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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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 대한 무지 1 - 선교에 대한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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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0월호>

선교(Mission)란 성경에 없는 용어인데도 세상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선교라 부른다. 그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들은 해외로 자격 있는 일꾼들을 파송한다. 로마서 10장은 복음 전파의 장이기에 선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유념해야 할 기본 교과서이다. 언제부터인가 선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 선교사란 명칭을 달고 해외에 나가 갖은 추태를 부려 볼썽사납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이슬람권에서 선교한다며 어설픈 짓을 하다가 추방당한 사례들이 늘자 정부에서는 출국 금지, 여권 반납 등의 제재를 추진하고 있다. 세상의 눈으로 봐도 함량미달인 일들이 하나님의 눈에는 어찌 보이겠는가? 꼴불견이 아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의 삯인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사람이 죽는 것은 죄성(sin nature)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 죄가 그에게로 들어갔기에 그의 후손은 태어나면서 사망 선고를 받고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롬 6:23).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몸은 무덤으로 옮겨져 썩어 한 줌 흙이 된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땀 흘려 흙을 갈아먹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잘살았거나 못 살았거나,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궁중에서 살았거나 감옥에서 살았거나, 선한 일을 했거나 악한 일을 했거나, 귀족이었거나 천민이었거나, 편히 살았거나 고생을 많이 했거나, 건강하게 살았거나 병치레만 했거나, 늙어 죽거나 사고나 병으로 죽거나, 예외 없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처럼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명제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가끔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죽는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려 하기에 그런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병명을 모르면 병에 안 걸리는 줄 아는 멍청이와 같다. 그가 복음을 거절하는 이유는 죽기 싫기 때문이다. 죽기 싫다는 일념이 그를 그처럼 바보같이 만들어 버린다.
사람이 죽었다가 자기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성경으로 제시해 주는데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것이 전파되었는데도, 어찌하여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느냐? 그러나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의 믿음 또한 헛것이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 증인들로 밝혀지리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증거하였기 때문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정녕 살아나지 아니한다면 그분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일으켜지지 못하셨으리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한 것이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이생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전 15:12-19).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영이 살아나게 되었고, 태어난 후 마귀에게 점유당했던 혼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는 것이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자기 몸으로 살아나게 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고전 15:51-53).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The Lost,” 즉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하며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켜 “The Saved”라고 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의 혼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 인간의 몸은 죽으면 썩어 버리지만 혼은 불멸이기에 썩지도 않고 불타지도 않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
어떤 사람이 똑똑하고 잘나고 많이 배우고 출세했는가? 진리와 무관하게 산 사람이다. 진리와 무관한 교육은 저주이다. 학력을 자랑하는 자들, 서울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도쿄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등 자기가 배운 것이 진리와 무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참 지식이 될 수 없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더 있나 보라!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이스라엘 산헤드린 멤버)에게 사람의 거듭남에 관해 설명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하시더라』(요 3:5-8).

니코데모의 반응은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나이까?』였다(요 3:9). 예수님께서는 그의 무지를 꾸짖으시면서 부언해 주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일들도 모르느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또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래도 너희는 우리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들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들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0-12)
죽은 아버지, 어머니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을 했어야 효자 아니겠는가? 명당 잡아 묘나 크게 썼다고 해서 효자가 되는가? 절간에다 위패를 두고 돈이나 갖다 주면 뭐가 달라지는가? 신문에 장례 광고나 대문짝만하게 내고 영안실에 화환이나 셀 수 없을 만큼 세워 놓으면 뭐가 어떻게 되는가? 일자무식만 그런 짓을 하는가? 아니다. 출세했고, 공부 많이 해서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사람일수록 그런 짓들을 더 많이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식들을 대여섯 명이나 의사, 약사로 기른 사람들도 있고, 목사나 부흥사, 선교사로 기른 사람들도 있다. 왜 그랬을까? 한 사람은 지상 생명의 연장을 의식했을 것이고 또 한 사람은 사후의 생을 대비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그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적 없이 그런 아들만 믿고 교회만 몇십 년 다녔다면 죽은 뒤에 어떻게 되겠는가? 두말할 것 없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믿음은 유전되지 않기에 모태 신앙은 전혀 자랑할 것이 못된다. 어머니의 혼, 아버지의 혼이 개체이듯이 자식들의 혼들도 각각 개체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시켜 진리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마귀의 세력들을 대항하게 하는 영적 요새이지, 세상 사람들을 모아 교회 놀이하는 곳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의 혼이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죄사함받은 사실의 의미를 알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음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쓴다. 사람들을 꼬드겨 교회로 데려오는 일을 그들은 전도라고 하는데 전도(傳道)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말하지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죄인이 구원받는 일이 얼마나 쉬운가 보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사람이 입으로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 아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드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그 일을 다 이루셨다는 사실을 들었으면 마음으로 믿어야 하고, 그 다음 자신의 입으로 이 점을 시인해야 한다(롬 10:9,10을 보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와 같으니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였느니라』(롬 10:14,15).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선교라고 말하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선교사라고 부른다. 선교사를 양육하고 파송하는 권위를 가진 기구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역 교회뿐이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곳은 선교단체도 아니요, 교단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구령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선교사란 이름을 달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체하는 것을 많이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교단 신학교에서 선교학이라는 엉터리 과목을 배운 자들인데 역시 교단 교회들에서 선교사로 파송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비성경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1. 선교사란 구령자요 거리설교자이다. 이 일을 국내에서 하지 않고 해외에 나가서 하기에 (외국) 선교사라 부른다.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하나님께 부름받아야(Divine Calling) 한다. 하나님께 부름받았다는 증거들이 없는데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나선다면 농사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 논밭에 들어가는 것과 같고, 전쟁을 위해 훈련받지 않은 군인이 전장에 나가는 것과 같고, 달릴 줄 모르는 사람이 육상경기에 나가는 것과 같다. 『그런즉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 내라. 전쟁에 임하는 자는 아무도 이생의 일들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를 군사로 뽑은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또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이 규칙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하리라. 수고하는 농부가 먼저 그 소출에 동참함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숙고해 보라. 주께서 너에게 모든 일에 명철을 주시기 원하노라』(딤후 2:3-7).
선교사뿐만 아니라 설교자(목사)들과 성경교사들, 그 외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 부름받았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세상일과 달리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영력을 받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리에 관한 책들, 즉 성경 주석서들과 교리에 관한 책들을 쓰는 저자들도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영력을 받지 못한 채 일하게 되면 성경적 교리가 아닌 것들을 마치 지식인 양 쓰게 되어 독자들이 독약인 줄도 모르고 먹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영적 병에 걸리거나 진리의 지식으로부터 탈선하여 마귀에게 쓰임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성경은 한 가지인데 왜 이리 많은 성경들이 있으며, 교리와 믿음은 한 가지인데 왜 이렇게 여러 가지 교리들이 나와 분파를 만들어 믿음이 아닌 것들을 붙들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가?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권면을 보라.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3-5). 왜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교단의 제단을 꼭 붙들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증거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가 보라!

2. 외국에 가서 선교하려는 열정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위로부터 나온 열정이라야 한다. 그렇다면 그가 국내에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혼들을 구령했는가? 물론 이것이 전도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외에도 그가 선교하려고 하는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가?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인데 그 나라 말을 할 줄 모르는데 그곳에 가서 어떻게 사역을 할 것인가? 만일 그가 사용하는 성경이 <킹제임스성경>이 아니고 그가 배운 신학과 교리가 <킹제임스성경>에 기조한 교리가 아니라면 그는 지금 다른 나라에 가서 복음의 진리와 진리의 지식(딤전 2:4)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경(단 10:21)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를 선교사로 내보내시겠는가?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가짜 선교사들을 데리고 장난하시는 분이신가? 인간들이 거짓으로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선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함량미달인 자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그 원인은 각 교단 신학교, 특히 장로교 합동 교단이 육신적으로 쪼개지면서 생겨난 교단들과 거기서 신학을 배우는 둥 마는 둥 한 자들이 목사안수를 받아 포화 상태를 이루자 그들을 밥먹여 줄 요량으로 외국으로 내보내면서 선교사란 명칭을 붙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교가 뭔지도 모르는데 이곳 교단 교회들은 교회들대로 선교사를 어디어디에 파송하고 있는 교회로 알리기 위해 그런 짓들을 하고 있고, 그들은 선교비를 받아먹기 위해 현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만 하면 끼어들어 사진을 찍어 국내 교회로 보내서 선교사 행세를 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를 보낸 교회를 속이고, 현지인들을 속이며, 자기와 가족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이다.

3. 국내 교회들은 언제부터인가 해외여행에 선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방학 때면 라면이나 T셔츠, 모자나 다른 선물들을 사가지고 개발도상국가들에 놀러가서 그 나라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노래나 춤을 가르쳐 주며 놀다 온 것을 단기선교라고 한다. 철없는 분당샘물교회 교인들이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에 그런 짓 하러 갔다가 탈레반에게 붙들려 두 사람이나 죽임을 당하고 많은 몸값을 지불한 뒤 간신히 풀려났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기에 행한 일인가? 하나님께서 그런 짓을 하라고 그런 교회를 세우셨는가? 그들에게 선교의 열정이 있다면 왜 이 나라 국민들에게는 그런 열정을 베풀지 않는가?

4. 선교를 하려면 특히 모슬렘과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해야 한다(마 10:16). 우리 교회에서 지원하는 선교사는 잠비아, 인도, 파푸아뉴기니아, 말라위, 페루, 이스라엘, 캐나다 최북단 알베타와 베트남 등이다. 베트남에 가 있는 선교사는 그곳에서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기에 고아원을 세워 운영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그들을 구령해서 좋은 결실을 거둔다는 선교보고를 매월 보내오고 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들어쓰시는 종이 하는 일에는 늘 수확이 풍성하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쓸모없는 종들로 버림받아 마땅하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우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의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자격없는 선교사 한 명의 어설픈 행동이 신실한 선교사들의 명예와 신실함에 흠을 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자라면 쓰시지도 않으신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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