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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무신론자들의 어리석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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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4월호>
국내에서 종교가 없는 사람들의 수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에 관해서는 국가에서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통해 그 추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인구주택총조사”는 1960년부터 5년을 주기로 시행해 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종교”를 묻는 문항은 1985년도에 신설되어 조사가 시작되었고, 특히 10년 주기 조사 항목으로 분류되어 10년을 주기로 종교인 수를 조사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조사한 2015년도 자료에 따르면 “종교가 없다”라고 대답한 사람의 수가 무려 27,499,000명이었고, 이는 당시 전체 인구수인 49,053,000명의 56.1%로 종교가 있다고 대답한 사람의 수보다 많은 비율이다. 또한 2005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그 수가 21,826,000명(47.1%)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10년 사이에 5,673,000명(9%)이 증가했다. 물론 이러한 조사 결과가 곧 “무신론자들의 수”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구주택총조사”의 조사 결과는 말 그대로 종교가 없는 “비(非)종교인들의 수”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한국의 비종교인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는 이러한 비(非)종교인들의 비율을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의 지표를 가지고 분석했는데, 그 결과 “무신론자”로 분류되는 사람이 21.8%, 곧 599,478명 정도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중에서도 4%에 해당하는 23,979여 명은 “반(反)신론자”나 “전투적인 세속주의자”(militant secularist)로 분류될 수 있으며, 이들은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은 물론이요, 종교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최근에는 이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는데, 바로 “신(新)무신론자”라는 용어다. 이것은 2006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게리 울프에 의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고, 2004년에서 2007년 사이에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데닛, 샘 해리스, 리처드 도킨스 등 네 명의 소위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들에 의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신무신론자들은 과학이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성의 과학주의를 절대시하고, 경험 과학을 세계를 아는 유일한 지식 또는 최선의 지식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인간의 혼적인 영역에서 나타나는 것들, 이를테면 사랑, 친절, 온유, 선(善) 등은 “뇌 과학”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종교적인 신앙도 과학을 통해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세속적 도덕 원리와 과학적 발전을 바탕으로 종교가 없는 삶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발생하는 테러 같은 “종교적 폭력”을 예로 들면서 기존의 무신론자들보다 훨씬 더 강하게 종교를 비판하고, 종교를 악으로 규정하여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까지 여긴다.
이런 신무신론자들의 특징을 기존의 무신론자들과 비교해 보면, 기존 무신론자들을 뛰어넘는 특출난 독창성이나 차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신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맥락은 서로 동일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신무신론자들은 기존의 무신론자들과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무신론자가 되라고 “적극적”으로 알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독일의 “베를린자유대학교”의 토마스 젠크도 신무신론자들의 특징에 대하여, 그들이 내놓는 주장이나 내용보다는 그들이 공적 담론에 임하는 태도나 언어 사용과 관련하여 기존의 무신론자들과 차별성을 보인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들의 태도나 언어 사용은 단순한 적극성을 넘어 “공격성”과 “호전성” 그리고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네 명의 신무신론자들 중 하나인 “리처드 도킨스”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인데, 그는 그가 쓴 책 <이기적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 등을 통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을 향해 강한 어조로 종교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라고 역설하고 있다.
한편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그의 저서 <도킨스의 망상 : 만들어진 신이 외면한 진리>에서 <만들어진 신>에 대해 반증하는 것은 사실상 꽤 어려운 작업이라고 강조했는데, 이유인즉슨 그 책의 논증이 훌륭하다거나 그 책 안에 여러 가지 호의적인 굉장한 증거들이 열거되어 있어서가 아니고, 도킨스가 증거들을 제시할 때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만 매우 선별적으로 이용하고 있어서 그런 도킨스의 글을 논박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따분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킨스의 잘못된 설명들과 과정들 하나하나를 교정하고 논박한다 해도 그저 그런 교정 사항들을 장황하게 나열하기만 하는 굉장히 지루한 작업이 될 것이고, 결국 까탈스럽고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의 글이 될 것이 뻔하기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은 분량이 600여 페이지에 달하지만,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저서 <도킨스의 망상 : 만들어진 신이 외면한 진리>는 불과 160여 페이지밖에 안 된다. 꼭 필요한 부분만 추려 내서 논박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논박은 도킨스의 최근 저서인 <신, 만들어진 위험>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제1부와 제2부로 나누어진 이 책에서는, 특히 1부 전체를 할애하여 “성경”을 공격하고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살육을 즐기는 모순되고 편협한 비합리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도발하고 있지만, 내용은 빈약하고 증거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어 일일이 반박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작업이다.
“성경”은 그런 자들의 공격과 도전을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 한마디 말씀으로 처리해 버리신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시 53:1). 또한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책 창세기 1:1에서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공포하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쓸데없이 애를 쓰거나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의기양양하게 “나는 무신론자다!”라고 말하면서 전투적이고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고집 세고 교만한 자들을 어리석을 뿐 아니라 부패하고 가증한 일들을 행하며 모두 더럽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도다. 주께서 하늘에서 사람의 자손들을 내려다보시어 깨닫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려 하셨으나, 그들은 모두 곁길로 갔으며 그들이 모두 함께 더럽게 되어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시 14:1-3). 이들 신무신론자들이 어리석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 곧 성경의 예언들을 믿지 않되 성경을 여타 다른 종교 경전들이나 그보다도 더 못한 책으로 치부하면서 공격하기 때문이다. 『오 어리석은 자들아,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눅 24:25).
아무리 자신을 학구적으로 보이게 하고, 지적이고 세련되며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포장한다 할지라도, 결국 이들은 욕망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분리된 채 모든 지혜를 찾아 혼잡하게 만드는 자들일 뿐이다(잠 18:1). 또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신들의 의를 세움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고집쟁이들임을 보여 줄 뿐이다(롬 10:3). 신무신론자들이 그들의 교만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그들의 생각에서 지워 버리고 찾지 않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악인들이라서 그런 것이고(시 10:4), 또한 자기들이 행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해명해야 할 어떤 책임도 없다고 애써 부인하려 하기 때문이다. 즉 죽으면 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무신론자들은 문자적인 부활과(행 17:32) 문자적인 하늘나라 그리고 문자적인 지옥과 문자적인 심판이(계 20:11-15)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하지만 성경을 거부한다고 해서 성경에 확고하게 서 있는 “역사적 사실”은 물론, 미리 기록된 역사인 “예언적 사실”까지 모두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 2:5의 말씀대로 『다만 너의 완고함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계시될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을 뿐』이다.
무신론자로 살다가 죽은 조지 버나드 쇼는 유언을 남기면서 『영생의 말씀들』(요 6:68)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호기심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면, 성경은 가장 꺼림칙한 물건이다. 나는 이 책을 버릴 것이다. 이 책이 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 결국 그의 성경은 경매에서 50달러에 팔렸다. 그는 분명 자신이 갖고 있던 성경을 통해 혼이 지옥으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존귀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거부하고(엡 2:8) 성경을 거부하고 하나님 또한 거부하고 말았으니, 그의 혼은 경매에서 팔린 자신의 성경책 값만도 못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즉 그의 혼은 멸망하는 짐승들처럼 죽어 지옥으로 내려간 것이다.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20). 무신론자나 신무신론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모두 조지 버나드 쇼의 뒤를 따라 지옥으로 가게 된다.
무신론자들은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위해 과학주의나 경험 과학을 내세운다. 그러면서 정말로 하나님이 있다면 눈에 보이는 증거를 제시해 보라고 도전한다. 하지만 그런 비뚤어진 마음으로는 백날이 지나도 하나님에 관해 어떤 답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히 11:6)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증거를 먼저 보여 주면 믿겠다는 그런 자세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을 먼저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믿는 그 사람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증거를 먼저 보여 줘야 믿겠다면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을 가로막는 악순환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마호메트, 알라, 붓다, 마리아 등을 마음속으로 믿고 영접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속에 받아들이면(롬 10:9,10) 그의 생이 변화된다. 계속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면서 어리석게 살겠는가? 아니면 변화된 삶을 살겠는가? 모든 인간에게는 반드시 이 땅에서의 삶에 관하여 하나님 앞에서 정산할 그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