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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릴 수 없는 인생에서 유념해야 할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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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5월호>
고등학교 시절, 짙은 초록색 칠판에 "딱, 따닥 딱, 딱" 하며 분필 소리만이 지루하게 울리던 화학 시간의 기억을 잠시 더듬어 보면, 선생님들께서 필기하셨던 대부분의 화학식은 아래와 같이 "양쪽 방향"으로 화살표가 있는 기호의 반응식이었다.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고 그 물을 얼리면 다시 얼음이 되듯이, 우리 주변에는 "가역적(可逆的)인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많다. 즉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아래와 같이 "한쪽 방향"으로만 화살표가 난 화학 반응식도 있는데, 이런 종류의 반응식은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한 번 반응이 진행되고 나면 결코 되돌릴 수가 없다. 과학자들은 이런 것을 가리켜 "비가역(非可逆) 반응"이라고 말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인생 역시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비가역적"인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 선택들은 결코 되돌릴 수 없었으며, 다만 우리가 그 선택을 위해 심어 넣은 "재료 그대로를 거둘 것"을 요구하고 있었을 뿐이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갈 6:7).
향후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우리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 반응들"만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이에 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느냐?』(갈 4:30)에 유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성경은 "인생의 비가역 반응식"에 관하여 매우 "현명한 삶"으로 증명해 보여 준 사람으로서 "고명한" 화학자들을 제쳐 두고 옛날 예루살렘 근교 베다니 마을에 살았던 마리아라는 한 여인을 내세우고 있다(막 14:3). 이에 우리는 후회를 남기지 않았던 마리아의 섬김에서 과연 어떤 부분이 남달랐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향유 옥합을 깨뜨려라!
마리아가 "반응식"에 투입한 재료들을 "똑똑한 양반네들"이 보았다면, 그들은 분명 그녀에게 "마리아, 적당히 넣어야지!" 하고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삼백 데나리온(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3천만 원)짜리의 매우 값진 감송 향유가 든 옥합을 이제 막 깨뜨릴 참이었기 때문이다(막 14:3-5). 당시 이를 목격했던 한 "현실주의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이 무슨 낭비냐? 이 향유를 많은 돈을 받고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노라』(마 26:8,9). 실제로 그 금액은 당시 노동자 1년 봉급에 해당하고(마 20:2), 5천 명 이상을 먹일 수 있는 빵의 금액보다 1.5배나 더 많은 액수였다(막 6:37,44).
이처럼 현실적인 계산에 상당히 능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의 "향유 옥합"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깨뜨리지 않으려고 안달이다. 그러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며 돈주머니를 맡아 그 안에 넣은 것을 지니고 다니기 때문이라.』(요 12:6)고 말씀하신다. 즉 주님께 드리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잘 포장해도 자기들의 소유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다. 이들은 제 소유가 아닌 "몸과 영"을, 그것을 『값을 치르고』 사신 분(고전 6:20)으로부터 훔치려고 하는 "도둑들"이다.
당신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낭비』라고 생각할 만한 가장 귀중한 것을 드려 본 적이 있는가? 또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할 정도로 드려 본 경험이 있는가? 만일 있었다면 당신은 그러한 선택에 결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회하는 쪽은 언제나 옥합을 남겨 둔 쪽이다. 헌신과 섬김에 있어서 그것이 은사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무엇이든지 최상의 것을 최선으로 드려야 한다. 일부를 감추어 놓은 채(행 5:2)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것은 실로 가증한 일이다.
2.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려면 반드시 그 전체를 깨뜨려야 할 뿐 아니라 드려야 할 것을 "제 때에" 깨뜨려야 한다. 마리아는 결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그 향유 옥합을 깨뜨리지 않았다. 또한 감송 향유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직전 바로 그 시간에 부어져야 했다. 너무 마음만 앞서서 마리아가 그보다 몇 개월쯤 전에 미리 깨뜨려 버렸다면, 예수님의 장사되심을(마 26:12) 위해 준비한 섬김으로서의 향유의 의미는 크게 퇴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을 가장 영화롭게 해 드리기 위해 유월절 엿새 전까지 향유를 "간직해 두었었다"(요 12:1,7).
"인생의 비가역 반응식"에서 "타이밍"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말하자면 "주님의 시간"에 맞추는 일인데, 물론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 미리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사 55:8). 따라서 주님께서 "바로 지금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향유 옥합"을 깨뜨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향해 원하고 계신 뜻이 무엇인지를 항상 예의 주시하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즉시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례로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 저기 지하철 승강장 3번 구역 의자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미세한 음성을 들려주셨을 때, "주님, 지금은 좀 그런데요..."라는 식으로 타이밍을 임의로 조절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면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어떤 일도 맡기지 않으실 것이고, 결국 당신으로부터 받으실 영광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런데 마리아가 최선을 다해 주님께 드릴 값진 물건을 마련하고, 또한 그것을 기꺼이 드릴 마음까지 예비했다 해도, 이 "세 번째" 중요한 요소가 없었다면 그 합당한 시기에 예수님께 꼭 맞는 물건인 감송 향유를 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10:38-42에 그 부분이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그녀의 언니 마르다는 접대하는 일이 많아서 경황이 없었던 반면, 그녀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어느 대학 수업 시간에 교수가 항아리를 교탁에 올려놓고 그 안을 자갈로 채우고는 학생들에게 항아리가 가득 찼는지를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교수가 모래를 항아리에 쏟아부으며 항아리가 가득 찼는지 다시 묻자 학생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이번에는 물을 항아리에 가득 차도록 부은 뒤, 자기가 보여 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그때 한 학생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꽉 차 있는 일정 속에서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는 말했다. "아닐세. 이 실험을 통해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은, '가장 큰 돌'을 먼저 집어넣지 않으면 이후 모래와 물을 계속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동생에 대해 툴툴거리는 마르다에게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며 수고하고 있으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니라』(눅 10:41,42). "바로 지금" 예수님께로 가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마귀는 자기가 관장하는 세상을 통해 당신을 더욱더 바쁘게 하여 경황이 없게 만들 것이고, 결국 당신이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기력이 다 빠져서 주님께 "모래"만큼도 드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인생에서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만큼(딤후 2:15) "가장 큰 돌"도 없으며, 또 "지금 당장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도 없다. 지금 하지 않으면 당신에게는 앞으로 더 이상의 기회가 영영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각 사람의 일한 것을 불에 통과시켜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또 하나의 "비가역 반응식"이다. 일단 불이 붙으면 투입된 재료, 곧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이 잘못됐음을 깨닫더라도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여 가장 좋은 때에 최상의 것을 최선으로 드리라! 이 인생의 공식을 유념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탄식 소리만 남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