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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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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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1월호>

최초의 인류인 "아담들"(창 5:2, 『그들[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셨느니라.』)에게는 완벽한 환경이 주어졌었다.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풍성한 먹거리들, 추위도 더위도 없는 완벽한 기후, 어린양처럼 온순한 짐승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푸르른 대자연 등 그야말로 "천국"이 주어졌던 것이다. 아울러 최초의 지상 천국에서 가장 중요했던 한 가지는 아담과 이브에게 "완벽한 자유"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그들에게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육신 안에는 죄가 거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무엇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완벽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도 금지되지 않았다. 완벽한 환경 속에서 죄가 없는 상태로 영생을 선택하여 살 수 있는 자유, 이것이 바로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자유"였다.

오직 한 가지 사실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영원토록 죄 없이 살 수 있었다 해도 그들 자신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창조된 인간이었을 뿐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상기시켜 주시고자 동산 가운데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창 2:9,17)를 두시고 거기에서 나는 열매를 먹지 말라고 금지시키셨다.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freely]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 순종조차도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 두셨다는 점에 주목하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인격체이시기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살아 있는 인격체였다. 이브가 손을 내밀어 그 열매를 따는 데에는 어떠한 강제적인 금지 조치도 없었다. 오직 그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담이 이브가 준 그 열매를 잡았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어떤 물리적인 개입도 하지 않으셨다. 아담의 자유로운 선택, 곧 그의 의지에 맡기셨을 뿐이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자신들이 누리던 완벽한 자유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했다.

그들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만 않았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 전체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되었을 것이다. 죄성이 없었던 그들이 지을 수 있는 다른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가 계심을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브는 그 선택의 자유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요일 2:16)을 위해 사용했고, 아담은 그 선택의 자유로 이브를 선택하고 말았다.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즐겁고 현명하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인지라, 그녀가 거기에서 그 열매를 따서 먹고 그녀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니, 그가 먹더라』(창 3:6).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기보다는 "이브의 남편"이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 결과 죄가 세상으로 들어와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고 말았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잘못 사용했다. 그들은 더 이상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전 7:20) 존재가 아니었다. 육신 안에 죄가 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도 죄가 될 수 있는 마귀의 자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것조차 죄가 될 수 있는 처지가 되었으니, 이에 대해 성경은 『악인의 쟁기질은 죄니라.』(잠 21:4)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타락한 이후의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 해도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그 의지를 빼앗지 않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그 의지로 우리로부터 선택받기를 원하신다.

"선택"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가 지니는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강조하신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서 너희에 대하여 증거를 삼아 네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두었은즉, 그러므로 너와 네 자손이 살려면 생명을 택할지니라』(신 30:19). 그런데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들었을 때 그 복음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을 선택한(살전 1:4) 사람이다. "첫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잃어버렸던 영적 생명을 자신의 의지에 따른 믿음으로 "둘째 아담"을 선택함으로써 되찾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라』(롬 6:7). 무엇을 해도 죄가 되지 않을 자유를 되찾은 것인데, 이것은 "영적인 위치"가 그렇다는 것이며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의 상태와는 확연히 다르다. 타락하기 전 아담의 몸 안에는 죄가 거하지 않았지만, 현재 성도의 육신 안에는 여전히 죄가 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육신 안에 거하는 죄는 우리 안에 형성된 "새 사람"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심지어 우리의 천한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될(빌 3:21) 그날이 오면, 그 죄마저도 완전히 제거되어 아담이 잃어버렸던 완벽한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그 죄가 여전히 거하고 있어서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롬 14:17)을 누리는 영적인 삶을 파괴시킬 수 있으며, 성도들을 위해 마련된 『유업의 상』(골 3:24)도 받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매 순간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것이 요구된다. 항상 옛 사람과 새 사람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전 행실에 관해서는 기만의 욕망에 따라 썩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면, 그것은 옛 사람을 선택하고 새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 된다.

아담에게는 두 개의 나무가 제시되었는데, 곧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와 생명의 나무이다. 이 중 하나는 죽음을 주는 열매였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주는 열매였다. 이를 영적으로 적용해 보면 그리스도인에게도 두 개의 나무가 있는 셈이다. 즉 육신의 나무와 성령의 나무인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그 나무들을 심고 있고, 또 그에 따른 열매들도 거두고 있다. 『자신의 육신에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에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육신의 열매는 장차 천년왕국에서 유업이 전혀 없는바 최소 천 년 동안의 부끄러움을 가져올 것이고, 성령의 열매는 영원한 영광과 기쁨을 가져올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 8:13). 육신의 죄들은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것들임을 유념해야 한다.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면 주님께 대한 항변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선택할 자유가 있다.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비진리와 진리 사이에서, 육신과 성령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것인지 짖지 못하는 개처럼 침묵을 지킬 것인지,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에 대해 오래 참을 것인지 참지 않을 것인지, 부지런할 것인지 게으를 것인지, 절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주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죄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는 모든 죄인들은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게 된다. " 그것은 네가 선택한 것이니라 ." 당신은 매 순간 하나님을 선택하고 있는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선택했는가? 과거의 잘못된 선택의 쓴 열매를 거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열매들에 손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카인은 잘못된 선택을 했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여 주신 증거(창 3:21)에 따라 아벨처럼 피의 속죄제물을 드리지 않고 자기 의를 나타내는 제물을 드렸던 것이다. 그보다 더 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 주셨는데도(창 4:6,7) 자신의 아우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성경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육신을 선택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친구"가 아닌 "카인의 친구"로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주님을 택하는 것은 기꺼이 고난을 택하는 것과 같다.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딤후 3:12).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아는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선택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실 것(롬 5:8)을 선택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로 선택하신 것이 확실하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선택이 누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는 너무나 분명하지 않겠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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