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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교”는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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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6월호>
교회들은 많은데 복음과 바른 성경과 진리를 전파하는 교회들이 드문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목사들이 강단을 차지한 채 변질된 복음과 변개된 성경과 저주받을 이단 교리들과 교단 교리들을 퍼트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원받은 간증이 없고, 바른 성경이 없으며, 성경적으로 설교할 수도 가르칠 수도 없는 무자격한 목사들인 것이다. 마치 초림 당시에 천국을 가로막고 서서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같은 삯꾼 목자들과 거짓 교사들로서, 진리를 찾기 위해 교회를 방문한 교인들을 자기들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들로 만들고 있다. 오늘날 사탄은 이런 무자격한 목사들을 통해 지옥에 갈 수많은 죄인을 아주 편리하게 트랙터로 한데 쓸어 담고 있다. 차라리 “나는 성경의 진리를 볼 줄 모릅니다. 성경을 가르칠 줄 모릅니다. 설교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정직하다는 소리라도 듣겠지만, 그들은 보지 못하면서도 “본다!”(요 9:41)라고 거짓말하면서 다른 많은 소경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결국 그들과 함께 지옥의 불구덩이로 빠져 버리고 만다. 『소경에게 길을 헤매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신 27:18).한 지역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고 돌봐야 할 목자로서(벧전 5:2) 부르심을 받은 첫 번째 목적은 회중을 향해 “살아 있는 말씀을 능력 있게 전파하는 것”에 있다. 쉽게 말해 설교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와 그의 설교>의 저자인 “알프레드 깁스”가 잘 이야기했듯이, 오늘날에는 설교의 질과 효과와 중요성이 도전받고 있다. “피에르 베르톤”은 “오늘날의 설교는 성령께서 부재하고 성경적으로 부적합하며 매우 지루하고 따분하고 잘못 전달되고 있다.”라고 말했고, “윌리엄 부스”는 “마지막 시대에 만연하게 될 가장 큰 위기는 성령님께서 부재하신 교회, 예수님께서 문밖에 서 계신 교회, 참된 회개가 없는 용서, 거듭남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춰 버린 구원의 메시지, 지옥 없는 복음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성경적으로 정확한 메시지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성령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능력 있는 설교자가 절실히 요청된다.
특히 이 나라에는 복음이 전해진 이래로 이 민족을 복음화시킨 설교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바른 성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 교회들이 주로 사용하는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바르게 보존된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비교했을 때, 36,000군데 이상 틀리고 신약에서만 2,200단어 이상 삭제되었다. 틀린 성경을 갖고 있다 보니, 교회들은 복음과 진리를 전파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복음을 빙자하여 돈이나 버는 “한국식 기독교”를 만들어 버렸다. 한국식 기독교의 작태와 열매를 보고 있노라면, 아주 슬프고 화가 나며 유치하기 그지없다는 생각만 든다. 누가 이런 기형적인 교회들을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변개된 성경과 가짜 목사들이 주범이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불쌍한 나라다. 왜냐하면 기독교 역사가 130년이 넘었음에도,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을 무렵부터 “변개된 성경”(로스역, 1882년)과 “변질된 복음”(바른 복음과 진리의 지식보다는 학교와 병원 설립이 우선이었던 “사회 복음”)이 먼저 들어와 정착됨으로써 이렇다 할 참다운 부흥이나 영적 대각성이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부흥 운동”으로 잘못 알려진 “평양부흥운동”이나 “원산부흥운동”은 전 세계적인 오순절 은사주의 물결 속에서 나타난 “마귀적인 열매”였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뒤늦게나마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1994년에 출간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이 현재 우리 손안에 들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에 참다운 말씀과 참다운 복음을 전혀 맛보지도 못한 채 우리나라는 그냥 이렇게 끝나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그것도 우리나라에 바른 성경과 바른 복음과 진리의 지식을 허락하심으로써 마지막 희망과 개혁의 불길을 일으킬 기회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전 세계의 언어가 약 6천 개이고, 이 중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250가지 정도라고 한다. 또한 문자를 가진 국가는 100여 개이며, 자기 나라말을 가진 국가는 28개국에 불과하다. 특히 로마자나 한자에서 변형된 문자가 아닌 순수하게 독창적인 고유 문자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국가는 6개국에 불과한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어서 제1차(2009년), 제2차(2012년) 세계문자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것은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 국민으로서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한글이라는 이 언어를 존중해 주시는가?”의 문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언어를 주신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소통하실 때 “말과 문자”로 하신다. 반복적으로 아무런 의미 없이 시끄럽게 나열하는 은사주의자들의 기괴한 짐승 소리 같은 “방언”으로 하시는 게 아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주셔서 기록된 말씀으로 인간과 소통하신다. 만일 언어는 있는데 그 언어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성경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주님께서 그런 언어를 존중해 주실 리 만무하다. 따라서 한 나라의 언어의 가치는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있을 때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영어가 전 세계 공용어가 된 것은 부흥과 개혁의 시대를 주도했던 <킹제임스성경> 때문이다. 바른 성경이 출간되자 하나님께서 그 언어에 복을 주신 것이다. 한글 역시 바른 성경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떤 가치도 부여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과 언어에 주목하기 시작하셨다! 지구상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국어로 바르게 번역되고 보존된 성경”을 가지고 왕성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설교하면서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국가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종교개혁 원문에서 1900년 이전까지 800여 개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어 보급되었다 할지라도 “현재” 자국민들에 의해 활발하게 읽히고 전파되고 가르쳐지는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독일의 <루터성경> 그리고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유일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교회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학교” 하나가 한국식 기독교가 만연한 이 땅에 등장했으니, 이름하여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의 “설교학교”다. 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설교자의 자격”이나 “설교자의 부르심(소명),” “설교의 정의 및 구조와 형식,” “설교를 준비하는 방법과 자료 수집,” “설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낸 신문 광고에 따르면 “복음”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것도 명색이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광고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참으로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오늘날 30만 명의 목회자 중에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면 사역과 행동과 삶이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복음을 아는 만큼 말하고 행동합니다. 한두 가지 실수를 고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장 먼저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풀어 가는 원초적 열쇠가 될 것입니다... 복음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으면, 사역과 삶에서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복음”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 광고에는 그가 설교학교를 통해 가르치려 하는 복음의 실체가 없다! 그와 관련된 성경 구절 하나 인용되어 있지도 않다. 왜냐하면 자기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한 설교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지 그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이제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았고 그 안에 선 것이라.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후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신 것이라』(고전 15:1-5).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믿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죽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너의 죄들을 제거하기 위해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었고 성경대로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났다. 이제 그를 너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라. 그러면 지옥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지옥이 걱정되거든 내 아들을 의지하라. 내 아들을 믿고 그를 너의 구주로 영접하는 한 너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의 핵심”이다.
설마하니 이렇게 “단순한 복음”을 가르쳐 주겠다는 목적으로 거창하게 “설교학교”를 시작했겠는가? 그러려고 비싼 돈을 낭비하며 신문에 광고했겠는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신문 광고 안에 복음의 메시지를 능력 있는 성경 말씀과 함께 정확하게 실어서 이 땅의 모든 국민에게 구원의 복음을 강력하게 전파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았겠는가? 과연 “복음”이 월 10만 원의 등록비를 내고 “설교학교”에 가서 배워야 할 만큼 복잡하고 심오한 진리인가? 특히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아니고, 비싼 돈 내고 3년 이상씩 공부해 가며 신학교를 이미 졸업한 “목회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만큼 한심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목회자들”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자들은 지금까지 구원도 받지 않은 채 “가짜 목사,” “가짜 선교사” 노릇을 한 것이 된다. 사실 이렇게 구원받지도 않은 무자격자들이 강단을 차지하고 서서 교단 교리나 객설로 교인들을 데리고 종교놀이하다가 모두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 교회들과 목사들의 영적 수준이다!
목회자들이여, 제발 자신부터 구원받으라! 자신이 언제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간증할 수 없는 목사들은 모두 가짜들이다. 당신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는 정말로 구원받았는가? “머레이 맥체인”은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구원받지도 않은 죽은 설교자가 죽은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나라 교회들의 강단에서는 지옥을 설교하지 않기에 1년에 단 한 명도 구령하지 못하는 목사들과 교회들이 부지기수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 목사와 교회는 이 땅에 존립해야 할 가치가 없다.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는 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하는가? 아니면 교인들에게 거리에서 화장지나 커피, 주보, “행복으로의 초대” 같은 신문 등을 나눠 주라고 지시하는 삯꾼들인가? 각종 헌금 봉투는 잘 만들어도 복음 전도지 한 장 만들지 못하는 목사가 과연 참된 목사이겠는가?
침례인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요 1:23)으로서 “거리설교자”였다. 평생에 단 하루도 어떤 건물 안에서 강단을 차지하고 설교해 본 적이 없는 “진짜 거리설교자”였던 것이다. 사실 구약의 선지자들 대부분이 거리설교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 모든 말을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일러 선포하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라.』(렘 11:6)라고 말씀하셨고, 이사야에게는 『아끼지 말고 크게 외치며,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이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들을 보이라.』(사 58:1)라고 명령하셨다. 선지자 요나 역시 삼 일 길이나 되는 큰 성읍으로 들어가 하룻길을 다니며 니느웨에 임한 심판과 멸망을 외쳤다. 그런가 하면 『지혜가 밖에서 외치고 거리들에서 소리를 발하며 사람이 모이는 곳의 가장 높은 장소와 성문 어귀에서 외치고, 그 성읍에서 그녀의 말들을』(잠 1:20,21) 발설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우리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리에서 설교하셨다. “스테판”도 거리설교자였고,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도 야외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거리설교자였으며, “바울” 역시 거리설교자였다. 성경대로 믿는 설교자들은 거리에서 외치기를 서슴지 않았다. 조지 휫필드, 요한 웨슬리, 찰스 피니, D.L. 무디, 찰스 스펄전, R.A. 토레이, 피터 럭크만 등 모든 신실한 목자들은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구원의 복음”에 관한 한 거리설교와 구령이 이루어지는 “실제 현장”이야말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살아 있는 학교”다. 비싼 돈 주고 설교학교에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배에서 설교는 매우 중요하다. 설교에 실패하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된다. 강성한 교회는 설교가 살아 있다. 하지만 이 나라 교인들 대부분은 “설교다운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제대로 된 복음조차 듣지 못했다. 그저 배교한 목사들의 “가려운 귀나 즐겁게 해 주는 아주 그럴듯한 설교”에만 너무 많이 길든 상태다. 특히 그들은 지루한 설교가 빨리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빨리 예배를 끝내고 가족과 나들이를 가거나 골프를 치러 가거나 등산 가거나 사업을 구상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낮잠을 자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의 양심을 깊숙이 찌를 수 있는 강력한 설교가 필요한 때이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온몸을 관통할 때,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죄들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자백하고 그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게 할 참되고 능력 있는 설교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도대체 설교학교를 시작해서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그런 실체도 없는 학교를 통해 참된 설교자가 길러지겠는가? 더욱이 전광훈 목사 자신도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는 아니지 않은가? 신문 광고를 보니, 지난 광화문 집회 때 적게는 50만 명, 많게는 200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고 하는데, 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는 않고 헌금 바구니만 돌린 것인가? 그가 복음을 전할 줄 모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목사가 설교학교를 통해 무슨 복음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인가? “설교학교”로 돈 벌 생각이나 하지 말고 바른 성경으로 나아오라. 당시 필자는 용무가 있어서 몇 가지 전할 말을 가지고 전광훈 목사를 찾아가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한글킹제임스성경> 한 권을 그에게 전해 주었다. 그는 바른 성경을 받아 들었을 때 올바른 성경 번역에 관해 관심을 보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바른 성경을 믿고 진리로 돌아섰다면 그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와 관련하여 성경은 이렇게 경고한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들을 발로 밟고, 다시 돌아서서 너희를 찢을까 함이라』(마 7:6).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