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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을 다시 채우게 될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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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4월호>
창세기의 “땅을 다시 채우라”는 말씀과 관련된 영적 전쟁은, 이 땅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그 신선함이 가시지 않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처음 접했을 때 그 말씀의 정확성에 대해서도 감탄했지만,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 나오는 “땅을 다시 채우라”는 말씀이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땅을 다시 채우라”는 말씀은 창세기에서 두 번 나오는데, 곧 대홍수가 끝난 뒤에 노아에게 하신 명령에서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창 9:1). 영어로 “replenish the earth”인 “땅을 다시 채우라”는 말씀은,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히브리어 “말레”를 “replenish”(다시 채우다)가 아닌 “plenish”(채우다)나 “fill”(충만하게 하다)로 번역했어야 했다는 그릇된 반론의 벽을 부수어 버렸고, 그 말씀을 “이단적인 구절”로 못 박으면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이단의 성경으로 정죄하는 일 또한 흔들림 없이 견뎌 냈다. 하나님의 흠 없는 말씀을 인간이 판단해 버린 이런 몰상식한 일들이 있고 난 뒤에 지금은 인식이 바뀌어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읽는 이들의 저변이 확대되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리에 무지한 군상들을 상대로 벌인 영적 전쟁을 생각하면 그 치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배를 하나님으로 섬기는(빌 3:18,19) 비성경적인 교단 세력이 무지한 교인들의 눈을 가려 동반 멸망하는 것을(눅 11:52)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막으려 했으니, 실로 타오르는 불길처럼 맹렬한 전쟁이었던 것이다.바른 성경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노아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신 “땅을 다시 채우라”는 명령을 믿을 믿음이 없지만,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아담과 노아가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라는 점을 계시하심으로써, 왜 “땅을 다시 채우라”는 말씀을 기록하셔야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우리는 아래의 정형화된 체계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친히 영감으로 기록하신 체계적인 말씀들로 심오한 진리를 깨우쳐 주려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① 아담은 “땅을 다시 채운다”(창 1:28). 노아도 “땅을 다시 채운다”(창 9:1). ② 아담은 벌거벗었을 때 죄를 범했다(창 3:6). 노아도 벌거벗었을 때 죄를 범했다(창 9:21). ③ 아담에게는 이름이 언급된 세 아들이 있었다(“카인,” “아벨,” “셋”). 노아에게도 이름이 언급된 세 아들이 있었다(“셈,” “함,” “야펫”). ④ 아담의 아들들 중 한 명은 그리스도의 예표이고(“아벨”), 한 명은 저주 아래 있다(“카인”). 노아의 아들들 중 한 명도 그리스도의 예표이고(“셈”), 한 명은 저주 아래 있다(“함”). ⑤ 아담에게 “땅을 다시 채우라”(창 1:28)는 책무가 주어지기 전에 “홍수”가 있었다(창 1:2). 노아에게도 “땅을 다시 채우라”(창 9:1)는 책무가 주어지기 전에 “홍수”가 있었다(창 7,8장).
성령님께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기를 원하시는 부분은, 아담과 노아에게 있어서 “홍수의 심판”과 “땅을 다시 채우라”는 명령이 상호 공통적이라는 점이다. 즉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의 세상 또한 노아의 때처럼 물로 인한 심판으로 멸망한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땅은 그 우주적인 홍수에 휩쓸려 형체가 일그러진(창 1:2) 원래의 땅이며, 그것이 심판의 물속에 있다가 나옴으로써(창 1:9,10, 벧후 3:5,6) 그 위에 새로운 피조 세계가 “재창조”된 것이다(창 1:3-2:25).
이토록 분명한 재창조를 부인하는 자들은 창세기 1장의 창조가 그 2절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말하자면 그들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라는 1절 말씀을 “최초의 창조에 관한 일반적인 기술”로 오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창조에 관한 실제적인 기술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2절(『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은 성경의 다른 말씀과 비교할 때, 오히려 “심판으로 인해 이전 세상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창세기 1:2 -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예레미야 4:23-26 - 『내가 땅을 보았더니, 보라, 형체도 없고 공허하며 하늘들에는 빛도 없더라. 내가 산들을 보았더니, 보라, 그것들은 떨고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진동하더라. 내가 보았더니, 보라, 사람도 없고 하늘들의 모든 새들도 날아갔더라. 내가 보았더니, 보라, 비옥한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거기에 있는 모든 성읍들이 주의 면전에서 그의 맹렬한 진노로 무너져 내렸도다.』
위의 두 구절에서 첫 번째로 주목할 것은, 창세기 1:2에서는 아직 사람과 새들이 없는 반면, 예레미야 4:23-26에서는 사람과 새들이 있다는 점이다(그들은 재앙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날아가 버린다). 이것은 예레미야 4장의 말씀들이 사람과 새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에 임하게 될 심판, 곧 “미래의 대환란”에 관한 내용임을 보여 준다. 더구나 여기에 인용된 말씀 뒤에 이어지는 27절은 『이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완전히 끝내지는 아니하리라.』라고 “미래 시제”로 말씀함으로써, 장차 대환란의 재앙으로 인해 온 땅이 형체가 없고 공허할 정도로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특히 창세기 1:2과 예레미야 4:23에서 땅이 “공허하다”(void)는 말씀은 “이전에는 채워져 있던 것이 비워졌다”는 뜻인데, 이것은 창세기 1:2에서 “이전의 거주자들(하나님의 아들들, 욥 38:7)이 땅에 있었다가 비워졌고,” 대환란의 상황인 예레미야 4:23에서도 극심한 심판으로 “땅의 거주자들이 사라질” 것임을 보여 준다(렘 4:25,26).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온 땅이 대환란 때 황폐하게 되더라도 “완전히 끝내지는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27절) 회복에 대한 희망을 계시하셨다. 바로 그 점이 “현 세상”은 대환란으로 인해 황폐하게 되지만, 그 뒤 “만물이 회복되는 천년왕국”(행 3:21)이 수립되면 그 왕국은 천년왕국 백성들로 “다시 채워질” 것임을 내다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땅이 형체가 없고 공허하다”는 이 공통된 말씀은 창세기 1:1과 1:2 사이에 있었던 루시퍼의 반역으로 인한(겔 28:12-19, 사 14:12-15) 우주적인 심판이 예레미야 4장에 기술된 대환란의 예표가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두 심판 모두 “땅이 형체가 없고 공허하게” 되는 것과 관계있기 때문인데, 선행하는 재앙이 후속 재앙의 예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는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관계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① 땅이 형체가 없고 공허하게 된 뒤(창 1:2) “첫 사람 아담”(고전 15:45)은 “다스리는 왕”으로(창 1:28) 창조되어 “땅을 다시 채우라”는 명령을 들었다. ② 또다시 땅이 형체가 없고 공허하게 되면(렘 4:23, 대환란) “마지막 아담”(고전 15:45)께서 “다스리는 왕”으로(계 19:16, 시 2:6-12) 오시어 새로운 왕국 백성들로(마 25:34, 단 7:13,14) “땅을 다시 채우실” 것이다. 이처럼 땅은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고(창 1:28),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고(창 9:1),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천년왕국) 역사가 반복되는 것인데, 땅이 죄로 인해 비워지고 다시 채워진다는 점을 모르는 이들은 <킹제임스성경>의 “땅을 다시 채우라”는 말씀을 멸시하고 또 멸시해 버린다. 그들은 인간이 쓰레기통을 비우듯, “죄의 쓰레기로 가득 찬 땅”을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비워 버리시고 새롭게 시작하신다는 점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죄에서 정결케 되어 “모든 것이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서의 영적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들”에 관한 진리에 대해 감도 못 잡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천년왕국 때가 되면, 특별히 “자기 땅을 다시 채우는” 한 민족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선택에 있어서 그들의 조상으로 인해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이스라엘”이다(롬 11:28). 주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내 땅』이라 하셨고(대하 7:20), 구약의 이스라엘은 그 땅을 『주의 땅』이라고 했다(왕상 8:36). 또한 주님께서는 바로 그 땅에 그분의 이름을 두신다고 말씀하셨다(신 12:21). 말하자면 이것은 성경의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 땅”이라 불리는 이 장소를 주님 자신의 소유라고 그분의 이름으로 서명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주님의 땅을 주님 뜻대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므로 이스라엘이 그 땅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아무도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20:15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부당하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땅을 그분의 뜻대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일은 결코 부당하지 않은데, 일찍이 주님께서는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그분의 주권으로 주셨다(창 12:1).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창 15:18). 오늘날 소위 “팔레스타인 분쟁”이라고 하는 것은 땅 도둑들이 몰래 들어와서 하룻밤 사이에 그 땅을 자기 것이라고 사기 친 데서 비롯된 것일 뿐 성경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 땅 전체의 주인은 오직 아브라함의 씨인 “이스라엘”뿐임을 알아야 한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유대 민족 국가 수립에 동의한다는 영국의 밸푸어 선언(1917년 11월 2일)이 있은 이후 “회심하지 않은 상태로” 그 땅 일부 지역에 돌아와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라 불리는 대환란을 통과함으로써 민족적인 죄에 대해 심판을 받고 정결케 될 것이며, 그 후 주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면(겔 36:26) 그들은 민족적인 회심을 통해(슼 12:10-14) 자기들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또 한 번의 흩어짐이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회심하지 않은 채로 채우고 있는 그 땅은 다시 비워져야 하며, 그들의 민족적인 죄가 정결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약속의 땅을 진정으로 다시 채우는 역사”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대환란의 불을 통과하면서 은이 정련되듯 정련되고 금이 단련되듯 단련되고 나면,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어 그들을 가리켜 『나의 백성이라.』(슼 13:9) 하시면서 그들의 본토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슼 13:9)라고 고백할 것이다. 약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내어 주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게 될 것인데, 그러면 그들은 가로로는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창 15:18), 세로로는 “다마스커스 북동쪽에 있는 하맛에서 남쪽의 카데스까지”(겔 48:1-28),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원래의 땅 전체를 다시 채울 것이다(렘 24:6, 암 9:15). 그 어떤 민족도 이스라엘처럼 “자기 땅”에 들어갔다가 죄로 인해 추방되고, 그 후 회복되었다가 다시 흩어지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땅이 죄로 가득 차면 그곳을 비우고 새롭게 시작하시는데, 이 점을 이스라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가 증명한다. “땅을 다시 채우라”는 말씀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절대 진리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