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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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지갑을 찢으라는 김동호 목사의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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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11월호>

지난 10월 5일 종교개혁 495주년을 기념하여 미래목회포럼이 마련한 한 모임에서, 대표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지금 한국 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병든 시대를 고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영적 감화력도 떨어지고 있는 만큼 한국 교회는 교회의 교회다움 회복과 개혁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교회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이라 할 수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위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등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이 듣기에 그럴듯한 이 누룩은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 깊숙이 퍼져있어 교회들의 배교를 조장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에 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상,” 곧 “교회다움”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성별한 교회라야 진정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의 평판이나 인정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복음과 진리를 통해 세상을 “소란케 하는”(trouble, 행 16:20) 교회가 진짜 교회다. 세상의 어떤 가치 기준에 대해서도 성도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인 진리의 성경을 단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는 교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이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라고 믿는 그 교회만이 진정한 교회인 것이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떠한가?
배교한 교회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 마지막 교회 시대에 가짜 교회를 분별할 수 있는 시금석 중 하나는 무엇인가? “세상을 위해 섬기라.”고 설교하며 그 이유야 어떻든 “돈을 내라.“고 강조하는 교회들은 모두 가짜들이다. 이 나라에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목사들 대부분은 이 두 가지를 교묘하게 엮어서 교인들에게 강조하며 설교한다.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돈 이야기 제일 잘하는 목사”라는 별명이 붙은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이다. 이 날 모임에 강사로 초대된 김 목사는 “복음을 원한다면 지갑을 찢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러나 진리의 성경은 어리석음을 쏟아내고(잠 15:2) 먹는(잠 15:14) 그의 입과 마음의 생각을 책망하신다.

우선 김동호 목사는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지갑을 찢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갑을 찢어 세상을 섬길 때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원한다면 한국 교회는 마음뿐만 아니라 지갑도 반드시 찢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갑을 찢으려면 제대로 찢어야 한다. 세상을 섬기기 위해 지갑을 찢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릴 뿐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렇게 해서 회복되지 않는다. 성경적으로 단 한 번도 마음을 찢어본 적 없는 배교한 한국 교회가 무슨 방법으로, 또 무슨 염치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한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이미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려 주셨다. 성도들은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빌 2:11) 하나님의 것인 몸과 영을 주님께 드림으로써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전 6:20). 견고한 믿음(롬 4:20)과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서도(롬 15:4-6) 가능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의의 열매들(빌 1:11)과 선한 일들을 통해서(벧전 2:12), 또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벧전 4:11) 신실하게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과 동역자들을 통해서(고후 8:23)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고 세상이 아닌 주를 위해 섬기는 물질(고후 8:19)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함과 관대한 나눔을 통해서도(고후 9:1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들이나 물질, 관대한 나눔은 “세상을 섬기는 것”이나 “세상을 향해 지갑을 찢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이다(벧전 4:14,16).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세상의 평판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고난을 기꺼이 견뎌 내라.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있는 주님께로 나아가야 한다(히 13:13). 세상을 향해 죄를 죄라고 말하고 그들의 불경건한 행위에 대해 지적해 주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경고하라. 아무런 소망도 없는 이 세상은 멸망해 가고 있으며 복된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담대히 선포하라. 사탄의 왕국을 복음과 진리로 뒤흔들 수 있는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troublemaker)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라는 곳들이 고난을 회피하는 시대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기들의 영광은 추구해도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그런 자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이라 부르면서 그들의 영광이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다고 경고한다(빌 3:18,19).
하나님의 영광은 성도들이 진리를 위해 살 때만이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김 목사를 비롯한 대형교회 목사들은 세상을 위해 섬기라고 외쳐도 성경적 진리를 따라 주님을 섬기라고는 외치지 못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진리에는 반드시 “박해와 고난”이 따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고난”을 통해 스스로 하나님의 일꾼임을 입증해 보였다(고후 6:4-10). 이를 따르지 않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일꾼을 흉내내는 위선자에 불과하다. 고난은 승리를 가져오고 승리는 영광을 가져오지만, 고난을 회피하거나 그것에 패배하는 사람은 수치와 오욕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세상을 위해 지갑을 찢으라는 말만 되뇌는 것이다.

또한 김 목사는 『한국 교회가 복음을 위해 지갑을 찢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어리석은 목사는 하나님의 복음이 “찢어진 지갑”을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찢어진 지갑”조차도 복음을 전파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세상을 위해 섬겼을 뿐이다.
돈 잘 쓰기 운동, 이삭줍기 운동, 쪽방 탈출 운동, 밑천 나눔 운동,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 운동, 희년 운동, 열매나눔재단 설립, 메자닌 아이팩 박스 공장 설립, 메자닌 에코원 블라인드 커튼 공장 설립, 고마운 손 공장 설립, 블리스 앤 블레스 카페 설립, 열매나눔인터내셔널 설립, 사회혁신 컨설팅 기업 미스크(MYSC) 설립 등등 이상의 일들이 복음 전파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아프리카에 말라리아 모기장을 보내고 쌀 700톤으로 북한 주민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가? 그렇게 해서 “복음의 진전”이 있었는가? 그리스도가 전파되었는가? 교회가 시작된 이래로 복음은 단 한 번도 찢어진 지갑을 통해 전파되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순교자의 피”를 통해 전파되었을 뿐이다. 이를 위해 피도, 땀도, 눈물도 흘린 적이 없다면 어찌 복음을 위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 목사는 하나님의 일과 세상을 섬기는 일의 차이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그는 복음을 위해 지갑을 찢은 것이 아니고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을 위해 찢었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목사라고 자처하며 보낸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지 않은 일관된 관심 분야였다. 그러나 빈곤의 종말은 교회와 하나님의 일꾼이 져야 할 책무가 아니다! 이는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서(고전 3:9)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동역자요(골 4:11), 진리를 위한 동역자이기(요삼 1:8) 때문이다. 김 목사가 “빈곤의 종말”에 목을 매기에 앞서서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이 세상 죄인들이 빵이나 물이 없어서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이다(암 8:11).
세상을 섬기는 일에 성도의 헌금을 유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성도의 헌금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설교자의 생계와 교회의 운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선교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사용해야 하며, 가난한 성도들(일할 수 없는 성도들)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결코 하나님의 돈을 받아서 교회건물의 치장이나 세상을 섬기기 위한 명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교회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까지 걷어서 아프리카의 난민구호나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탈북자 새터민 돕기 등 세상을 위해 쓰는 것은 난센스이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교회의 쇠퇴가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회 운영을 위해 재정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남는 재정으로 사회를 돕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비판과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 중 하나도 거의 모든 재정을 교회를 위해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희생을 각오하려면 지갑을 걸고 하는 것이 옳다.』
사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판과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하등의 문제될 것이 없다. 어차피 세상은 교회를 미워하게 되어 있고, 교회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회들이, 특히 배교한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벧전 5:16), “살인자”나(그들은 교인들을 영적 파멸로 이끄는 살인자들이다) “도둑”이나(그들은 교인들의 돈을 각종 명목으로 갈취하는 자들이다) “행악자”나(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불법자들이며 부도덕한 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는 자”처럼(그들은 목사가 전념해야 할 영적 의무에는 신경 쓰지 않고 국가나 자선단체들이 하는 일에 간섭을 하는 자들이다) 비난과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에 있다(벧전 4:15).
“희생을 각오하려면 지갑을 걸고 하라고!” 그러나 거듭난 성도는 사회와 세상을 향해 목숨을 걸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물며 지갑이랴. 목숨을 걸려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고 제대로 걸어라! 지식을 따르지 않는 열성은 어리석은 종교 행위를 낳을 뿐이다. 그것은 심각한 폐해를 가져온다. 바울은 잘못된 열성으로 교회를 파괴했고, 로마카톨릭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박해하며 죽였다. 여호와의증인들과 안식교인들은 쓸데없이 집집마다 방문하고 있으며, 개신교회들 역시 사회참여, 정치참여 등 쓸데없는 구호를 외치면서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다. 복음과 진리를 믿고 실행하며 전파하는 데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인 것이다. 여전히 김동호 목사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한다. 그는 과거 한국 교회가 영광을 누렸던 이유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가 가장 먼저 국채보상운동 및 금연운동을 전개하면서 지갑을 열었다... 교회 할머니들도 나라 빚을 갚고, 학교를 세워 인재를 키우고, 민족자본을 육성해 민족 경제를 키우기 위해 비녀와 금가락지를 뽑는 등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한국 교회는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짓기보다 학교와 병원을 먼저 세우는 데 앞장섰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회복할 영광의 과거가 없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며 시작했던 한국 교회는 사실 쇠퇴할 것도 없다. 세상을 위해 일한 것이나 양적인 성장을 놓고 과거의 영적 부흥이나 영광이라고 말하지 말라. 한국 교회는 한 번도 부흥이란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부흥 비슷한 것을 해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거둘 열매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교회가 복음과 진리는 전하지 않은 채, 국채보상운동이나 하고 병원을 세우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일은 하지 않고 금연운동이나 벌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세상과 사회를 사랑했던 것이다. 교회가 쇠퇴했다면 그것은 사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너무 많이 쏟았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러한데 여기서 돌아서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런 일을 하라고 조장하는 자가 있다면 과연 그가 누구의 사주를 받았겠는가? 그는 『이 세상의 신』(고후 4:4)인 마귀의 지시를 따라 세상일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10월 31일은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파는 로마카톨릭을 대항하여, 독일의 마틴 루터(1483-1546)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 조항을 내건 지 495주년이 되는 날이다. 사실 과거 면죄부를 팔아 돈으로 치부하던 자들이나, 마귀가 관장하는 세상을 살찌우기 위해 돈을 걷는 자들이나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종교개혁을 제대로 기념하고, 교회들이 교회다운 교회로 제대로 개혁하기 원한다면, 루터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고 외쳤던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함으로써, “오직 세상으로!”(Sola Mundus)라고 외치며 세상을 섬기기 위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당장에 멈춰야 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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