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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왜곡하는 두 에큐메니칼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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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8월호>
예배를 왜곡하는 두 에큐메니칼 운동가지난 6월 7,9,14,16일 경기도 이천에 소재한 실천신학대학원 캠퍼스에서는 “목회자를 위한 국제예배심포지움”이 개최되었다. 이 심포지엄은 미국 듀크대학교의 웨인라이트(G. Wainright) 교수와 보스턴대학의 터커(Karen B. W. Tucker) 교수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예배”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됐는데, “예배신학과 역사, 말씀예식, 세례 그리고 성만찬을 주제로 깊이 있는 강좌”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번 심포지엄에 강사로 나선 웨인라이트 교수는 1976년부터 1991년까지 WCC의 신앙과 직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82년에는 “세례와 성만찬 및 교역”에 관한 리마 문서의 최종 문안 작업을 위한 위원회 의장직을 맡았었던 사람으로서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강의에서 “예배라고 하는 공동의 실천을 통하여 교회연합의 실천이 실현될 수 있다.”라고 하면서 공동예배문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특히 WCC에서 세계교회의 예배의식 규범으로 만들어낸 리마 문서를 강조하며 강의하였는데 이 문서는 현재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세계 200여 개 교회(교단)에서 찬성하여 쓰고 있다.
“또 다른 강사 터커 교수는 교회음악을 전공하고 예배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예전에 대해서 많은 강의를 했다. 그는 세계감리교협의회 예배분과 위원장으로서 내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세계감리교대회의 모든 예배순서를 담당하고 있다.”(2005년 6월 20일, <크리스찬투데이>, 제10면)
웨인라이트는 특히 성만찬에 대해서 크게 강조하면서, 개신교회에서 성만찬이 사라진 점을 지적하면서 “초대 교회에서 행해졌던 예배 의식의 강조 속에 성만찬과 말씀 예식이 조화를 이룬 예배가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만찬이 포함되는 예배만이 온전한 예배”임을 강조, “매주일 성만찬이 포함되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만찬에서 나누는 떡과 포도주를 이 땅에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를 기억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종말의 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축제를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큐메니칼 운동가답게 그는 “이 성찬이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연합과 더불어 성도 간의 연합이 상징돼야 하고, 이 연합은 또한 이 사회와의 연합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결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강사 모두 “지금의 개신교는 설교를, 천주교는 성찬만을 강조한다.”고 하면서 균형 잃은 예배의 부당성을 비판하고, “성만찬이 없는 설교와 설교가 없는 성만찬 모두는 예배를 왜곡하는 행위”라고 요점을 말하면서 예배에서의 성만찬 회복을 강하게 주문했다고 한다(기독교연합신문, 2005년 6월 26일, 제6면).
참 이상한 일이다. 믿음에 관해 답을 할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서 무엇을 듣고 논할 것이 있다고 이들을 미국에서 불렀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두 강사는 스스로도 참된 경배가 어떤 것이며, 그들이 “성만찬”이라 부르는 주의 만찬의 성경적인 의미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행로가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지한 종교인들에게 자신의 교리와 실행을 따르라 한다. 과연 이들과, 이들에 동조하는 자들의 결말은 어디에 나타나겠는가?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을 말하며, 이 심포지엄에서 다룬 “예배”는 공적 예배이다. 그리스도인이 지역 교회로 모여 수행하는 가장 근본적이며 근원적인 실행이 바로 예배이다. 예배를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고, 자백과 회개로 스스로를 쇄신하고, 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은혜와 진리로써 더욱 강성케 하셔서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며(사 43:7, 고전 10:31)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찬양케 하기 위해 구원하셨기 때문에(엡 1:5,12,14),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신 참 목적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예배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의 존재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확인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과 지역 교회의 사역에서 제 일순위를 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를 규정해 놓으셨다.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요 4:23,24).
참된 경배란 무엇인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경배는 무엇인가? 간단히 살펴보자면, 첫째로 성경은 참된 경배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임을 전제한다. 구원받지 않은 기독교인이 “예배” 혹은 “미사”라는 의식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신다. 웨인라이트와 터커 교수와 이 글을 읽는 독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가?(롬 8:15, 고후 13:5)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
둘째로 참된 경배는 영으로 경배드리는 것이다. 이는 영이 거듭난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 다가서는 것을 말한다. 물론 한국 교회는 은사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의 육감적인 현대 기독교가 추구하는 감각적이며 세속적이며 육신적인 요소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매주마다 한국 교회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철저히 몰아내는 짓이다.
셋째로 참된 경배는 진리로 경배드리는 것이다. 진리는 무엇인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7:17). 경배의 모든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해야 하며, 참된 경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쳐 그 말씀 속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이다.
역으로 바른 성경도 없고, 성경적인 원리들로 운영하지 않는 교회에서 경배를 드린다면, 결코 진리로 드리는 경배라 할 수 없다. 필자가 두 교수가 예배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고 단언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이다. 이들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그 건전한 교리들을 버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자들인데 이들이 진리로 드리는 참된 경배에 대해서 무엇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다(요 8:47).
성경적인 주의 만찬
또한 이들은 매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만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웨인라이트 교수가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면서 “매주일 성만찬이 포함되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한 말은 큰 모순이다. 왜냐하면 성만찬으로 “매주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도 참된 경배와도 신약 교회의 주의 만찬과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보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롬 14:17). 또한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라』(눅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므로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예배의 의미에도 이는 맞지 않는다. 참된 경배는 아버지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라 하였다.
게다가 성경 어디에도 매주 “성만찬”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쪼개진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며(고전 11:24,25), 또한 바울은 간명하게 주의 만찬의 의미를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전 11:2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을 예배의 한 부분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주의 만찬의 의의는 주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해 그 몸을 드리셨고 그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주께서 오실 때까지 기억하며 선포하게 하는 데 있다. 쉽게 말해서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뒤로는 구주께서 자신의 죄로 인해 몸이 찢기시고 피흘리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앞으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오심을 바라봄으로써 주께 대한 사랑과 믿음과 섬김을 순수하게 유지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고후 5:15).
간혹 주의 만찬을 매주 실행하는 것이 성경적이며 더 거룩하고 경건한 것인 양 가장하는 무리들의 주장을 듣게 된다. 이들은 사도행전 2장의 『빵을 떼는 것』이라는 표현에 집착한다(행 2:42,46). 이 표현이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요 6:51) 자신의 몸을 찢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을 상징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은 사실이다(마 26:26, 막 14:22, 눅 22:19, 고전 10:16; 11:24). 그러나 이렇게 상징적으로 쓰여지기 이전에 일차적으로 빵을 떼어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문자적인 표현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행 20:7,11; 27:35, 눅 24:30,35).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을 근거로 주의 만찬을 매주 예배마다 행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이다. 그 본래의 의의에 따라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다시 오심을 고대하는 마음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설령 사도행전 2장의 “빵을 떼는 것”을 주의 만찬으로 굳이 만들려고 한다면, 성경 그대로 『날마다』, 『또 집집마다』 실행해야 할 것이다.
참된 경배자가 되려면
교회 시대의 마지막 날들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동향을 보면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 두 교수는 참된 거듭남과 진리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순종도 없이, “예배”를 논했다. 개신교도 매주 성만찬을 행하고, 천주교도 “말씀 예식”을 첨가하여 동일한 예배의식을 만들자는 것이 그들의 의도다. 이들이 말하는 “성도 간의 연합”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공동의 예배로 “이 사회와의 연합”으로까지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 두 교수와 그들과 동일한 입장을 가진 무지한 죄인들이 걸어가는 길은 결국 모든 교단과 교파와 심지어 모든 종교까지 하나로 만드는 세계 교회의 지붕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버린 무리들이 드리는 이러한 거짓과 불의의 경배는 적그리스도를 위한 예배가 될 것이다. 대환란 기간 동안 그는 재건될 성전의 자비석 위에 앉아 스스로 하나님이라 칭하면서 자신이 요구할 경배를 예비하는 것이다(살후 2:4,10). 진리의 하나님을 진리로 경배하고 섬기라!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 거짓과 불의 가운데 적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계 13:8,15).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가? 진리를 알기 원하는가? 영원하신 왕께서 받으시는 참된 경배를 드리기 원하는가? 성경은 『바로 지금이라.』(요 4:23)고 말씀한다. 구원받지 않고 종교인으로 살았다면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으라! 또한 바른 성경을 구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주 하나님을 매일 만나며 그분과 교제하라! 이 땅과 한국 기독교에 만연한 죄와 거짓과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오직 그대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 그대의 삶 전체가 합당한 예배가 되게 하라!(롬 12:1,2) 거짓과 불의를 자행하는 무리들에게서 분리하라!(고후 6:17,18)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준행하며,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라!(딤후 2:19-22) 보라, 우리가 매일 경배하고 매주 함께 예배로 나아가며, 주의 만찬으로 다같이 기억하며 간절히 고대하는 주께서 이제 곧 오신다(계 22:1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