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기자의 논단 분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조롱하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10월호>

성경은 "전쟁이 주의 것"이라고 말씀한다(삼상 17:47). 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전쟁을 통해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고, 어떤 민족이나 국가를 멸망시키기도 하신다. 바빌론을 들어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는 메데-페르시아를 사용하여 바빌론의 죄를 심판하셨다. 또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기 위해 그리스를 들어쓰셨고, 그리스는 로마를 통해 멸망시키셨다. 전쟁은 "주의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전쟁을 선포하셨고(창 3:15), 그의 머리를 부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롬 16:20). 이 일은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야 비로소 성취될 것인데, 그 날에는 모든 이방 나라들이 멸망하고 온 세상의 모든 전쟁들이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이는 이 땅에서 어떠한 평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쟁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만이 전쟁을 끝내실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은 "주의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시도하는 인간들의 어떠한 협상이나 노력도 전쟁을 종식시킬 수는 없다. 전쟁을 끝내기 원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시도록 기도해야 한다(계 22:20,21, 시 122:6).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전쟁을 끝내는 성경적인 방법"을 믿지도, 시도해 보지도 않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고 조롱하며 비웃는 것인가?(벧후 3:3,4) 지난 9월 10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이하 한복협)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었다. 그들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내놓은 대안들을 살펴보면, 스스로가 소위 그리스도인들이라, 목사들이라 자처하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발표자로 나온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교수)는 "민주주의가 전쟁을 막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튜 화이트(Mattew White)의 보고를 인용하여, "민주주의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19.8%인 데 비해, 두 비민주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30.8%,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49.4%"라며 자료를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는 싸움이나 전쟁이 잘못된 정치체제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 이면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전쟁이 잘못된 정치체제나 잘못된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악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말씀한다. 『너희 중에 싸움과 다툼이 어디로부터 오느냐? 너희 지체들 속에서 싸우고 있는 너희 정욕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냐?』(약 4:1) 인간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세상의 자랑은 그로 하여금 무언가를 갖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그것을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얻기 위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약 4:2).
손교수는 말한다. "비록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비교적 현실적인 것은 우리 사회를 가능한 한 민주화하고 시민사회를 육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실제적인 대안도 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나 시민사회의 육성"이 인간의 죄성을 바꿀 수는 없다. 누군가가 잘 말했듯이, "비가 오면 전쟁은 실내 체육관에서라도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싸움을 그치게 하려면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거듭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혈과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은(요 1:13)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한 자들이기 때문이다(벧후 1:4).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시는 휴거 때에 그들의 몸도 구속됨으로써(롬 8:23) 완전히 변화하게 될 것이다(고전 15:51-53).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만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셈이다.

또 다른 발표자였던 박종화 목사(경동교회)는 "정의로운 평화의 구체적 실현은 칸트의 영구적 평화론의 3원적 요소(사회 국가의 민주화, 경제적인 협력과 연대, 국제기구에의 공동참여)를 수용하면서 인도주의 실현과 환경생명의 원리를 덧붙일 수 있다"며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그에게 있어서 최종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거듭나지 못한 철학자 칸트의 말이었다. 철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권위가 되지 못하면, 철학에 의해 노략질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날 배교한 모든 교회들과 신학교들의 실상이다. 철학에 의해 노략질당한 사람들은 성경적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길 꺼려한다. 영구적인 평화는 국가의 민주화나 경제적인 연대, 국제기구 참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UN(국제연합), WTO(세계무역기구),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EEC(유럽경제공동체), 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등의 연합기구들이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켰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지금 이 땅에 "정의로운 평화"가 이루어졌는가? "영구적인 평화"가 이룩되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그때에 공의가 광야에 거하며 의가 비옥한 들에 남겠고 의의 행위는 화평이 되며 의의 효과는 영원한 평안과 보장이 되고』(사 32:16,17). 『네 모든 자식들은 주를 배울 것이며 네 자식들의 화평이 크리라. 너는 의로 굳게 설 것이라. 네가 두려워하지 않기에 압제가 네게서 멀어지며, 공포가 네게 가까이 오지 않기에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리라』(사 54:13,14). 『온 땅아, 주께 즐거운 소리를 내어라. 큰 소리를 내며 기뻐하고 찬송하라...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은 외치며 세상과 그 안에 거하는 것들도 외칠지어다. 큰 물들은 손뼉을 치며 산들은 함께 즐거워할지니 주 앞에서 할지라. 이는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기 때문이라. 그가 세상을 의로, 그 백성을 공평으로 심판하시리로다』(시 98:4,7-9).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의로 심판하시고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 오지 않고서는, 이 땅에 결코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가 세워질 수 없다. "전쟁"뿐만 아니라, 현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 모두 다 해결될 것이다.
박목사는 "쌀이 북한을 이긴다."고 말을 덧붙임으로써 인도적인 대북지원을 강조하는 말도 남겼는데, 그러한 지원은 "목사의 임무"에 부합한 것이 아니기에 그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그런 일은 "그리스도인의 임무"에 부합하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그런 것을 "성도가 해야 할 의무"라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이 땅에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시도들을 교회들이 앞다투어 나서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려는 왕국건설자들이라고 부른다. 배교한 교회들이 할 일이란 사실 이런 것밖에는 없다. 손교수는 말하기를, "모든 방법을 강구해 전쟁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모든 한국인,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지상 임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성도들의 임무"조차 모르는 이 "철학자"에게 신학대 교수의 직함을 부여한 것인가? 그의 말을 통해 많은 교인들이 실족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본 월례회에 참석한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화평 지키기, 이웃 사랑, 자연 환경 보전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음에 대해 통회 자백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화해의 직분"을 소홀히 한 데에는 공개적으로 통회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이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지 못한 부끄럼과 수치, 또 게으름을 감추기 위하여, 지나치게 "평화"를 강조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그에 관한 일들을 교회가 해야 할 임무라 포장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월례회 설교자로 나선,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는 "평화가 깃든 사람만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두세 끼 밥은 굶을 수 있어도 평화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누가 평화가 깃든 사람인가? 그리스도인들인가?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들을 한 방에 가두어 두면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는 이사야 9:6을 본문으로 설교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지 못했다. 그는 "화평의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입으로 말했음에도 그분이 오셔야만 이 땅의 모든 전쟁은 종식될 것이라는 사실에 관하여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왜 그러한가? 변개된 성경으로는 어떠한 조명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한복협의 월례회 결론은 이렇다. 유관지 목사(한복협 중앙위원)는 발표회 내용을 정리하는 가운데, 『그가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심판하시며, 많은 백성을 책망하시리니 그들이 자기 칼들을 두들겨서 보습을 만들며, 자기 창들을 두들겨서 낫을 만들 것이요,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칼을 들어 올리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는 이사야 2:4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보습은 끝까지 보습이고 칼은 끝까지 칼이 되도록 하려는 진지한 몸부림을 느꼈다."고 소감을 말하며 마쳤다. 그러나 사실 인간의 노력으로 전쟁을 억제하려는 그들의 "몸부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몸부림"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벧후 3:3,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조롱을 언제까지나 참아 주시지 않으며, 그들에게 닥쳐 올 멸망을 언제까지나 유보시키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3:9). BB

기자의 논단 208 / 5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