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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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과 일치”에 대한 김상복 목사의 구차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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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4월호>

“연합과 일치”에 대한 김상복 목사의 구차한 변명



파충류 중에 카멜레온이라는 것이 있다. 주변 환경과 거의 흡사하게 몸의 색을 바꿔서 그것의 천적도, 그것의 먹이도 알아채지 못하게 자신을 숨기는 뛰어난 위장전술가이다. 푸른 나뭇잎에서는 나뭇잎처럼, 잿빛 나무줄기에서는 나무줄기처럼 색깔을 바꾸니, 어지간해서는 그것의 존재를 깨달을 수가 없다. 그것의 그런 모습을 좋게 보는 이들은 그것의 환경적응력을 빗대어 불굴의 인물들을 논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지조 없고 정체성 없는 간사하고 교활한 인물들에 빗대는 경우가 더 많다.
성경적으로 볼 때, 사탄은 뱀이며 파충류이다. 그는 카멜레온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변신의 천재이다. 그는 자연환경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킨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실 때는(계 19:16) “모든 교만의 자식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고(욥 41: 34),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천사”이실 때는(갈 4:14) “빛의 천사”가 되고(고후 11:14), 예수님께서 성경으로 논쟁하시면 똑같이 성경으로 논쟁하고(눅 4:1-10), 예수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라 불리시면(행 4:26-27) 자신도 기름부음 받은 “적그리스도”라고 불리는 것이(겔 28:14, 마 24:5)) 바로 사탄인 것이다. 이런 그는 지난 6천 년 동안 여러 모양으로 모습을 바꾸며 인류를 속이고 지배했다. 특히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보여 경배받기를 좋아하기에 전 세계의 모든 종교를 관장하며 경배를 받아 왔다. 그의 장악력은 기독교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며, 듣기 좋고 보기 좋은 위장전술을 통해 자신이 오는 길을 예비해 왔던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바꾼 것은 ‘연합과 일치’라는 위장전술이다. 그는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라는 요한복음 17:23 말씀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세계의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려 하고 있다. 연합과 일치는 한국 기독교계 내에서도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으며,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여기저기서 불꽃을 튀기고 있다.
지난 2월 28일자 (Korean Association of Independent Churches and Missions; 한국독립교회ㆍ선교단체연합회 신문)의 제1면 우측을 보면 “김상복 목사의 제언...”이라는 칼럼이 “금년에도 연합과 일치는 계속 논의될 것”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글은 기독교보에 실었던 “영적 하나 됨을 축하하자”라는 그의 글에 대한 최덕성 교수의 반론인 “한국 교회 연합일치운동의 우상: 포용주의”에 대해 자기 변명을 늘어놓은 기사이다. 이도저도 아닌 두루뭉술한 논리 전개가 연합찬성론자들의 특징인 바, 여기서 김상복 목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최덕성 교수는 이 문제에 관하여 비교적 바른 지식과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교회가 당면한 현실을 개탄해 마지않는 진실된 어조를 그의 글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의 영적 하나 됨은 어떤 영으로...
김상복 목사는 ‘영적 하나 됨을 축하하자’는 글에서,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영적인 하나를 말하는 것이지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사안에 대한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계시된 것을 부인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한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이지만 불분명한 부분은 서로의 소신이 다를 수 있고 더욱이나 성경과 무관한 보안법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최덕성 교수는 한국 교회의 연합일치운동을 무조건 따를 수 없는 이유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신학을 창출하자고 하며 ‘신학적 포용주의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유주의와 종교다원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신학을 포용하는 ‘세계 교회의 흐름’을 따라가며, 진리에는 등을 돌리고 이단사상에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영적 하나 됨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들이 신학적, 교리적 사항뿐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세상에 대한 자세와 처신에 있어서도 한 가지 의견과 생각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그들 안에 성령이 내주하여 그들을 인도하고 관장하신다면, 성경의 가르침이건 보안법이건 간에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에 따라 같은 믿음과 자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김목사는 성경의 가르침 중 불분명한 부분에 대해 서로의 소신이 다를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 나라만 해도 성경 해석에 대한 소신이 달라 갈라진 교파들이 수백 개에 이르는데, 도대체 그들에게 성령에 의해 분명하게 계시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저 복음 비슷한 것만 얘기하면 ‘신학적 포용주의’ 원칙에 따라 서로 간에 형제, 자매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영적 하나 됨은 성령의 하나 됨이 아니다. 성경의 진리에 대해 서로 다른 것을 말하고 그것으로 찢어지고 갈라진 그들은 성령이 없는 자들이며, 그런 그들을 영적으로 하나 되게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성령이 아닌 ‘다른 영’으로 하나 되게 하자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관여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책망하라.』(엡 5:11)는 성경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세상일에 관여하여 보안법을 폐지하라, 말라 자기들끼리 아우성치며 썩은 밧줄을 붙잡고 줄다리기를 하는 작태를 보여 왔으니, 이들을 두고 어찌 성령이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있어서도 전혀 하나 되지 못했고, 세상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아주 비성경적인 모습을 보이며 연합과 일치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최교수도 이에 대해서, ‘한국 교회 연합일치운동...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이단으로 취급당하고, 미지근한 태도를 취하면 진리에 반항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탄을 했으니, 그들 내에서도 한국 기독교계의 모습이 개탄스러운 듯하다.

김목사의 구차한 변명
최교수는 김목사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여러 면에서 꼬집었다. “보수계의 교회들이 ‘성경만이 유일한 계시다’라고 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교회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열린 신학,’ ‘특정 교리에 매이지 않는 신학’을 강조한다... 교회연합일치운동 단체들은 ‘신학의 창조적 다양성을 인정하자,’ ‘정통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동시에 포용하자,’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 교회 일치의 저해 요인이다’라고 하는 말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WCC는... 모든 종류의 신학을 포용하는 반면에 어느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하면서 종교다원주의로 치닫고 있다... WCC를 비롯한 현대 교회의 연합일치운동은 진리를 등지는 에큐메니칼 운동이다... 한기총은... 교리에 대해 느슨한 태도를 가지며 포용주의적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KNCC는... 일제 말기에는 신도이데올로기를 ‘고백’하는 이단 친일 배교 단체였다. 광복 후에는 친일파 인사들이 주도해 왔다. 이 단체는 이단과 오설에 대해 완벽하게 침묵하고 있다... 고신교단 총회는 한기총과 KNCC의 단일화를 지지하는 결의를 한 바 있다. 두 단체가 단일화되면 고신교단을 포함한 보수계 교회들은 결국 WCC에 종속될 것이다.”
옳은 말이다. 성경을 알고, 성경을 통해 세상을 볼 줄 알고, 그것으로 세상을 책망할 줄 아는 이라면 최교수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김목사의 구차한 변명은 다음과 같았다.
김목사 - “내 글에는 성경적으로 염려해야 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성경적으로 염려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았다. 『더러운 이익 때문에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쳐서 집들을 온통 뒤집어 놓는 그들의 입을 막아야 될 것이라』(딛 1:11).
김목사 - “소위 보수주의자들이 염려하는 기장과 기감의 목사들과 장로들을 자주 만나본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절대 다수가 복음주의자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수, 예수, 아멘, 아멘, 복음, 복음’만 남발하면 복음주의자로 여겨지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네 직무를 완수하라』(고전 1:23, 딤후 4:2,5).
김목사 - “자유주의자라고 비판을 받아 오던 강원용 목사마저도 지난 수년 동안 어떤 복음주의자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력한 복음을 선포하고 있어 많은 보수주의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신화와 전설과 설화가 가득한 책으로 보는 ‘자유주의자’인 그가 복음 비슷한 것을 설교한다고 복음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절간의 중들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에게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마 7:21).
김목사 - “한국 교회의 다양한 지도자들과 폭넓게 대화해 보지 않은 분들의 지나친 염려로 보인다.” 그러나 폭넓게 대화하면 너 좋고 나 좋고 식이 된다. 도대체 ‘폭넓게’가 무슨 말인가? 성경적 관점으로 보면, 최교수의 ‘염려’는 전혀 지나치지 않았다. 『그 외부의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나에게 밀려드는 것은 모든 교회에 관한 염려라』(고후 11:28).
김목사 - “이제 새롭게 나와 다른 교단과 다른 지도자들과 만나 대화를 해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나와 다른 교단과 다른 지도자들을 만나 대화한다고 해서, 목사직으로 밥먹고 사는 이들이 그들의 속내를 드러낼지 의심스럽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롬 3:4).
김목사 - “오늘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거의 복음주의 신앙과 신학을 소유하고 있고 성경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것들을 거부하는 목회자는 거의 없다.” 오늘날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참으로 그러해서, 이 땅에 교파와 교단이 난립하고, 강단에서 죄와 죽음과 심판과 지옥은 전하지 않고, 자신의 회중의 영적 생명은 뒷전으로 한 채, 교회 성장을 위해 교인수 불리기에만 급급한 것인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을 버려 두고 도망치느니라』(요 10:12).

옳은 소리 앞에 이런 식으로 답변했다면 김상복 목사는 하나님의 일꾼이 아님이 분명하다. 사탄이 마지막으로 쓰고 있는 위장전술은 듣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연합과 일치’이다. 그는 이것으로 적그리스도가 오는 길을 다져 놓기 위해 하나님의 종을 가장한 ‘독보리’(가라지 - <개역성경>) 같은 인물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들 비슷비슷해서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더라도, 이번 경우처럼 『빛의 자녀』들이 책망했을 때 『책망받는 모든 것이 빛에 의하여 드러나니』(엡 5:8,13), 그들의 정체가 백일하에 폭로되고 만다. 금년에도 연합과 일치는 계속 논의될 것이라고 했지만, 필자에게는 ‘금년에도 나의 정체를 계속 드러낼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눅 17:1). 적그리스도가 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지만, 그를 위해 쓰임받는 그 사람에게는 과연 어떤 화가 닥칠까? 그의 혼이 불쌍해진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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