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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리저리 달리는 마지막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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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8월호>

『그러나, 오 너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그 말씀을 닫고 그 책을 봉하라.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릴 것이요 지식이 증가하리라." 하더라』(단 12:4).

『사람이 이리저리 달릴 것이요』라는 말씀은 "탈것," 곧 차량과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선지자 나훔은 『그의 용사들의 방패가 붉게 되었고 용사들은 주홍색이 되었으며 병거들은 그의 예비의 날에 불타는 횃불과 함께 있을 것이며 전나무들은 몹시 흔들릴 것이라. 병거들은 거리에서 사납게 달리며 넓은 길에서 이리저리 헤치며 가리라. 그들은 횃불같이 보일 것이요, 그들은 번개같이 달리리라.』(나 2:3,4)라고 예언하면서, "병거들이 거리에서 사납게 달리고 넓은 길에서 이리저리 헤치며 다니는 모습"으로 좀 더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나훔 1:11-3:11이 적그리스도의 멸망과 아마겟돈 전쟁의 상황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에, "횃불같이 보이는 병거들"은 기본적으로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하는 전차나 장갑차 같은 "기계화된 보병 전투 차량"에 관한 언급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 마지막 때에 등장한 "일반 차량"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로써 우리는 다니엘과 나훔의 예언을 통해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현상의 또 하나의 일면을 확인하게 된다.

유엔 경제사회국(DESA)은 『2018 세계 도시화 전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전 세계 도시 인구 비율이 현재 55%에서 2050년에는 68%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 전망대로라면 향후 30년 안에 약 25억 명의 인구가 도시로 이동함으로써 세계 인구 10명 중 7명이 도시에 살게 된다. 아울러 1천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메가시티"(megacity) 또한 현재 31곳에서 2030년에 이르면 최대 43곳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3,700만 명이 거주하는 일본의 도쿄이고, 인도의 뉴델리가 2,900만 명, 중국의 상하이가 2,600만 명 그리고 브라질의 상파울루와 멕시코의 멕시코시티가 각각 2,200만 명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과거 도보로만 이동이 가능했던 시절에는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08년 미국의 헨리 포드가 "포드 모델 T"라는 차량을 대량 생산하여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달릴 수 있게 됨으로써 도시의 인구수는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차량의 원활한 이동을 위한 고속도로 등과 같은 인프라가 대거 확충되었는데,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도시로, 도시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물론 도시의 확장이 무분별하게 가속화되고, "스프롤 현상"(sprawl phenomena)이라고 해서 인구 공동화 현상에 따른 도심의 쇠퇴나 도심의 기능에 버금가는 변방 도시의 출현과 같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도시에서의 삶을 예찬하거나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여러 대안들을 제시하고, "스마트 시티"(smart city)와 같은 새로운 도시 계획안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인간들끼리 연합하여 이룬 도시들이 남긴 열매는 항상 부정적이었다. 욥기 24:12에서는 사람들이 신음하는 소리가 "성읍"(city)에서 나온다고 말씀한다. 그 이유를 이어지는 14,15절에서 설명해 주고 있는데, 곧 그 성읍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과 간음과 강도질과 같은 죄악들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도시들은 겉으로는 으리으리해 보여도 그 안에는 더러운 죄악들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류 최초의 도시 역시 자신의 동생을 죽인 살인자 카인이 세웠다(창 4:17). 카인이 사람들을 모아서 "에녹"이라는 이름의 도시를 세운 것은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라."(창 1:28)라는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연합을 하도록 부추기는 행동이었다. 심지어 카인이 세운 도시에서는 목축업과 음악, 놋이나 철 같은 금속을 다루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등 여러 문명적인 요소들도 나타났다(창 4:18-22). 결국 도시의 이런 부정적인 모습들은, 훗날 창세기 11장에서 시날 땅에 성읍과 탑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했던 바벨탑 사건으로 이어졌다. 당시 시날 땅에 모인 사람들은 카인처럼 흩어지지 않기 위해 성읍을 건설했고, 또한 하나님 없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늘에 오르기 위해 탑을 세웠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으며,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란케 하시자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지고 말았다(창 11:8,9).

이렇게 카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인간들의 연합과 우상 숭배로 점철된 도시의 역사는 이후 시날 땅을 차지한 앗시리아의 니느웨 성읍을 거쳐 로마카톨릭의 큰 바빌론으로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나훔서와 요한계시록을 비교해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특히 나훔 2:1-8에서는 앗시리아 왕과 바빌론 왕을 동일시하고 있고(겔 31:3, 스 6:22), 또한 이 둘을 적그리스도와 똑같게 보고 있다(사 7:20,23,24; 10:5, 렘 50:17). 나훔 3:1의 『피흘리는 성읍』은 역사적으로는 니느웨 성읍에 해당되지만, 교리적으로는 성도들의 피에 취해 있고(계 17:6) 모든 사람의 피가 그 안에 보이는(계 18:24) 큰 바빌론에 적용된다. 니느웨 성읍은 바빌론의 완벽한 쌍둥이 자매로서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 17:5)이고, 『가증스런 것들과... 더러운 것들로』(계 17:4) 가득 차 있는 도시다. 이처럼 나훔서는 재림 때 일어날 여러 가지 일들을 보여 주면서 니느웨 성읍을 요한계시록 17장의 창녀인 큰 바빌론 도성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니느웨 성읍은 나훔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하지만, 바빌론 왕조는 키쉬, 라가쉬, 에렉, 악캇, 우르 등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역사 속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갔다. 바빌론의 종교 또한 역사의 흐름을 따라 계속 이어져 내려가 콘스탄틴 치하의 로마 감독들에게로 계승되었는데(계 2:12-17), 이러한 사실은 알렉산더 히슬롭이 쓴 <두 개의 바빌론>이라는 책에 잘 제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는 환란 시대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왕국의 종교 역시 옛 바빌론의 종교가 될 것이기 때문에(계 14:8; 17:3), 마지막 때의 인간들은 로마카톨릭이라는 창녀의 품으로 들어가 그들끼리 연합하여 세력과 힘을 규합시키기 위해, 다니엘 12:4의 말씀대로 이리저리 달리면서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게 될 것이다.

죄악이 만연한, 인간들이 세운 도시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의와 신실함과 기쁨이 넘치는 완벽한 도시 계획을 갖고 계신다. 바로 천년왕국 때 유대인들을 위해 세우실 "지상의 예루살렘 도성(city)"과 영원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늘에 두실 "새 예루살렘 도성(city)"이 그러하다. 이 두 도시에 관한 내용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히브리서 11:8-16에 잘 제시되어 있다.

먼저 히브리서 11:8-10에서는 천년왕국의 수도인 "지상의 예루살렘 도성"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장차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떠나가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떠났으며 믿음으로 그는 타국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기거하여 그와 함께 그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들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느니라.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성을 기다렸음이니 그것을 세우시고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기다렸던 것은 이 땅에 있을 실제적인 도성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어 천년왕국을 수립하시고 다윗의 보좌에 앉아 철권통치를 하실 때, 아브라함의 씨, 곧 유대인들을 위해 이스라엘 땅에 세우실 "예루살렘 도성"이다(사 65:18,19, 겔 48:35, 슼 14:21). 이때 그 도성의 이름은 "여호와 샴마," 곧 『주께서 거기 계시다.』(겔 48:35)가 될 것이다. 에스겔 40-48장에서는 이 도성과 천년왕국 성전의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이 히브리서 11:8-10에서 아브라함이 기다린 실제적인 도성을 영적으로 해석해 버림으로써 장차 이 땅에 세워질 예루살렘 도성에 관한 예언을 가려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히브리서 11:10에서 볼 수 있듯이, 아브라함은 기초들이 있는 "실제적인" 한 도성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난 것이지 어떤 "영적인 것들"을 기대하고 떠난 것이 아니다. 만일 영적인 것들을 기대했다면 굳이 고향을 떠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관한 도시 계획도 갖고 계신다. 『이는 이런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 것임이라. 만일 그들이 실로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제 그들이 사모하는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셨음이라』(히 11:14-16). 앞서 언급한 히브리서 11:10의 도성은 이 땅에 세워질 실제적인 도성을 가리키지만, 이곳 14절부터는 문맥이 분리되면서 『이 땅 위에서 타국인이요 순례자라고』(히 10:13) 고백하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또 하나의 도성, 곧 하늘에서 내려올 새 예루살렘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계 3:12; 21:2,10).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이 되어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영적인 약속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에(갈 3:29), 하늘에 있는 도성이자 더 좋은 본향인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마련된 도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의 구조와 규모, 도성과 도성 바닥의 재질, 광원 등 이 도성의 모습에 관하여 요한계시록 21,22장에 자세하게 기록하셔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해 주셨고, 이 마지막 때에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 들어갈 날을 고대하고 소망하며 살게 해 주셨다.

하버드대학교의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그의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는 전쟁을 벌이고, 정부는 시민들을 학살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많은 곳이 여전히 가난하고, 부유한 국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덜 행복하며, 모든 사람들이 처한 환경은 위험에 빠져 있다. 이러한 도전들에 맞서기 위해서 인류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결집해야 하며, 그 힘은 혼잡한 도시 지역에 서로 연결되어 있는 좁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 이처럼 사람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서로 연합하고 힘을 합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리저리 달리는 가운데 도시로 모여들고 있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죄로 인한 온갖 신음 소리와 쓰레기, 다툼, 거짓 종교 등만이 넘쳐 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도시 계획에 관하여 성경에 이미 선포해 놓으셨다. 그렇기에 인류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참된 도성인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늘의 시민권"(빌 3:20)을 취득해야 한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리저리 달리면서 도시로 모여드는, 이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죄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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