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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해 일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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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9월호>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해 일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지난 8월 7일부터 10일까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는 우리 나라 기독교인들이 가서 “예루살렘 평화행진” 행사를 가졌다. 이것은 작년에 1차 행사를 가진 후로 다시 한 번 가진 2차 행사였다. 작년의 1차 행사는 몇몇 선교단체가 주축이 되었는가 하면, 이번 2차 행사는 할렐루야교회(김상복 목사), 온누리교회(하용조 목사), 지구촌교회(이동원 목사)가 주축이 되었다.
첫날인 7일에는, 이번 행사의 공동 주최자인 그 세 교회가 갈릴리 호수, 갈릴리 팔복교회, 칼멜 산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둘째 날에는 예루살렘 시청 광장과 힐렐 거리에서 야외 문화행사가, 베들레헴 피스센터에서는 실내 문화행사가 있었다. 사물놀이, 힙합댄스 공연, 한국전통차 체험전, 한복 패션쇼, 장구춤과 부채춤, 태권도 시범과 강습, 히브리춤 등을 선보였다.
8일부터 사흘간은 저녁에 주최자인 세 교회에서 연합집회를 가졌다. 김상복 목사는 “화해”를 주제로 설교했는데, “예루살렘의 진정과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주체임을 깨달을 때 가능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복원될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할 분깃이 한국 교회에 있다.”라고 선언하고, 영적․물리적인 모든 장벽을 허무는 데 한국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자고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 남쪽 오펠가든(옛 솔로몬 성전 자리)에 모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기독교와 유대교 간의 막힌 담을 무너뜨리는 중보기도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10일에는 2,500명 가량의 참석자들이 “팔레스타인을 사랑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예루살렘 월스파트에서 베들레헴 예수탄생광장까지의 6km 거리를 약 2시간 동안 행진했다.
행사 주최 측 교회들이 소속된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신문에서는(7월 29일자) 이 행사를 선전하면서 일면기사 맨 처음에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해 기도하라는 시편 122:6 말씀을 적어 두어 이 행사의 근거 구절로 삼았다.
온누리교회 교인 5명은 행사 기간 중 갈릴리 호수에서 침례를 받고 평생을 “피스메이커”(peace-maker, 화평케 하는 자)로 살 것을 결단하기도 했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루살렘에 전쟁과 불화가 계속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참된 화평이 이루어져 그런 비극들이 종식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평화행진을 주최하고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 것인가? 한국 교회들이 이 행사를 앞으로 좀더 장기적이고 대대적이고 국제적인 행사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중이므로, 이 행사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서는 분명히 잘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번성하리로다.』(시 122:6)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러면 그것으로 이 행사의 정당성과 당위성이 입증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답은 “No.”이다. 이것은 성경을 참으로 교묘하게 잘못 해석한 사례 중 하나다.
자, 과거 역사와 성경 말씀을 통해 예루살렘의 화평에 관해 숙고해 보기로 하자.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에 의해 다윗왕이 여부스인들에게서 빼앗아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온 후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다(삼하 5:6,7). 그러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배교하여 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했을 때 찬탈당했고, 페르시아 제국 기간인 B.C. 445년 느헤미야에 의해 성벽이 재건되고 잠시 회복되었으나, B.C. 332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B.C. 320년에는 프톨레미 소테르에게 점령당했고, B.C. 302년에는 이집트에 합병되었다. B.C. 170년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성벽이 파괴되었고, B.C. 63년에는 폼페이에게 점령당했다. B.C. 44년에는 헤롯대왕의 아버지에 의해 성벽이 재건되었다. 그후에 이스라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왕이신 그분을 거부함으로써 여전히 화평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하여 십자가에 못박기 직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적어도 이 너의 날에 너만이라도 너의 화평에 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너의 눈에서 감추어졌느니라』(눅 19:42). 구약성경에 예언된 화평의 통치자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화평의 왕국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예루살렘의 화평”이 이루어졌겠지만, 결국 그분을 거부함으로 화평은 “예루살렘의 눈에서 감추어진” 일이 되고 말았다. 곧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루살렘의 진정한 화평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그 도성에서 다시 떠나 버리게 된 것이다. 고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시면서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후로도 사도들을 통해 그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한동안 주어졌지만 그들은 철저히 거부했고, 결국 예루살렘에서는 여전히 화평을 맛보지 못하게 되었다.
A.D. 70년 9월 8일, 예루살렘은 로마인들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다. A.D. 130년 하드리안에 의해 재건되었고, A.D. 335년 콘스탄틴에 의해 로마카톨릭 건물들이 세워졌다가, A.D. 614년에는 페르시아인들에게 점령당했고, A.D. 637년에는 사라센족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그후 이슬람교 건물들이 세워졌다. A.D. 1076년에는 투르크족에 의해 점령당했고, A.D. 1098년에는 이집트로 넘어갔다. A.D. 1099년에는 십자군들에게 점령당했고, A.D. 1187년에는 살라딘에게, A.D. 1228년에는 기독교인들에게 넘어갔다. A.D. 1243년에는 카리즈미안들이, A.D. 1517년에는 오스만 제국이 차지했고, A.D. 1832년에는 이집트로 넘어갔고, A.D. 1841년에는 다시 터키로 넘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에게 넘어갔다. A.D.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을 비롯한 그 후에 이어진 중동 전쟁, 그리고 현재도 계속되는 각종 테러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에는 성경이 말씀하는 화평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면 예루살렘에는 언제까지 비극이 계속될 것인가? 그 비극은 언제 끝날 것인가? 한국 교회가 예루살렘 땅을 밟으면서 플래카드를 들고 평화행진을 하다 보면 끝날 것인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을 보거든 그때는 그 패망이 가까운 줄 알라. 그때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피하고, 도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시골로 가되,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도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이는 이 날들이 복수의 날들임이니, 모든 것을 기록된 대로 이루려 하는 것이라. 그 날에는 아이를 밴 사람들과 젖 먹이는 사람들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그 땅에는 큰 고난이, 이 백성에게는 진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눅 21:20-23).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 세상 끝에 있을 대환란 때 있을 일이다(마 24:3,15-21). 그 뒤에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또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눅 21:24). 예루살렘의 비극은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바로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이다. 그 “이방인들의 때”는 느부캇넷살의 바빌론 제국 기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끝은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남겨 두고 측량하지 말라. 이는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이 마흔두 달 동안 그 거룩한 도성을 발 아래 짓밟을 것이기 때문이라』(계 11:2). “마흔두 달,” 이 기간은 바로 적그리스도가 활동하게 될 전무후무한 대환란 기간인 것이다(계 13:5). 그 뒤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으로 다시 내려오실 것이며, 그때가 바로 예루살렘에 비로소 화평이 이루어지리라고 성경에서 예언한 바로 그 시점이다. 곧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나타나셔서 적그리스도를 멸하시고, 이 땅에 그분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는 그때에야 예루살렘에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 참된 화평의 소식이 선포될 것이다.
『좋은 소식들을 가져오며 화평을 선포하고 번영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선포하여 시온을 향하여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시도다.” 하는 자의 발이 산들 위에 있을 때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가!』(사 52:7)
시온, 바로 예루살렘에 화평이 선포되며,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될 것이다. 이것은 영적 통치가 아니라 재림 때 땅 위에 내려오셔서 행하시는 실제적인 통치이다. 다음 관련 구절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보라, 좋은 소식을 가져오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들 위에 있도다! 오 유다야, 네 엄숙한 명절들을 지키고 네 서원들을 이행하라. 이는 악한 자가 더 이상 너를 통과하지 못할 것임이라. 그가 완전히 멸절되었느니라』(나 1:15).
“악한 자”(살후 2:8-10), 곧 멸망의 아들인 적그리스도가 완전히 멸절되었을 때, 그때에 비로소 예루살렘에 화평이 선포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교회가 예루살렘 평화행진으로 그 화평을 이룰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성경을 보건대 그것은 아주 시대착오적이다. 성경 말씀이 사실일진대, 교회는 예루살렘에 참된 화평을 이루기 전에 공중으로 들려 올라갈 것이다. 예루살렘에 화평을 이루는 것은 결코 교회의 사명이 아니다. 참다운 교회라면 성경적으로 당치도 않은 일에 시간과 어마어마한 돈과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참다운 교회라면 성경적인 명령대로 예루살렘에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다가올 진노와 심판에서 구원받으라고 복음을 전할 것이다.
할렐루야교회, 온누리교회, 지구촌교회 목사들은 헛된 꿈을 꾸며 성도들에게 빗나간 비전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현지의 유대인 그리스도인 한 명은 이번에 이렇게 말했다. “예루살렘 평화행진 자체가 중동에 참된 평화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한국 교회보다는 그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뭔가를 좀 아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시 122:6). 참다운 교회라면 성경에서 빗나가지 않을 것이며, 성경에서 빗나가지 않는다면 “예루살렘의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과 더불어 이룩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참다운 교회가 이 말씀에 순종하는 길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구원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서 예수님께서 속히 오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다 속히 오시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좀더 기다리시는 것뿐이다(벧후 3:9). 교회들이 평화행진이나 하며 구원의 복음은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만큼 조금이라도 더 기다리려 하실 것이다. 그러면 예루살렘의 화평은 그만큼 더 지연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평화행진 같은 것으로 낭비하는 교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예루살렘의 화평을 지체시키는 교회들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