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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본질을 파괴시키는 멀티미디어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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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9월호>
예배의 본질을 파괴시키는 멀티미디어 예배외적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교회에 출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경배인데, 온누리교회를 중심으로 한 경배와 찬양, 새들백교회에서 시작된 열린 예배 등 새로운 예배의 형태가 그 본질을 파괴시키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처럼 한국 교회는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나 너희가 배운 바 전통들을 지키라.』(살후 2:15)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무시하고 새로운 예배 형식을 도입하고 있다.
경배와 찬양, 열린 예배에 이어 요즘은 ‘멀티미디어 예배’(영화 예배)가 유행이라고 한다. 6년 동안 영화 설교를 실행해 온 하정완 목사는 서슴없이 ‘영화는 - 폭력성과 선정성으로 문제가 되는데도 -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석원태 목사(경향교회 원로목사)는 ‘교회가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기 위해 나오는 곳이라면 극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하늘로부터 오는 힘을 공급받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교적 삶을 위하여 다시 세상 가운데로 흩어지고, 그 결실들을 모아 다시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교회는 결코 오락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라고 바르게 비판했다.경배는 그리스도인의 최상의 순종이다. 따라서 사탄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경배를 방해하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영화 예배와 같은 방법으로 예배의 본질을 흐려 놓는 것이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언제부터인가 하나님께서는 재즈와 락을 통해서 찬양받으시고 나이트 클럽에서 경배받으시며 힙합 댄스에 기뻐하시고 영화를 즐겨 보시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하나님이 되셨다. 사람들은 그만큼 다가서기 편하며 섬기기 편리한 하나님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치 우상을 섬기듯이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섬기는 것이다. 내가 기뻐하니까 하나님께서도 기뻐해 주실 것으로 생각하며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무엇을 하든지 다 받아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극도로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자기 만족이다.
육신적인 사람의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가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사 14:13,14). 온통 ‘내가,’ ‘내것,’ ‘나는,’ ‘나’... 자기 자신뿐이다.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며, 각자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끝은 죽음의 길』이라고 경고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잠 14:12; 16:25).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진리를 담는 그릇은 시대와 문화의 차이라는 옷을 입고 변화해야 한다. 예배는 본질적인 부분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예배의 목적이 본질적이며 불변의 진리라면 예배의 형식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은 좀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이고 『옳게 보이는 길』이다(롬 16:18, 잠 14:12).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하나님께서 과연 그러한 예배를 받아 주시는가?’ 하는 점이다. 경배와 찬양이든지 열린 예배든지 멀티미디어 예배든지, 나이트 클럽에서 드리는 예배든지, 사람들은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 의지와 권리가 있다(판 17:6; 21:25). 그러나 그러한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며, 예배를 받을지 거부할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의 중심에는 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리잡고 계셔야 한다. 인격과 마음과 몸이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집약되어야 한다. 자기 만족을 위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참된 예배 가운데서 얻는 만족과 기쁨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과거를 통한 교훈 - 자의적인 섬김은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피조물은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카인과 아벨도 하나님께 경배드리러 나왔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나왔는데, 카인은 땅의 열매를 제물로 아벨은 어린 양을 제물로 드렸다. 카인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가장 좋은 열매들만 골라서 정성스럽게 준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카인의 경배는 거절하시고 아벨의 경배만을 받아 주셨다. 왜일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노력이 아닌 피를 통한 경배만을 받아 주시기 때문이다(신약의 경배는 의로운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칙과 방법에서 벗어난 카인의 경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궤를 수레로 옮기다가(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궤를 붙잡으려고 손을 내민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게 된 것처럼 자의적인 섬김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삼하 6:3-8). 하나님을 섬기려는 좋은 의도는 있었지만 그것이 지식을 따라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롬 10:2). 레위기 10장의 나답과 아비후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원칙과 방법을 지키지 않고 “다른 불”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려다가 모두 죽고 말았다(레 10:1,2).
나름대로 주님을 섬기려는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경배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원리와 원칙을 제시하셨고 그것을 지키신다.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서는 따라야 할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원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이다. E.M. 바운즈가 “기도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경배의 목표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다.
참된 경배자들이 되자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요 4:23,24).
경배는 최상의 순종이기에 주일 경배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유가 어떠하든지 경배에 소홀하게 되면 간증을 잃게 되며 영적으로 침체된다. 마귀는 경배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성도들로 경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또 경배의 본질을 세상 문화를 통해 흐려 놓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실패한 경배자들을 만들려는 것이다.
주일 경배의 핵심은 설교에 있다. 설교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은 위로와 힘을 얻고 잘못된 행실에서 돌이키며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다. 그만큼 설교가 중요하기에 강단은 권위와 신뢰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 예배와 같이 설교시간에 사용되는 ‘문화’는 교회사(이교도 - 복음 - 교육 - 문화 - 배교)에서 늘 배교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었다. 교회는 문화를 통해서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반대로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문 밖으로 밀쳐내게 된다(계 3:20).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세상적인 문화를 지양하고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는 『참된 경배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하나님의 바른 말씀으로 경배드리는 것을 말하며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성별하여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예배는 순서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형식에 얽매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찬양과 기도, 헌금과 말씀은 빠지지 않는 중요한 부분이다.
『찬양의 제물』은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일이다(히 13:15). 힘있게 부른 찬양은 온 성도의 마음을 주님께로 집약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번성케 해주신 것에 감사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린다. 다른 순서를 넣음으로써 예배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다. 성도는 하나님께 경배드리러 왔지 영화를 보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세상의 빛’과 같은 영화와 같이 활용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예배의 수단으로써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전한 상식을 갖자. 부모님께서 싫어하는 것을 선물로 드리는 자녀는 없듯이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경배를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문화를 통해서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러한 예배 형태는 버려야 할 것이다(요일 2:15). 멀티미디어 예배가 시대의 요구일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요구는 아니다. 잘못된 예배의 형태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경배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