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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교회아카데미의 "이슬람 안전 불감증"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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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2월호>

지난해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단기 선교팀이 피랍을 당한 사건이 있은 후로 한국 기독교에 반이슬람 정서가 널리 퍼져 있는 가운데, 2008년 12월 10일에 "청어람아카데미"와 "바른교회아카데미"라고 하는 단체는 "이슬람포비아, 실체를 진단한다"는 주제의 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은 기독교계의 반이슬람 정서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이슬람교를 경계하고 배척하게 만드는 주장들이 사실무근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개최된 포럼이다.
"포비아"(phobia)는 "공포증"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주최측이 포럼의 주제에 "이슬람포비아"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기독교계에서 이슬람교를 경계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을 늘 크게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고민하며 불안을 느끼고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는 병적 증상"이라고 진단하겠다는 뜻이다.
이 포럼은 중동지역 전문 언론인 김동문 기자의 첫 번째 발제와(제목 : "이슬람포비아의 실체가 있는가?") 연세대학교 김상근 선교학 교수의 논찬, 이슬람 사역자 이현수 선교사의 두 번째 발제와(제목 : "국내 이슬람 이해의 현실과 제안") 장로회신학대학교 한국일 선교학 교수의 논찬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중 전체 주제와 연관되는 핵심 부분은 바로 김동문 기자의 발제와 연세대 김상근 교수의 논찬이었다.

김동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1. 최근 한국 교회 안팎에서 이슬람교와 무슬림(=이슬람교도)에 대한 공포감 또는 혐오감을 조장하는 접근과 시각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정보가 많지 않다.
2. 출입국 인구의 종교 통계는 정부도 알 수 없는데, 일부 이슬람 전문가들은 한국에 들어오는 무슬림들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수치를 밝히고 있다. 또 단지 무슬림이 많은 나라 출신자들을 모두 무슬림 또는 이슬람교 선교사라고 취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3. 피터 하몬드(Peter Hammond)가 CIA 보고서의 종교인구 자료를 활용해서 "이슬람화를 위한 8단계 전략"이라는 개념을 설정한 것을 두고, 마치 CIA 정보 보고서에 "이슬람화를 위한 8단계 전략"이 나오는 것처럼 왜곡되어 퍼지고 있다.
4. 정부와 대학들의 해외 유학생 유치 작업의 결실로 한국 대학들에 아랍 학생들, 이슬람권 유학생들이 조금씩 증가하는 것을 두고, 마치 한국의 "이슬람화"를 위한 전략이 진행중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5. 한국 이슬람 중앙회가 펴낸 "50년사"의 내용 중에, 많은 한국인 남녀가 외국인 무슬림들과 국제결혼을 하고 한국에 정착함으로써 이슬람 가정이 탄생되고 있다고 기록한 것을 두고, 마치 "무슬림 남자들과 한국 여자들의 결혼을 통해 많은 아이들을 낳아 이슬람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오히려 2006년도 통계청 자료의 "이혼현황"에 따르면 이슬람권 출신과의 국제결혼 가정 중 자녀가 아예 없는 경우가 90% 정도다.

그러나 김기자는 이슬람교에 대한 공포감 내지 혐오감을 갖게 만든 이슬람 과격 세력들과 그것을 지지하는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의 관계, 무슬림들이 반인륜적인 각종 내용을 담은 코란의 구절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현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슬람교에 대해 공포감 내지 혐오감을 갖게 만들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점과 그것의 해결책을 언급하지도 않고서, 다만 기독교신문과 인터넷 등에 이슬람 관련 자료를 다소 과장하여 퍼뜨린 사례들을 제시하며 "병적인 공포증"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설득력이 많이 부족했다.

신문과 인터넷 등에 떠도는 자료들의 원래 출처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은 것 때문에 자료의 진정성에 의문을 가져보는 것은 참으로 안전한 생각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자료들이 사실무근임이라고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 출입국 인구의 종교 통계를 파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슬람에 대한 각종 통계수치를 부인하는 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정부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별로 관심 갖지 않는 부문에 대해서도 각종 단체의 조사에 의한 통계 자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가 되려면 무슬림에 대해서는 다른 통계 자료가 나올 여지가 전혀 없음을 밝혀야 하겠지만, 그런 내용은 없었다.
또 개인이 CIA의 통계 자료를 분석한 책에 나오는 "이슬람화를 위한 8단계 전략"이 마치 공식적 기관인 미국 CIA의 보고서에 언급된 것처럼 왜곡되어 퍼지는 것을 지적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저서에 나오는 분석 자체가 신빙성이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증"일 뿐임을 말하려면 CIA의 보고서에 나오는 세계 각국의 무슬림 인구 자료를 가지고 그렇게 분석하는 것이 내용적으로 잘못된 분석임을 설명해야 하겠지만, 역시 그런 설명은 없었다.
한국 대학들에 이슬람권 유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을 과연 무슬림들의 선교 차원에서 볼 것인지 아닌지는 사실 유학생들의 활동 양상을 분석해 보아야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또 유학생들 상당수가 이슬람 종교의 포교에 헌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을 공식적으로 파송한 이슬람 단체가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선교 차원이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 거꾸로 기독교 선교를 하려는 사람들도 공식적으로는 다른 명분으로 외국에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슬람권 출신과 국제결혼한 가정들의 이혼현황을 가지고서 "결혼과 출산을 통한 이슬람화"를 부정한 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이혼한 사례 중 무려 90%가 아예 자녀가 없는 경우라는 사실은 오히려 자녀가 없는 것이 바로 내면적인 이혼 사유였을 가능성을 지지한다. 자녀가 없어 이슬람화가 불가능하니 결혼의 의미가 사라져서 이혼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중동 지역 전문 언론인"은 누군가를 "이슬람교에 대한 공포증"을 지닌 사람으로 올바르게 진단할 수 있을 만큼의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지는 못한 것 같다. 누군가가 어떻게든 이슬람교를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하려고 "편향"되었다면, 이 포럼은 어떻게든 이슬람교를 부정적이 아닌 것으로만 이야기하려고 "편향"되었다는 인상이 든다.

김동문 기자의 뒤를 이어 논찬한 김상근 선교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구속론은 그리스도교 내부적 담론으로 남겨 두고, 신앙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모두 창조하셨다"는 개방적인 논의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대화가 시작되지도 않을 것이다.
2. 이슬람 근본주의 신앙 특히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과격 세력들의 한국 잠입을 막기 위해 황당한 음모론으로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윤리 기준에 역행하는 배타적 태도로 무슬림을 악마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로 남겨 두자는 김교수의 주장은 과연 그가 연세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선교학"의 정체가 무엇일지 의심스럽게 만들고도 남는다. "선교"라는 것이 본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외부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로 남겨 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교제"일 뿐 "선교"가 아니다.

이슬람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정도 이상의 "황당한 음모론"을 펼치며 무엇을 경계한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건전하지 못한 것이지만, 어느 정도 사리 분별력을 가지고서 이슬람교와 그 세력을 경계하는 것은 오히려 아주 건전한 것이다. "이슬람교"의 경전에서 권위있게 선언하는 가르침들이 바로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윤리 기준에 역행하는 배타적 태도" 내지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란은 이렇게 가르친다. 『소동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종교가 모두 알라께로 귀일할 때까지 그들과 싸움을 계속하라』(코란 8:39). 이 싸움은 성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믿음의 선한 싸움』(딤전 6:12), 곧 육신적인 전쟁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닌 싸움(고후 10:4), 예수님께 복종할 수 있도록 생각을 변화시키는 싸움(고후 10:5)이 아니다. 코란에서 말한 그 싸움은 물질적인 무기를 들고 싸우는 육신적인 전쟁이었다. 코란의 그 문맥이 이 사실을 확연히 보여 준다. 그 문맥은 전리품에 대해서, 또 골짜기 기슭에 진을 친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코란 8:41,42).
코란의 가르침을 살펴보라. 『참으로 믿지 않는 자들은 너희들의 적이다』(코란 4:101). 『너희들은 그들(바로 앞 구절에 따르면 "믿음이 없는 자들")에 대해 할 수 있는 한의 군세와 말을 준비하여라. 그것으로 알라의 적과 너희들의 적을 위협해 주어라』(코란 8:60). 『그들을 죽인 것은 너희들이 아니다. 알라께서 죽이신 것이다. 사살한 것은 그대였어도 실은 그대가 사살한 것이 아니다. 알라께서 사살하신 것이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고마운 은총을 경험시키려 하신 것이다』(코란 8:17). 이슬람교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많이 생기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지나친 "음모론"에만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면, 진정한 무슬림들 곧 코란을 실제적으로 믿는 자들에 대한 경계는 "공포증"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이다. 위험한 사상을 가진 이들을 경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안전 불감증"인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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