 20번 문항을 포함하여 이의 신청이 접수된 76개 문항 모두에서 이상이 없다고 판정했다. 이에 “생명과학 II”에 응시한 수험생 92명은 평가원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수능 정답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본안 소송 선고 예정일인 12월 17일까지 정답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법원은 평가원의 정답 결정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평가원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생명과학 II” 응시생 6,515명에 대해 전원 정답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사실 평가원은 수능 직후 20번 문항에 대한 이의 신청에 대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해도 변별을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라고 말하면서 문제점 자체는 수긍하면서도 그것을 정정하지 않는 아주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이렇게 모순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결과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던 약 3주간의 시간을 허비했고, 막판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만 키우고 말았다.

이처럼 “시험 문제” 하나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대학 입학을 위한 등용문이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이 대한민국 교육의 정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해 수험생들은 기를 쓰고 더 좋은 점수를 받아 더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대학”은 오늘날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진리의 상아탑”으로서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렇기에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대학은 진리를 직업으로 삼습니다. 대학은 진리에 대해 제한 없는 참여를 선언하고 약속합니다... 대학은 조건 없이 존재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국내외 유명 대학의 슬로건이나 문장(紋章)에는 “진리”와 관련된 문구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Veritas vos Liberabit)는 요한복음 8:32의 말씀을 슬로건으로 갖고 있으며, 미국의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와 우리나라의 “연세대학교” 역시 이와 동일한 슬로건을 갖고 있다. 미국의 “예일대학교”의 문장에는 “빛과 진리”(LUX ET VERITAS)라는 문구가 들어 있고, 이와 유사하게 우리나라 “서울대학교” 문장에도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역시 그 문장에 “진리”(VERITAS)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물론 미국의 유수 대학교 중 상당수가 처음에는 “신학교”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의 슬로건과 문장에 “진리”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그들이 말하는 “진리”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경적 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대륙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자 현대적인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사립대학인 “하버드대학교”는 신학교로 시작했다. 그런데 세속적인 과목들이 생겨나자 이에 반발해서 나간 목사들이 “예일대학교”를 세웠다. 하지만 “예일대학교” 역시 규모가 커지면서 세속적인 과목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이에 반발한 목사들이 또다시 나가서 새로운 대학교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프린스턴대학교”다. 이처럼 미국의 이름 있는 대학교들은 본래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는 곳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학교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대학교들 대다수가 성경적 진리 대신 학문적인 의미에서의 “상대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곳들로 바뀌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대학교가 취업을 위한 중간 다리 역할만 할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더 큰 위기를 겪고 있는데,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이제 대학교는 성경적 진리를 전혀 배울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교에서 전혀 배울 수 없게 된 “성경적 진리”는 무엇인가? 먼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요 1:14)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진리를 증거』(요 18:37)하시기 위해 오셨고, 그 목적대로 『진리로 하나님의 길을』(마 22:16) 가르치셨다. 더욱이 요한복음 14:6에서는 친히 자신이 진리이심을 나타내셨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비록 아담의 범죄로 잠시 틀어져 버리긴 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때가 찬 경륜 안”에서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우셨던 계획을 원래대로 다시 돌려놓으실 것이다(엡 1:10, 계 21,22장).

한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없었던 빌라도는 진리이신 그분을 앞에 두고서도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라고 물었는데, 그것은 그 이면에 진심으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진실한 의도가 전혀 없었던바 오히려 한탄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질문조차 제기하지 않은 채 소위 “진리의 상아탑” 안에 갇혀 있는 지식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머릿속이 세상 지혜로만 꽉 차 있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서도 무언가 진리를 아는 체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자신들의 꾀에 빠지는 어리석은 자로 여기신다(고전 3:19). 그처럼 어리석기는 교단 교회들에 다니는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았다면 그런 교회들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진즉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기록된 말씀이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과 오른손과 왼손에 든 의의 병기로써』(고후 6:7).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 그래서 성경의 예언은 “미리 기록된 역사”이다. 하지만 우리말로 된 성경 중에서 진리의 말씀으로 불릴 수 있는 성경은 오직 <한글킹제임스성경>뿐이다. 개역성경, 개역개정판, 흠정역 등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모든 성경은 비웃음과 비난을 사기만 한다. 이는 그것들도 진리로 자처하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오류와 모순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바른 성경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해도 대학교에서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들을 필두로 하여 세상은 성경을 한낱 종교 경전 중 하나로 치부해 버린다. 그렇기에 이 『진리의 성경』(단 10:21) 또한 대학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다.

세 번째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신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기에 그분 또한 진리이시다.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니라.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라』(요일 5:6).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요 16:13). 진리이신 성령 하나님 또한 대학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그 영이 죽어 있어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요 14:17).

마지막으로 진리는 “영원히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그분을 신뢰하였으니 또 너희가 그분을 믿고서 약속의 그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엡 1:13). 『우리가 단 한 시간도 그들에게 복종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복음의 진리가 너희와 함께 지속되게 하려는 것이라』(갈 2:5). 『그분 자신의 뜻으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셔서 우리로 그의 피조물들 가운데 첫열매들에 속한 자들이 되게 하셨으니』(약 1:18).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여 있는 소망 때문이니 이 소망은 너희가 전에 복음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들은 바라』(골 1:5).

대학교에서는 “영원히 사는 것”과 관련하여 과학 기술을 통해 실현하고자 나름대로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실로 헛걸음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과학을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반론』(딤전 6:20)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경은 복음의 진리를 통해 사람이 영원히 사는 방법을 제시해 놓았다. 사람은 죄로 인해(롬 5:12) 피에 문제가 생겨서(고전 15:50) 반드시 죽게 되었기 때문에(창 2:17),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딤후 1:10, 롬 5:21). “진리이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하셔서 죄와 죽음과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셨다. 이제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은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행 16:31) 영접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오늘날 진리를 추구한다는 대학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진리다. 그런데도 정작 알아야 할 “참된 진리”는 깨닫지도 못한 채, 지난해 421,034명보다 27,104명이 더 늘어난 449,138명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이번 “2022년 수능 시험”에 응시하였고 앞으로도 이러한 열기는 절대로 식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성경적 진리를 깨우쳤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는가? 변개되지 않은 바른 말씀이 있고, 또 그 말씀을 믿고 있는가? 『그때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시더라』(요 8:31,32). 순서에 주의하라! 우선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거해야만 진리, 특히 “복음의 진리”를 알 수 있고, 그렇게 알게 된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다. 앞뒤 문맥 다 빼 버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만 내건 슬로건은 반쪽짜리 진리에 불과한데, 이는 마치 이사야 2:4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을 심판하신다는 부분은 싹 빼 버리고 평화의 말씀에 관해서만 부분적으로 인용한 “유엔 본부의 벽”에 걸린 문구와 그 양상이 비슷하다. 뒤집지 않아 반만 구워진 과자와(호 7:8) 같은 “반쪽 진리”는 절대로 폐기될 수 없는 성경을(요 10:35) 교묘하게 폐기하려 하는 강력한 마귀의 술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대면한 상황에서 재판관 자리에 앉아 있었던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기 때문에 넘겨지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막 15:10) 이에 세 번이나 무죄를 선언했지만(요 18:38; 19:4,6), 결국 자신의 지위와 세상을 선택함으로써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폭도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요 19:12,16). 헤롯이나 아그립파 왕도 진리에 직면했을 때 진리에 의해 마음이 찔림을 받고 동요되었지만, 결국 진리에 복종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그렇게 되지 말라! 당신의 감정이나 기호, 욕망, 부모, 주변 상황, 비웃음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리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그 빛이 번개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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