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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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집”에서 탄생하신 생명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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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12월호>

12월 2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탄생일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9,10월경에 걸쳐 있는 장막절에 오셨는데, 이 점을 알려 줘도 세상 교회들은 여전히 "12월 25일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만 다가오면 세상에는 한 가지 진풍경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빵집 앞에서 한겨울 냉기를 쐬며 층층이 쌓여 있는 "케이크 상자들"이다. 크리스마스 특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빵을 팔아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심산인 것이다. 사람들은 왜 크리스마스에 크림을 잔뜩 바른 빵을 먹는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성경과 전혀 무관한 이 풍습은 업자들의 상술에 놀아난 결과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이 "빵"을 진지하게 숙고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이로운 탄생은 사실상 "빵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죄로 타락한 인류는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창 3:19). 그로부터 4천 년 뒤에 사람이 땀 흘려 수고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빵"께서 오셨는데, 그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신 『생명의 빵』(요 6:35),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께서는 셋째 하늘에서 "베들레헴"이라 불리는 곳으로 오셨다(마 2:1). 그 이름은 "빵의 집"이란 뜻인데, "생명의 빵"께서 "빵의 집"에서 태어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스토리인 것이다. 빵집에서 빵이 태어나듯, 주님께서는 "빵의 집" 베들레헴에서 생명의 빵으로 탄생하셨다. 이 우주적인 사건을 예표한 것이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빵을 비처럼 내려 주신" 만나 사건이었다(출 16:4).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늘에서 생명의 빵을 내려 주신" 사건이므로, 주님께서는 마치 만나가 하늘에서 땅에 내려온 것처럼 "성육신하신 만나"이셨던 것이다(딤전 3:16, 빌 2:6-8). 그런데 "만나"는 "모른다"는 뜻이다. 광야의 이스라엘이 그 빵이 "뭔지 몰라서" 만나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처럼(출 16:15), 구약의 만나가 예표하는 분께서 이 땅에 오신 초림 때에도 유대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더라』(요 1:11).

성육신하신 만나, 곧 그 생명의 빵께서 오신 때는 "장막절"이었다. 이날은 출애굽기 34:22에서 "수확절"로도 불리는데, 이스라엘이 수확한 밀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분명 수확한 "밀을 빻아서" 빵을 만들어 구웠을 것이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께서(요 1:1) 밀이 빻아져 고운 가루가 되는 것과 같은 시험과 고난을 통해 온전케 되시어(레 2:1, 히 2:10) 인류를 위한 생명의 빵이 되시려고 장막절에 빵의 집에 태어나신 것이다. 구약의 음식제사 때 드린 고운 가루는 주님의 흠 없는 온전한 성품을 예표하고, 하나님께서는 밀을 빻는 것과 같은 고난과 시험을 통해 입증된 그 성품을 흠향하셨다.

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인간"으로서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다. 그 첫출발이 광야의 시험이었는데(마 4:1-11), 주님께서 첫 번째로 받으신 시험은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라는 시험이었다. 마귀는 생명의 빵이신 분께 빵을 만들어 보라고 도전했던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 응수하신 말씀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였느니라.』(마 4:4)였다. "신명기 8:3"을 인용하셨던 것이다. 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빵에 비유하고 있고, 육신의 허기를 채우는 빵뿐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인간에게 필요한 "빵"임을 역설하고 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한 소년의 "보리빵" 다섯 덩어리로 여자들과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약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인(마 14:21)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기적은 생명의 빵께서 인류에게 나눠주실 수 있는 생명이 무한정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보리빵" 사건 뒤에 전개된 논쟁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빵』으로 계시하셨고(요 6:33), 그 『생명의 빵』께 나아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6:35).

성경에서 "보리빵"은 기드온이 미디안인들과 치른 전쟁 때 최초로 등장한다. 재판관기 7:13에는 어떤 이방 군인의 꿈에 나타나 미디안 군대의 장막을 무너뜨린 『보리빵 한 덩어리』가 나오는데, 그 보리빵은 동료 군인에 의해 『기드온의 칼』(판 7:14)로 해몽이 된다. 특히 그 전쟁에서 기드온과 함께한 삼백 명의 군사들이 그의 명령에 따라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면서 등불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잡은 나팔을 불며 소리질렀던 말은 『주의 칼이요, 기드온의 칼이라.』였다(판 7:17-20). 『주의 칼』, 곧 『기드온의 칼』은 그 꿈의 해석에 따라 『보리빵 한 덩어리』인 셈인데, 여기에서 "칼"과 "빵"이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칼이자(엡 6:17, 히 4:12) 빵인 것이다(신 8:3). 주님께서는 흰 말을 타고 재림하시어 2억 명의 UN 군대와 싸우실 때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칼"로 그들을 치실 것인데(계 19:15), 그때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칼은 초림 때 "빵"에 비유되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다(마 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민족들은 그분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다(렘 10:10, cf. 요일 5:20). 기드온의 전쟁이 바로 그 주님의 재림을 예표하는 것이다(사 9:4,5). 이렇듯 빵과 칼과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말씀"에 관한 진리를 놓친다면, 이 말씀에 관한 다른 많은 진리도 놓치게 된다.

"보리빵"은 가난한 자들의 빵이었다. 보리는 맛이 없어서 말 사료로 사용될 정도로 천대받는 곡식이었다. 주님께서는 그 보리빵 다섯 덩어리로 오천 명이 훨씬 웃도는 사람들을, 그들이 누가 되었든지 모두 먹고 배부르게 하셨으며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하셨다. 빵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열린 책이다. 성경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생명의 보리빵이다. 성경은 누구에게나 "무한정" 공급될 수 있는 생명의 보리빵이다. 그런데 초림 때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이 기적을 "선지자 엘리사의 보리빵 기적"이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바알살리사로부터 왔는데 첫열매들로 만든 빵, 즉 보리빵 이십 덩이 와 껍질을 까지 않은 잘 익은 곡식의 이삭들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말하기를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더라. 그러자 그의 사환이 말하기를 "무슨 말씀이니이까! 내가 이것을 일백 명 앞에 차려 놓으리이까?" 하니 엘리사가 다시 말하기를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로 먹게 하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먹고 남기리라.' 하시느니라." 하더라. 그리하여 그가 그것을 그들 앞에 차려 놓으니 주의 말씀과 같이 그들이 먹고 남겼더라 』(왕하 4:42-44).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도 엘리사의 사환처럼 『여기 한 소년이 보리빵 다섯 덩어리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나이까?』(요 6:9)라고 질문하면서 의심했지만, 주님께서는 엘리사처럼 보리빵을 나눠 주게 하셨고, 주님 앞에 있던 무리들도 먹고 남기게 되었다(요 6:13).

한번은 생명의 빵께서 투로와 시돈의 경계, 곧 이방인들의 땅에 접근하셨을 때 수로페니키아 여인이 찾아와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주님께 간청한 일이 있었다. 주님께서는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하느니라. 그 자녀들의 빵을 가져다가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도다.』(막 7:27)라고 말씀하시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는데, 여인은 『그러하옵니다, 주님, 그러나 식탁 밑의 개들도 자녀들이 버린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 7:28)라고 대답함으로써 마귀 들린 딸을 치유받게 할 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줄 빵"을 언급하셨고, 여인은 "자녀들이 버린 빵 부스러기"를 이야기했던 것인데, 우리는 여기에서 왕국의 자녀들에게 버림받게 될 "생명의 빵"과, 그 빵이 유대인들이 개 취급하던 "이방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읽게 된다.

자기 백성에게 버림을 당하신 생명의 빵은 결국 "쪼개진 빵"이 되셨다. 주님께서는 공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며 주의 만찬을 제정해 주시던 자리에서 빵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라고 하셨다(고전 11:23,24).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려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찢겨진 생명의 빵"이 되셨던 것이다! 그 찢겨진 빵이 우리 각인에게 주어졌을 때, 그 생명을 나눠 받은 우리가 생명의 빵이신 분과 한 몸이 되어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다.

찢겨진 생명의 빵께서는 그 뒤 부활의 몸으로 회복되어 셋째 하늘로 올라가셨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의 빵께서 "옛 곡식"의 위치로 돌아가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마친 후 "죽음의 강"으로 예표되는 요단 강으로 들어가서 "죽고" 그 강에서 나와 "부활"했을 때(수 3:14-17), 그들이 부활하여 들어간 새 땅은 성도가 죽음 이후에 들어가는 "셋째 하늘"을 예표한다. 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그 땅의 "옛 곡식"을 먹기 시작했는데(수 5:11,12), 새 땅의 옛 곡식은 셋째 하늘의 "옛 곡식"이신 "예로부터 계신 분"(미 5:2),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주님께서는 생명의 빵으로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그 빵이 되시기 이전의 곡식 상태, 곧 "옛 곡식"의 상태로(계 1:13-16) 복귀하신 것이다. 그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이제 곧 이 땅으로 다시 오실 때에는 생명의 빵이 아닌 『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로 오실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 위대하신 왕께 짓밟혀 그 피가 말고삐까지 차오르게 될 "요한계시록의 창녀, 곧 로마카톨릭"의 명절인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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