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기자의 논단 분류

예장합동 교단의 육신적인 통합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8월호>

예장합동 교단의 육신적인 통합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관여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책망하라』(엡 5:11). 그리스도인이라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러한 일들을 보고 입을 꼭 다물고 있어도 안 된다. 즉 어두움의 일들로부터 온전히 성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두움의 일들에 대해서 용기 있게 『책망』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책망받는 모든 것이 빛에 의하여』(엡 5:13)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책망할 때는 반드시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입을 통해서 전달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빛을 비출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온유함으로 책망하여 바르게 잡아주고, 성경적으로 책망받았다면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바르게 고쳐 나가는 것이 빛의 자녀로서의 진정한 행보라 할 수 있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통합과 연합”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1979년 분열된 이래, 26년 만에 예장합동 교단과 예장개혁 교단의 통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사실, 한국 교계의 “분열과 통합”의 양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명분의 원칙이나 목적도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 다분히 정치적이고 육신적인 것이 교계 현실이다. 따라서 최근의 통합 움직임에 대해 교계 언론이 “한 몸을 위한 회복”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할 수 있다. 이는 “성경적인 성별”(롬 16:17, 딤전 6:5)도 “성경적인 연합”(요 17:11)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본 기자의 논단에서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예장합동 교단의 통합 움직임을 성경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과연 그들의 통합 움직임에 대한 진정한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대형화

한 기자가 개혁교단 총회장(홍정이 목사)에게 ‘통합의 명분’에 관해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세계 교회의 흐름과 한국 교회의 장래를 바라보면서 내놓은 시각으로 교단이 선교적 사명을 다하려면 대형 교단으로 인정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1979년의 교단 분열에 대한 화해와 회복이 필요하다는 시각으로 이번 통합이 잘 성사되면 민족 통일과 민족 복음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액면 그대로 보자면 1차적인 명분은 선교와 민족 복음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고 구령하는데 힘쓰지 않았던 교단과 교회들이 연합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우리 나라에 대형교회나 대형교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현재 그들 나름대로도 큰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복음 전파나 선교는 교단의 크기와 이름과는 전혀 무관하다. 교단에 소속되지 않고도 하나의 지역 교회를 통해 한 달에 2,000명 이상을 구령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 입증된 사실이다.
또한, 교단 분열에 대한 화해와 회복이 필요하다는 명분도 별 의미가 없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분열에 대한 책망과 반성 및 회개가 없이는 참된 연합을 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두 교단이 함께 서명한 ‘합동 합의서’ 12개 항목 중 어떤 항목을 보더라도 그런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와 관련하여 예장개혁 측 신학원 출신의 젊은 목회자들은 ‘79년 합동과 결별할 때 앞장섰던 교단 중진들이 죄책 고백조차 없이 교단을 통합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는데, 이는 올바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합동에서 큰 역할을 수행한 합동 교단 총무 이재영 목사는 ‘이번 합의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어떤 항목이었냐?’는 질문에 ‘9월에 있을 총회 소집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였다고 답변했다. 그만큼 자기 교단의 ‘명분과 입지’가 중요한 관심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정작 고심해야 할 부분은 뒷전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든 육신적인 것이든 분명히 분열의 원인이 있었을 것이고, 재통합을 추구한다면 당연히 그 분열의 원인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있었을 법도 한데,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을 보면 그들의 ‘통합’에 대한 명분이 다른 데 있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명분이란, 홍정이 목사의 말에서도 암시되듯이, 세계 교회의 흐름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흐름상 대형 교단에 소속되지 않고서는 교회들이 이 땅에 발붙일 수가 없다는 데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대형 교단을 이루지 못하면 연합 교단이라도 형성해 보려는 것이 교계 현실인 것이다. 즉 “대형화”라는 합의점이 그들을 한자리로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장합동 측은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개혁 교단 측으로부터 2,000여 개의 교회들이 합해져, 그동안 그토록 숙원해왔던 1만 교회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개혁 측은, 그동안 꾸준히 교회를 성장(?)시켜 왔음에도 교단의 잇단 분열이라든지 교단이 갖고 있는 한계성 등의 문제들을 이번 통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외적인 명분은 있어야겠고 그러다 보니 그들 나름대로는 선교니, 민족 복음화니 하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진정, 이번 통합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한국 교회에 분열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는 원죄적 오명을 벗어 버린 것일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한 결실로 교회 연합의 판로가 확보되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번 통합으로 발생한 개혁 교단 내의 또 다른 분열의 조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재 개혁 교단은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으로 나눠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합동 측은 이런 정황 속에서 ‘분열되더라도 올 교회는 오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통합이란 명분마저도 무색해 보일 정도다. 이 모두가 다 성경적 기준을 갖지 못한 열매들이다. 에베소서 4:3과 요한복음 17:11의 말씀을 ‘합동 합의서’ 앞에다 인용했다고 해서 명분이 바로 서는 것은 아니다. 내용과 실행이 성경에 근거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또 다른 육신적 분열은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광성교회의 합동 측 가입 논란

합동 교단의 통합 움직임이 의미 없는 명분이라는 것은 최근 광성교회의 합동 측 가입에 대한 논란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예장통합 측에 소속되어 있던 광성교회가 예장합동 측 서북 노회에 가입함으로써 두 교단 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개혁 교단과의 “한 몸 회복”을, 다른 한쪽에서는 예장통합과의 “대립”을 이루고 있는 합동 교단의 행보는 참으로 위선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통합을 위한 명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들은, 두 목사 간의 고발고소 사건이 100건 이상이나 되고, 자격도 없는 목사와 그 뒤를 따라 육신적으로 두 파로 분열된 교회를 성경적인 판단이나 영적 분별력 없이 ‘한 몸’으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참으로 ‘성경적 연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혹은 ‘한 몸인 교회 안에서 죄에 대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전혀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5장에서 몸 안으로 들어온 『누룩』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처리하라고 했는지 자세히 읽어 보라. 성경은 무조건적인 용서를 말하지 않는다.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네 형제가 너에 대하여 죄를 지으면 그를 꾸짖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하라』(눅 17:3). 또한 무조건적인 연합도 말하지 않는다(딤후 3:1-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

이런 사태를 관망만 할 수 없었던 통합 측은 광성교회의 원상복귀를 위해 한기총의 중재까지 요구하고 있다. 물론 한기총이라고 해서 별다른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합동 측이나 통합 측이 육신적인 광성교회에 대해 지나친 집착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성경적인 연합이나 한 몸을 위한 회복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린도전서 5장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다면 이미 광성교회를 교단에서 내쫓았거나 그들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세상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이 이 문제에 있어서도 돈 문제를 간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동부지검 중재로 광성교회는 ‘분립’하기로 합의를 보았는데, 실질적 분립에는 상당한 애로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광성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재산 때문이다. 광성교회, 기도원, 영신학원, 주차장 부지 등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산정해 보면 1천억 원대에 달한다. 교회가 분립될 경우 두 교회가 한 교단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는 예장통합 측에 다른 한 교회는 예장합동 측에 소속되게 되는데, 물론 통합 측은 그 일부의 재산을 합동 측에 쉽게 내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도록 열심히 노력하라(엡 4:3).
지금까지 살펴본 교단들의 움직임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 됨』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 『한 소망』, 『한 몸』, 『한 분 성령』, 『한 분 주』, 『한 믿음』, 『한 침례』, 『한 분 하나님』과 관련된 『성령의 하나 됨』이 예장합동의 통합 움직임이 아니었다는 것은 독자들 스스로도 쉽게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엡 4:3-6).
일찍이 예수님께서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을 때(요 17:11), 그 대상은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세상의 인정을 받는 “교단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육신적인 분열이나 통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육신적인 사람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세상의 미움을 받고(요 17:14) 세상에 속하지도 않으며(요 17:16), 오직 진리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요 17:17). 합동 합의서나 그들의 행보에 점수를 주지 말자. “한 몸 회복”이라는 등의 평가로 분별력을 흐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동정표도 성경적 진리와 판단보다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 진리에 따른 성별만이 온전한 연합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확실한 믿음을 두도록 해야 한다!! BB

기자의 논단 206 / 6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