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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와 성경에 경악한 KN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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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10월호>
사형제도와 성경에 경악한 KNCC최근 사회 전반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신학연구위원회는 최근 세미나를 개최하고는, 성경에 입각하여 사형제도 존립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사회 전반의 상황을 보자면, 금번 17대 국회에서 국회 여야 의원 절대다수인 182명이 사형폐지 법안에 서명한 상태이고, 이 법안이 법제 사법위에 계류 중에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4월에 사형제 폐지 의견을 공식 입장으로 발표했고, 현재 118개 국가가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의 자격으로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고, 국제연합(UN)은 모든 회원국에 사형제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회 전반의 입맛에 맞지 않은 주장을 폄으로써 많은 질타를 당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고 성경에 권위를 두고 대다수가 성경에 근거하여 올바르게 판단을 내린 이번 한기총의 세미나는 칭찬할 만한 일이다. 이에 한기총 세미나에서 발언한 목사들과 교수들이 사형제도의 존립을 지지하면서 제시한 근거들을 여기에 제시해 본다.
∙ 최성규 목사(한기총 대표회장) :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된다는 말은 내가 아는 한 성경에 없다.”
∙ 이종윤 목사(한기총 신학연구위원장) : “(사형제 폐지는) 반드시 죽어야 할 죄에 대해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거역이다... 전쟁이나 합법적인 사형제도는 인권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살인과는 다른 것이다.”
∙ 이승구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 “왜 하나님께서는 살인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극형을 명령하신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손상시킨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킨 것으로 보시는 것이다...”
이외에도 정일웅 교수(총신대학교)는 “사형은 제도적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소리... 이는 살해당한 자의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주장이다.”라는 논리를,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20세기 전반기까지... 교회들은 사형제도를 인정해왔다. 20세기 후반기에 와서는...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 시대의 사형제도 폐지론의 영향이라고 보여진다.”라는 교회사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세미나에서도 사형제도를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성경을 근거로 하여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일’에 대해서 좀 회의적으로 말하는 의견들은 있었다. 다음은 그처럼 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발표자들의 의견이다.
∙ 김정우 교수(총신대학교) : “이 모든 사형과 관련한 성경 본문들은 사형제를 찬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약의 법을 세속의 문화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구약의 법은 신정정치 하에서 이스라엘 나라에 주어진 것이며 그 정확한 ‘삶의 정황’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구약의 사형제도’에 있어서 그 역사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성경은 사형제도의 존치를 주장하는 증거를 더 무게 있게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적인 문헌’으로서 성경을 ‘일반 세속 사회의 법’에 직접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극도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사형제를 비롯한 인간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보응의 법칙’과 ‘사랑의 법칙’이라는 양면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창조의 질서로서 ‘보응의 법칙’을 주셨다. 그러나 ‘보응의 법칙’이 철칙은 아니다. 인류는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닮아 ‘사랑의 법’으로까지 자라가야 한다.”
∙ 이은애 교수(이화여자대학교) : “신약 시대에 와서 유대의 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한 음행한 여인의 경우 예수도 그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돌려보낸 것은 오히려 그에 대한 용서와 사랑이 강조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교수의 견해는 수긍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부정확한 부분들이 있다.
1. “구약의 법은 신정정치 하에서 이스라엘 나라에 주어진 것”이라는 발언은 사형제도에 관해서는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사형 원칙은 신정정치 하의 이스라엘에게만 한정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태어나기도 전,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셈, 함, 야펫, 곧 현재의 모든 인종, 모든 민족들의 조상들에게 『사람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자기의 피도 흘려지게 되리니, 이는 주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라.』(창 9:6)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죽인 범죄자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알아서 없애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죽이시겠다고 했다. 곧 하나님께서 살인자를 처단하는 어떤 보응자를 인정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교회 시대의 교리를 가르치신 신약성경에서도 바로 하나님께서 그런 보응자를 세워 두셨음을 발견하게 된다(롬 13:4).
2. “성경은 사형제를 비롯한 인간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보응의 법칙’과 ‘사랑의 법칙’이라는 양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발언 역시 부적절하다. ‘인간사회’라는 말로 개인의 일상사와 국가 제도를 뭉뚱그려 말했다면 그 문장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겠으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일상사가 아니라 사형제 등 국가 제도에 관한 문제이므로 그 발언은 부적절하다. 성경은 국가 제도에 ‘사랑의 법칙’을 적용하여 국가의 법을 어긴 범법자를 용서해 주라고 말한 곳이 없다. 성경에서 ‘사랑의 법칙’을 적용하는 곳은 인간사회, 국가 제도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 개개인의 일상사’에서다.
3. “보응의 법칙이 철칙은 아니다. 인류는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닮아 사랑의 법으로까지 자라가야 한다.”는 발언 역시 부적절하기 그지없다.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닮아 사랑의 법으로까지 자라가는” 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죄의 종들이요 마귀의 자녀인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사회의 제도에 적용되는 말이 아닌 것이다.
4. “유대의 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한 음행한 여인의 경우”를 예로 든 것도 부적절하다. (이것은 요한복음 8:1-11에 나오는 그 유명한 이야기, 곧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죽여야 하는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시어 그들을 다 물러가게 하신 후,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 가라,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여 보내신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언급한 것이 부적절한 까닭은 이 일화는 사형제도 폐지와 전혀 무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국가의 법을 다루는 사람들, 곧 “위에 있는 권세자들”(롬 13:1)에게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 왔던 그 바리새인들은 일개 종교 지도자에 불과했다. 그 당시 “위에 있는 권세자”는 로마 제국에 속한 통치자들이었고(요 19:11),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누군가를 사형에 처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요 18: 31).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결코 사형제도와 관련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그 상황은 결코 범법자가 “국가의 법정”에 선 상황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그 상황은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선 상황을 예시로 보여 주는 것으로서, 우리가 아무리 죄인이라도 우리의 죄값을 치러 주신 분이 우리를 위해 변호하실 때 아무도 우리에게 혐의를 씌우거나 우리를 정죄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롬 8:33,34).
어쨌든, 한기총 신학연구위원회의 세미나에서는 일부 성경을 약간 잘못 적용한 부분들이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발언자들이 성경에서 크게 빗나가거나 성경을 왜곡하여 완전히 반대된 주장을 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한기총의 이 같은 세미나 결과에 대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성서적이라기보다는 한마디로 궤변이 아닐 수 없다.”라고 하며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성경을 근거로” 사형제도 폐지론의 주장을 펴 놓았다. 과연 누가 궤변을 펴는지 한번 살펴보자(인용된 부분은 KNCC 백도웅 총무가 발표한 성명서에 있는 내용이다).
1. KNCC는 “소위, 극악무도한 흉악범의 생명이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존엄, 즉 생명권은 박탈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라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이용하여 완전히 성경과 반대된 주장을 폈다. 『사람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자기의 피도 흘려지게 되리니, 이는 주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라』(창 9:6).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을 죽였기에 살인자를 죽여야 한다, 곧 생명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적용해 주는 대상은 “살인자”가 아니라 “피살자”다. 그런데 KNCC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꾸로 뒤집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피살자”가 아니라 “살인자”에게 적용해 주고는 “살인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으니 사형시켜서는 안 된다”고 완전히 성경과 반대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한 적이 없다.
2. KNCC는 “성서에서 사형, 즉 죽임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사형’의 주요 핵심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간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인간은 온갖 부정과 부패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런 모양으로 사는 자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사형)는 하나님의 법을 잘 알면서도...’(공동번역 로마서 1장 29절-32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법에 나타난 사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이 ‘사형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적용한다면 모두가 사형 선고를 당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말한 사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간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것이지,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KNCC는 여기서 사형제도에 관한 성경 구절들은 모두 배제해 놓고, 사형제도에 관한 것이 아닌 성경 구절을 제시하고 말았다. 로마서 1:29-32에 있는 죄목들은 국가의 사형제도에서 말하는 죄목들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 “교만,” “부모를 거역하는 것,” “무정한 것,” “화해하지 않는 것” 등의 죄목도 있다. 국가에서는 다루지 않거나 다룰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죄인 것들까지도 다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국가의 사형제도가 아니라 미래의 한 날, 큰 백보좌 앞에서 이루어지는(계 20:11-15)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 마땅히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씀한 로마서 1:32의 문맥이 과연 어떤 것인지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2:2,3,5,12,16의 내용을 읽어 보면 오해할 수 없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판... 진노의 날... 멸망할 것이요』 등의 표현이 계속되며, 문맥의 마지막 2:16에는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있으리라.』고 분명히 로마서 1:32에서 말한 바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그 죽음은 국가의 사형제도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큰 백보좌 심판에서 불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을 언급한 것이다(계 20:14,15; 21:8).
3. KNCC는 또 “그러하지만 이와 같은 인간의 죄성, 타락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인간에 의한, 국가제도에 의한 사형)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받았다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가 아닌가.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형을 인정했으니 사형 폐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교회 기관에서 발표하니 이것이 어찌 궤변이 아닐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들은 불분명한 논리를 사용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 말은 (1) “사형당해야 마땅했던 구원받은 사람이 사형제도를 옹호해서” 궤변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2) “사형당해야 하는 인류가 십자가로 이미 구원받았는데 다시 지난일인 사형제도를 주장해서” 궤변이라는 것인가, 또 아니면 (3) “예수님이 사형제도에 의해 피해당하셨는데, 교회가 사형제도를 옹호해서” 궤변이라는 것인가?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어느 쪽이든 그들의 의견이야말로 궤변이며 비성경적이다. (1),(2)의 경우는 로마서 1:32의 죽음이 사형제도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한 결과이므로 그 자체가 이미 틀린 주장이지만, 그 오해를 받아들여 준다 해도 (1)의 경우라면 그 논리 자체가 궤변이다. “하나님의 법으로 처리되지 않고 용서되어 구출되었으니 하나님의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어찌 올바른 주장이겠는가? (2)의 경우라면 인류가 이미 구원받았다는 해괴한 논리이므로 역시 완전히 비성경적이다. (3)의 경우라면 그런 식의 논리로는 예수님이 “위에 있는 권세”에 의해 피해당하셨으므로, 교회는 “위에 있는 권세”를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는 어설프고 비성경적일 뿐이다.
요컨대, KNCC의 주장은 단 하나도 성경에 입각하지 않았으면서도 그들은 한기총 신학연구위원회의 세미나의 성경적 판단들에 대해 경악했다. 한마디로 KNCC는 성경 말씀에 경악한 것이다. 사형제도 폐지론을 주장하고 싶으면, 그냥 주장했으면 한다. 성경을 믿지도 않으면서 왜 성경을 들먹이며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실 때 순수하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개인의 신앙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의 각종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느 방향이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인지를 가장 잘 아시며, 또 인간이 시행하는 모든 결정의 결과를 미리 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문제를 판단하고자 할 때에는 성경에 나온 그분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