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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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말, 환경의 문제인가? 죄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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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7월호>

매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 교계는 6월 첫째 주일을 “환경주일”로 지키고 있다. 이에 지구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파괴 및 환경재앙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라는 명령을 지키고자 각종 환경 캠페인을 벌여왔다. 특별히 “녹색교회 캠페인”을 통해 친환경적인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교회를 선정하여 교회의 친환경운동을 확산시키는 일들을 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인 환경보전교육, 새만금 살리기 운동, 지역 하천 살리기 운동, 대기오염의 주범인 탄산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차량 요일제 동참하기, 절전 멀티탭 및 절수기 사용하기 등과 같은 운동들이다. 이러한 운동의 중심에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환경을 소홀히 하면 지구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더 나아가 환경을 잘 가꾸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므로, 이에 교회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을 찾아야 한다며 그 긴급함을 호소하고 있다. 심지어 “환경목회”의 필요성까지 역설할 정도다. 참으로 주님께서 자신의 피값을 주고 사신 바 된 교회의 존재 목적을 희석시키고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마치 “환경을 지키자는 구호”를 “복음”인 것처럼 여기고, “친환경적 신앙생활”이 “참다운 신앙생활”을 대변해 주는 것인 양 서로를 격려하며 자축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환경주일”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인간적 전통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시키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환경주의자들”을 따르는 이들이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갈 1:10,11).
사실 그런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후천년주의적인 발상이 또 다른 형태로 표면 위에 드러난 것일 뿐이다. 첫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온 이래로(롬 5:12) 이 땅은 저주를 받았고(창 3:17), 저주받은 땅은 지금까지도 신음하고 있다. 이 저주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만이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환경주일”을 지키는 자들은 정작 그리스도인들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은 채, “친환경적 운동”으로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들은 지구의 멸망이 이미 예고된 것이고(벧후 3:7), 왜 이 세상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벧후 3:7), 그리고 그 멸망 뒤에 있을 새로운 하늘과 땅에 대한 소망(벧후 3:13) 및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자세(벧후 3:14,17,18)에 대한 성경적인 진리조차 모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확정해 놓으신 멸망을 “친환경적 운동”으로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더욱이 무슨 인간의 캠페인 따위로 지구의 환경을 바로잡을 수도 없는 일이다. 성경에는 “the regeneration”이란 단어가 두 번 나오는데, 하나는 디도서 3:5에서, 또 다른 하나는 마태복음 19:28에서다.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the washing of regeneration]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딛 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 세대에[in the regeneration],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통해 거듭나는 “개인의 새로운 출생”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관련되어 있다. 이에 반해 후자는 “땅의 새로운 출생”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일이다. 그 때에 주께서는 이 땅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으로서 그분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다. 이와 더불어 땅도 현재의 저주에서 풀려나 새롭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이 땅은 주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병을 치유하시고 원상태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한 개인이 거듭나는 일이나 이 땅이 새롭게 태어나는 일은 결코 인간적인 힘으로 이룩될 수 없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즉, 녹색교회 캠페인 따위의 전국적인 교회운동으로 전개하고 확산시킬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겨냥하여 올해 환경주일 공동설교 제목을 “청지기여, 지구를 식혀라”로 정하고, 전국 교회가 환경주일 설교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설교 본문으로 삼은 구절은 다름아닌 요엘 2:12-14 및 누가복음 12:35-40이다. 요엘서는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이 마음을 다한 금식과 애통과 마음을 찢는 온전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주께서는 그 재앙에서 돌이키실 것이라고 말씀하는 내용이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한 종들이 받을 복과 그들의 깨어 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구 온난화와 그에 따른 재앙, 더 나아가 환경보전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이를테면, ‘환경을 소홀히 했던 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내리시고자 했던 환경재앙으로부터 돌이키실 것이고, 더 나아가 청지기로서 환경보전의 임무를 충실히 하며 깨어 있으라는 내용’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들이 말씀을 읽고 깨달아 적용하는 수준이다. 결국 그런 소경 된 지도자들의 설교를 따라 나올 수 있는 열매란 이런 것들에 불과하다. 교회담장 허물기, 골프장 건설 반대와 군산 핵 폐기장 유치 저지활동, 자전거 및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그들은 굳은 결의로 이렇게 외친다. “전 인류의 문제인 지구 온난화를 심각하게 성찰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결단으로 지구를 구하자.”고 말이다. 그들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전 인류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놓치고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결단으로 구해야 할 대상은 지구가 아니라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죄인들이다. 그들을 복음으로 이겨오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또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해야 될 그리스도인들의 청지기적 사명은, 환경실천 프로그램 개발과 환경교육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목사도 있었다. 하나님의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신실함”이다(고전 4:2). 청지기에게 신실함이 요청되는 목적은, “지구를 식히는 것”에 있지 않다. 오직 이 땅을 새롭게 하시고 이 땅을 통치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에 있을 뿐이다. 그와 같은 신실한 기다림은 복음과 진리 전파라고 하는 온전한 열매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청지기에게 결코 “지구를 식히는 임무”가 주어진 적이 없다.
물론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및 환경 변화 문제는 심각한 사안이다. 이를 알리기 위해 제작된 영화 “불편한 진실”이라든지,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각종 보고서의 내용들은 ‘지구 온난화가 생태계 및 인류문명에 얼마나 큰 멸망을 안겨다 줄 것’인지를 강도 높게 다루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연구소의 제임스 핸슨 박사는 인디펜던트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현재 지구의 기후 변화는 통제 불능 상태에 있다”면서 “향후 10년 내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등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하지 못하면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모두 녹아내리는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G8(주요 7개국 + 러시아) 등 세계 지도자들에게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를 경고하기 위해 터키 동부 아라랏 산 정상 부근에 “현대판 노아의 방주”(길이 10m, 너비 4m, 높이 4m 크기)를 제작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문제에 대한 위기 의식은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세상 멸망의 근본 원인이 “환경을 소홀히 한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환경을 소홀히 한 대가로 지구 멸망의 위기를 예고하고, 이를 막기 위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를 모르고 있다. 한국 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는 이유는 다름아닌 “인간의 죄” 때문이다. 성경과 세계 역사를 통해 알게 되는 교훈은, ‘인간의 죄가 극에 달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과 멸망이 임한다.’는 사실이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적으로 대홍수를 일으키셔서 땅과 함께 사람들을 멸망시키신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도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으니 땅이 폭력으로 가득하였더라』(창 6:5,11). 롯의 날들에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신 원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들의 죄가 매우 중하므로』(창 18:20). 또 하나님께서는 아모리인들의 죄가 극에 달했을 때 그들을 카나안 땅에서 멸망시키셨고(창 15:16), 이스라엘의 죄가 극에 달했을 때 그들을 카나안 땅에서 쫓아내셔서 바빌론과 앗시리아의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 또 그들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래로 그분을 거부한 지속적인 죄에 대한 심판은 대환란이라고 하는 전무후무한 고난의 형태로 여전히 남겨져 있다. 더 나아가 이방인들의 죄가 다 차게 되는 이 마지막 때를 바라볼 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다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섭리 가운데 이 세상은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벧후 3:7).
환경의 심각성을 논하는 어떤 이들도 이 세상의 멸망을 부르고 있는 “죄”에 대한 심각성을 경고한 바 없다. 그에 대한 심판의 심각성도 논하지 않았다. 교회들도 마찬가지다. 비가 40일간 주야로 내림으로 발생하게 될 대홍수라는 심각한 “환경 변화”의 예고 앞에 노아가 무엇을 했는지 아는가? 대홍수라는 멸망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든지,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든지, 친환경적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든지, 산을 높게 쌓아 올려야 한다든지 하는 대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심판에서 피할 수 있는 “방주”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그린피스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제작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와는 차원이 다르다. 후자의 방주는 환경문제에 관한 경고를 일깨워 줄 뿐이다. 그러나 진짜 “노아의 방주”는 보다 더 중요한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바, 인간의 죄로 인한 심판의 경고를 보여 주고 있고, 그 심판에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다가올 멸망과 심판에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신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아직까지 유보되고 있다면, 그 사실은 분명 당신이 아직 심판에서 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마지막 경고장”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3:9). 친환경 정책으로 지구를 구할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음으로 당신 자신을 구해 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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