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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에 나타난 "의롭게 됨"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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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07월호>
성경이 기록된 첫째 목적은 "교리"를 위해서이다(딤후 3:16). 건전한 교리를 믿고 가르치는 것은 바른 성경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가 된다. 바른 성경이 없이는 바른 교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교리 중에서도 구원의 교리는 참으로 중요하다. 구원의 교리에 오류가 있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으로 완성된 속죄를 무효로 만들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신 혼들이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실은 변개된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 등을 고집함으로써 건전한 교리가 아닌 거짓 교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구원의 교리에 있어서 신구약의 차이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죄의 용서는 물론 의롭게 됨이라는 핵심 교리도 바르게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신구약에 나타난 "의롭게 됨"의 차이를 중심으로 바른 구원의 교리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1. 구약의 믿음에서 신약의 믿음으로
구약과 신약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것들 가운데 핵심적인 것은 구원받는 방법의 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받지만(고전 15:1,2), 구약은 다르다. (구약의 구원 방법은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말씀은 로마서에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다. 『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이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다. 죄인이 복음을 믿으면 그의 죄는 제거되고, 대신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주어진 의를 보시고 그를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17절의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앞의 믿음은 "구약의 믿음"이고, 뒤의 믿음은 "신약의 믿음"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는 구약의 믿음에서 신약의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다."는 뜻이다. 구약에도 믿음이 있으나 그 믿음은 신약의 믿음과 차이가 있다. 신약에서 믿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반면 구약에서 믿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다.
신약의 로마서 1:17 말씀은 구약의 하박국 2:4을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두 구절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하박국 2:4 말씀은 『그러나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아니라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아"이다.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기"라는 말을 옮겨 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구약의 믿음과 신약의 믿음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어떻게 다른가?
신약의 구원에 필요한 "믿음"은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약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약에서는 구원의 요건 중 어느 것 하나 인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없다. 이것은 구원에 관한 한 그 누구도 자기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엡 2:8,9).
그러나 구약의 구원에 필요한 것은 단지 믿음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이다. (구약에 행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믿음을 행위로 입증하고, 행위에 믿음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자기 믿음"이요, 행위 역시 "자기"의 믿음이 반영된 행위이므로 "자기 행위"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7의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이라는 말씀은 구약의 믿음에서 신약의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알려 주는 것이다.
2. 죄의 용서에 대한 신구약의 차이
우리가 고찰해 보려고 하는 "의롭게 됨"(justification), 즉 칭의(稱義 - 의롭다고 칭함)는 "용서"와 같은 뜻이 아니다. 그러나 먼저 용서의 의미를 깨닫고 구약의 죄의 용서와 신약의 죄의 용서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알게 되면, "의롭게 됨"의 의미와 "의롭게 됨"에 대한 신구약의 차이 또한 깨달을 수 있다.
성경에서 "용서"(forgiveness)는 "죄사함"(remission)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죄사함"은 빚진 것을 사해 주거나 없애 주는 것 또는 탕감해 주는 것으로, "죄사함"을 "용서"라는 말과 대체해서 쓸 수도 있다.
구약에서의 "용서"는 "덮는다"는 뜻으로, "잘못된 행동과 죄과를 덮어 준다"는 의미이다. 여전히 죄는 있으나 그 죄를 덮어서 죄과를 묻지 않는 것이다. 또한 "용서"는 "들어올려 딴 곳으로 옮긴다, 나쁜 것을 멀리 던져 버려 다시는 괴롭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뜻도 있는데, 이것은 신약에서의 용서에 적용되는 뜻이다. 구약과는 다르게 신약에서의 "용서"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로부터 분리된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죄를 제거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신구약의 용서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용서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값으로 사망의 상징인 "피"를 요구하신다. 그런데 죄값으로 드려진 구약의 피와 신약의 피는 서로 다르다. 구약에서는 죄를 용서하는 피가 "동물의 피"였다(히 10:4). 창세기 3:21의 피는 죽음을 의미했고, 창세기 4장의 아벨의 제사는 피를 포함했는데, 모두 동물의 피였다. 레위기 17:11은 혼을 속죄케 하는 것은 피라고 말씀한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음이라.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서 너희 혼들을 속죄케 하였나니, 이는 혼을 속죄(atonement)케 하는 것이 피이기 때문이라.』 또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말씀하는데, 구약에서는 동물의 피가 죄를 용서받는 근거가 되었다. 반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용서의 근거이다(엡 1:7, 골 1:14) -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이와 같은 구약과 신약의 용서의 차이는 "죄사함"(remission)과 "구속"(redemption)이라는 용어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구약의 죄의 용서를 의미하는 "죄사함"이란 출애굽기 34:7에 나타난다. 『자비를 수천 대까지 간직하며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나 범법자가 결코 깨끗게 되지는 아니하리니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과 그 자손들의 자손들 삼사 대까지 미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죄가 용서는 되지만 결코 깨끗하게 되지 않는 죄의 용서이다. 히브리서 10:1에서는 『율법에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그림자는 있으나, 그것들의 형상 자체는 없으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희생제물들로는 그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한다. 이렇게 죄인들을 용서는 하는데 결코 온전케 할 수 없는 이유를 히브리서 10:4,11에서 설명하고 있다 - 『이는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죄값으로 드려진 "동물의 피"로는 죄를 "덮는다"는 의미에서 용서는 되지만, 죄를 깨끗하게 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죄의 용서를 "죄사함"(remission)이라고 한다 -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remission)이 없느니라』(히 9:22).
한편 신약의 죄의 용서를 의미하는 "구속"이라는 용어는 "죄사함"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요한복음 1:29은 『그 다음 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는데, "죄를 제거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또 히브리서 10:12,14은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데, 죄인을 거룩하게 하고 영원히 온전케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죄사함"과 다르게 죄가 제거되고, 죄인을 깨끗하게 하고(거룩하게 하고) 온전케 한다. 이런 죄의 용서를 "구속"(redemption)이라고 한다 -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redemption),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엡 1:7, 골 1:14).
3. 신약의 의롭게 됨 - "믿음으로"
신구약의 죄의 용서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곧 신구약의 의롭게 됨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의 용서와 의롭게 됨은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지은 죄를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정당화시켜 주지 않으시며 죄인을 무조건 의롭게 하지 않으신다. 공의로운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고 죄악을 깨끗하게 하며, 죄인을 정당화하고 의롭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롬 3:3,4).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는 데 있어서 타협하지 않으시고, 결코 죄를 가볍게 다루지 않으신다. 인간의 법정에서도 의로운 사람은 의롭게 여기고 사악한 자는 유죄 판결을 받도록 되어 있다(신 25:1). 출애굽기 23:7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자를 의롭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어떤 보상을 바라고 죄인들을 무죄로 판결한 인간 재판관들에 대해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사 5:22,2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에는 반드시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계신다.
죄에 대한 대가는 죽음이다(겔 18:4, 롬 6:23). 율법과 공의는 모든 죄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요구한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롬 3:23) 어떤 사람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으며,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의 해결 방법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어 죄인을 구속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주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죄인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신다. "의롭게 됨"이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이며, 또 의롭다고 선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롭게 됨"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轉嫁, imputation)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전가"란 "누군가에게 무엇을 넘겨주는 것"이다. "전가"라는 용어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의를 넘겨받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죄를 넘겨받게 된다는 뜻이다. 즉 의로운 분이 불의한 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와 지옥에서의 형벌을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넘기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이런 의미에서 "의롭게 됨"이란 죄인이 자신에게 "전가"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률적 행위"를 말한다.
의롭게 됨의 근거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며(롬 3: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둘째, 구속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롬 5:9) - 『그러므로 이제 그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더 우리가 그를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받게 되리라.』 신약의 의롭게 됨이 신약의 죄의 용서인 "구속"과 그 근거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의롭게 됨은 "행함이 없이"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로마서 3:21-28은 신약의 의롭게 됨이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며, 어떤 행위(율법)도 필요하지 않다는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준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니라. 22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25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7 그러므로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의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에 의해서니라. 28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갈라디아서 2:16도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이와 같은 신약의 의롭게 됨과는 다르게 구약의 의롭게 됨에는 율법의 행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신약의 의롭게 됨을 통해 죄인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선언된다. 그의 죄들을 용서받고 죄의 형벌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된다. 결코 다시 죄인의 상태로 되돌아 가서 죄의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죄수에게 사형이 아니라 무죄가 선고된 것과 같다. 의롭게 됨을 통해 죄인은 하나님과 화평을 갖게 된다(롬 5:1).
4. 구약의 의롭게 됨 - "믿음과 행위로"
신약의 의롭게 됨이 행함 없이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과는 다르게 구약의 의롭게 됨은 행위로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구원이 믿음과 행위라는 두 요소가 충족되어야 함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 진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약의 복음을 가장 잘 기록하고 있는 로마서에서 발견된다.
1) 로마서 2:6-16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진리를 설명하는데, 모세의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모두 행위에 따라 의롭게 되는 구약의 구원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롬 2:6). 이 말씀은 오직 믿음이 아니라 "행위 구원"이 있음을 알려 준다. 노아의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때까지 주님께서는 이방인 민족들의 "행위"를 주의깊게 관찰하셨으며, 이 기간 동안에는 주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행한 행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응으로 갚아주셨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롬 2:7).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롬 2:10).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던 당시만 해도 십자가 이전의 이방인들이 선한 행위를 『행하여』, 또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방인은 양심에 따라 선을 행하고 유대인은 율법에 따라 선을 행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 구절들은 "행위 구원"이 있음을 설명한다.
한편 선행이 아닌 악한 행위들에 대한 보응은 무엇인가?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롬 2:8,9). 진리에 복종하지 않고 불의에 복종하는 이방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분개와 진노, 환란과 곤고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들을 개별적으로 일일이 다 알고 계신다. 유대인은 율법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에 처해질 것이요, 이방인은 양심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환란과 곤고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로마서 2:12,13은 『율법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요,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의하여 심판받게 되리니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의인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게 될 것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분명히 행위로 의롭게 됨을 기록하고 있다. 신약의 의롭게 됨과 다른 것이다. "율법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며,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다. 이들 모두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받고 멸망하게 된다. 13절 말씀처럼 율법은 행하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받았다고 또는 율법을 듣는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그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면 결코 의롭게 되지 못한다.
그러면 모세의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어떻게 되는가? 로마서 2:14,15에 해답이 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에 있는 일들을 행할 때에는 율법이 없어도 이것들이 스스로에게 율법이 되나니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 이방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도 없고, 십계명도 없으며, 구약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있는 것과 같은 일들을 "본성으로" 행한다. 또 "양심"과 "이성"이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데, 이것을 "마음에 기록된 율법"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곧 그들에게는 율법이며, 이것을 따라 행할 때 의롭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에게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율법을 주셨으며, 그것대로 행하라고 하셨다. 따라서 율법을 행하는 자는 의롭게 되고, 행하지 않은 자는 율법이 진리라고 믿는 것만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 이것이 구약에서 요구되는 행위에 의한 의롭게 됨이다.
2) 에스겔 33:12-20에서도 행위에 따라 의인과 악인이 구분되며 행위에 따라 죽고 사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말씀을 확인할 수 있다. 『12 그러므로 너 인자야, 네 백성의 자손들에게 말하라. 의인의 의는 그의 허물의 날에 그를 구해 내지 못할 것이라. 악인의 악에 있어서는 그가 자기 악에서 돌이키는 날에 그것으로 인하여 쓰러지지 아니하리니 의인도 그가 범죄하는 날에는 그의 의로 인하여 살 수 없을 것이라... 18 의인이 자기 의로부터 돌이켜 죄악을 저지르면 그가 그것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 19 그러나 만일 악인이 그의 악에서 돌이켜 합법적이고 옳은 것을 행하면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살리라. 20 그래도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도다." 하는도다. 오 너희 이스라엘 집아, 내가 너희 각자를 자기가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이처럼 구약의 이스라엘은 행위에 따라 심판받았으며, 의인과 악인의 판별 역시 각자의 행위에 따라 결정되었다. 구약에서는 한 번 의인이 영원한 의인이 아니며, 한 번 악인이 영원한 악인이 아니다. 각자의 행위에 따라 의인과 악인이 나뉘며, 각자의 행위에 따라 자신의 의롭게 됨이 결정되는 것이다.
3) 야고보서 2:21-26에도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약 2:21)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한편 로마서 4:3에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고 말씀한다.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로마서 4:3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이 의로 여겨졌다고 말씀하는데 관련 구절은 창세기 15:6이다 -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 반면 야고보서 2:21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는데 관련 구절은 창세기 22:12이다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15장의 상황에서 아브람(아브라함이 되기 전)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을 보시고 그의 의를 인정해 주신 것인데, 아직 그의 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으셨다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림으로써 그의 믿음을 행위로 입증한 창세기 22장에서 그의 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신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서 2:23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는 성경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한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그의 믿음이 그의 "의로 여겨졌고" 창세기 22장에서 비로소 "의롭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던" 창세기 15장과 그가 "의롭게 되었던" 22장 사이에는 무려 1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죄인이 구원받을 때, 즉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고, 또 즉각적으로 의롭게 된다. 믿음이 의로 여겨지는 일과 의롭게 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신약에서는 누군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아브라함처럼 17년 동안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아브라함의 의롭게 됨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은 야고보서 2:24이다 - 『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이 구절은 구약의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그의 믿음을 입증했고,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아브라함 이외에 창녀 라합도 아브라함과 같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었다(약 2:25) - 『이와 같이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그들을 보냈을 때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창녀 라합도 구약 시대 사람으로 당연히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약 교리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5. 대환란 때의 의롭게 됨
앞에서 구약의 구원, 구약의 의롭게 됨에는 개인의 믿음과 행위가 필요한 것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륜, 즉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경영방침 중에는 구약과 같은 방식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있는데, 대환란 때이다.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구원방법은 시대마다 차이가 있다. 구약 시대에는 언약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이런 거짓 교리에 속은 사람들은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영생이 보장되었다. 이것은 "오직 행위"만 요구된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물론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했는데, 이것은 "믿음과 행위"였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뿐만 아니라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했을 때 의롭게 되었다. 역시 "믿음과 행위"가 필요했다. 대환란 시대에도 구원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거나 경배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 역시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다. 천년왕국에서는 통치하시는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왕국의 법령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이것은 "오직 행위"만 요구되는 것이다. 반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시대는 현재 교회 시대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구약과 대환란 시대의 교리를 교회 시대의 교리로 적용하기 때문에 구원론에서, 특히 의롭게 됨에 관해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환란 성도들의 구원받는 방법에 대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중요한 말씀이 몇 구절 있다. 『그러자 그 용이 여인에게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 나가더라』(계 12:17).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계 14:12).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개들과 마술사들과 음행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누구든지 거짓말을 즐겨 행하는 자는 모두 다 바깥에 있으리라』(계 22:14,15). 이 구절들의 핵심적인 내용은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나 믿음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약 교회 시대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들과 연관하여 요한계시록 14:5에는 "흠이 없는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환란 성도들이며, "동정들"(virgins)로 불린다. 이는 그들이 순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환란 때에 이교도의 예배에(부도덕한 행위를 포함한) 참여하지 않는 것과 관련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믿고 그들 앞에서 미혹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를 거부해야 한다. 대환란 때는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거나 그의 표를 받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환란의 끝까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음으로 사탄을 이기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마 24장, 계 11,12,14,22장). 바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는 말씀은(마 24:13) 대환란 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환란 때의 구원은 믿음과 행위의 결합이며, 끝까지 자기의 행위로 믿음을 입증했을 때 의롭게 되는 것이다.
결론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단지 신약의 복음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구약과 대환란의 구원을 올바로 아는 것에서 완성된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도 야고보서 1,2장, 히브리서 6,10장, 마태복음 24,25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17장,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이 모두 대환란 때에 적용되는 말씀이며, 구약의 믿음과 행위로 의롭게 되는 교리가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 그리고 대환란의 의롭게 됨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성경 말씀을 모두 교회 시대에 적용하면 교회 시대의 구원에 결코 포함되지 않은 행위를 믿음에 더하여 행함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하며, 의롭게 되지도 못한다는 거짓 교리를 가르치게 된다. 현재 한국 교회들이 이런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으나, 이런 거짓 교리에서 벗어나려면 변개되지 않은 바른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만 한다. 특히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경영방침, 즉 세대주의 신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교회 시대에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극심한 대환란에 참여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해 들어야 할 사람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