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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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 욥기 (III) “하나님의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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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7월호>

욥기 38장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하시는 부분이다. 창조주께서 한 인간에게 질문을 하신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신문사 논설위원들, 기자들, 특파원들, 대학교수들, 작가들, 소설가들 등 그들은 그 대상자들이 누구인지 모르면서도 누군가는 그들의 글을 읽어 주고 깨닫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의 바람과는 달리 많은 글들이 독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문전박대를 당한다. 성경은 어떤가? 자기의 신념이나 종교와 일체감이 없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돈을 주면서 좀 읽어 보라 해도 손사래를 치기 마련이다. 그 글이 “진리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도 전에 자기 종교와 다르면 쳐다보지도 않으려 한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시 90:10). 이것은 인간 그 누구에게라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어두움에서 나누시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창 1:1-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버림을 받게 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눅 9:25) 유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야 한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종교가 다르다고 창조주를 무시해 버린다면, 무시한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지옥에 가게 된다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어떻게 돌려놓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한 가지 묘수가 있다. 자기가 평소에 존경하던 어떤 월등한 인물이 성경에 대한 가치와 진실성에 대해 간증한 것을 듣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할 것 같은가?


필자는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을 성경에 완전히 무지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몇 사람의 성경적 신앙과 지식으로 일깨워 주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그가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의 혼은 지옥의 불길 가운데서 영원무궁토록 뜨겁다고 울부짖을 것인데, 그러면 옛날 비서보고 손가락에 물을 적셔서 자기 혀에 찍어 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기록해 놓으셨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시어 그가 자기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눅 16:24).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곁에서 구걸하던 거지였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어디 문재인 대통령뿐이겠는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영적 세계를 알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그 누구라도 지옥의 자식으로 살게 된다. 거듭나지 못한 우리 대통령이나 로마카톨릭 교황들처럼 살다가 죽으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지옥의 자식이 되어 영원무궁토록 뜨겁다고 울부짖게 된다.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 3:6,7).

성경을 믿지 않은 로마카톨릭 교황들이 성경을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짓밟고 그들을 고문하며 살인한 사실들이 소위 기독교라고 불리는 로마카톨릭의 교회사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 이전의 로마 황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네로,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데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A.D. 67-313) 자기들의 권위만을 지키려다가 성경의 권위를 무시한 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 성경에 무지한 자들이 성경의 진리대로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것이다. 반면에 신실한 순교자들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목숨까지 희생시키는 가운데 구차하게 생명을 아끼려 하지 않았으니, 끝까지 진리의 편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영국에서 신앙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메이플라워호”(190톤)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을 안다. 하나님께서 역사가 200년도 채 안 된 그들의 나라를 세계 최강국이 되게 하신 세계사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1달러짜리 지폐를 보라. “In God We Trust”라고 쓰여 있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과 몇 명의 전쟁 영웅들, 과학자들, 학자들이 성경에 대해 가졌던 신념을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님과 성경을 모르고 세계를 올바로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성경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대헌장이다. 인류는 이 대헌장이 없이는 살 수 없다.” -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성경은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책을 합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성경은 우리가 누리는 모든 자유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
“성경을 읽는 사람을 정신적, 사회적으로 노예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의 원리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토대이다.” - 호레이스 그릴리(Horace Greeley)
“내가 당황하고 좌절할 때 성경은 언제나 나에게 빛과 힘을 주었다.” - 로버트 리(Robert E. Lee) 장군
“성경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류가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은혜이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성경에는 세상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확실한 징표들이 있다.” -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성경을 모르면 참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없다.” - 이송오 목사(<한글킹제임스성경> 번역자)


성경은 거듭나지도 않고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공부하지도 않은 교인들에게는 질긴 소고기보다 더 질긴 책이다. 죽었든지 살았든지, 우리나라 목사들 중 그 누구라도 “욥기”에 손을 댄 사람은 없었다. 우리 교회는 세계적인 성경학자 피터 럭크만 박사의 배려로 그분의 주석서와 저서들을(70권) 번역하여 1992년 이래로 지금까지 보급해 오고 있으며, 우리 교회 교육관(인천 강화 소재)에서는 매 주말이면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성경으로 선택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반면에 한글개역성경은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비교했을 때 36,000군데 이상 틀리다.


“욥기”는 단순히 성경 안에 들어 있는 한 책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인류사와 사탄의 존재와 행적을 인간에게 보여 주시려고 기록하신 책이다. 만일 욥기가 없었거나 욥기를 깊이 있게 공부한 럭크만 박사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면, 인류는 여전히 사탄의 존재와 그의 하수인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아니었다면 사탄의 존재와 그가 인류에게 끼친 해악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욥에게 하신 하나님의 질문들을 보라!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다면 분명히 밝히라. 누가 그 치수를 재었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느냐? 그 기초들은 무엇 위에다 고정시켰으며 모퉁잇돌은 누가 놓았느냐? 언제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두 기뻐서 소리쳤느냐?』(욥 38:4-7)


하나님께서는 욥기 38장에서 35가지 질문들에 답해 보라고 욥에게 도전하셨다. 그중에서 25가지 이상의 질문에 대해 바르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욥기 38장에 나오는 35가지 질문에는 물리학, 음성학, 음질의 가치, 광선, 해양학, 생태학, 기후학, 천문학, 철학, 지질학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그중 10가지 질문이라도 답변해 줄 수 있는 학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있다 해도 관련 분야들의 사전이나 책자들에서 답을 찾으려고 도서관들을 뒤지다가 세월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설령 그들이 답을 찾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신 앞선 질문에 관한 답을 잠언 8:22-31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노트북이다. 특히 잠언 8:26에서는 『그가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흙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라.』라고 말씀하신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흙을 언제 만드셨기에 아담을 지으셨을 때 흙으로 만드셨는지 궁금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서관들을 누볐다. 그러던 어느 날 섬광이 비치듯이 “흙의 기원”에 관한 책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우리나라 일류대학교의 교수가 쓴 책이었다. 그래서 그 책을 사 가지고 와서 읽어 봤더니, 최초의 흙은 지렁이의 배설물이라고 쓰여 있었다. 필자의 실망감은 매우 컸다.


분명 잠언 8:26에는 『그가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흙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다음 구절을 보면 더욱 선명한데, 아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들, 즉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을 마련하셨을 때도 그분과 함께 계셨다고 말씀하신다. 『그가 하늘들을 마련하실 때 내가 거기 있었으며, 그가 깊은 곳의 표면 위에 범위를 정하실 때에도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잠 8:27). 성경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책이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알 수 없다. 지구상의 학문들을 다루는 유수한 교육 기관들은 세월이 갈수록 진화론이라는 늪에 더 깊이 빠져 허우적거릴 뿐 참된 지식을 이해하거나 진일보시킬 수단이 없다.


인간이 두뇌를 발전시켜서 낳은 산물이 무엇이었는가? “공산주의”였다! 공산주의의 목표는 무엇인가? 못 배우고 가난한 자들이 잘 배우고 잘사는 계층에 대한 시기와 증오의 발악으로 그들의 부를 빼앗아 서로 나누어 갖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선을 추구하는 사상이었다면 전쟁과 파괴와 집단 살인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인류의 문명은 선을 이룩하느라 분망했을 것이다. 정말로 그랬더라면 인간의 현실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향상되었을 것이다.
“지식”(잠 2:10)이 무엇인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를 배워서 아는 것이다. “지혜”(잠 2:10)는 무엇인가? 지혜는 그 사실들을 적용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분별”(잠 2:11)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하나님과 갖는 관계를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철”(잠 2:11)은 무엇인가?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욥 28:28). 사람들이 악에서 떠나지 않고 도리어 악을 수용했기 때문에, 세상은 이처럼 서로를 증오하는 “비극적인 인간사”로 가득 차고 말았다.

욥기는 B.C. 1780년경에 기록되었다. 그보다 3,500년이 훨씬 더 지난 현 시대에 하늘에는 인공위성이 수도 없이 날아다니고, 엘론 머스크 같은 과학자들은 자기가 만든 우주선으로 국제우주정거장까지 여행하는 우주관광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욥기 38장에서 욥에게 하신 35가지의 질문들에 대해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어떤 과학자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욥은 사탄의 고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또한 무엇이 그 고소를 재촉했고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답변하셨는지, 왜 하나님께서 마귀가 그 상황까지만 행하도록 허락하셨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오늘날 세상에서 행해지는 재판들을 보라!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은 공히 선과 악에 대해 올바로 판결하지 못한다. 이 나라뿐만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런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권세를 인간이 가지고 행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와 진리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대학교수이면 모두 옳은 판단만 하는 줄로 아는 것이 세상의 통념이다. 법관이라고 해서 다 참신하고 존경받는 사람인가? 공의와 진리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되었다. 『공의가 뒤로 돌아서고 정의가 멀리 섰나니 이는 진리가 길에 쓰러졌고 공평이 들어가지 못함이라』(사 59:14).


“세상의 법”은 예방이 아니라 사후 처방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나쁜 버릇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곳은 성경으로 규제받는 가정이지 세상 법원이 아니다. 『또 마치 자녀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으니, 곧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시하지 말고,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매질하시느니라.”고 하신 것이라. 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아들들로 대우하실 것이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징계를 너희가 받지 않는다면 너희는 사생아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5-8).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바른 교회에서 바른 성경으로 양육되지 않는 “가정 교육”은 낭비이자 위선이며 속임수일 뿐이다. 가정이나 교회, 정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런 식의 자녀 교육으로 어떻게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걷어서 어디에 쓰고 있는가? 지구상의 인간들은 무엇을 가르치든지 교육만 받으면 선한 사람들로 양육될 수 있는가?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이치를 모르는 자들에게 35가지의 질문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요구할 것이니 너는 내게 대답하라』(3절).

1.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4절) 2. 『누가 그 치수를 재었는지 네가 아느냐?』(5절) 3.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느냐?』(5절) 4. 『그 기초들은 무엇 위에다 고정시켰으며 모퉁잇돌은 누가 놓았느냐?』(6절) 5. 『언제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두 기뻐서 소리쳤느냐?』(7절) 6. 『바닷물이 마치 태에서 물이 터져 나온 것처럼 쏟아져 나왔을 때 누가 바다를 문들로 막았더냐?』(8절) 7. 『언제 내가 구름으로 바다의 의복을 만들고 짙은 흑암으로 그것을 싸는 포대기를 만들었으며 나의 정해 놓은 곳에 한계를 정하여 빗장들과 문들을 세우고 말하기를 ‘네가 여기까지는 오나 더 이상 가지 못하리니 여기서 네 자만의 물결이 멈추리라.’ 하였느냐?』(9-11절) 8. 『네가 네 날 이후로 아침에게 명령한 적이』(12절) 있느냐? 9. 『새벽으로 그의 처소를 알게 하여 그것으로 땅의 끝들을 붙잡게 하며 악인을 거기서 흔들어 떨쳐 버린 적이 있느냐? 새벽 해는 도장 밑의 진흙처럼 되었고 땅끝은 옷처럼 서 있도다. 악인들로부터는 그들의 빛이 억제되고 오만한 팔은 꺾이는도다』(12-15절). 10. 『너는 바다의 샘들 속으로 들어가 보았느냐?』(16절) 11. 『네가 깊은 곳을 찾아 거닐어 본 적이 있느냐?』(16절) 12. 『사망의 문들이 네게 열렸더냐? 아니면 사망의 그림자의 문들을 보았더냐?』(17절)

13. 『네가 땅의 너비를 알았더냐? 만일 그것을 모두 알았다면 선포하라』(18절). 14. 『빛이 거하는 길은 어디냐?』(19절) 15. 『흑암이 있는 자리는 어느 곳』(19절)이냐? 16. 『네가 그 경계로 가는 길을 택하여서 네가 그 집으로 가는 길을 알겠느냐?』(20절) 17. 『네가 그 때 태어났기에 그것을 알았느냐?』(21절) 18. 『네 날수가 많기에 네가 그것을 알았느냐?』(21절) 19. 『네가 눈의 보고 속으로 들어갔느냐?』(22절) 20. 『네가 우박의 보고를 보았느냐? 그것들은 내가 고난의 때와 싸움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간직해 둔 것이라』(22,23절). 21. 『동풍을 땅 위에 흩어지게 하는 그 빛이 어느 길로 갈라지겠느냐?』(24절) 22. 『범람하는 물에 누가 물길을 나누었으며 천둥의 번개에 누가 길을 내며 사람 없는 땅에 비를 내리게 하고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게 하며 누가 황량하고 황폐한 땅을 적셔 주며 연한 풀에서 싹이 돋아나게 하였느냐?』(25-27절) 23.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28절) 24.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나왔느냐? 하늘의 하얀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로 된 것처럼 감추어졌고 깊음의 표면은 얼어 있도다』(29,30절).

25. 『네가 플레아데스 성단의 아름다운 감응력을 묶을 수 있으며 오리온의 띠를 풀 수가 있느냐?』(31절) 26. 『네가 열두 궁성을 그의 시기를 따라 불러낼 수 있느냐?』(32절) 27. 『네가 악투루스 성단을 그의 아들들과 함께 인도할 수 있느냐?』(32절) 28. 『네가 하늘의 규례들을 아느냐?』(33절) 29. 『네가 그 통치를 땅에 펼 수 있느냐?』(33절) 30. 『네가 네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많은 물들로 너를 덮게 할 수 있느냐?』(34절) 31. 『네가 번개들을 보내어 그들로 가서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할 수 있느냐?』(35절) 32. 『누가 속에다 지혜를 주었느냐? 또한 누가 마음속에 명철을 주었느냐?』(36절) 33. 『누가 지혜로 구름을 셀 수 있겠느냐?』(37절) 34. 『누가 하늘의 병들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느냐? 그때 먼지가 굳어지고 흙덩이가 함께 단단히 엉키는도다』(37,38절). 35. 『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누가 그 까마귀를 위하여 그의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느냐?』(39-41절) BB [다음 호에 계속]

특집 목회자 칼럼 46 / 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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