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특집 목회자 칼럼 분류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 욥기 (I)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5월호>

1.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요, 그리스도인들, 특히 사역자들, 이를테면 설교자들에서부터 성경을 가르치는 제반 신학교 교수들, 각종 교회에서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전담 사역자들, 자칭 선교사들, 오래된 성경 교사들, 목사 후보생들까지, 그들도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에 필자는 알게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가? 없다!


강단을 지키는 자들, 곧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가? 그런 인식을 가지고 설교자나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성경에 관하여 공사석에서 문의를 할라치면 밥맛없어 한다. 그래도 혼인식장에서는 으레 목사들이 주례를 하고, 각종 대학교의 졸업식을 포함한 행사장에서도 목사들이 주 강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좀먹은 개역성경을 펴 놓고 성경 내용과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다가 끝낸다.
1994년 4월 12일에 출간된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비교했을 때, 개역성경은 36,000군데 이상이나 틀린데도 그들은 마귀와 서약을 했는지 아직도 개역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을 성경적인 용어로 뭐라고 부르는가? “벨리알의 자식들”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교단의 인가를 받아 교단 교회를 하고 있으며 교단 산하에 노회까지 두고 있다. 성경에 무지한 거듭나지 않은 마귀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상에다 팔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실로 그들은 “교회의 정의”조차 모른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나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 1:18).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성경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성도로 거듭나게 하고, 그렇게 거듭난 성도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잘 양육해서 그리스도의 일꾼들로 성장시켜 세상을 향해 복음과 진리를 선포하도록 만드는 일이 진정한 사역이지 않은가? 그렇게 하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그 칭호대로 참된 “하나님의 교회”이지 않겠는가? 이 나라에 6만 7천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복음전도지를 구비하고 있는 교회는 몇 개나 되는가? 제대로 된 전도지 하나 없는 교회가 99%이다. 왜 없는가? 목사라는 자들이 전도지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모르는가? 복음 전파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나라 교회들의 현주소이다.


교회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교인들은 생의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교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목사가 대부분인 교단 교회들에서는 그들을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지는 않은 채 그저 나이층, 출신 학교, 사회에서의 경력 등을 참작하여 해당 부서로 할당한다. 대개의 중대형 교회들의 경우 한두 명의 방문객들은 제대로 할당하지도 않는다.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에게는 <영적 삶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책자를 구입하여 교회 생활의 ABC를 알려 주어야 마땅한데, 대부분의 목사들이 너무 바빠서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른다.
구원받지도 않은 채 세상에서 교회로 들어선 교인들은 제대로 된 인도자 없이 교회를 습관적으로 다닐 수밖에 없다. “두꺼운 성경”(대체로 옛 단어들로 되어 있는 책)을 몇 페이지 읽고 나니 더 이상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옆 사람에게 묻자니 창피하기도 해서 그때마다 피해 가곤 한다. 그러다 보니 교회 다닌 지 1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복음서 한 권조차 읽지 못했다.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라도 성경을 알고 싶은 의욕이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의욕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 해도 수박 겉핥기식으로밖에 읽지 못한다. 결국 성경을 읽어도 그 단어와 절과 장이 주는 교훈적인 말씀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왜 그런가? 성경은 영이 거듭난 성도들에게 필요한 영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는 이스라엘의 산헤드린 공회의 멤버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비범한 분이심을 감지하고 밤에(남몰래) 주님을 찾아뵈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말씀드리기를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신 줄을 아나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당신이 행하시는 이런 기적들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하더라』(요 3:2). 이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그는 “거듭남”(born again)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교회의 구성원들도 거듭남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절간 다니듯이 아니 신천지에 다니듯이 교회만 다니려 할 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좀 더 자상하게 말씀해 주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5,6). 초림 당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던 어떤 자들은 주님께 이렇게 질문하기도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들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되리이까?』(요 6:28) 예수님의 답변은 이러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즉 그분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라』(요 6:29).
왜 거듭난 성도들은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성경은 거듭난 성도들에게 영적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왜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그들에게 숨을 쉬는 호흡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성도”와 “교인” 간에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은 주일에 교회 다니는 사람을 성도라고 오해하고 있으며, 기도를 하자니까 주기도문이나 암송하고 있다. 겨울에 산에 갔다가 산사태를 당했는데, 그 속에서 주기도문이나 외우고 있다면 과연 구제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도할 줄 모르는 교인들이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은 권사, 전도사, 강도사까지 만들어 써먹고 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목사와 집사 외에는 다른 직제가 없고, 성경에서 감독과 장로는 모두 “목사”를 의미한다(딤전 3:1-13; 4:14; 5:17,19, 요이 1:1, 요삼 1:1 등).
한국 교회들은 교단을 형성하고 있어서 교회 아닌 교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교회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부르신(divine calling) 그 목사에게 교회가 없는 특정한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구령하고 설교할 수 있는 은사와,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성도들이 교회에 출석하면 최소 한 시간은 목사로부터 성경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한국 교단들은 그들 멋대로 교회를 세우고, 성경적 교리가 아닌 이상한 교단 교리들을 그들 멋대로 가르친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성경을 모르기에 그들 멋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모임에서는 성경의 교리들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을 모아 구령하지도 않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교리들을 가르치지도 않으며, 도리어 대부분의 성경 구절들을 묵살해 버린다.

2. 왜 교인들은 사복음서에서 사도행전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넘기가 어려운 것인가?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어떻게 사역했다는 행적을 기록한 책인데, 그것을 일반적인 교리로 교회에 적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비성경적인 교리들이 튀어나와 교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엉터리 방언하는 자들도 등장하여 이상한 마귀의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현혹했고, 예수 믿으면 병 낫고 방언하며 소위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선전했다. 또한 그런 어리석은 자들이 미국 캔자스 주 토피카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 거리에서 발원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거짓말과 거짓 방언들로 사람들을 모으고서는 부자 되고 병 낫고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고 속였다. 그때 이름을 날린 가짜 목사들과 거짓말로 능력을 행하여 돈 벌고 매스컴을 탔던 사기꾼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람들을 많이 모아 명성을 날렸던 그들의 족적은 다 어디로 갔는가? 왜 지금은 방언하는 자들이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을 많이 모으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가? 그런 자들의 99%는 마귀에게 점유된 자들이다. 마귀에게 점유된 자들이 사람들을 모은 것이다. 과연 그들이 거듭난 자들이겠는가? 그들은 복음도 제대로 전할 줄 모르는 자들인데, 교회들은 그들을 전도사나 강도사 또는 목사로 세워 주면서 그들로부터 돈을 받았다. 과연 그런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신약 교회가 맞겠는가? 다른 나라는 차치한다 하더라도 한국의 여의도순복음교회, 소망교회, 온누리교회, 지구촌교회, 명성교회, 사랑의교회, 새에덴교회(새에덴이 성경에 있던가?) 등은 결코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들이 아니다!


교인들이 성경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그들의 성경 자체가 진리의 지식을 알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되지 못했고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통 신학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물론 기독교 서점이나 교회, 심지어 신학교에서까지도 이렇다 할 답을 찾을 수 있는 책들을 구할 수가 없었다. 설령 <할레이 성경 핸드북, Halley’s Bible Handbook>과 같은 귀한 책들을 발견했다 해도 개역성경으로 해석해야 했기에 책 맛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개역성경은 성경이 아닌데도, 그 성경을 팔아먹는 자들은 알게 모르게 성경 아닌 성경으로 “마귀의 교리들”을 교회 전체에, 신학교 전체에, 더 나아가서는 교계 전체에 접목시켰다.
잘못된 성경이 한국 기독교 신앙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만든 “장애물”이 되었다고 필자는 단언한다. 그 결과 창세기, 욥기, 여호수아, 재판관기, 에스더, 전도서, 솔로몬의 노래, 에스겔, 소선지서 등에 진입하기가 너무 어렵게 되었다.

3. 욥기는 창세기보다 300년이나 앞서서 기록되었다(B.C. 1800-1780). 지금으로부터 약 3,800년 전에 우체부가 있었고, 사람들은 치즈를 먹었으며, 철제 무기와 강철 활을 사용했고, 철필과 납으로 글씨를 썼다. 지면 관계상 욥기의 본문을 해석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에는 본문 자체만 소개하겠으니 얼마나 심오한 말씀이 B.C. 1780년경에 쓰였었는지 그 경이로움을 느껴 보기 바란다.

1) 『그는 북쪽을 빈 자리에 펼치시고 땅을 허공에 매다시는도다. 그는 물들을 그의 짙은 구름 속에 싸매시나 구름이 물들 밑에서 찢어지지 아니하는도다. 그는 그의 보좌의 정면을 가리시고 그 위에 그의 구름을 펼치시는도다. 그가 그 물들을 경계로 두르시니 낮과 밤이 끝나는 곳까지라』(26:7-10).
욥의 시대부터 A.D. 1400년까지 모든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지구가 어떤 것 위에 매달려 있거나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땅을 허공에 매다셨다고(7절)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2) 『그가 그의 권능으로 바다를 가르시며』(26:12).
주님께서 “깊은 바다”(시 68:22)를 통과해서 오실 재림 때 그렇게 하실 것이다(합 3:15). 여기에서 갈라지는 “바다”는 하늘들에(26:13) 있는 바다로서 욥기 41장에서 발견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명철로 교만한 자를 치시는도다』(26:12). 여기에서 교만한 자는 『교만의 자식들을 다스리는 왕』(41:34)이다.

3) 『그의 손이 꼬부라진 뱀을 지으셨도다』(26:13).
하늘들을 꾸미고 있는 이 “뱀”에게는 세 가지 모양이 있다. ① 첫 번째는 적도를 따라 그 머리를 들고 있는 “히드라”(물뱀)이고, ② 두 번째는 헤라클레스의 발아래 있는 “드라코”이며, ③ 세 번째는 여자를(계 12:15) 삼키기 위해 그의 입에서 “물”(!)이 나오는(40:23) “세투스”이다. 여기에서 뱀은 하늘에 있다(26:13). 그는 이 땅에서 여기저기를 거닐기(1:7) 전에 하늘들을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한다(41:31-34). 욥기 41장에 나오는 구절들은 이 뱀의 존재에 관한 세부 사항을 제시해 준다. 이 뱀은 시편 74:14과 이사야 27:1의 “리비야단”이다. 리비야단의 머리는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이다.

4) 『위선자가 성공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의 혼을 취해 가시면 그의 소망이 무엇이겠느냐?』(27:8)
위선자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의 혼을 취해 가시면” 아무것도 아니다. “위선자들”(카이사, 교황들, 독재자들 등)이 다스리는 곳에서는 결코 그들이 영원히 다스리도록 허락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교황 성하,” “거룩한 아버지” 등을 취해 가신다. 주님께서는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 가리니』(눅 12:20)라고 말씀하신다.
『고난이 그에게 임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겠느냐?』(27:9) 대환란 때는 듣지 않으신다(잠 1:24-33).
『그가 전능하신 분 안에서 기뻐하겠느냐?』(27:10)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일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마 16:23). 위선자들의 기쁨은 육신 안에 있으며(빌 3:3), 이들의 눈에는 다윗처럼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시 103:1,2) 더 큰 시간 낭비가 없어 보인다.

5) 『내가 하나님의 손을 통해 너희를 가르치겠고』(27:11).
“하나님의 손”(스 8:22, 대하 6:32, 시 102:25)은 어떠한 오류도 없는 확실한 것들을 계시해 오셨다.

6) 『부자가 누우나 그는 조상에게로 합쳐지지 못할 것이요』(27:19).
일차적으로는 구약 성도로서의 “그의 조상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고, 이차적으로는 적절하게 장사되는 것을 말한다(전 6:3). 알렉산더 대제(B.C. 356-323)와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둘 다 2,000,000평방 마일 이상의 땅을 통치했지만, 그들의 시체는 장사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태에서 홀로 땅 위에서 나뒹굴어야 했다(전 6:3). 알렉산더의 시체는 그의 군대가 그 시체를 가지고 장난치기 전에 3일간이나 땅 위에 있었다.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의 시체는 로마의 광장에서 장사되지 못한 채 반나체의 상태에서 거꾸로 매달려 이틀 동안이나 있었다. 악인은 그의 조상들에게로(대하 12:16) 가지 못한다. 부자는 안락함과 사치와 안전함 가운데서(눅 12:18,19) 눈을 감았지만(눅 12:20), 『그가 눈을 뜰지라도 그는 있지』(27:19) 않으며, 마치 『폭풍이 그의 처소에서 그를 집어 던진 것』(27:21)과 같게 된다.
“악인”은 하나님과(27:22) 그분의 심판으로부터(슼 14:12) 도망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장소로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욘 1,2장).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결말만 있다. 그것은 바로 “죄 없는 영원한 영광”이다. 반면에 다른 편에 선 사람의 결말 역시 오직 하나뿐인데, 곧 “불못”인 것이다.
통합을 주장하는 인종 차별 폐지론자들과 자유방임적인 상대주의자들이 명상을 하고, 의사소통을 하고, 재평가를 하고, 구조를 개편하고, 상호 연관시키는 일을 계속함으로써 그들의 누룩이 들어간 불순물이 하나의 거대하고 균일한 잡종 연합체로 통합되어 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결과가 “하늘나라인가 지옥인가,” “구원을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 “위쪽인가 아래쪽인가,” “옳은가 그른가,” “하나님인가 마귀인가”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느 쪽인지 선택하라. 대충 절충해서 합의를 보게 되면 더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7) 『실로 은이 나는 광맥이 있고, 금은 연단하는 곳이 있도다. 철은 땅에서 취하고 놋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28:1,2).
“놋”(brass)을 “구리”(copper)로 변개시킨 것과 관련해서는 출애굽기 25:3을 참조하라. 여기에서는 은, 금, 철, 놋의 순서로 나오는 반면, 다니엘 2장의 형상은 금, 은, 놋, 철의 순서로 되어 있다. 욥의 때는 B.C. 1780년이었고, 다니엘의 때는 B.C. 603년으로 무려 1,177년의 차이가 난다. 은이 금보다 더 귀한 때도 있었던 것이다.

8) 『그분은 흑암에 끝을 두시고 모든 온전함을 찾아내시나니 흑암의 돌과 사망의 그림자라. 홍수가 머물고 있던 곳에서 터져 나오니 발을 잊어버린 물이라. 그 물이 말랐고 그 물이 사람들로부터 멀리 빠져 나갔더라』(28:3,4).
① 인간은 산들을 그 뿌리까지 뒤엎지 못한다(28:9).
② 인간은 모든 귀중한 것들을 볼 수 없다(28:10).
③ 인간은 바위 사이에서 강들을 파지 못한다(28:10).
『땅으로 말하자면 그곳에서 빵이 나오나 그 밑에는 불처럼 솟구침이 있으며 땅의 돌들은 사파이어가 나는 곳이며 그곳에는 사금도 있느니라. 어떤 새도 모르며 독수리의 눈도 보지 못한 길이 거기에 있으니 사자의 새끼들도 그 길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 길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28:5-8).
『그분은 바위 위에 손을 대시고 산들을 그 뿌리까지 뒤엎으셨으며 그분은 바위 사이에서 강들을 파시며 그의 눈은 모든 보물을 보시는도다. 그분은 큰 물들이 넘치지 못하게 붙들어 매시며 감추어진 것을 빛으로 가져오시는도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찾을 것이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사람은 그 값을 알지 못하며 산 자들의 땅에서도 찾을 수 없도다. 그 깊은 물이 말하기를 ‘그것은 내 안에 없도다.’ 하고 또 바다도 말하기를 ‘그것은 내게 없도다.’ 하는도다. 그것은 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으며 은을 달아 주어도 그 값을 치를 수 없도다』(28:9-15).


『그러므로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눈으로부터 숨겨졌으며 공중의 새들로부터 닫혀 있도다. 멸망과 사망이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의 귀로 그 명성을 들었노라.’ 하느니라. 하나님은 그 길을 이해하시며 그 처소도 아시느니라. 이는 그가 땅의 끝까지 살피시며 온 하늘 아래를 보사 바람의 무게를 다시며 물을 달아 무게를 재심이라. 그가 비를 위하여 규칙을 만드시고 천둥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을 때 그가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셨으며 그가 그것을 예비하셨고 정녕 찾아내셨도다. 또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주를 두려워함이 곧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더라』(28:20-28).

4. 중세 시대에 위대한 설교자였던 “탄첼름”(Tanchelm)이 한번은 성당의 계단을 걷고 있다가 자정쯤 되었을 때, 성경에 있는 무언가를 자신에게 가르쳐 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당시는 성경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자격을 갖춘 권위자들”이 만들어 놓은 지옥의 어두움이 전 유럽을 뒤덮고 있었고 영적 기근이(암 8:11) 그 땅에 심했을 때였다.
추운 겨울밤이었기에 탄첼름은 떨면서 돌계단 위를 걷고 있었다. 새벽 한 시경 그는 성당의 커다란 횃불 옆에 웅크리고 있는 어떤 거지에게 무심코 말을 건넸다. “잘 지내는가, 친구?” 거지가 “저는 항상 잘 지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 자네를 지옥에 던져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자네는 어떻겠는가?” “하나님께서 안 계신 하늘나라보다는 그분께서 계신 지옥에 있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할 것입니다.” 거지가 대답했다.


탄첼름은 걸음을 멈추고 거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자네의 왕국은 어디에 있는가?” “저는 왕이고, 제 왕국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거지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탄첼름은 똑바로 서서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그것을 언제 찾았는가?” 그러자 거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지혜를 찾으려고 사람들에게 가는 것을 그만두고 곧장 하나님께로 갔을 때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날 밤 탄첼름이 했던 “성경 공부”였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찾을 것이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사람은 그 값을 알지 못하며 산 자들의 땅에서도 찾을 수 없도다. 그 깊은 물이 말하기를 ‘그것은 내 안에 없도다.’ 하고 또 바다도 말하기를 ‘그것은 내게 없도다.’ 하는도다. 그것은 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으며 은을 달아 주어도 그 값을 치를 수 없도다. 그것은 오필의 금이나 진귀한 얼룩마노나 사파이어로도 값을 정할 수 없도다. 금과 수정도 그것과 같을 수 없으며 정금 장식으로도 그것과 바꿀 수 없도다. 산호나 진주도 말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지혜의 값이 루비들보다 더 나감이라. 에디오피아의 황옥도 그것과 같지 않으며 순금으로도 값을 정할 수 없도다. 그러므로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28:12-20)


『그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눈으로부터 숨겨졌으며 공중의 새들로부터 닫혀 있도다. 멸망과 사망이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의 귀로 그 명성을 들었노라.’ 하느니라. 하나님은 그 길을 이해하시며 그 처소도 아시느니라. 이는 그가 땅의 끝까지 살피시며 온 하늘 아래를 보사 바람의 무게를 다시며 물을 달아 무게를 재심이라. 그가 비를 위하여 규칙을 만드시고 천둥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을 때 그가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셨으며 그가 그것을 예비하셨고 정녕 찾아내셨도다. 또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주를 두려워함이 곧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더라』(28:21-28). BB [다음 호에 계속]

특집 목회자 칼럼 45 / 2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