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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심적인 자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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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0월호>
작년 5월부터 최근까지 1년 3개월 사이에 "양심적 병역 거부" 무죄 판결은 모두 9건이 나왔다고 한다. 재판부는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때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면서, "진지한 양심에 따라 집총을 제외한 국방의 의무 의사는 있다."고 보고 병역 거부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종교 문제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은 2006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5,723명에 달했는데, 이 중 5,686명이 여호와의 증인들이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가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일삼는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다음은 그들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주장을 발췌한 것임].『① 우리는 "하느님"께(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 조물주를 섬기고 있음) 순종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사 2:4). ② 우리는 예수께 순종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제자리에 도로 꽂으십시오. 칼을 잡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입니다"(마 26:52). 이런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전쟁 무기를 들지 않을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어야 한다"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정치 문제에서도 엄정한 중립을 유지합니다(요 17:16). 그들은 군사적 행동에 대해 항의하지 않으며 군 복무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막지도 않습니다. ③ 우리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요 13:34,35). 그러한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그들은 어느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도 형제가 되며, 따라서 다른 나라에 있는 자신의 형제나 자매를 죽이는 전쟁에 결단코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요일 3:10-12). ④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본을 따릅니다. <종교와 전쟁 백과사전>에서는 예수의 초기 제자들이 "전쟁과 군 복무를" 거부했으며, 그러한 행위들을 "예수께서 나타내신 사랑이라는 원칙과 적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기술합니다. 초기 제자들에 관해 독일의 신학자 페터 마인홀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군인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병역 거부에 대한 본질적 이유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착각한다. 이들은 1874년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파수대>, 1881.2, p.188), 무위로 끝나자 "눈에 보이지 않게" 영적으로 재림한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뒤이어 1914년에 재림하시어 아마겟돈 전쟁을 끝내시고 하나님께서 바빌론이라고 부르신 기독교계는 사라질 것이라 주장했지만(<파수대>, 1892.1.15, pp.21-23), 그것도 거짓임이 드러나자 다음으로 잡은 연도가 1918년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들은 재림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오해하기에 세상 나라들을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도하는 "왕국"의 적들로 간주해 버린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기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대한민국도 적국이 되므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우상 숭배라고 여긴 나머지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는다. 이렇듯 사랑이나 평화를 이유로 그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정당화하려 하지만 사실상 핑계에 불과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썩은 양심
여호와의 증인들은 한때 군 복무를 허용한 적이 있다. "성경에서 군 복무를 반대하라는 명령은 없다. 살인 목적이 아니라면 사격은 지극히 옳은 것이다."(<파수대>, 1898.8.1, p.231) "입대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양심에 저촉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파수대>, 1903.4.15, p.120).
그러나 후일 그들은 이런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전적으로 양심의 문제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징집위원회 앞에서 군 입대를 반대하고 세상 국가들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한다."(<파수대>, 1951.2.1, p.73).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은 허용한다. ① 정당방위는 옳다. ② 자신의 가족을 방어해야 한다. ③ 영적인 형제들이나 자매들을 보호하는 것도 옳은 일이다. ④ 때에 따라 폭력을 당하는 이웃에 대해서도 보호할 수 있다. 사실상 이들의 주장은 모순투성이다. 자신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하는 적에 대해서는 정상적으로 방어할 것이지만, "국경"을 무단 침입하는 적에 대해서는 양심을 이유로 수수방관하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군 복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롯을 포로로 잡아간 왕들을 아브라함이 "쳐부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출 20:13) 왜 어겼느냐"고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멜키세덱을 보내시어 그를 축복하게 하셨다(창 14장). 여호수아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수행한 정복 전쟁은 실제 칼에 실제 피를 묻히는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보시기에 정당한 것이라면 그 전쟁을 승인하신다. 그래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전쟁이 아닌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개인에게 주신 명령과 국가에게 주신 말씀을 혼동하고 있다. 침례인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전파했을 때 많은 사람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는 군 복무하는 군인들도 있었다. 『또 병사들도 그와 같이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리이까?"라고 하니,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아무도 억압하지 말고 거짓되이 고소하지 말며 너희의 급료로 만족하라."고 하더라』(눅 3:14). 요한은 그 병사들에게 군대에 들어간 것은 잘못한 일이니 이제라도 탈영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라고 말한 것도 아니다. 그가 "아무도 억압하지 말라"고 한 것은, 전쟁에서 적군과 싸우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고, 당시의 점령군이었던 로마 병사들에게 점령지의 약자인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에게 복수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롬 12:19)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야 하지만, 국가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허락하신(롬 13:1) 국가에 해당하는 말씀을 따라야 한다. 각국 정부를 세우신 목적은 악행에 대해 자국민을 보호하라는 것에 있다(롬 13:3). 이를 위한 방편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도 허락하셨다. 『그는 너에게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라. 이는 그가 헛되이 칼을 가지고 다니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행하는 보응자니라』(롬 13:4). "칼"을 지니는 것은 처형을 목적으로 한다. 즉 누군가의 목을 베는 것이다.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의 목에 밧줄을 거는 것은 허용된 방식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일꾼"이 하는 일이다. 사무엘이 아각을 찍어 죽인 것이나(삼상 15:33)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인 것이(왕상 18:40) 이에 해당한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멸망시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지명하여 그 일을 실행하라고 부르셨다면 그 사람이 그 명령을 실행하는 것은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임무를 지닌 자가 마땅히 죽여야 할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이 죄를 짓는 일이다(왕상 20:42, 신 19:13). 사울이 자신의 왕국을 잃어버린 이유는, 마땅히 진멸시켰어야 할 아말렉인들을 일부 살려 두었기 때문이다(삼상 28:18). 국가의 공권력인 경찰력과 군사력을 올바로 행사하지 않는다면 무슨 방법으로 국민의 생명을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겠는가? 양심적 병역 거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무너뜨리는 악을 행하는 일임을 유념해야 한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1950년에 적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유를 지키고자 치열한 전쟁터에서 흘린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자유는 총을 들고 피를 흘려 싸워 얻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얻은 자유를 지키는 일 또한 총을 들고 피를 흘림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은 살인 행위가 아니며,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적의 공격에 마땅히 방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양심을 이유로 피하기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직무유기의 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양심적 병역 거부를 주장하는 자들은 종교인들이든, 판사들이든, 정치인들이든, 학자들이든 모두 다 가장 파렴치하고 비양심적인 자들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