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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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교회”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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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4월호>

『소가 없는 곳의 구유는 깨끗하나, 수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 14:4). 수소는 많은 일을 한다.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일을 해낸다. 사람이 거친 밭을 직접 갈 경우, 그 일을 감당하기가 힘들뿐더러 그의 육신은 과중한 노동에 의해 금세 망가질 것이다. 그렇기에 가난한 농부에게는 소 한 마리가 재산의 전부요, 가장 중요한 품목이 된다. 한편 그 소를 먹이는 일에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소의 먹이통인 구유도 항상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계속 청소해 주어야 한다. 만약 농부가 구유가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소를 팔아 버리거나 잡아먹는다면, 구유는 깨끗해지겠지만 그때까지 해 오던 농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외양간의 관점에서 어떤 것이 “완벽한 외양간”이겠는가? 소가 있고 구유가 있는 외양간이다. 물론 구유는 계속 더러워질 것이고, 외양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관리도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완벽한 외양간의 모습이다. 소가 없는 외양간은 더 이상 외양간이 아니다. 또한 먹지도 배설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구유를 깨끗이 청소하는 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가 필요한 농부라면, 당연히 소의 이런 점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소가 없는 곳의 구유는 깨끗하나』(잠 14:4).

인간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반드시 존재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 종교와 갈등과 쓰레기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영도 죽었다. 결국 죄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로만 채워질 수 있는 영적인 부분을 제 스스로 채워 보겠다는 일념하에 종교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타락한 아담의 본성에서 나오는 육신적인 성품들은 갈등만 일으킨다. 또한 썩어져 버릴 죄의 몸에서는 배설물만 나온다. 만약 이런 것들이 없는 곳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고 말이다.

성경대로 믿는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다. 성경대로 믿는 교회는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 죄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물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육신에 대하여 자신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만 발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이정표일 뿐, 주님께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기 전까지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온전히 따랐다. 즉 주님께서 가셨던 길을 온전히 걸어간 것이다. 이것은 주님처럼 완벽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 역시 죄인이었다. 그가 있는 곳에도 갈등과 쓰레기가 나왔다. 언젠가 럭크만 목사가 말했듯이,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을 한 방에 가두어 놓으면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문 밑으로 피가 흥건히 흘러나올 것이다.



죄가 없어야 달성 가능한 완벽한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금 “마귀의 편”에 서서 고소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귀는 고소하는 자다. 무엇을 고소하는가? 죄에 대해 고소한다. “이 사람은 죄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니 그를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 만약 예수님께서 죄가 없는 사람을 찾기 위해 오셨다면,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죄인을 찾아오셨고, 그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에 순종하셨다. 그래서 마귀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우리의 죄에 대해 고소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변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에게서 더러운 옷들을 벗기라... 내가 네게서 네 죄악을 제하였으니, 내가 옷을 바꿔 너를 입히리라』(슼 3:4). 그리스도인은 모든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제거되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고후 5:21)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죄가 제거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일어난 과거의 일이다. 그러나 현재 죄가 거하는 우리의 육신이 주님께서 주시는 옷을 입는 것은 미래에 속한 일이다. 즉 『하늘에서 오는 우리의 집』(고후 5:2)으로 옷 입게 되는 것은 우리가 죽을 때나 가능한 일이고, 죄가 없는 주님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은 휴거 때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고전 15:51,52). 성경대로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그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롬 7:18) 알아야 한다. 여전히 그 안에 죄가 거하고 있는 것인데(롬 7:17,18), 바로 그 죄가 『시기와 다툼과 분열』(고전 3:3) 등 우리가 『원치 않는 것』(롬 7:20)을 행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그 교회가 하나님께서 진리 위에 세우신 교회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일례로 고린도 교회는 육신적인 분열이 있었으므로 “비진리” 위에 세워진 교회인가? 고린도 교회를 누가 세웠는가? 성경은 그 육신적인 교회에 대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각처에서 우리 주, 즉 그들과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고전 1:2)라고 말씀한다. 말하자면 그 교회 역시 “하나님의 교회”였던 것이다.

어떤 성도가 성경대로 믿는 교회를 찾아왔다면 그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완벽한 지성과 인성을 갖춘 사람을 찾아온 것이겠는가? 그러한 존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성경대로 믿는 교회를 찾아왔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성경대로 믿는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성경대로 믿는 교회,” 이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 “완벽한 교회”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성경대로 믿는 완벽한 교회가 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적으로 보존하시고 사용하시는 온전한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전』(딤전 3:15)으로서 “진리의 성경”이 없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그 성경을 근거로 거듭난, 곧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요 3:5) 성도들이 함께 모여 주님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요 3:7)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요 4:24)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을 지역 교회의 회원들로 삼고 있는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행 20:28)가 아니라, “멸망하는 짐승들”이 모여 있는 동물원일 뿐이다.

셋째, 그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한다. 이는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지 않으면,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 위한 성경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고, 결국 교회의 회중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하게』 되지도,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지도(딤후 3:16,17)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는 자격 미달이다!

넷째, 바울에게 맡겨진(고전 9:17)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엡 3:2)에 맞는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현 교회 시대에는 천국복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저주를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모든 성경”(all scripture, 딤후 3:16)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주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기쁜 소식들을 전파하게 하셨음이라』(사 61:1).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

다섯째,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딛 2:13)을 기다려야 한다. 『자기 때가 되면 주께서 나타나시리니 그분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딤전 6:15).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빌 3:20). 『이는 우리가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의 소망을 기다림이라』(갈 5:5).



이상의 내용이 완벽한 지역 교회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당신 역시 이런 교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만일 그와 같은 완벽한 교회를 찾았다면, 그때부터는 그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 유익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그러므로 화평을 위한 일과 서로를 세워 주는 일들을 따라야 할지니라』(롬 14:19). 『모든 것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오늘날 제도화된 교단 교회들이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이유는,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나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육신 안에 갖고 있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교단 교회들의 육신적인 악취는 “비진리”로 인해 더욱 심해졌고, 그들을 위한 치유책은 “거짓말”(거짓 성경, 거짓 교리 등)로 인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완벽한 교회”에 대해 오해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신약에서 모범적인 교회들 가운데 하나인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음과 같은 지침을 주었다. 『형제들아,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무질서한 자들을 훈계하며 낙담한 자들을 위로하고 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들에게 오래 참으라. 주의하여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오히려 너희 자신들 가운데서와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것을 항상 따르라』(살전 5:14,15). 그 교회가 완벽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이런 지침들이 왜 필요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죄인들이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무질서하게 행동할 수 있고, 낙담할 수 있으며, 오래 참지 못한 채 악을 행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완벽한 교회의 기준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어떤 변화된 인격에 두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마귀의 계략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것은 마귀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다.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도』(느 4:3) 우리 믿음의 담장은 당장 무너질 수 있다.

우리 믿음의 강건함과 마음의 평안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리를 대하는 다른 지체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사람들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너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눅 8:25) 성도의 믿음은 마땅히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한다(살전 1:8). 우리의 보이지 않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향한 사랑의 수고와 섬김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면 반드시 덫에 걸리게 된다(잠 29:25). 영적인 지도자를 볼 때, 그의 약점을 파헤치려고만 하지 말고 그가 주님 안에서 행하는 일과 열매를 보아야 한다(살전 5:12). 설교를 들을 때도 설교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 연약한 인간 설교자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당신은 지금 “완벽한 교회”를 찾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완벽한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를 찾고 있는 것인가? 후자를 찾고 있다면, 당신은 절대로 성경대로 믿는 교회의 성도가 될 수 없다. 당신 역시 완벽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각 성도들이 각 지체들을 자신이 신뢰해야 할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사랑하고 세워 주어야 할 “구원받은 죄인”이요, 그 짐을 나누어 져야 할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식할 때,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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