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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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의 “지옥강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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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10월호>

최근 양화진 문제로 교계 이슈가 된 100주년기념교회의 이재철 목사가 지난 8월 17일 예장통합 서울서노회로부터, “이단적 행위와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행위“로 기소된 적이 있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단적인 행위’라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에 관해 피기소자의 말을 다소 확대 해석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논란의 불씨는 한글 사도신경에는 삭제되어 있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라는 문구의 해석에 있었고, 지금은 교계 전반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소위 “지옥강하 논쟁”이라 불리는 이 쟁점에 관하여 교계의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사실 그들 각각의 입장표명은 스스로가 성경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임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들
논쟁의 종지부를 찍는 것은 다음의 베드로전서 3장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벧전 3:18,19). 이 구절을 성경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만,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이후에 지옥으로 내려가셨는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또한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모든 의심들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이 배교한 기독교계 안에는 이 구절을 제대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위 노회가 제기한 기소는 결국 재판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는데, 이는 이재철 목사를 이단으로 기소하려면 교단직영 신학교 교수 다섯 명 이상의 의견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서를 확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이는 위 문제에 관하여 제대로 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는 신학자가 교계에는 다섯 명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뉴스엔조이>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관하여 14명의 신학 교수들(장신대 6명 포함)에게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는데, 절반 이상이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신학적인 논쟁이기보다는 정치싸움 같아 대답이 곤란하다”는 말로 입장 밝히기를 꺼려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은 정치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위의 구절을 해석할 능력과 영적 분별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신학자라고 자처하지만 성경 대부분의 구절들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이는 그들이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보지 못하고(딤후 2:15),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성경적인 해석은 이렇다. 『감옥에 있는 영들』은 결코 “구원 받지 않고 죽은 자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들은 “사람들”이 아니라 “영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이들은 노아의 날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로서(벧전 3:20), 지금은 지옥 내부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는 “영들”이다. 그들은 “영들”이기에 “사람들”이 아닌 “천사들”이다(히 1:7,14). 그러나 이들은 단순한 천사들이 아니라, 노아의 날에 자기들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이 땅에 내려와 사람들의 딸들과 결합했던 천사들이었다(창 6:1-4).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처소를 떠나 불순종했던 그들을 영원한 사슬에 묶어 백보좌 심판 때까지 흑암 속에 가두어 버리셨다(유 6).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사실을 감옥에 갇혀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전파하셨다는 것은 복음을 전파했다는 말이 아니다. 문맥 어디에도 “복음”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다만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이 어두운 감옥에 가두어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전파하셨을 뿐이다(유 6).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지옥에 가셨다는 것인데, 여러 구절들에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기 전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다윗의 시를 통해서(“지옥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시 16:10, 행 2:27),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증거를 통해서(“땅의 심장,” 마 12:40), 사도 바울의 증거를 통해서(“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심,” 엡 4:8,9), 그 외 여러 구절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분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신 분”이시다(계 1:18). 말하자면 친히 죄(고후 5:21)와 저주(갈 3:13)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들을 지옥으로 옮겨 다 쏟아 놓으시고 지옥의 문들을 걸어 잠그셨던 것이다.
이처럼 성경을 성경으로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에 지옥에 가지 않으셨다”라든지 또는 “그런 근거는 없다”라든지 이상한 논리를 펴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변개시킨 위선자들
이에 반해 위 구절을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하고 그 근거 구절들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사실 만큼은 인정하는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그렇게 믿고 따르는 근거나 의도, 그에 따른 행보 자체가 매우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위 “지옥강하” 부분이 사도신경 원문에는 있던 것이니, 본래의 위치에 되돌려 놓자는 주장을 한다. 이에 관하여 김정훈 교수(백석대)는 “교회는 지옥의 실존을 선언하며, 동시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지옥 형벌이 있다는 것과 승리의 주가 계신 것을 선언하고 있는 지옥강하 내용을 사도신경 본래의 위치에 되돌려놓고 그 의미를 반복적으로 되새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석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도 “사도신경에 포함되어 있는 ‘음부에 내려가시고’(음부와 지옥을 성경적으로 구분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잘못된 표현)란 내용을 임의로 삭제한 것을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 세계 교회가 이 부분을 고백하고 있는데 한국 교회만 임의로 삭제했다”면서, “세계 교회가 교파와 신학을 초월해 고백하는 한 조항을 한국 교회가 고백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중대한 불상사이며, 세계 교회와 보조를 같이하지 못하는 일면을 가지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들의 믿음의 근거는 결코 “성경, 곧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교파와 신학을 초월하는 세계 교회의 고백이라든지, 세계 교회와 보조를 같이할 필요성이라든지, 사도신경의 원문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엉뚱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임의로 삭제된 내용을 사도신경에 돌려놓자!” 그렇다면 마태복음 17:21; 18:11; 23:14, 마가복음 9:44,46; 11:26; 15:28, 누가복음 17:36; 23:17, 사도행전 8:37; 15:34; 28:29, 로마서 16:24은 어떤가? 이는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을 위시한 변개된 성경들에는 하나같이 다 빠져 있는 13구절들이다. 사도신경에 빠진 내용을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왜 변개된 성경에 “임의로” 삭제되어 있는 구절들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놓자는 주장은 하지 못하는 것인가? “카톨릭의 주문” 따위에는 한 문구가 빠져도 정색을 하는 그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삭제된 것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들은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는 말씀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다. 정작 되돌려놓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들”은 폐기해 버리면서, 불필요한 사도신경 따위는 애써 보존하려 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인간적인 전통은 보존하려 하면서도 성경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변개시키고 마는 “위선자들”인 것이다.

성경이 믿음의 핵심이 되지 못한 거짓 목사
사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이러한 거짓 믿음이 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재철 목사로 하여금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게 만들었다. 그는 비록 죽은 자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구원받지 않은 자들의 장례식에서 “구원받지 않고 죽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기도이겠는가?
그러면서 이목사는 이 부분 때문에 자신을 이단으로 정죄하려 하거든, 1974년 불교신자였던 고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 영결식에서 안식을 비는 기도를 드렸던 한경직 목사나, 1979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 때 개신교를 대표하여 기도했던 강신명 목사,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때 조가(弔歌)를 불렀던 명성교회(김삼환 목사)도 이단으로 정죄하라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의 눈에는 이 세 명의 목사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들”로 비춰졌나 보다. 세상과 정치에 관여하기를 즐겨했던 그들의 모습이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의 좋은 사례로 제시될 수 있다니...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성경이 아닌 사도신경을 그의 믿음의 핵심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회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은 그들을 위해 기도조차 해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복음이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따뜻하게 기도해 주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신일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핵심의 핵심인 사도신경이 예수님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대로 내버려 두라. 이들은 항상 배우기는 하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다(딤후 3:7). 그러나 그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는 못할 것인데, 결국 성경을 믿지 않는 그들의 어리석음이 모두에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딤후 3: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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