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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간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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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3월호>
아름다운 간증이란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 자랑의 목적은 대부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 경험한 사실들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자랑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자랑하고 그것에 큰 가치를 두며 남들이 알아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자랑거리를 늘어놓으면서 반응을 살피는 그 사람과는 달리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시기가 발동하고 애써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있게 마련이다. 원래 진정한 의미에서의 “겸손한 자랑”이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자랑스럽게 아버지와 형들 앞에서 발설했다가 나중에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결국은 이집트 사람에게 종으로 팔려 가는 고난을 당해야 했다.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나, 그의 아비는 그 말에 주목하더라』(창 37:11). 이 세상일들을 자랑하는 것에 대해서 잠언 27:1,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 다른 사람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타인으로 하게 하고 네 자신의 입술로는 하지 말라』. 이 세상 사람들이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겪는 것은 무심코 늘어놓는 자랑 속에 교만이 있고, 그로 인해 상대방은 알게 모르게 시기심이 생기게 되고 그에 따르는 분쟁이 있다는 것이다. 설령 의로운 뜻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올바른 생각을 하고 살아도 시기를 받게 되는 등 어떤 일에 있어서도 사람들에게는 시기심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모든 고초와 모든 옳은 일을 생각하였더니, 이로 인하여 사람이 자기 이웃의 시기를 받은 것이라. 이것 또한 헛되며 영의 고통이라』(전 4:4).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육신적인 것들을 자랑하는 것과 영적인 사람이 영적인 것을 자랑하는 것은 결과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오, 주께 감사하고 그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사를 백성 가운데 알려지게 하라. 그에게 노래하고 그에게 시를 읊으라. 너희는 그의 모든 경이로운 일들을 말하라. 너희는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주를 구하는 자들의 마음이 즐거울지어다』(시 105:1-3). 주님을 자랑하고 그의 행하신 일들을 자랑하는 것은 그분을 높이는 것이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며, 경배드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자랑하고 높이는 것은 최상의 간증이 된다.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서 하는 자랑들은 시기와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분열을 가져오지만 주 안에서 주님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자랑은 아름다운 간증이 되어 모두를 더욱더 결속시키고 믿음 안에서 화평케 한다.
요셉의 자랑은 우리가 들어도 참으로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적인 자랑만은 아니었던 것을 그 꿈이 성취되는 결과를 봐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형들은 그의 꿈을 육신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였기에 화가 나서 시기심이 불타올랐지만, 아버지 야곱은 겉으로는 요셉을 당돌하다고 야단을 치면서도 요셉의 말에 주목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간증들이 발견된다. 물론 그 간증들을 남긴 자들의 삶이 모두 다 온전한 것은 아닐지라도 주님께서는 그 나름대로 그들을 사용하셨고 친히 영광을 받으셨다.
신약성경 속에서도 발견되는 아름다운 간증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 외에도 칠십 명의 제자들을 임명하시고 주님께서 가시고자 하는 곳에 대신 그들을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다(눅 10:1). 그들은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서 간증한다. 『그 칠십 명이 기쁨으로 돌아와서 말하기를 “주여, 주의 이름을 대면 마귀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하더이다.”라고 하니라』(눅 10:17). 사마리아 지방에서 주님께 복음을 전해 들은 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뛰어가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간증했다. 그녀는 남의 눈을 피해서 사람들이 뜸한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왔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사람들에게 자신의 구원 간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와서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을 나에게 말한 그 사람을 보라.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닌가?”라고 하니 그때 사람들이 성읍에서 나와 주께로 오더라』(요 4:29,30).
이것이 참 간증이다. 이전에는 자신이 행한 일들이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지냈으나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오히려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을 나에게 말한 그 사람을 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스테판의 명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증거하는 아름다운 간증이었다.
그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주 예수여, 나의 영을 받아 주소서.”』(행 7:56-59)라고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그의 순교의 배후에는 신약 교회사에서 최고의 간증을 지니고 있는 바울 사도가 있었다. 참으로 간증은 간증을 낳게 되어 있다.
베드로도 수많은 간증을 지니고 있었던 사도였는데 천사가 감옥에서 그를 구출해 준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그보다 더 가슴을 저미게 하는 간증은 주님 앞에서 칼을 휘둘러 말코의 귀를 잘라 버리는 불 같은 열정을 보여 주었던 것과는 달리 주님을 세 번씩이나 고의적으로 부인한 비참했던 경험이 그를 가슴아프게 하기도 했다. 베드로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그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에게 천국 열쇠를 맡기셨던 감동적인 간증이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 15장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확정될 때 사도행전 10장에 있었던 이방인 코넬료와 그의 일행의 구령 현장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형제 여러분, 당신들이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우리 가운데 택하시어 나의 입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느니라.』(행 15:7)고 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확정짓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은 참으로 다양하여 여기에 어떤 간증을 싣더라도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바울은 발에 걸린 가시채를 걷어차는 열심만 있었지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피로써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넣고 죽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비를 얻었고 주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으며 우리의 본이 되었다. 그는 유대인들을 사랑하여 예루살렘에 갔다가 체포되어 유대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구원 간증을 하고 그들에게 찔림을 준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곧바로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뿌리며 『저런 자는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라. 그는 살 자격이 없도다.』(행 22:22)라고 길길이 날뛰며 외쳐댔다. 그는 사도행전 26장에서도 같은 간증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그 사실을 어찌하여 당신들은 믿지 못할 일로 단정하시나이까?』(행 26:8)라고 하며 복음을 그들의 턱밑에까지 들이대며 페스토와 아그립파를 몰아붙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러나 페스토는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많은 지식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행 26:24)라고 하면서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그립파왕에게 『아그립파왕이여, 선지자들을 믿으시나이까?』(행 26:27)라고 질문을 던진 후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함으로써 그야말로 아그립파왕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거의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인 그대로일 뿐이다. 바울 사도는 수많은 간증을 남긴 채 신약성경 절반 이상을 기록하고 주님 품으로 갔다.
그 밖에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과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감동적인 간증들을 남기고 떠나갔는지 모른다. 주님께서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로부터 아름다운 간증을 듣기 원하시고 영광받으시기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간증을 듣다 보면 때로는 감정이 앞서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일관되게 전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의도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은연중에 자기 자랑이 나올 수 있고 때로는 신세한탄(?)으로 흘러서 정작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드러내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서 간증을 끝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회중 가운데에서 간증할 때에는 간증설교가 아닌 이상은 설교하는 어조로 말하는 것은 피해야 회중들이 한층 더 편하게 들을 수 있다. 그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설명하고 그분이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 어떠한 형태로든지 자신의 자랑이나 공로가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때로는 간증하는 사람들 모두가 말을 잘하고 발표를 잘하는 달변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혹시라도 표현 방법이 조금 모자라고 자기 자랑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느껴지더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회중들의 여유있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 속마음에 있는 것들을 적절하게 그 시각에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그 간증하는 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선교여행을 마치고 안티옥 교회로 돌아와서 그들의 간증을 나눴다. 『그들이 도착한 후 교회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일들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모두 설명하더라』(행 14:27).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간증의 목적과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서 어떠한 일들을 이루셨는지를 말하고 그분을 자랑하고 그분을 높여야 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페니케와 사마리아에 들러 이방인들의 개종에 대해서 간증했는데 듣는 모든 형제들이 크게 기뻐했다. 이처럼 한 사람의 간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게 되는 것을 볼 때 우리 가운데 아름다운 간증은 끝없이 이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울 사도의 눈물겨운 간증을 들어보고 싶다. 『우리가 약했던 것처럼 내가 부끄러운 것에 관해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어떤 일을 자랑한다면 (내가 어리석게 말하노라.) 나도 자랑하노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종이냐? (내가 어리석은 자같이 말하지만) 나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고 매도 헤아릴 수 없이 맞았고 더 빈번히 감옥에 갇혔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당하였으니 유대인들로부터 사십에 하나 뺀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몽둥이로 맞았으며 한 번은 돌로 맞았고 세 번 파선을 당하였는데 하루 밤과 낮을 깊은 바다에서 보냈으며... 수고하고 애쓰며 자주 깨어 있고 배고프며 목마르고 자주 금식하며 춥고 헐벗었노라... 나는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영원 무궁토록 찬양받으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내가 거짓말하지 않음을 아시느니라』(고후 11:21-31).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