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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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길 포기한 “정치가들”의 시국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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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7월호>

성명(時局聲明)이란, 국가가 당면한 현 상황(위기상황 혹은 비상사태)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낀 일단의 의식 있는 사람들이 한날 한시 정해진 장소에 모여 국가를 대상으로 시위하거나 국가의 의식 전환 및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시국성명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첫째, 시의 적절해야 하고, 둘째, 대의명분이 옳아야 하며, 셋째, 발표자들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들이어야 한다. 아무리 시의 적절하고 명분이 옳다 해도 대변자들이 그 직분이나 위치, 자격에 있어서 적합한 인물들이 아니라면 그것만큼 초라하고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런 성명도 없는 것이다. 자격 없는 자들의 시국성명이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볼썽사나운 일인 것이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의 종이라 자처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고 나선 사람들에게서 보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겠는가? 최근의 국가적인 위기상황에 관하여 정치가들도 아닌 목사란 사람들이 나서서 시국성명을 했다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인가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작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야 할 곳은 교회 내 강단이 아니라 국회의사당 의석인 셈이다. 그들은 차마 목사라 불릴 수 없는 정치가들일 뿐이다. 정계에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있듯이, 교계 내 정치가들 사이에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있어 서로 대립하며 충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합하기도 한다. 특히 진리를 대적할 때면 더욱 그러하다. 실로 그들은 목사이길 포기한 정치가들인 것이다. 최근 시국성명을 발표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 정치가들의 성향은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보수진영에서는 지난 6월 9일 교계 원로목사 33명이 긴급성명을 발표했고, 뒤이어 12일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가 시국성명을 발표함과 동시에 25시간 릴레이 대각성 기도회에 돌입했었다. 이에 질세라 진보진영에서도 6월 16일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자 1,221명이 한자리에 모여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공개서신을 발표했다. 그들은 나름의 정치적인 성향대로 성명서를 발표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라의 위기를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목사의 길을 포기한 “정치가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먼저, 보수진영에서 교계 원로 33인이 내놓은 시국성명을 살펴보자. 그 명단에는 교계 안에 소위 “유명한” 목사들의 이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길자연 목사, 김선도 목사, 김장환 목사, 김준곤 목사, 김홍도 목사, 방지일 목사, 이만신 목사, 이종성 목사, 조용기 목사, 지덕 목사 등. [아래 #으로 시작되는 일련번호는 전문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1. 대통령과 여당은... 상심한 국민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민 통합과 국정 쇄신에 더욱 매진하라.』
시국성명을 발표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목사들이 “매진”해야 할 일이 아니다. 과연 지금이 한가로이 모여 앉아 국정에나 관여할 때인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다음과 같은 일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일과 말씀의 사역에 전념하리라』(행 6:4). 『내가 갈 때까지 읽는 것과 권고하는 것과, 교리에 전념하라... 이 일들을 묵상하고 이 일들에 전념하여 너의 진전이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라. 네 자신과 교리에 주의하고 이 일들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써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딤전 4:13,15,16).

『#2. 야당은... 의정활동을 중단하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안정을 위해 국회로 즉각 복귀하라.』
복귀할 사람들은 원로 목사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들이라면 정치적인 활동을 즉시 중단하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일들로 복귀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가를 우리들에게서 받은 바와 같이 더욱더 넘치게 하라. 이는 우리가 주 예수를 통하여 너희에게 준 명령들이 무엇인지 너희가 앎이니라』(살전 4:1,2).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 예수를 통하여 주어진 명령들이 무엇인지 안다면 국회 의사당 의석에 앉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3. 북한은 민족공멸의 핵 무장과 핵실험 그리고 북한 주민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인권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변개된 성경과 칼빈주의, 은사주의, 기복신앙,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 사회복음 등의 비성경적인 교리들로 가득 찬 영적 위기 속에서, 교인들의 영적 기근조차 제대로 해결해 주지도 못하는 목사들이, 북한 주민의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교인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과연 그러한 걱정이 사도 바울의 염려였겠는가? 『그 외부의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나에게 밀려드는 것은 모든 교회에 관한 염려라』(고후 11:28).

『#4. ... 한미공조 등 한반도 안보강화 방안을 마련하여 국민 불안 해소에 최선을 다하라.』
지금 이들은 그들 교회의 교인들이 구원의 확신이나 재림의 소망 없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당장이라도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 교인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 아니겠는가?

『#5. 최근 국론을 분열시키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을 개탄하며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교계 내에 “분열”을 일으키고, “정체성”을 훼손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성경적 교리에 역행하고 공박하는 그들이며(롬 16:17), 또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을 저버린 그들이 아니겠는가? “각자의 자리에서!” 시국성명을 발표하는 자리는 결코 그들의 자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시국성명이 있은 뒤 한기총에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다짐으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까지 했는데, 그것은 한낱 정치적인 쇼에 불과했다. 대표 엄신형 목사는 “위기상황은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성도들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는 기회”라며 “한국 교회 온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지금의 국가적 위기상황이 극복되는 기적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가 이 “기적을 낳을(?) 기도회”를 가리켜 “쇼”라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율법을 듣는 데서 귀를 돌이키는 자는 그의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리라』(잠 28:9). 『악인의 희생제는 주께 가증한 것이나,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의 기쁨이니라』(잠 15:8).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저버린 자들이 기도로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는가? 그들의 다짐은 “에스더의 다짐”과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

다음으로 진보진영에서 1,221명의 목사들이 내놓은 공개서신을 보자. 그들은 크게 정의, 사랑,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 네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각 항목을 언급함에 있어 몇몇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긴 했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는 구절들을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맞게 끼워 맞추었을 뿐이다. [아래 #으로 시작되는 일련번호는 공개서신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1. ‘정의, 사랑,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을 이 시대에 구현할 하나님의 뜻으로 믿는 우리는...』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런 것들을 이 시대에 구현할 하나님의 뜻으로 명령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2.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십시오(아모스 5:24).』
『그러나 공의는 물같이, 의는 큰 시내같이 흐를지니라』(암 5:24). 본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의는 민주주의 원칙의 준수나 공권력 남용의 자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신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것은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왕국을 세우시고 그분의 통치 가운데 펼치실 공의와 의를 말씀하는 것이며, 오직 그러한 공의만이 찬양받아 마땅한 것이다.

『#3.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십시오(마가복음 12:31).』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웃은 소수 기득권층과 반대되는 경제적 약자,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러한 주장만큼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웃의 개념을 왜곡하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 각자 자기의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이기 때문이라』(엡 4:25).

『#4. 평화의 길을 찾으십시오(누가복음 19:42).』
진정한 평화는 그들의 주장대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고 6.15와 10.4 선언을 충실히 이행한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남북정상이 만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의의 왕이요, 화평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만이 그 일은 이루어진다. 평화의 길을 찾는 이들이 있다면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21).

『#5. 창조세계를 보전하는 청지기가 되십시오(시편 8편).』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전 4:2). 정작 그들 스스로가 신실한 청지기로 발견되지 못했으면서, 창조세계를 보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큼 위선적인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그들은 신실한 목사는 되지 못했으니, 신실한 “정치가”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독자들은 지금 진짜 위기가 무엇인지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위기, 정치적인 대립과 반목, 북핵 위기, 이것은 진짜 위기가 아니다. 목사라 하는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은 뒤로하고 정치, 사회 현안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진짜 위기이며, 또한 그들의 교인들도 그런 목사들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짜 위기인 것이다(렘 5:30,31). 그럼에도 그들이 그들의 “어리석음”을 고집하겠다고 한다면 이제라도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정치가로 입문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만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을 멈추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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