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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흉내 내는 “성경 중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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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10월호>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서신,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백조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백조가 죽을 때 부른다는 아름다운 노래"에서 유래한 이 말은, 그가 죽기 전에 기록한 최후의 서신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하게 한다. 『너는...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들의 본을 굳게 붙잡』으라(1:13).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2:15).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으니, 그 성경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3:15-17). 그리고 바울은 죽기 전에 읽을 수 있도록 "책"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네가 올 때 내가 트로아에 있는 카포의 집에 두고 온 외투를 가져오라. 또 책들을 가져오되 특히 양피지로 된 것을 가져오라』(4:13). 바울이 처형당하기 전에 부른 이 아름다운 노래는 매 장마다 "성경"에 관한 말씀으로 그 선율의 중심을 잡고 있다. "성경에 대한 굳은 확신"과 "그 영감받은 책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다는 신뢰"와 "그 책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공부하고 싶다는 열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바울은 디모데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여(2:15) 그것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그 진리의 지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전파되기를 원했다(2:2). 그의 마지막 서신은 "배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교회 시대의 마지막 날들에는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결코 이를 수 없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3:7). 성경에서 뭔가를 배우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 배운 것으로 진리를 대적할 것이라는 얘기다(3:8). 그들은 진리가 아닌 어떤 이상한 것을 배운 것이다. 바울은 이처럼 비진리를 수용한 자들에 대해서 『악한 사람들과 사기꾼들은 더욱 악해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3:13)고 했으며, 그들과 달리 "디모데의 배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너는 네가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라. 네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를 알며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으니, 그 성경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3:14,15). 말하자면 성경을 정확히 공부해서 정확히 가르치라는 것이 이 "백조의 노래"의 주제였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죽기 직전까지 성경을 공부하기 원했던 『이방인들의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1:11)가 그의 "영적 아들"(딤전 1:18)에게 주는 최선의 유언이었다.
신학교라면 당연히 "성경"으로 하나님에 관한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야 하지만, 마지막 날들의 신학교들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적으로 부재하다. 그런 곳들 가운데 하나인 백석대 신학대학원 개강 예배에서 그 학원 설립자인 장종현 목사가 작심이라도 한 듯 성경에 관해 "의미심장"하고 "도전적인" 설교를 했는데, 언론에 보도된 요점은 다음과 같았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고 인간의 말로 전하고, 성경의 배경과 인물, 역사를 중심으로 학문적 공헌과 지식만 전달한다면 영적 변화를 불러올 수 없다. 지난 40년간 학교를 운영하면서 한국 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에게 있고, 목회자의 문제는 가르치는 신학자에게 있으며, 신학자의 문제는 바로 운영자인 나 자신의 문제임을 통감했다. 목사들의 세계, 신학 교수들의 세계가 영적으로 변화되지 않는데, 어떻게 한국 교회가 변화되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질 수 있겠는가? 신학 서적이나 주석에서 예수의 생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서만 생명과 능력이 나타난다.』
이 얼마나 지당하며 반론의 여지가 없는 설교인 것인가! 실로 『예수께서 그가 지혜롭게 답변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시니라.』(막 12:34)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변개된 개역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그 위선자의 그릇된 동기를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장 목사는 설교를 한 것인데, 성경에는 "발라암의 설교"도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라. 기독교계에는 발라암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를 "메시아에 관해 위대한 예언을 한 참 선지자"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브올의 아들 발라암이 말하며 눈을 뜬 자가 말하였나니,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은 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안 자, 전능하신 분의 환상을 본 자, 무아지경에 빠졌으나 자기 눈을 뜬 자가 말하였도다. 내가 그를 볼 것이나 지금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볼 것이나 가깝지 않도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나서, 모압의 구석구석을 쳐서 셋의 모든 자손들을 멸망시키리라. 에돔이 소유가 될 것이요, 세일도 그의 원수들을 위한 소유가 될 것이며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라. 통치권을 가지신 분이 야곱에게서 나와서 그 성읍에 남은 자를 진멸하시리라』(민 24:15-19). 이 위대한 말씀은 발라암의 "설교들"(민 23:7-10; 23:18-24; 24:3-9; 24:15-19) 가운데 마지막 네 번째 설교이며,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다루고 있다. 이런 놀라운 예언이 발라암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 그가 하나님께 부름받은 참 선지자라는 증거가 되는 것일까?
발라암은 그가 말한 모든 선한 말씀들과 달리 숨은 동기가 불순한 "거짓 선지자"였다. 모압 왕 발락이 제시한 『불의의 삯』(벧후 2:15)을 사랑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길 원했으나, 주의 천사의 빼어 든 칼이 목을 겨누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했던 것이다. 『그때에 주께서 발라암의 눈을 여시니, 주의 천사가 그의 손에 칼을 빼어 들고 길에 서신 것을 그가 보고 자기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주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는 네 나귀를 이처럼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갔으니, 이는 너의 길이 내 앞에 패역함이라. 나귀가 나를 보고 내게서 이렇게 세 번이나 돌이켰느니라. 나귀가 내게서 돌이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에는 내가 너를 분명히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하니라』(민 22:31-33). 이에 발라암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달아나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발락이 보낸 고관들]과 함께 가라. 그러나 너는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만 말할지니라.』(민 22:35)는 말씀에 복종하여 우격다짐 식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그는 기어코 불의의 삯을 받아 내려고 발락을 찾아가 주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치실 만한 "계략"(『발라암의 계략』, 민 31:16)을 알려 주었고, 그 계략에 말려든 이스라엘은 모압인들의 바알프올에게 가담하여 모압의 딸들과 음행함으로써 2만 4천 명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민 25:1-9). 물론 발라암은 이 죄로 인해 칼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민 31:8). 이것이 그 거짓 선지자의 최후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바른 소리"가 나왔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께 부름받은 종이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절대적인 표본인 것이다.
발라암은 분명 거짓 선지자였으나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어"(민 24:2) 예언을 하게 되었다. 발라암이 말한 것들은 그가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벧후 1:21),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딤후 3:16)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발라암 같은 인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성령의 영감이 무엇인가를 우리로 깨닫게 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손에 영감받은 말씀도 없이" 성령의 영감만을 운운하는 설교자라면 발라암보다 못한 영적 상태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장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숨결과 호흡이 담겨 있다는 것이고, 성경의 저자가 인간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심을 말해 준다. 성령께 의지해야 성경을 깨달을 수 있고,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다.』 그는 성경을 학문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신학생들의 영성을 메마르게 한다는 판단하에 "성경 중심"으로 교육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취지에서 "성령의 영감"을 강조한 설교를 한 것인데, 취지야 훌륭하지만 "어떤 성경"을 중심으로 교육의 전환을 이루어야 하는가는 알지 못하고 있다.
"어떤 성경"이어야 하는가는 곧 "영감"의 문제이므로, 이 점에 관해 피터 럭크만 박사의 말을 들어 보도록 하자. 그는 성경의 영감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영감(inspiration)이란, 하나님께서 신구약성경을 기록하시는 데 있어서 초자연적으로 관장하셨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인데(딤후 3:16), 이 강력한 하나님의 숨결이 사람들 안에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여 기록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신해서 발설하도록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때 성령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임재하셔서 기록의 정확성을 보존하셨고 성령에 의해 압도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성경 기록은 그것이 기록자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든 모르고 있었던 일이든 간에 전혀 오류가 없다』(<조직신학>, p.18). 말하자면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그 성경에는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개역성경을 위시한 모든 변개된 성경들은 "오류의 산실"이 아니던가!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비교했을 때 36,000군데 이상 틀리고 신약에서만 2,200단어가 삭제된 것은 거짓 교리를 확산시킬 수밖에 없는 가짜 성경인 것이다. 성령의 영감이 전혀 없고, "악하고 가증한 누룩"으로 부풀어 오른(마 16:12, 고전 5:6,8), "한국 교회를 망친" 그 책으로 가르치는 곳은 바른 진리를 배격하는 "오류의 전당"인 것이다.
성경으로 하는 교육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구약의 이스라엘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것들이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를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계명들과 규례들과 명령들이니, 너희는 가서 차지할 그 땅에서 이것들을 행할지니라... 네 자손에게 그것들을 열심히 가르칠지니, 네가 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네가 길을 걸을 때나 네가 누워 있을 때나 네가 일어날 때 그 말씀들에 관해 말할지니라』(신 6:1,7). 이스라엘이 이 명령에 따라 말씀을 신실하게 가르쳤다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가르쳐야 할 주의 말씀을 변질시켰고, 그 변질된 것으로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떠벌림으로써 멸망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너희는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신의 무거운 짐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질시켰음이라』(렘 23:36). 이스라엘은 "멸망"하기 전에 이런 책망을 들어야 했었다. 이 점은 오늘날의 신학교들과 교회들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한 "변개된 성경"으로 "성령의 영감"을 말하는 자는 그가 누가 되었든지 하나님께서 강력히 대적하시는 "거짓 선지자"라는 점이다!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각기 자기 이웃으로부터 내 말들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주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꿈들을 예언하고 그들에게 말하여 그들의 거짓말들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그릇되게 하는 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도,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아니하였으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전혀 유익이 없으리라. 주가 말하노라』(렘 23:30,32).
예수님께서는 헛된 자만으로 부풀어서 성경을 가르친다는 자들의 위선에 관하여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한 모든 것을 지키고 행하라.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음이라.』(마 23:3)고 말씀하셨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을 강조한 사람이라면, 실제로 그렇게 기록된 성경을 신학생들에게 제시하여 <한글킹제임성경>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백석학원이라는 곳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뜻이 무엇이겠는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숨결과 호흡이 담겨 있다는 것이고, 성경의 저자가 인간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심을 말해 준다. 성령께 의지해야 성경을 깨달을 수 있고,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받아들이되, "변개된 성경"을 사용하는 그 사악한 위선은 절대로 본받지 말라는 것임이 분명하다!
한글개역성경 같은 것을 쓰면서 "성령의 영감"을 말하는 자는 심해에 사는 "흉내 문어"와 같다. 이 문어는 위험이 닥치면 몸을 부풀리고 주변의 색깔로 순식간에 바꿈으로써 스스로를 위장한다. 가자미, 넙치, 바다뱀, 게 등 약 40여 종의 바다 생물들로 변신할 수도 있고 움직이는 모습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생물로 가장한다 해도 그 생물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를 흉내 내는 자들의 한계다. 하나님의 일에는 항상 그 일을 흉내 내는 자들이 있어 왔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참된 종들과 동등하게 보이려 하는 습성이 있는데(고후 11:12),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며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에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다 해도 큰 일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한다(고후 11:14,15). 모든 열성이 하나님 앞에 선할 수는 없다. 스테판을 죽이고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사울의 열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실상은 가시채를 걷어차면서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행 9:5). 성령의 영감을 강조하며 "성경 중심"의 교육 개혁을 이루려면 말로만 흉내 내지 말고 "바른 성경"을 배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통해, 그들이 추종하는 존 칼빈의 『꾸며 낸 이야기』를 버리고 『건전한 교리』를 가르친다면(딤후 4:3,4),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믿고 섬기는 신실한 일꾼들을 배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