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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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배반한 서울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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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5월호>

서울신학대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한다며 금년에도 인문학 강좌를 연다는 일간신문의 광고를 보았다. 우리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에서는 전에도 신학교라는 곳들이 인문학 강좌를 한다며 세상에서 일하는 국내외의 사람들을 불러다가 신학과는 정반대인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것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는 자들임을 그들의 비성경적인 작태를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학 체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고 인성만을 믿는 데 기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의 인문학 강의를 보라. 그것은 성경적 교리가 아니라 그들만의 신학이다. 그들이 인문학 강좌를 한답시고 국내외 인사들을 초청하여 별별 강의를 다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을 신학교라고 했다면 그 신학은 필자가 섬기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성경을 믿고 실행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임을 표명하는 것이기에, 그들이 행하는 인문학 강좌는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광고는 직간접적으로 사탄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가 믿고 공부하는 그 성경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라고 오해할까 싶어서 무지한 그들이 각성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려고 한다.
그들이 내놓은 강의의 제목들은 성경의 교리(딤후 3:16)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강의 제목들로 볼 때 그 중에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혹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이 그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역시 가짜일 것이라고 단정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그런 인문학 강좌에서 반성경적 각설을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기 때문이다.
강사 중에는 독일의 배교한 신학교인 튀빙겐대학 교수들이 두 명이나 들어 있고, 우리나라 국회의장을 위시하여 전 국무총리, 전 통일부장관, 전 감사원장 등 소위 저명인사들(?)이 들어 있다.
소위 신학대학교라는 데서 그것도 100주년 기념 강좌에 들어 있는 강의 제목들을 보라! “건강사회와 평화통일,” “사회정의론,” “한국 사회의 나갈 길,” “실크로드에서 찾는 한국문화와 역사,” “참된 삶의 길,” “철학이란 무엇인가?,” “보람 있는 삶을 위하여,” “21세기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의 영,” “우리 그림의 이해,” 심지어 “논어와 동양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도 들어 있다.
참석 대상으로는 그 학교 학생들, 관심 있는 목회자, 평신도, 일반 시민이라 했다.
그들이 입을 벌리면 벌릴수록 그들의 “알지 못하는 신”은 더욱 아리송하게 된다. 그 학교는 무엇을 위해 왜 학교를 해야 하고, 그런 인문학 강좌를 왜 해야 하는지 그 목적의식도 없다. 신학대학이라면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일꾼들을 길러 내려고 설립한 학교 아닌가? 마귀가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는 세상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여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이 민족을 구원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파하는 일꾼들을 기르기 위해 설립된 학교 아닌가?
지난 100년 동안 그렇게 헌신하고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여 자신들의 몸을 드려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서원한 그들 학생들을 모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들로 육성하려 하지 않았는가? 지난 1세기 동안 나름대로 성경을 가르쳤을 텐데, 1백 년 후에 남긴 유산이 고작 신학을 버리고 그런 지저분한 인문학 강좌를 하는 것이라면 그런 일을 해서 대체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인가?


1. 인문학(Humanities)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교리를 말한다. 서울신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배격하고 인성만을 부각시키기 위해 설립된 학교이다. 그렇다면 왜 신학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가? 인본주의 신학이라 했어야 옳은 것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한다면 그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 왜냐하면 그런 자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마 7:26).
서울신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먼저 그 점을 세상에 알려 “우리 학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교입니다.”라고 공표했어야 했다. 그렇게 공표하고 학생들을 모집했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귀의 신학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신학교라고 명명한 것은 거짓(falsehood)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만을 알았다면 그들에겐 성경이 필요 없고 지금 행하고 있는 것처럼 매년 인문학 강좌나 열고 세상과 짝짜꿍해야 한다. 다만 그것은 마귀가 세운 학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가 곧 다가올 대환란 후반부에, 다시 세워질 예루살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으로 추앙하고 경배하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 권세를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도 경배하며 말하기를 “누가 그 짐승과 같으며 누가 감히 그와 더불어 싸울 수 있으리요?”라고 하더라... 그가 자기 앞에 있던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사하고 또 땅과 거기에 사는 자들로 하여금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받은 그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더라... 또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형상으로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이도록 하니라』(계 13:4,12,15).
예수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은 로마카톨릭이다. 그들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성경은 그들을 “주홍빛 짐승을 탄 여자”라고 말씀한다. 『그가 나를 영 안에서 광야로 이끌어가니라. 또 내가 보니, 한 여자가 주홍빛 짐승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또 그 여자는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하고 손에는 금잔을 가졌는데 그 잔은 가증스런 것들과 그녀가 행한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찼더라.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더라』(계 17:3-5). 서울신대는 주홍빛 짐승을 탄 창녀에게서 파생된 것을 신학이라고 이름붙인 듯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성을 아버지와 동일시하셨기에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으셨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고 하시니 그때 유대인들이 주를 돌로 치려고 다시 돌을 들더라』(요 10:30,31). 『그러나 예수께서 외쳐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라. 또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 12:44-46).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 하나인 도마도 처음에 서울신대와 같이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못했다.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나의 손을 보고 너의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니 도마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하니』(요 20:27,28). 『빌립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그러면 만족하겠나이다.”라고 하니라.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너희와 그처럼 오랜 시간을 있었는데 네가 나를 모르겠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그런데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말하느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들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하시는 것이라』(요 14:8-10).
서울신대가 성경으로 알고 형식적으로나마 써 왔던 성경은 한글개역성경/개정판이었다. 그 성경은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비교했을 때 3만 6천 군데나 틀리며, 신약에서만 2,200단어 이상이 삭제된 것이다.
삼위일체를 가장 잘 증거한 성경 구절은 요한일서 5:7인데, 개역성경과 그 원본에는 이 구절이 삭제되고 없다.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요일 5:7). 자기들이 쓰고 있는 성경에 이 구절이 빠졌는데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이다.
서울신대에게 삼위일체를 믿느냐고 묻는 것은 농담하는 것과 같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자연인(natural man) 그대로이다(고전 2:14). 자연인들이 신학교를 세워 인문학을 신학인 양 가르치고 교회를 세워 불교나 힌두교, 카톨릭처럼 교회놀이를 하며 세상에다 인문학 강좌를 하겠다고 알렸을 때 그런 초청에 응한 사람이 정상인이겠는가? 서울신대는 그들의 죽은 영을 거듭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두 배나 악한 지옥의 자식들로 만든 위선자들이다(마 23:13-15을 읽어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신비이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딤전 3:16).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 왕을 세웠도다.” 하시리라. 내가 칙령을 선포하리라.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 내게 구하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이방을 네 유업으로, 땅의 맨 끝을 네 소유로 주리라』(시 2:6-8).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노라.』는 사도행전 13:33과 히브리서 1:5; 5:5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많은 목사들이 이 구절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존 칼빈은 주석서를 썼으면서도 해석하지 못하고 에베소서 1:4을 근거로 예수님이 영원 전에 태어나셨다고 헛소리했다.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도 이 한 구절 때문에 예수님은 피조된 신이라고 헛소리하고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여자의 씨로 태어나실 것임은 창세기 3:15에서 예언되었다.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신 첫 번째 인간이셨다. 여자는 씨가 없는데 여자의 씨로 태어나게 하시려고 성령님이 개입하셨다. 주님의 탄생은 신비였다(딤전 3:16). 인류의 6천 년 역사에서 주님처럼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다.

두 번째 신비로,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를 결행하신 분은 독생자라 불리셨다. “only begotten Son”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자 여인에게서 태어나셨다(갈 4:4,5). 때가 차니 죄 없으신 분께서 우리 죄성을 가진 인류를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물과 피를 쏟으셨고, 숨을 거두실 때에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죽으셨다.
사탄은 자신이 인류를 지배할 줄 알고 승리한 줄 알았으나 주님께서는 예언대로 삼 일 밤낮을 지내신 후 부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후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신 것이라. 그후에는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 있으나 더러는 잠들었느니라』(고전 15:3-6).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세 번째 신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일이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4-18).
자신이 죽어 지상에 무덤을 남겨 놓은 자들은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낼 수 없다. 석가모니, 크리슈나, 마호메트, 교황들 모두 헛짓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죄를 씻지 못하고 살다가 죽으면 그의 혼이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고통당하게 된다.
구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고, 성경의 주제는 왕국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야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경의 예언을 실현하시기 위함이다. 『이는 예수의 증거가 예언의 영이기 때문이라』(계 19:10).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어 구원받은 자들로 이 땅의 천년왕국의 백성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영원히 살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이 『복된 소망』(딛 2:13)이다.
서울신대처럼 복음도 전하지 못한 채 인문학 강좌나 하고 있다면 그 학교에서 그런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학생들, 그들에게 그런 신학을 가르쳤던 교수들, 그곳에서 성경을 가르칠 줄로 알고 학생들을 보낸 부모들, 그곳을 신학교로 알고 지원했던 자들은 모두 헛짓을 한 셈이 된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마귀에게 속아 마귀 짓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과 마귀의 영도 구분하지 못했다. 사탄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한다. 그들이 쓰는 개역성경을 보라. 이사야 14:12에 “사탄(루시퍼)”을 “계명성(예수 그리스도)”이라고 바꿔 놓았다. 그런 성경을 쓰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들이요, 기만하는 일꾼들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다 하더라도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니라』(고후 11:13-15).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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