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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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공격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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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4월호>

사자는 달려가는 들소 떼를 바라보며 먹잇감을 찾을 때 그 많은 무리 가운데 오직 한 마리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 부어 그것을 낚아챈다. 마찬가지로 울부짖는 사자인 사탄 역시 집어 삼킬 먹잇감으로 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이와 같은 사탄은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가장 무섭고 소름끼치는 모습이다. 『사람이 그를 보기만 하여도 기가 질리지 아니하겠느냐?』(욥 41:9)
사탄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악을 피하던 욥과 같은 사람을 노렸다(욥 1:8). 사탄은 다윗을 노렸을 뿐만 아니라(대상 21:1), 베드로(마 16:23)와 바울도 노렸다(고후 12:7).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이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오늘도 사탄은 땅 여기저기를 위아래로 두루 다니며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성도는 이 마귀의 공격 패턴을 알아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것을 욥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마귀는 성도의 “소유”와 관련된 공격을 한다. 욥은 다른 모든 소유 중에서 그의 “재정”이 먼저 공격받았다(욥 1:13-17). 사탄이 보낸 사베인들과 칼데아인들의 공격을 받고서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 실로 생계가 막막할 정도였다. 마귀는 재정적 압박으로 많은 설교자들과 가정들을 파괴시켰다. 그러나 욥은 전 재산을 잃어버렸을 때조차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송축했다. 『내가 내 어미의 태에서 맨몸으로 나왔으니 내가 맨몸으로 그리 돌아가리이다. 주신 분도 주시요, 빼앗아 가신 분도 주시니 주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욥 1:21). 욥은 자신이 받은 복과 그 복을 주신 분을 혼동하지 않았다. 하나님께로부터 물질을 받는 것은 복이지만 그 물질에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 물질에 지배당하면 마귀에게 틈을 허용한 것이며, 그것은 우상 숭배가 되기 때문이다(마 6:24, 골 3:5).
성도가 스스로를 물질의 소유주라고 생각할 때 염려가 그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스스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처분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된다. 사실 물질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는다면, 마귀는 물질뿐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성도의 믿음을 빼앗아갈 수 없다. 성도는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딤전 6:10).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임을 잊지 않을 때(고전 10:31), 성도는 재정과 관련된 마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소유”와 관련하여 사탄이 다음으로 공격하는 대상은 성도의 “자녀들”이다(욥 1:18,19). 사탄은 욥의 자녀들을 공격했고, 욥은 성인이 된 열 명의 자녀를 모두 땅에 묻어야 했다. 버마로 간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역시 선교지에서 그의 자녀들을 묻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려는 사탄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제 주의 손을 내밀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쳐 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주를 정면으로 저주하리이다』(욥 1:11). 성도가 하나님을 진지하게 섬기려 할 때 마귀도 공격에 무게를 더하여 그 성도를 공격한다.
욥은 자녀들이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실한 성도로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자기 자녀들이 하나님을 부인했을까봐 염려하며 그들의 잔칫날들이 지나면 그들을 성결케 하고 그들 모두의 수대로 번제를 드리곤 했다(욥 1:5). 욥처럼 자녀들의 신앙에 헌신했던 인물도 사탄의 공격을 받고 자녀들을 잃고 말았다. 욥처럼 자녀들의 생명을 한 날에 모두 잃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의 자녀가 마귀의 유혹에 빠져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덤에 묻힐 수 있음을 영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성도가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꾸준히 양육하지 않으면(엡 6:4) 그 자녀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그 성도는 자신의 자녀를 세상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성도는 자녀들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그들을 기도로 돕고 말씀으로 훈육해야 한다. 자녀의 성별과 영적 성장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소유”와 관련하여 공격하는 또 하나의 영역은 “육체의 질병”이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몸을 아끼고 육성하는 성향이 있는데(엡 5:29) 사탄은 그 몸에 질병을 일으켜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러나 이제 주의 손을 내밀어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정면으로 주를 저주하리이다』(욥 2:5). 마귀는 물질을 빼앗으면 많은 것을 빼앗는 것이지만, 건강을 빼앗으면 더 많은 것을 빼앗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건강을 잃게 하면 때로는 믿음마저도 잃게 할 수 있다. 건강이 좋을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건강을 잃고도 주님을 섬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성도가 낙심하지 않고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기도에 전력한다면 질병으로 오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다.
미국의 대각성 기간 중 기도의 전사라 불렸던 한 복음전도자는 관절염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여 새벽 두 시에 일어나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마루에 엎드려 신음하며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오 주님, 이 고통이 심할지라도 죄짓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 복음전도자는 심한 육체의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고 여전히 기도했으며 기도로 승리할 수 있었다.
내가 겪는 고통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주님께서는 그 고통을 알고 계시며 도우실 수 있다(히 2:18). 성도가 병에 걸렸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주님을 섬기는 성도에게는 기도의 힘이 있지 않은가? 마귀는 성도의 몸을 공격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공격받은 몸이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고 있다(고전 6:19,20). 성도의 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님의 소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값 주고 사신 그 소유에 병이 생겼다면 그 몸의 주인이신 분께 기도하여 치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몸이 무너지면 주님을 섬길 수 없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성도는 자신의 건강을 잃게 하는 나쁜 습관을 스스로 억제하여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고전 9:27), 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주님을 섬기는 데 방해받지 않도록 치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주님의 능력으로 치유받아야 한다.


둘째, 마귀는 소유에 이어 “관계”를 통해서 공격한다. 가장 많이 공격하는 패턴은 믿음이 약한 배우자를 통해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다. 사탄은 욥의 아내의 한계를 알았기에 때가 되어 그의 아내를 공격했고, 아내는 마침내 마귀의 도구로 전락하여 마귀가 가장 원했던 말을(욥 2:5) 욥에게 하고 말았다. 『그때에 그의 아내가 욥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아직도 당신의 온전함을 간직하려 하느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하더라』(욥 2:9).
성도가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할 때 가까이 있는 배우자를 통해 방해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인 마귀의 공격 패턴이다. 아담이 아내의 음성에 경청했을 때 인류에게 대재앙을 가져왔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음성에 경청했을 때(창 16:2) 인류에게 모슬렘들로 인한 큰 재앙이 닥쳤다(창 16:12). 얼마나 많은 아내들이 남편이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가?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아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믿음의 말을 할 때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벗어나고 헌신을 가로막는 말은 마귀의 공격이라는 점을 감지하고 그 순간 하나님의 편에 서서 대응해야 한다. 욥은 마귀의 도구가 된 아내의 말에 육신적으로 반응하여 죄를 짓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밀착하여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가 말하듯이 말하는도다. 무슨 말을 그리하느뇨?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좋은 것을 받았을진대 나쁜 것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또한 마귀는 친구의 관계를 통해서 공격한다(욥 2:11). 이제 욥에게는 더 이상 함께할 자녀도 없고 마음을 나눌 아내도 없다. 몸과 마음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남은 것은 친구들뿐이다. 그런데 다른 모든 것들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입은 것이 친구들을 통해서였다. 사탄은 지금까지 갖은 수단을 동원해도 하지 못했던 것을 친구들을 통해서 이룰 수 있었다. 욥의 친구들은 처음 칠 일 동안은 앉아서 욥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칠 일간의 침묵은 욥에게 가장 위대한 위로였다.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도 자녀의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고, 목사도 성도들의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묵묵히 옆에 있어 주고, 고난이 빨리 통과되도록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 주는 동역자를 주신 것은 복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면 좋았으련만 욥의 친구들의 위로는 이내 비판과 정죄로 바뀌었다. 물론 그 대화 중에 욥의 “자기 의”가 드러나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키는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탄은 녹초가 된 욥이 하나님께 불평하고(욥 12:6) 하나님에 관해 거짓말을 하게(욥 10:3) 하는 등 갖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데 성공했다.

마귀는 다양한 공격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 공격을 성경대로 믿음으로 잘 막아내면 믿음이 더 견고해져서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게 되지만, 만일 패배한다면 심지어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버림받을 수도 있다.
교회 안에 욥의 인내를 배운 성도들이 자리잡을 때 교회에 말할 수 없는 힘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교회를 약화시키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이 시대에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는 바른 말씀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진리의 보루이다. 성도 각자가 이를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성도 자신으로 인해 약화되지 않도록 모두가 깨어 기도하며 전 방위로 다가오는 마귀의 공격을 반드시 막아내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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