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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인생을 걸고 사는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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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4월호>
"고전역학”이란, 물체가 움직이는 “힘과 에너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물리학을 가리킨다. 물리학자들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아이작 뉴턴(1642-1727)이 정립한 고전역학 덕분에 지구상의 물체의 움직임에서부터 우주 천체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물체의 운동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 미시 세계의 아원자 입자와 연관된 실험들의 결과를 고전역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 이론이 등장했는데, 특이하게도 양자역학에서는 고전역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 아원자 입자의 움직임을 “확률,” 특히 “우연”이라는 요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21세기 현대 물리학에서 “우연”이라는 요소를 접목시킨다는 것 자체가 실로 의아한 일이지만, 그것이 오늘날 현대 과학의 현주소다. 이에 대해 <뉴 사이언티스트>의 자문위원인 마이클 브룩스도 “양자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의 철학의 중심에는 우연이란 것이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라고 말했다.또한 양자역학에서 사용되는 “우연”의 요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과학적 사고나 이론, 가설 등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우선 물리학자들은 “카오스(혼돈) 이론” 등을 감안할 때 양자역학의 미시적인 세계에서 발견되는 우연의 요소가 거시적인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우주는 환원이 불가능한 방식, 곧 무작위적이고 “우연한 방식”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UC버클리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월터 앨버레즈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그의 아버지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와 함께 운석 충돌에 관한 가설을 발표하면서 “빅 히스토리”(우주, 지구, 인간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논의)를 학문으로 정착시켰는데, 특히 그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시작과 관련된 모든 일에는 그것을 지배하는 결정적인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모든 일은 연속성과 “우연성”의 지배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양자물리학자인 플로리안 아이그너도 “처음에 누가 질서를 만들었는가? 우주의 기원과 관련하여 처음의 낮은 엔트로피 상태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가장 적합한 대답은 바로 “우연”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과학은 어떤 이론(가설)을 주장하든지 “우연”이란 요소를 개입시키고 있기 때문에, “왜 그렇게 되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라는 대답 외에 딱히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월터 앨버레즈는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경이로운 이 우주가 무엇을 위해서,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심오하기는 해도 과학이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사실 과학자들은 자연의 존재 목적을 깨달을 수 없기에 이런 질문이 불편하다.”
이처럼 어리석은 “과학자들의 한계”에 대해 피터 럭크만 목사는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 누가 그 치수를 재었는지 네가 아느냐?』(욥 38:4,5) 과연 누가 했는가? 98%의 과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 대답은 과학을 내던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 치수를 재는 것은 물론, 우주의 어떤 것도 그냥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과학이 어떤 것의 기원을 다룰 수 없다면, 지구나 태양계의 기원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분야다.” 말하자면 우연의 요소에 의존하고 있는 과학 대신 성경으로 돌아가서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기원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들의 해답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섭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권면했던 것이다.
창세기 1,2장은 우주 만물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보여 준다. 시편 145-147편의 말씀을 면밀히 살펴보면,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우주를 운행하실 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모든 현상들과 피조물들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양털 같은 눈을 내리시고 하얀 서리를 재같이 흩으신다(시 147:16). 구름들로 하늘을 덮으시고 땅에 비를 내려 주심으로써(시 147:8) 날씨를 주관하신다. 계절도 주관하시어 겨울이 오게 하시고, 또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게 하신다(시 147:18). 산들 위에는 풀들이 자라게 하시며, 짐승들과 우는 까마귀 새끼들에게는 먹이를 주신다(시 147:8,9).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도 때를 따라 음식을 주신다(시 145:15). 게다가 동물들, 곧 까마귀(왕상 17:6), 암소(삼상 6:7-12), 사자(왕상 13:24) 등에게 명령하셔서, 때로는 그들의 “동물적인 본성”까지 거스르게 하시어 그분의 뜻에 순종하게 하신다. 오직 인간만이 “고의적으로” 인류의 모든 역사와 개인의 인생사에서 하나님을 애써 지우려 하고 있으며, 회개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행 17:30)에 불순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으로 일관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고,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기근, 가뭄, 전염병, 돌풍, 전쟁, 불의의 사고 등을 겪게 하시며, 특히 전쟁에서 누가 죽고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분의 섭리 속에서 일일이 개입하시고 주관하신다.
이상의 내용에 대해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딤전 6:20)은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창조의 시작 이래로 지금까지 무엇 하나 우연히 이루어진 일은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처음부터 그 끝을 선포하고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옛날부터 선포하고 말하기를 “나의 계획이 확고하리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행하리라.”』(사 46:10) 하시고, 『나는 처음부터 그 일을 네게 선포하였으니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그것을 네게 보여 주었느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말하기를 “나의 우상이 그 일들을 행했으며, 나의 새긴 형상과 주조한 형상이 그들에게 명하였다.” 하였으리라.』(사 48:5)라고 하시면서, 그분의 계획과 섭리적인 역사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렇듯 우주와 인류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우연으로 점철된 우연의 역사가 아니다. 창조를 통해 역사의 시작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과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일일이 개입하시고 주관하신 역사인 것이다. 과학이 창조주 하나님 대신 우연을 선택하는 이유는 매우 자명하다. 이는 자기 의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인간이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더 똑똑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인데, 결국 우주와 인류의 역사 그리고 자신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롬 1:28) 싫어하고 고의로 잊음으로써 하나님을 지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경희대학교 물리학과의 김상욱 교수는 그의 책 <떨림과 울림>에서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어떤 의도나 목적이 없다.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기계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면서 “우주는 어떤 의미도 없다.”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냈다.
우연에 인생을 걸고 있는 과학에 대해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한다. 『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딤전 6:20).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롬 16:18)하는 일은 종교적인 속임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 또한 마귀가 이 시대에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사용하는 강력한 미혹의 도구들 중 하나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운행하시며,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신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과 친히 하실 일들에 대해 인류에게 분명한 언어로 제시하시는데, 곧 성경을 통해 계시해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역사가 과거에 어떻게 시작되었고, 현재 어디로 가고 있으며, 또 향후에는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 알게 된다. 과학이 추종하는 우연의 요소에 인생을 걸고 사는 바보들은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모든 것은 성경의 역사와 예언대로 흘러갈 것이다. 우연에 의존하는 과학을 신봉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과학의 반론을 조롱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그 당사자가 지게 되어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그분께서 친히 기록하신 이 성경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그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의 명령에 온전히 승복하는 것이다. BB