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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에 관한 오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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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7월호>
시간이 지날수록 큰 교회, 작은 교회 할 것 없이 목회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재정 횡령, 심지어 성범죄 등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어, 그야말로 우리는 교회 시대의 『아주 어려운 때』(딤후 3:1)를 지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교회가 타락하는 근본 원인으로 “십일조”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십일조를 가지고 교인들에게 공갈을 치는 삯꾼들은 물론이요, 십일조를 내기 싫어하는 자들의 “십일조 폐기론”까지 등장하여 한국 교회에 “십일조 혼란”이 팽배해 있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 교회의 십일조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살펴보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거부하게 만드는 그들의 그릇된 주장들을 바로잡음으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올바른 십일조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첫째,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한다고 협박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말라키 3장을 “협박의 근거”로 삼는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도둑질하였도다. 그래도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니, 십일조와 제물들이라.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으니, 이는 너희와 이 온 민족이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음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와 내 집에 식량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의 창문들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부어 주지 않나 보라. 그것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장소가 없으리라』(말 3:8-10).
모세의 율법 아래에서의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았을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일이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주의 것』이기 때문이다(레 27:30).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와 내 집에 식량이 있게 하고』(10절)라고 말씀하시는데, 십일조를 악용하는 자들은 여기에서 말하는 창고가 있는 집, 곧 구약의 성전을 신약의 “지역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말라키에서 말씀하는 창고는 주님께 바쳐진 십일조로 먹고 살아야 할 구약의 레위인들을 위한 식량보관 창고로, 그것은 결코 신약의 지역 교회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살아 있는 상태의 식량인 소, 양, 염소의 십일조도 하라고 명령하셨고(레 27:32,33), 유대인들은 가축뿐 아니라 모든 채소에 대한 십일조 또한 해야 했다(레 27:30, 신 14:22). 심지어 향료와 양념의 십일조까지 해야 했다(마 23:23). 그 십일조의 목적은 앞서 말했듯이 주님을 제사장 직분으로 섬기는 구약의 레위인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었지만(민 18:24), 신약의 지역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금”은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영적인 것을 먹이는 사역자들을 포함한 성도들을 위한 것이다(고전 9:11; 16:1). 말라키 3장은 구약 유대인들의 십일조를 언급하는 것으로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강제할 수 없는 구절이다.
둘째로, 십일조를 하지 않을 목적으로 “십일조 폐기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십일조는 율법 아래 있었던 것으로 십자가에서 폐기되었기에 은혜 아래 있는 지금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십일조가 십자가에서 이미 폐기되었기에 이제는 각자 알아서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하면 되는 것이므로 굳이 수입의 10%까지 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성령님께서는 신약의 드리는 원칙에 대해서 고린도후서 9장에 제시해 놓으셨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넉넉하게 심는 자는 넉넉하게 거둔다는 것이라. 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실 수 있나니 모든 것을 언제나 너희가 필요한 대로 가질 수 있게 하심으로 모든 선한 일에 넘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후 9:6-8).
십일조 폐기론자들은 본문에서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는 강조하면서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피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비록 수입의 1%나 3%를 드렸지만 기쁘게 드렸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성경의 기준으로 볼 때 인색한 것이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는 것이 율법의 한계였다면,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기쁨으로』 『넉넉하게』 드리는 것은 은혜 아래 있는 특권이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넉넉하게 드린다는 것은 드리는 것을 특권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하는 것은, 그렇게 할 경우 하나님 앞에서 계속 인색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신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사실의 실제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율법은 “십분의 일”이라는 경계선을 그어 놓고 그 안에 가두어 두지만, 은혜에는 한계가 없고 자유가 있다. 은혜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초월해 하나님께 더 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도 드려졌고(창 14:20; 28:22), 율법 아래에서도 드려졌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구원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세의 율법 아래 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바치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바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십일조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님께 드리는 부분에 있어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십일조는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주님께 드리는 데 인색한 사람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지역 교회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해서 기도하면 모든 소요 경비가 신비적인 방법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경비는 성도들이 내는 십일조와 헌금으로 충당된다. 양을 치는 목자가 자신이 치는 양에게서 유익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이치이다. 이전에는 잃어버린 죄인들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양무리가 되어 지역 교회에 속했다면, 자신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는 교회가 운영될 수 있도록 자기가 가진 물질을 넉넉히 기쁨으로 드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너희에게 영적인 것들을 뿌렸다면 우리가 너희의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 해서 그것이 대단한 일이겠느냐?』(고전 9:11)
지역 교회의 모든 회원들이 십일조를 거부하고 자기가 정한 대로 인색하게 억지로 드린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이기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지역 교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겠는가? 통계에 의하면 회중의 15%가 전체 헌금의 85%를 충당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85%는 주님 앞에서 매우 인색하다는 얘기이다.
은혜 아래 있는 특권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넉넉하게 드릴 수 있다.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요 3:27)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기쁨으로 드리는 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자신의 몸이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임을 아는(고전 6:20) 성도는 자신의 몸과 물질을 드리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채워진 수많은 필요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믿는 성도는 기쁨으로 드리는 일이 마냥 기쁘게만 느껴진다. 바로 이것이 주님께 바르게 드림으로써 오는 믿음의 선순환(善循環)이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 주님을 위해 살 수 있겠는가?(롬 12:1) 주님께 자신의 몸과 물질을 아낌없이 드리는 사람은 그 결과 믿음도 늘어나게 되고, 주님께 대한 자신의 신실함 또한 스스로 입증할 수 있게 된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돈이 궁해서 인간에게 십일조를 요구하시겠는가? 십일조로 교인들을 등쳐먹는 가짜 목사들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고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라. 성도는 자신의 모든 소유가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를 통해 입증한다. 십일조를 성경대로 실행하고 있는가? 신실하게 드리는 십일조가 당신의 믿음을 보여 준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