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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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성추행한 전병욱의 파렴치한 교회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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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08월호>

자신이 담임하던 삼일교회의 여자 교인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뒤에도 버젓이 목회에 복귀하여 교회를 개척한 “전병욱” 목사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 목사의 행위는 우연한 실수나 단순한 안마행위가 아니라 위력과 위계에 의한 심각한 수준의 성범죄였으며, 피해자가 다수라는 면에서 그 상습성과 반복성이 충격적인 성범죄임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 교회 목회자의 타락과 윤리실종의 대표적 모습이라며 교회개척 중단이 요구되고 있는 것인데, 문제는 “교회개척이 중단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교단 교회들로 구성된 한국 교회가 교단의 허락 없이는 범죄자의 파렴치한 행각을 중단시킬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실례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렇듯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전 목사 교회개척 사건의 본질을 세 가지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성추행에 대해 거짓말을 한 전 목사에 관해서이다. 그의 “거짓말”은 그의 기원이 “거짓말의 아비”인 마귀라는 첫 번째 증거가 된다.
전 목사는 사건이 터지자 자신은 “성추행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추행 사실이 밝혀지면서 꼬리를 내리고 사임했다. 13억이라는 전별금을 챙기면서! 한마디로 그는 돈을 밝히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목사라는 자의 거짓말이 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인가?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 목사는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에 대해 가르쳐 왔고, 다수의 책들을 썼으며, 특히 한국 교회 청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먹고살아 온 그의 입에서 나온 “거짓말”은 그 동안 감춰 온 위선을 드러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진리가 자기 안에 없었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워 온 철저한 “위선자”인 것이다. 이 『십자가의 원수』(빌 3:18)는 거짓말을 통해 자기 “아비”가 “마귀”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누구라도 그의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자기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요 8:44). 전 목사의 거짓말은 단순히 거짓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거듭나지 않은 마귀의 자식으로서 교단신학교를 나와 목사 안수를 받고 교인들을 속이며 목회 아닌 목회를 해온 것이다.
전 목사의 “음란함”은 그의 기원이 마귀라는 두 번째 증거이다. 마귀는 “음행의 영”이다. 『이는 음행의 영이 그들로 잘못 행하게 하였으며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의 보호를 떠나 행음하러 갔음이라... 그러므로 너희 딸들은 행음할 것이며, 너희 아내들은 간음하리로다』(호 4:12-13). 한국 교회의 소위 “스타 목사”인 전 목사는 음행의 영인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이다. 그래서 여교인들을 자신의 성노리개로 취급하며 성적 만족을 추구했고, 피해 교인들에게는 성적 수치심과, 신앙에 대한 환멸과 충격을 야기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종인지 생각해 보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인지 생각해 보라(롬 8:14). 실로 마귀의 자식이 아닌가! 음행의 영에 사로잡혀 악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모든 상상이 음란함으로 뻗치게 된다(마 5:28). 성에 중독된 그의 목양실은 아무도 보지 않는 음행의 처소가 된다. 이것이 마귀에게 관장된 목사라는 자의 현실이다. 거듭나지 않은 그에게 이것은 치유될 수 없는 악이다. 이런 자가 다시 목회를 하겠다고 교회를 개척하고 나섰으니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평소에 저 잘났다고 떠들어대던 목사들 가운데 그의 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적하고 한국 교회에 회개를 촉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다룰 줄 모르는 영적 노숙자들이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죄를 징벌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악령의 소굴이다. 그런 곳에 『말씀』(요 1:1)이신 예수님이 계실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계 3:20).

그렇다면 전 목사가 소속된 예장합동 교단은 어떠한가? 전 목사는 후안무치하게도 13억 원이라는 퇴직금을 받아 챙겼고, 그 중 1억은 그의 “성도착증 치료비” 명목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런 말이 부끄럽지도 않았는가? “양심에 화인을 맞은” 철면피 중의 철면피로서, 별 건수를 다 만들어 거액을 챙겨간 그는 그 말 그대로 치료받아야 할 환자로 분류되는 “성적(性的) 정신장애인”이다. 그러한 그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평양노회는 노회원인 그를 징계하지 않았고, 그가 개척한 홍대새교회로 인한 논란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양노회는 성범죄자가 목회해선 안 된다는 삼일교회 교인들의 “전병욱 목사 면직 청원”을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접수조차 거절했다. 면직 청원서에 첨부된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전 목사의 추행은 “강간 미수” 수준으로 추행 정도가 심각했고, 여교인 다수에게 상습적으로 더러운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어떤 피해자는 성추행을 당한 뒤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의 교단은 여교인들을 성추행한, 실로 목사도 아닌 자가 새 교회를 개척하는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제재하지 않으면 동조하는 것이다! 전 목사의 행각은 지하철 성추행범, 강간미수범이 교회를 차리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그런 그를 방치하는 곳이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란 말인가? 이것이 교단헌법을 성경보다 우위에 둔 교단 교회들의 실상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전혀 없다. 목사는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탐욕스럽지 아니하고... 외부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할지니』(딤전 3:2-3,7)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전 목사는 목사로서 무자격자이다. 그럼에도 그의 교단은 이런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전병욱”이라는 성도착증 환자가 두려운 것인지 그에게 손대기를 꺼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들도 성적 범죄를 저질러서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네가 교훈을 싫어하고 내 말을 네 뒤에 던지는도다. 네가 도둑을 보면 그와 동조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는 속임수를 발하는도다... 네가 이런 일들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전적으로 너와 같은 자인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겠고 그것들을 네 눈 앞에 정연하게 두리라』(시 50:17-19,21).
이제 전 목사의 교회개척에 일조한 교인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목사가 죄를 범해도 따라주는 추종자들이 있기에 그가 그들을 방패막이 삼아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전 목사가 강단에서 전한 설교에 취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판단력마저도 상실해 버렸다. 그들을 영적 뇌사자들로 만들어 버린 전 목사의 설교는 다음의 성경 말씀이 그 실체를 드러내 주신다. 『실로 마법이 없으면 뱀은 물 것이요, 말쟁이도 이보다 낫지 못하니라. 현명한 사람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자신을 삼키리니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어리석음이요 그의 이야기의 끝은 사악한 광기니라』(전 10:11-13). 성령으로 통제되지 않은 전 목사의 말들은 그의 회중들을 뱀처럼 물어 독이 스며들게 했다. 그가 강단에서 했던 이야기들의 끝은 상습 성범죄라는 “사악한 광기”로 드러났다. 그의 광기에 동조한 자들은 한마디로 뱀처럼 무는 설교의 독에 판단력이 마비되어 그 사악한 광기에 삼켜져 버린 것이다. 어리석은 말쟁이가 강단에서 쏟아낸 말들로 안 그래도 마비된 양심이 더러워져 똑같은 위선자들이 되어 버렸고, 그래서 선악을 분별 못하고 그를 옳다 하며 따라나선 것이다. 그들은 “전 목사에 대한 관용”과 “교회개척에의 열의”와 “순수한 참여”라는 말들로 자신들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치장했지만, 그것은 그 죄인을 용인하고 그의 불장난에 땔감을 제공하는 공범들의 헛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전 교회의 성추행 피해자들과 신앙적으로 동거동락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요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의 위선자들(제사장, 레위인)처럼, 전 목사에게 피해를 입고 쓰러져 있는 피해자들을 슬금슬금 피해서 교회를 떠나 버렸다. “강도를 만난 사람들의 이웃”(눅 10:36)이기를 거부하고 “강도”를 따라 홍대새교회로 떠나 버린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성추행 피해자들을 역으로 정죄해 버린 것과 같다 하겠다. 전 목사를 정신과적 치료를 요하는 성도착증 환자로 만든 원인 제공자들이 바로 그 피해자들이라고 암묵적으로 시위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 범죄자가 다시 강단에 설 수 있도록 스스로 발판이 되어 주고 있다. 한마디로 ‘사뿐히 즈려밟고 강단에 다시 올라가시옵소서!’이다. 전 목사를 옹호하는 자들은 심지어 전 목사를 비난할 게 아니라 그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도와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길래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그들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 마땅히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도 이 같은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좋게 여기느니라』(롬 1:32).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중독된 인본주의적 기독교이다. 그들의 메스꺼운 신앙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부정하고 죄인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만 외치고 지옥의 심판을 부인하는 “무지옥주의적 인본주의”이다. 지옥은 하나님을 그렇게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자들을 벌주기 위해 무섭게 타오르고 있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전 목사에게는 그가 지은 <자신감>(규장, 2006)이란 책이 있다. 책의 프롤로그에 이런 내용이 있다.『나는 약하나 내가 믿는 하나님은 강하시다.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은 여유와 함께 자신감을 준다. 그 어떤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신앙의 담력이 생긴다(두려움은 불신앙의 증거이다).』전 목사는 “성범죄한 죄인”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주변의 반대와 원성에도 불구하고 “여유만만,” “자신만만”하게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것인가? 자신에게 “믿음”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 “신앙의 담력”으로, 뻔뻔스럽게, 두려움도 없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인가? “자신감”이 전 목사의 사역을 대변하는 말이라면, 하나님을 두려워 않는 『네가 신뢰하는 이 자신감이 무엇이냐?』(사 36:4)
한국 교회의 한 위선자가 부러진 갈대 지팡이와 같은 헛된 자신감을 신뢰하고 있다. 이 자신감은 그가 죄를 짓고도 버젓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한국 교회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그들은 전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왕성한 교회라는 허영에 빠져 있고, 자기들이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들려오는 소식은 안타깝게도 지옥이 확장되는 소식들뿐이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지옥은 스스로를 확장하였고 한없이 입을 벌렸으니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허영과 기뻐하는 자가 그곳으로 내려가리라』(사 5:14).
한국 교회는 지옥의 자식들을 양산하는 교회가 세상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는가? “성도착증 환자의 교회개척”을 계기로 그 이유를 속 시원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그 잘난 “한국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가슴이 확 뚫리게 밝혀줄 수 있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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